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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럭 아트센터의 핀란드 디자인 공예전 헤이리로 옮겨온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
늦가을 단풍이 물든 헤이리 예술 마을의 호숫가. 마치 핀란드의 숲에 온 듯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햇살을 잘 품을 수 있도록 새하얀 박스 형태로 디자인한 화이트블럭 아트센터에서 핀란드 디자인 공예전이 시작됐다. 핀란드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의 작가들이 내한해 직접 그들의 작품으로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1월말까지 열린다.

건축물을 모티프로 사각형의 패브릭을 바느질해 거대한 도시 형태로 완성한 디파 판차미아 작가의 설치 작품 
여름 숲 속의 맑은 호숫가, 작은 오두막에 앉아 달구어진 돌에 물을 뿌려 그 증기로 사우나를 하고 몸에 후끈하게 열기가 오르면 차가운 호수에 뛰어들어 알몸으로 대자연을 만끽하는 사람들. 봄가을이면 어느 숲이라도 마음껏 다니며 버섯과 베리 열매를 자유롭게 따 먹고 겨울이 되면 오로라가 펼쳐진 하늘을 건너 산타클로스 마을로 여행을 가는 곳, 북유럽 핀란드의 자연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이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연에 깃든 삶을 살다 보니 라이프스타일을 장식하는 모든 분야의 영감이 대부분 대자연에서 비롯한다. 많은 나라가 이순신 장군이나 나폴레옹 같은 무신 또한 정치가를 국가 영웅으로 꼽는 데 반해 핀란드인은 북구의 자연을 클래식 선율로 변환시킨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북극해의 해안선을 건축과 가구에 담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를 영웅으로 여기는데, 여기에서 핀란드인의 삶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자연에 대한 동경과 공감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가의 동화 같은 마을 피스카르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 피스카르스 Fiskars. 이곳은 자연이 핀란드인의 생활 문화에 녹아드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마을이다. 숲 속 개울과 호수 사이로 작은 집과 건물이 있는 마을에 6백여 명의 주민이 사는데, 이 중 20%인 1백50여 명이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와 장인이다. 그 옛날 각국이 전쟁을 많이 치를 때는 나라마다 두드린 철을 물에 식혀 무기를 만드는 제련소가 필요했다. 개울과 호수가 있어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피스카르스는 이런 연유로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제철 산업이 성행했다.

1649년 가위와 포크, 나이프 등 금속을 이용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피스카르스라는 회사가 이 마을에 들어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산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통 방식의 공장이 문을 닫자 가구 디자이너, 유리 금속 공예가, 목가구 공예가, 도예가, 섬유 예술가가 마을의 빈 공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마을은 3백60년의 역사를 이어온 피스카르스 그룹의 사유재산. 1967년에 세계 최초로 가위 손잡이를 오렌지색 플라스틱으로 디자인해 세계 문구류의 대변화를 일으키며 성장한 곳으로, 핀란드의 대표적 리빙 디자인 브랜드 이딸라를 비롯해 프랑스의 정원용품 브랜드 르보르류, 덴마크의 최고급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 영국 도자기의 대명사인 로얄 덜튼과 웨지우드를 인수해 운영하는 세계적 라이프스타일 그룹이다.

피스카르스 그룹의 지원으로 크고 넓은 공장 건물을 물가가 비싼 헬싱키보다 저렴한 비용에 아틀리에로 사용할 수 있으며, 호수와 개울이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서 대자연의 디자인 모티프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은 창작 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공장 건물이 공방과 주택, 갤러리와 부티크로 변화하자 핀란드식 디자인 작업을 감상하기 위해 도시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을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충실히 하는 것 외에도 서로 연대해 날씨가 화창한 5월부터 9월 사이에 다채로운 전시나 멋진 이벤트를 열어 손님을 맞이한다. 또한 헬싱키 등의 도시나 해외에서도 순회 전시를 여는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은 이딸라, 마리메꼬, 이바나 헬싱키 등의 브랜드 못지않게 핀란드 국민에게 사랑받는 핀란드 디자인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유리병을 쌓아 만든 카밀라 모베르그 작가의 전등 작품. 소장자가 원하는 대로 재배열할 수 있어 재미있다. 
마을을 대표해 한국에 온 핀란드 디자이너
지난 10월 29일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 내 화이트블럭 아트센터에서 열린 핀란드 디자인 공예전. 마띠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에서 온 작가 네 명이 그곳의 생활 디자인 작품을 한국에 소개했다. 201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디자인 수도전과 20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디자인 위크전에서 선보인 작품을 이번 겨울 한국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1985년에 피스카스 마을에 입주해 30년째 그곳에서 작업하며 피스카르스 예술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카밀라 모베르그Camilla Moberg 산업 디자이너,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 소속 작가로 도자 작업을 하는 박석우 작가, 이웃 친구인 수쿠(박석우 작가의 핀란드식 이름)의 도자 작품에 감동을 받아 그동안 한국 여행을 열 번도 넘게 하며 도자기와 문화를 흡수한 카린 비드네스Karin Widn s,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떠오른 디파 판차미아Deepa Panchamia 설치 미술가가 이웃 예술가 스물일곱 명의 작품 3백여 점과 함께 내한했다.

“30년 전에는 우리 마을에 디자이너가 스무 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훨씬 많아 졌습니다. 마을의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거주 비용이 저렴한 데다 피스카르스 그룹이 예술 활동을 여러 방면으로 지원해주는 덕분이지요.” 카밀라의 설명처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한 마을에 모여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만큼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작품의 소재와 모양도 다채롭다. 이번 전시에는 핀란드 숲을 빼곡히 채운 나무는 물론 도자, 유리, 돌, 철과 섬유 등을 사용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조명등, 의자, 식기, 핸드백과 액세서리 등 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생활용품 위주로 구성했다. 지난가을 <행복> 독자들이 다녀온 북유럽 독자 여행 코스였던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에는 평소 일본인 여행자는 많지만 한국인 방문객은 드문 편이다. 또한 한국에서 핀란드의 디자인 작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작은 생활용품 위주로 구성해 관람객이 핀란드 디자인 제품을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핀란드 디자이너와 한국인의 감성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핀란드 작가들의 배려가 이 전시 구성에 담겨 있다.

1 흙과 나무 같은 자연 재료를 사용한 생활 소품 작품.
핀란드 디자인의 전통과 현재
총 네 개의 전시 공간에서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핀란드 작가들이 전시장 구성과 작품 배치까지 직접 마무리했다. 디자인 학교의 역사가 1백40년에 이르고 디자이너 협회가 설립된 지도 1백 년이 넘을 정도로 오랫동안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만큼 핀란드 디자인의 클래식을 한국 관람객에게 소개한다. 1층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카밀라 모베르그 디자이너의 알록달록한 유리 화병 작품, 마치 마리메꼬의 산뜻한 컬러 도트를 도자기로 옮겨놓은 듯한 카린 비드네스 작가의 도자기 위시 박스, 자연의 나무 소재로 군더더기 없이 잘 지은 건축물 같은 독특한 핸드백과 소리 상자를 만들어낸 툴리아 펜틸라Tuulia Penttil 작가의 작품, 하늘에서 은은한 파스텔 톤 빗방울이 떨어지게 만든 박석우 작가의 도자기 설치 작품과 의자, 조명등 등의 작품이 자연에서 디자인 영감과 재료를 얻는 핀란드식 디자인의 전형이다.

반면, 화이트블럭 아트센터의 건축 특성을 미리 파악해 새하얀 화이트 큐브 섬유를 마치 거대한 도시처럼 이어 붙인 디파 판차미아 작가의 작품은 자연을 해석하는 핀란드 신진 디자이너의 시선에 보다 현대적 감각과 위트가 가미되고 있음을 웅변한다. 이런 감성은 2층 복도에서 중정을 내려다보는 킴 시몬손 Kim Simonsson 작가의 ‘모시 보이Mossy Boy’에서 극대화된다.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전시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소년 소녀 동상으로, 앞에서 보면 천진난만한 어린이 모습이지만 방향을 바꾸어 뒷모습을 보면 섬뜩한 해골이 보인다. 고압 전류를 흘려 질감을 변형시킨 소재도 생경한 느낌으로 우리가 지금껏 자연스럽게 느끼던 일상과 현상에도 생각지 못한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관람객에게 전한다.

2 나무를 이용해 마치 평면 회화같이 완성한 조각품.
3 섬유에 전류를 흘려 질감을 변형시킨 킴 시몬손 작가의 모시 보이.
4 카린 비드네스 작가의 도자기 위시 박스, 카밀라 모베르그 작가의 글라스 아트 화병. 

5 도자기 비즈를 이용해 마치 눈 내리는 장면을 연출한 듯한 리타 탈론포이카 작가의 설치 작품.
2층의 설치 작품 전시관에서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요우코 카르카이넨Jouko K rkk inen 디자이너가 얇은 자작나무 판으로 절묘한 방음벽을 만들어낸 나무 조형 작품, 전통 유리공예 작품을 유머가 담긴 현대적 설치 작품으로 변화시킨 카밀라 모베르그 디자이너의 조명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또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판매되는 멋스러운 나무 접시, 조명등, 의자, 유리를 불고 색을 넣어 만든 특별한 샴페인 잔도 멋스럽다. 도자기로 만든 대나무 숲, 숲에서 주워온 나무와 돌로 만든 도장과 브로치, 종이를 기하학적으로 자르고 접는 것만으로 독특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목걸이와 반지 등을 선보이는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작은 작품이라도 소장하고픈 마음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핀란드 자연을 관람객에게 멋과 감각으로 전해주는 작은 작품마다 다음 휴가에는 피스카르스 예술인 마을로 여행을 오라는 핀란드 디자이너들의 1 초대 인사가 담겨 있는 듯하다.

6 빗방울을 연상시키는 박석우 작가의 도자 설치 작품.

#피스카르스 #화이트블럭아트센터 #핀란드디자인공예전 #박석우 #헤이리예술마을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