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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성으로 빚은 나파밸리의 보석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루긴 어렵다. 와인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캘리포니아에서 10년 전 출생신고를 한 다나 에스테이트는 끊임없는 담금질과 두드림을 거쳐 꿈을 단단하게 완성해가고 있다. 공기마저 향기로운 그곳에서 아름다운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마주했다.

1백30년 된 돌벽이 피스타치오나무를 둘러싼 아늑한 정원. 오른쪽으로는 헬름스 빈야드가, 왼쪽으로는 와인 전시실과 숙성실이, 정면으로는 손님 초대를 위한 리빙룸이 마련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심장, 나파밸리
미국 캘리포니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연관어는 바로 ‘와인’이다. 연중 넉넉하고 뜨거운 햇살, 맑은 하늘, 4월부터 10월까지는 비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건조하고 쾌청한 대기. 이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데다 다양한 토양까지, 개성 있고 맛좋은 와인을 빚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조건이 있을까? 현재 미국 와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 째로 큰 와인 생산지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미국 특유의 개척 정신을 더해 탄생시킨 개성 있는 고품질 와인으로 구대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18세기 캘리포니아에 온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이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유럽종 포도 재배에 성공한 이후, 19세기 중반 골드 러시와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록세라(포도나무 뿌리 진디병)와 금주령 (1920~1933년에 상업적 와인 제조,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의 여파로 와인 산업이 침체를 맞았다가 캘리포니아 주립 데이비스 대학(U.C. Davis) 양조학과와 로버트 몬다비 같은 선구적인 와인메이커들의 노력으로 1960년대에 급성장했다. 급기야는 1976년 ‘파리의 심판’(파리에서 진행한 캘리포니아산과 프랑스산 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비교 시음회. 아홉 명의 프랑스 심판관은 카베르네 소비뇽은 나파밸리의 스태그스 립 와인 셀러 1973을, 샤르도네 역시 나파밸리의 샤토 몬텔레나 1973을 각각 1위에 올리며 캘리포니아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30년 후인 2006년에 개최한 시음회 역시 캘리포니아 와인의 압승으로 끝났다.

1 다나 에스테이트의 가장 큰 자랑은 1백30년의 흔적이 담긴 돌벽. 와이너리 입구에 1883년이 새겨진 돌이 남아 있다. 건축가 하워드 베켄은 이 돌벽을 그대로 살려 공간을 설계했다.
2 건축가는 와인 배럴 내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저장고를 디자인했다. 프렌치 오크 배럴에 담긴 와인은 18~24개월 정도 매우 평화로운 환경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숙성 단계를 거친다. 다나에서는 배럴을 위로 쌓지 않는다. 지게차로 옮기거나 배럴을 많이 이동시키지 않고 와인을 최대한 편안하게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3 5미터의 월넛 테이블과 연철 샹들리에로 꾸민 리빙룸. 커다란 유리문을 들어 올리면 정원으로 연결된다.
4 리빙룸에 걸린 중국 작가의 작품으로, 와이너리의 ‘올드&뉴’ 콘셉트를 잘 보여준다. 청나라 황실 여인이 전족을 하지 않고 맨발을 보인 것은 페미니즘을 뜻한다. 5 오래된 돌벽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정원은 흐르는 물과 조화를 이룬다. 6 둥근 구리 천장에 작은 조명등이 별처럼 촘촘히 박힌 원형 로툰다는 와인 저장고 입구에 자리 잡았다. 가운데는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벽면을 빙 둘러 그간 컬렉션한 와인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스토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땅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100km 북쪽으로 떨어진 나파밸리다. 포도를 재배하는 데 완벽한 조건을 갖춘 캘리포니아지만 단점도 있다. 강렬한 태양이 포도를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익혀 본연의 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 한데 나파밸리는 지중해성 기후로, 낮엔 햇살이 땅을 달구지만 밤엔 태평양으로부터 서늘한 바람이 계곡으로 스며들면 서 안개가 자욱해 포도를 서서히 익게 만든다.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 포도밭 면적의 8%에 불과한데 와인 생산량은 4%에 지나지 않을 만큼 최상의 포도만 수확해 품질 향상에 집중하는 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보르도와 비교해도 면적이 8분의 1이지만 1백 종류가 넘는 다양한 성질의 토양이 분포해 나란히 붙은 포도밭에서도 완전히 다른 와인 맛을 낼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토양마다의 독특한 미세 기후와 특성은 미국 포도 재배 지역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으로 지정되기 위한 중요한 요건인데, 나파밸리는 그 자체가 1981년에 공인받은 AVA이며, 그 하위에 스태그스 립 디스트릭트Stags Leap District, 러더퍼드Rutherford, 욘트빌Yountville, 세인트헬레나St. Helena 등 열다섯 곳의 AVA가 있다.

우리의 목적지인 다나 에스테이트Dana Estates는 나파밸리 마야카마스 산(Mayacamas Mountains) 기슭 러더퍼드 벤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간판도 없이 입구조차 눈에 띄지 않아 주소를 들고 찾아가지 않는 한 지나치기 십상이다(아직 개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2005년 동아원 이희상 회장이 구입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이 와이너리에 처음 포도를 심은 사람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독일인 H. W 헬름스Helms. 1883년 와이너리가 문을 열었고, 금주령 기간 동안 문을 닫았다가 1976년 두 번째 주인 존John과 다이앤 리빙스턴 Diane Livingston이 와이너리를 부활시켜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었다. 2005년이 회장이 인수한 후 폐허와도 같았던 이곳을 와인업계의 유명 건축가 하워드 베켄Howard Becken이 설계해 지금 같은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와인에 대한 무한 사랑과 열정, 20년간 신뢰로 맺어온 인맥, 거기에 동양적 정서와 꼼꼼한 디테일을 더해 명품 와인을 탄생시킨 동아원 이희상 회장. 다나가 나파밸리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 와인이 되기를 꿈꾼다.
공기마저 향기로운 포도밭 사잇길을 걸어 와이너리로 향했다. 어찌나 정갈하고 풍광이 아름다운지 밭이라기보다 정성껏 가꾼 정원 같다. 천하의 빌 할란도 갖지 못한 1백30년 된 돌벽을 중심에 두고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 와인 제조 시설과 손님 초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돌벽 안으로 들어서면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아늑한 정원이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정원 바닥은 건축가가 서울 가회동에 있는 이 회장의 한옥 자택을 방문했을 때 검은색 얇은 돌판을 켜켜이 바닥에 박은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적용한 것이란다. 정원을 지나 커다란 나무 문을 열면 로툰다rotunda(원형의 홀)로 이어진다. 구리로 된 지름 6.7m의 천장에 작은 전등이 촘촘히 박혀 별처럼 빛나는데, 가운데 라운드 테이블이 놓여 있고 사방을 둘러싼 벽에는 이 회장이 수집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다.

로툰다에서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발효실 세 개와 큰 리빙룸 그리고 다이닝룸이 나오고, 다이닝룸에는 높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세개의 연철 샹들리에와 그 아래로 5미터에 이르는 월넛 테이블이 놓여 있다. 한쪽 유리 벽은 마치 한옥의 문처럼 전체가 정원을 향해 열린다. 한국의 돌조각들, 성덕대왕 신종을 복원한 원광식 명장의 철 부조 그리고 중국의 현대미술가 여건군(Lu Jian Jun)의 전통 의상을 입은 맨발의 귀부인을 그린 커다란 그림이 모던 아시아의 느낌을 더해준다. 이 초상화는 건축가 이타미 준 선생이 와이너리를 다녀가다 샌프란시스코 갤러리에서 발견하고는 추천해서 구입한 것. 황실의 여인이 전족을 안 하고 맨발을 보인 것은 페미니즘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나의 모토 ‘올드&뉴’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이 만든 또 하나의 명품
다나 에스테이트는 와인 업계 최고 권위를 지닌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백 점 만점을 받아 유명해졌다. 와이너리 설립 4년 만인 2009년, 다나 로터스 빈야드 2007이 1백 점을 받으며 와인업계의 이슈가 되었다가 3년 후 로터스 빈야드 2010 빈티지가 또다시 1백 점을 기록한 것. 역사가 4년에 불과한 신생 와이너리가 1백 점을 받은 것은 업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고, 특히 2010년 빈티지의 경우, 로버트 파커가 1백 점으로 평가한 2010년 빈티지의 전 세계 와인 20종 중에서 유일한 비유럽산 와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컸다.

현지에서 다나 에스테이트를 총괄하는 전재만 대표는 “와이너리 10년이면 아직 아기에 불과한데, 로버트 파커에게 두 번의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큰 영광으로, 시작하자마자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밭입니다. 우리가 관리하는 세 밭 모두 특급이라는 게 증명됐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지요. 주변의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 운도 좋았고, 저희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포도밭을 관리하는 것과 와인메이킹에서는 누구보다 철저하고 깐깐하게 했습니다. 비슷한 가격대나 레벨의 경쟁 와인들을 수십 번 블라인드 테스트하고, 포도를 재배할 때도 송이를 많이 떨구고, 수확한 포도 역시 일일이 손으로 고르는 등 와인메이킹 과정의 디테일을 엄격하게 관리한 결과죠.”

1 새벽 동이 트자마자 포도 수확을 시작하는데, 모두 사람 손으로 한다. 2 수확한 포도는 세척 후 선별 작업을 거친다. 조금이라도 마르거나 터진 것은 모두 골라낸다. 3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 메를로, 진판델을 비롯한 많은 품종을 재배하고 있지만, 가장 각광받는 것은 역시 카베르네 소비뇽. 
다나 에스테이트는 해발 높이와 토양 성격이 다른 네 곳의 포도밭(헬름스, 크리스털, 로터스, 허시)을 소유하고 있다. 다나Dana는 각각 다른 토양의 테루아를 표현하고자 여러 밭의 포도를 섞지 않고 한 밭의 포도만 사용하는 싱글 빈야드 와인이고, 국내에서 판매하는 온다Onda는 네 개 포도밭의 포도를 블렌딩해 만든다. 처음에 모든 걸 희생하더라도 품질만 생각해서 나중에 톱다운하는 전략으로 시작, 손으로 수확하고 손으로 포도알을 선별해 전체 포도의 17%로만 와인을 만들었다. 그렇게 깐깐하게 만든 와인이 로버트 파커의 첫 크리틱에서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고(이전 주인은 같은 빈야드에서 88~92점 기록), 이름도 없던 첫 작품을 한 병에 2백75달러나 받고 판매했다. 이만하면 될 법도 한데, 이 회장은 만족하지 않고 늘 한 걸음 더 ‘+1’을 추구한다. 결국 파커에게 1백 점을 받고야 만다. 하지만 늘 행운의 여신만 만난 건 아니다. 2009년, 헬름스 빈야드 수확을 앞두고 큰비 예보가 있었다. 포도는 90% 정도 익은 상태였고, 비가 내린 후 갠다면 전량 수확할 수 있지만 만약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전체를 날리는 상황. ‘+1’ 정신으로 100%를 기대하며 기다렸으나 야속하게도 비는 두 번이나 더 내려 평년의 20% 수준인 48케이스밖에 못 만드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연간 총생산량이 1만 2천 병(1천 케이스) 정도로 극히 적은 편이며, 80%는 메일링 리스트로 판매되고 나머지 20%가 미국과 일본, 홍콩, 스위스 등 해외 9개 국에 판매된다. 메일링 웨이팅 리스트는 4~5년 기다려야 할 정도. 이처럼 전문가 들의 크리틱으로 와이너리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것, 특급 밭을 인정받은 것, 그리고 가격과 퀄리티 면에서 스크리밍 이글과 빌 할란에 이어 나파의 톱 5에 늘 꼽힌다는 사실은 10년 차 와이너리의 성적표치고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4 발효 탱크에서 맛과 향을 다 뱉어낸 포도알을 정리하는 모습. 
서양 술 와인에 동양의 장인 정신을 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인정받고 자리 잡기까지는 이희상 회장이 와인을 수입하며 쌓아온 탄탄한 인맥과 열정이 밑바탕이 됐다. 이 회장이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미국에 머물며 싸고 맛있는 와인을 접했고, 와인이 분위기는 물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값싸고 좋은 와인을 구해 국내에 대중화해보자는 생각으로 와인 수입을 결심했다. 당시 국내에는 이미 많은 수입사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이너리를 선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에 덜 알려진, 무엇보다 ‘라벨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미국 와인을 수입하기로 방향을 잡고 나파밸리로 향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와이너리 문을 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 큼이나 어려웠다. 미국 시장이 크기 때문에 수출이 필요 없기도 하거니와 한국이 라는 나라의 존재감이 미약해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렵사리 처음으로 물꼬를 튼 것이 조지프 펠프스Joseph Phelps였다.

“처음 인연을 맺은 조지프 펠프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소개받으면서 인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지만 셰이퍼 씨한테도 예닐곱번 찾아갈 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지요. 만나기로 약속했다가도 막상 그 시간에 찾아가면 바쁘다고 핑계 대며 만나주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꾸준히 찾아가 선물도 놓아두고 오는 등 정성을 들였지요. 빌 할란은 4년간 쫓아다녔을 정도 예요. 2000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는데, 국내에 와인을 주기로 해놓고서도 2010년부터나 주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대개가 그렇더라고요. 제가 괴짜라고 소문나서 나중에는 그나마 만나기가 수월했지만, 열두 개의 와 이너리를 뚫는 데 10년이나 걸렸습니다.”

어렵게 와인을 구하다 보니 누구라도 와인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밥 사면서 와인을 설명하러 다녔고, 어디든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리 맛 좋은 것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듯 와인도 누군가와 함께할 때 진가가 살아난다. 이 회장은 인생의 반 이상을 와인과 함께했다고 이야기한다. 성공 비결 첫 번째가 20여 년간 와인을 수입하면서 쌓은 신뢰와 인맥이었다면, 두 번째는 동양적 정서에서 비롯한 디테일의 결과다. 한참 후발 주자인 이들에겐 뭔가 남다른 게 필요했고, 이 회장은 동양의 정서인 ‘장인 정신’ ‘정성’의 개념을 강
조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와인을 만든다는 헤리티지에 대한 존중이다.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한다. 숫자로 나타내거나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와인을 마셨을 때 느끼는 와인의 영혼 또는 본질 같은 느낌은 사람의 손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와이너리에 먼지 한 톨 없게 하기까지 파란 눈과 금발의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가르치고, 솔선수범했다. 과학적으로 이런 정신이 와인 맛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실수를 하는 법!

나파를 넘어 세계 최고의 와인을 꿈꾼다
와인메이킹부터 아키텍처에 이르기까지 다나 에스테이트를 관통하는 모토는 오래된 전통과 혁신의 균형 (balance between old tradition and innovation)이다. 와인메이킹에서 과학적 접근은 프랑스보다 미국이 더 강세다. 하지만 너무 이노베이션만 강조하면 믿을 수 없다. 그래서 프랑스 출신의 와인메이킹 컨설턴트인 필리프 멜카가 적합하다. 그는 와인의 전통도 잘 알고 나파밸리 밭에 대한 지식도 탄탄하다. 올 초 다나에 합류한 와인메이커 크리스 쿠니Chris Cooney는 “우리 와인의 목표는 최상의 밭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살려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보존 했다가 마실 수 있는 와인,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감이 견고해야 해요.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과일 맛이 순수하게 살아 있고, 신맛이 조화를 이루는 밸런스가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다나 와인의 목표를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헬름스는 미드 팔레트(입안에 와인을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풍미)를 좀 더 길게 하고자 똑바로 세운 오크 발효기에서 숙성한다. 허시의 대부분은 적은 양으로 배럴 발효하는데, 이는 와인의 단단한 타닌을 부드럽게 해준다. 로터스는 콘크리트 용기에서 발효해 과일 향을 끌어올리고 타닌을 잘 융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발효한 와인은 프렌치 오크 배럴에 넣은 후 18~24개월 정도 평화로운 환경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숙성한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목표는 “나파 와인 중 최고가 아니라 전 세계 최고 와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야심 차게 이야기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구나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도 언제나 열려 있다. 앞으로 10년을 준비하며 전문가 그룹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품질 향상을 위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할 계획이다. 자기 와인에 혀가 길들여져 자신이 만든 와인만 맛있게 느끼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테이스팅 패널, 물 공급과 포도의 스트레스 상관관계를 분석해 리포팅해주는 박사, 와인 향 분석가 등이 다나의 장기 비전에 함께한다. 다나의 10년 후, 2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그렇게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1 노을을 배경으로 헬름스 빈야드에서 와이너리를 바라본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포도는 모두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 2 다나 에스테이트가 만드는 와인. 왼쪽부터 다나 헬름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2007, 온다도로 카베르네 소비뇽 2007, 온다도로 카베르네 소비뇽 2009.
우리가 다나 에스테이트에 머무는 동안 와인 평론가 안토니오 갈로니가 테이스팅을 했다. 그는 로버트 파커가 와인 평론을 하면서 발행하고 있는 와인 평론지 에서 2006~2013년에 평가 멤버로 일했고, 파커가 2011년에 더 이상 캘리포니아 와인을 직접 평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파커를 대신해 평가해왔다. 파커가 2013년 를 싱가포르 투자자에게 운영권을 넘긴 후 갈로니는 와인 평론 사이트(vinousmedia.com)를 만들어 운영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와인 평론가다. 얼마 전 그의 테이스팅 결과가 나왔다. 총 9종을 평가했는데, 93~98점으로 고르게 좋은 점수를 받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준 허시 2012에 대해서는 “늘 그래 왔듯, 허시 빈야드 와인은 다나의 와인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구조가 탄탄한 와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테이스팅 노트가 다나 에스테이트의 현재를 가장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자료일 테니 그대로 옮겨 적는다.

“다나는 병입 시기를 늦게 잡기에 10월에 방문했을 때에도 2013년 빈티지 와인이 아직 병입되지 않고 배럴에 있었다. 조각 같고 유려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드는 다나의 와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초대 와인메이커인 캐머런 보터Cameron Vawter가 가족들과 세일링 보트로 세계일주를 떠난 후 크리스 쿠니를 새로운 와인메이커로 영입했지만 와인의 스타일이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존하는 최고의 와인메이커이자 와인메이킹 컨설턴트 중 한 명인 필리프 멜카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도 컨설턴트로 있다. 지금껏 그래 왔듯, 프리미엄 와인을 소량 생산하기로 알려진 나파밸리 와인의 평균보다도 더 적은 양을 생산하고 있지만 와이너리에 들이는 공은 매우 커서 다나의 셀러에서 와인이 숙성되기 시작하면 특별한 와인이 된다.”



나파밸리에서 만난 와인의 거성
다나 에스테이트의 소개로 두 곳의 이름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셰이퍼Shafer와 조지프 펠프스Joseph Phelps는 모두 지금의 나파밸리가 있게 만든 ‘선구자’들의 철학과 땀으로 이룩한 톱 와이너리다.


존 셰이퍼John Shafer 현존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전설
로버트 몬다비는 작년에, 조지프 펠프스는 올해 세상을 떠났으니 현재 나파밸리 와인의 ‘살아 있는 전설’을 꼽으라면 단연 존 셰이퍼다. 1970년, 시카고 근교에서 출판업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47세의 그는 23년 일해온 업을 접고 온 가족을 데리고 환경이 열악하고 낯선 나파밸리로 와인을 만들러 왔다. “1970년대에 많은 사람이 원래의 직업을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파밸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요. 이곳에 온 이유라면 첫 번째는 야외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스가 되어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죠. 농업이나 포도 재배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도 말이에요. 그때는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나파밸리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평지에 있던 당시, 그는 배수가 잘되고 자연적으로 포도 수확량이 더 적은 언덕의 포도밭(가격이 아주 저렴했던!)을 사서 시작했다. 그의 선견지명 덕에 포도밭이 자리 잡은 스태그스 립 디스트릭트는 현재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재배에서 전 세계 지역 중 베스트 지역으로 꼽히며, 셰이퍼 와이너리의 대표작인 힐사이드 셀렉트 카베르네 소비뇽Hillside Select Cabernet Sauvignon은 로버트 파커에게 1백 점을 네 번이나 받는 대기록을 남겼다. 프리미엄 와이너리일수록 가족 경영이 큰 장점이 되는데, 그의 아들 더그 Doug는 U.C 데이비스를 나와 1994년부터 사장으로 일한다. 현재는 30년 간 파트너로 함께한 와인메이커 일라이어스Elias와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며 나파밸리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그는 이희상 회장이 나파밸리에 이웃으로서 다나 에스테이트를 시작하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먼 거리를 날아 자신의 와이너리를 찾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이날 존 셰이퍼는 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온 상태였다. 그가 하루빨리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와인의 전설로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빌 펠프스Bill Phelps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와이너리를 지키다

포도 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르도 스타일을 적용한 최초의 캘리포니아 와인 ‘인시그니아Insignia’로 유명한 조지프 펠프스 빈야드. 인시그니아 2002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선정한 2005년 100대 와인 중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명품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이희상 회장이 이곳의 와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연으로 막역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조지프 펠프스는 올 초, 87세로 타계했다. 1950년대에 콜로라도에서 건축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1960년대에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나파의 가능성을 확신한 후 1973년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를 세인 트헬레나 지역에 설립했다. 최초로 미국산 시라Syrah 와인을 상업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지프 펠프스 빈야드는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과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파노라마 뷰(나파밸리에 서 뷰가 가장 멋진 곳이 분명하다!)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조지프 펠프스의 아들 빌 펠프스는 법대를 나와 20년간 법조계에서 몸담은 후 1998년부터 아버지를 돕다가 2005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는 저에게 회사의 이익을 다시 회사에 투자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건물을 고치고 새 로 짓거나, 포도밭에 투자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지금 이 건물도 1974년에 지은 원래 건물을 1년 반 동안 비워서 완전히 레노베이션했는데, 고전적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외관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고객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름다운 뷰를 원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지키는 것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 중 하나지요.”

야외 테라스에 앉아 5종의 와인을 시음한 시간은 오랜만에 맛본 평온이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아 그곳에서 ‘인시그니아 2012’를 구입해 여행 가방에 실었다.

취재 협조 다나 에스테이트 도움말 나라셀라(02-405-4384), 캘리포니아와인협회(02-543-9380)

#와인 #나파밸리 #다나에스테이트 #와이너리 #존셰이퍼 #빌펠프스
글 구선숙 | 사진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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