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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가지 키워드로 만난 특별전 아름다움은 지금 이 순간
공예, 디자인, 순수 미술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 열다섯 팀이 알랭 드 보통과 협업했다. 두 차례의 워크숍과 수십 통의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창작의 순간들. 자연, 우아함, 강인함을 키워드로 ‘아름다움과 행복’의 가치를 담은 작품을 통해 공예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았다.

김재성 _ 희망(Hope) 사슴, 날다
한국 전통 미술에서 장수와 희망을 상징하는 사슴 형태로 조명등을 구현한 김재성 작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연약함이 떠오른다는 그는 약한 동물이 맹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았다. 연약하고 섬세한 사슴이 함께 달리는 모습을 빛으로 표현한 거대한 조명 설치 작업은 편안함과 역동성이 공존하는 오브제로, 보는 순간 ‘희망’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빛이 균일하고 맑게 투영되는 한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색을 입히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제작. 십장생도의 모티프가 되는 사슴을 화첩에서 꺼내어 빛을 심고, 공중에 리듬감 있게 배치해 입체 작업의 묘미를 살렸다.

김은혜 _ 강인함(Strength) 전통과 현대를 잇다
‘강인함’은 재료의 탄생에서 시작한다. 나무는 자연에서 추위와 비바람을 이기며 스스로 자란다. 채취, 삶기, 다듬기, 껍질 벗기기, 뜨기, 도침 등의 과정을 거쳐 나무는 연약한 섬유가 되고 서로 얽혀 한지가, 한지는 찢어지지 않는 실로 탄생한다. 이 실들이 엮여 그릇이 되고, 그 그릇은 어떤 것이든 담을 수 있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모두 지닌 한지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펼치는 지승 공예 작가 김은혜. 그는 여러 재료를 그릇에 담아 비벼 서로 나눠 먹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둥근 그릇을 제작했다. 오직 손으로 꼬고 엮어 만든 그릇은 테두리에 각이 없는 형태로 특유의 곡선미를 살린 것이 특징. 전통 제작 기법은 고수하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넓혀가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풀, 옻칠, 기름으로 마감하면 물도 담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아진다.

이승희 _ 기억(Memory) 붉은 대나무 숲의 특별한 순간
곧은 성정과 유연성, 우아함과 강인함… 대나무를 상징하는 단어는 늘 대립 구도를 이룬다. 도자의 성지, 중국 징더전에서 활동하는 이승희 작가는 가장 잘 부서지고 유연성 없는 재료인 점토로 단단한 대나무를 재현했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대나무 숲에 빠져들어 색다른 체험을 하도록 대나무가 지닐 수 없는 붉은빛을 선택. 8천여 개의 대나무 마디를 일일이 손으로 빚어 여덟 명의 스태프가 꼬박 일주일 동안 설치한 대나무 숲은 깨지기 쉬우면서 단단한 도자의 물성과 붉은 빛깔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존처럼 관람객이 자유롭게 사진도 찍고 작품을 만져보며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지금 여기, 나는 누구일까’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져보길.

Love 서하나ㆍ유대영 _ 사랑(Love) 들여다보기
장지에 분채·석채 등의 재료로 회화 작업을 하는 서하나 작가와 영상·그래픽 작업을 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유대영 작가가 만났다. 주제는 ‘사랑’. 서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은 ‘서로를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표현한 꽃 그림은 가까이 들여다봐야 작품이 전하는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단순히 꽃 그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모란 뒤에 아주 작은 사람이 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림 안에 숨어 있는 일상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 작가는 지금은 재생할 수 없는 추억을 미디어 작업으로 구현했다. 애정이라는 한자를 조각한 상자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고, 영상에서 나오는 색색의 선은 시간의 흐름을, 상자 아래 설치한 거울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찰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기쁨과 슬픔이 배어 있다. 삶이 그렇다. 그러니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광호 _ 현재(Present) 순간을 기억하라
일상에서 손쉽게 발견하는 재료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어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이는 이광호 작가. 그는 아름다움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듣고 가장 먼저 ‘지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바로 공예가 전하는 행복의 가치 아닌가. 그리고 ‘지금’이라는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변화하는 달의 모양을 주목했다. 관찰하는 시공간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이지만, 본질은 한결같은 달처럼 각각의 삶 또한 매 순간 달라지는 모습이 켜켜이 쌓여 완성되는 것. 적동과 철을 구부려 특정한 모양이 멈춰 있는 순간을 표현한 벤치와 스툴은 지친 관람객이 잠시 멈춰 쉴 수 있는 편안한 쉼터가 된다.

가든하다 _ 자연(Nature) 도시 속 정원
책과 글을 통해 자연을 접하는 시대다. 만약 살아 있는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면 우리는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셈. 가든하다는 자연과 교감하며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모든 활동을 ‘가드닝’이라 정의한다. 가드닝이라 하면 보통 너른 마당이나 정원에서 하는 대단한 원예 활동을 생각하지만, 규모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감수성일 터. “처음에 ‘자연’이라는 주제를 듣고 우리에게 너무 직접적인 키워드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어요. 하지만 곧 거창한 자연이 아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연이 주는 감동에 집중하기로 했죠.”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형태로 양산이 가능한 어번 네스트 화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회색 도시를 형상화한 실용적 공예품이다. 작고 무뚝뚝한 모양의 화분에 선인장만 꽂아도 풍부한 표정을 만들어내니, 도시 생활에서 초록이 주는 위안과 감동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강희정 _ 우아함(Elegance) 천천히 피어난 자신감
알랭 드 보통은 칠기를 가리켜 조용한 자신감이 그득한 산물이라 평했다.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일 터. “옻을 잘 칠하면 오래가고 나무가 뒤틀리지 않아요. 무덤덤한 겉모습 속에 숨은 견고함, 이게 바로 칠기의 매력이지요.” 일상의 소중함을 칠기로 구현하는 강희정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본 식기류를 제안한다. 조형적이고 단순하되, 옻칠 특유의 우아한 빛을 강조한 식기는 오래 사용해도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입에 닿았을 때 부드러운 촉감과 은은한 향이 기분 좋은 제품. 남원에서 제작한 백골에 칠을 하고 마르면 다시 사포로 다듬고, 나뭇결 사이사이의 빈 공간에 고운 흙을 채워 넣고 다시 칠을 하고 사포로 다듬기까지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정성과 비례해 융숭하게 대접받는 느낌이다.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아주 우아하게.

염승일 _ 얼굴(Faces) 내면의 아름다움
시각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순수 미술로 방향을 전환한 염승일 작가. 각자가 가진 개성과 심리적 상황에 따라 같은 대상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예술적 체험에 흥미를 느끼던 작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과 표정을 주제로 설치와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웃고 찡그리고 미소 짓고 우는 등 다양한 표정을 구현한 영상 작업은 특정 부분을 강조한 방식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의 잘생긴 얼굴, 예쁜 얼굴을 부러워하기보다 평화로운 시선, 신뢰 가는 입매, 정직한 코 등을 칭찬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최정유 _ 동행(Companionship) 따로 또 함께
테이블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탈 소재를 이용해 ‘동행’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최정유 작가.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이 주는 의외의 매력을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금속은 거울처럼 우리 삶을 비춰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보일 듯 말 듯 주변을 부드럽게 감싸는 빛이 벽에 일렁이며 공간에 새로운 매력을 더하는 금속 합. 작가는 주제에 충실하기 위해 직접 금속 공정을 배우며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을 맞췄다고 한다. 모습이 제각각인 금속 합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독립적이면서도 근사한 합合을 이룬다.

문채훈 _ 성숙함(Maturity) 너와 나의 이야기
꽃신을 만들고 싶었던 소녀는 성장해 옻칠 작가가 되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통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옻칠 작업을 선보이는 문채훈 작가. “옻칠은 시간이 지날수록 ‘핀다’는 표현을 써요. 사용할수록 색이 더 깊고 밝게 올라오지요. 오랜 시간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옻칠의 매력을 알랭 드 보통에게 설명하니 ‘성숙함’이라는 주제를 제안했고, 성숙을 위한 대화의 매개체로 소반과 목침을 선택했어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늘 테이블이 있다. 옛날에는 소반이 그 역할을 했다. 소반의 기본 비례미를 차용하되 원과 원뿔, 삼각형 등 최소한의 도형으로 모던하게 완성한 소반은 플렉서블한 가구이면서 공예품이요, 또 하나의 공간이 된다. 소반이 타인과의 대화라면, 목침은 나와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게끔 해주는 목침이야말로 내면의 성숙을 도와주는 조력자다. 작가는 옻칠 중 가장 순수한 방법인 건칠을 목침에 적용했다. 칠에 흠뻑 적신 삼베를 6~7겹 붙이고 톱밥이나 사암 가루 등의 혼합물을 바른 뒤 건조하니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형태가 완성됐다.

차승언 _ 무시간성(Atemporality)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다
‘무시간’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직물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온 공예의 의미를 재조명한 차승언 작가. “과거의 공예는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사물은 공예와는 거리가 있는 상품(goods)이 되었지요. 일상적으로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물건인 TV, 냉장고, 침대 등을 공예 방식으로 다시 재단하고 싶었어요. 벽에 건 작업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 TV의 규격 사이즈예요.” 각종 디지털 기기 덕에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격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납작한’ 시간성이 그가 생각하는 ‘무시간성’의 개념이다. 벽에 회화처럼 걸려 있는 작품은 시대별로 달라지는 TV의 크기를 표현한 것. 파티션인 줄 알았던 설치 작업은 알고 보니 싱글, 더블 침대 사이즈란다. 날실과 씨실을 직조해 만드는 미묘한 색감과 간결한 형태가 주는 차분한 감성. 공간 속에 스며들 것만 같은 작품은 의미를 듣고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그 속의 견고함이 느껴진다.

정지민 _ 노력(Effort) 아름다운 도전
민들레 홀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움직이는 은 장신구로 유럽에서 반향을 일으킨 정지민 작가는 생명을 품은 작은 것들이 주는 매력을 ‘노력’이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80여 일에 불과한 짧은 생을 벌집을 짓는 데 전부 바치는 벌에서 영감을 받은 금속 작품을 통해 고귀한 노동과 노력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 육각형 구조의 전시 부스는 그의 작업 공간과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노력의 산물을 전시하는 쇼케이스로 구성했다.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은 자연물과 부지런히 기록한 창작의 과정들이 벌집을 연상시키는 작은 방 안에서 작가의 메시지와 함께 울려 퍼진다. 노력은 실패 유무와 상관없이 그 자체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김희찬 _ 유연함(Flexibility)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는 방법
산업화되면서 사람들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생산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쓰임과 모양에 맞추어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물건은 삶의 방식을 경직되고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와 교감 없이 주어지는 것들을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삶에 질문을 던지는 김희찬 작가. 그는 자연 소재, 전통 기법, 첨단 기술이 모두 담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창작 본능을 자극한다. 재미있는 것은 3D 프린팅 등 첨단 기술을 최소한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바구니 짜는 기법을 그대로 차용해 갈대로 기둥을 만들고, 모세혈관처럼 하나하나 연결해 돔 형태의 구조물을 제작했으며(모두 수작업으로!) 오직 갈대를 연결하는 커넥터만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새집 형태의 돔은 3~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명상의 방으로, 가공하지 않은 갈대가 주는 자연 그대로의 촉감과 기둥 사이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등이 편안하면서도 친숙한 이미지를 전한다. 오브제를 넘어 공간으로, 머리보다는 오감으로 즐기길 바란다고.

이유주 _ 편안함(Comfort) 추억과 향수
머리를 쓰다듬고, 자애롭게 바라보며 그저 속삭이듯 “괜찮아”라고 말해주던 엄마. 아마 우리는 엄마의 치맛자락 속에서 태초의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전통 한지에 판화 기법을 통해 추억이 깃든 그래픽을 넣는 작업으로 주목받은 이유주 작가는 ‘엄마의 품’을 모티프로 전시 공간에 거대한 스커트를 조명등처럼 설치하고, 그 아래 배치한 가구 역시 패브릭으로 마감했다. 패브릭에 그림을 그려 실크스크린 인쇄를 하고 옛 향수가 묻어나는 소품을 매치한 것. 어린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방안에서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끼며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이재범 _ 불완전함(Imperfection) 부드러운 포용
펠트 동화책부터 추상 표현 작품에 이르기까지 양모의 물성을 연구하며 폭넓은 작업을 선보이는 이재범 작가. ‘불완전함’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돌멩이가 떠올랐다는 작가는 돌멩이 위에 꽃이 핀 것 같은 형태의 돌꽃 디퓨저와 벽에 붙여 장식할 수 있는 돌석 마그넷을 선보였다. 전시장에서는 작품, 생활에서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되는 이 작업을 두고 알랭 드 보통은 “공예의 기본 명제인 실용성과 심미적 가치를 두루 갖췄다”고 평했다. “돌멩이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이 생긴 게 없어요. 지름이 일정한 완벽한 원 형태를 이루지도 않고요. 돌석은 돌 형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몇 번씩 변형하고 흩뿌리듯 벽에 장식했어요. 모양과 빛깔이 제각각인 돌멩이를 완벽하게 정형화할 수 없듯 때론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1 기획전 <잇고 또 더하라>에서 만난 하지훈 작가의 아트 퍼니처 전시.
2 김재성 작가는 십장생도의 사슴을 테마로 한지 조명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3 일상 속 물건의 크기 변화를 표현한 차승언 작가의 직조 작업.
4 펠트 작가 이재범은 모양과 빛깔이 제각각인 돌멩이를 테마로 마그넷과 디퓨저를 제작했다.
5 작은 화분으로 거대한 회색 도시를 연출한 가든하다.
6 전통 옻칠 기법으로 성숙함이라는 주제를 구현한 문채훈 작가.
7 이승희 작가는 8천 조각의 도자 마디를 이어 신비로운 붉은빛의 대나무 숲을 완성했다.
8 갈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명상의 방을 재현한 김희찬 작가.
9 서하나, 유대영 작가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들여다보는묘미가 살아 있는 볼거리를 만들었다. 

감상을 넘어 일상으로 공예, 그 이상의 것
지난 1월, 청주 연초 제조장을 찾은 알랭 드 보통. 특별전 감독으로 선정된 후 전시를 개최할 공간을 둘러보고 전시 작가 열다섯 팀을 만난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 공예가 품은 인문학적 가치와 이를 계승하는 젊은 공예 작가들의 창의적 도전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차례 진행한 워크숍에서 작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번 전시 목표인 공예의 ‘심리적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부 주제를 논의했다. ‘아름다움과 행복’이 다소 형이상학적 주제라면 세부 주제는 강인함, 우아함, 노력, 현재 등 보다 구체적 단어로 선정했다.

알랭 드 보통과 8개월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작품의 진행 과정을 소통한 열다섯 팀의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협업 자체에 두었다. 작가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시각적으로 풀어낸 일련의 작업들이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를 통해 언어로 명확하게 다가왔다고 할까? 그간 시각적 아름다움과 쓰임이라는 공예의 일차적 목적에 충실했다면, 알랭 드 보통과 소통하며 심리학 측면에서 공예의 효용성을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공예 작품 49점은 일상의 보편적인 것을 소재로 어려운 철학을 쉽고 재치 있게 풀어내는 알랭 드 보통의 문장처럼, 순수하면서 위트가 넘친다.

전통 공예와 새로운 문화의 연결을 늘 고민하는 젊은 옻칠 작가 문채훈은 ‘대화’의 길을 터주려는 명백한 목적이 있는 소반을 제작하며 원과 삼각형, 원뿔 등 기본 도형을 재치 있게 사용했다. 약하고 출중하지 않은 한 가닥 종이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위용과 빨간 대나무 숲이 주는 강렬한 반전, 딱딱한 콘크리트 화분이 전하는 의외의 치유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조언에 직접 베틀로 직조를 한 차승언은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며 만드는 미세한 색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을 체험하며 순수 미술에서 공예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공예가 단순히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직접 시간과 공을 들여 손을 움직여야 할 터. 펠트 작가 이재범은 “어른 주먹만 한 조약돌 모양의 펠트 뭉치를 만들려면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많은 양의 작품 제작으로 고민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삶에 공예가 들어가려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작가의 몫”이라며 전시장 밖에서는 생활용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디퓨저와 마그넷 장식을 전시 공간에 설치했다. 작품 2백여 개를 준비하는 데 쏟은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사람들이 전시를 본 후 공예의 쓰임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공예는 단순히 예쁘게 생긴 사물이 아니라 더 깊고, 풍족하고,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일상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철학적 사유로 한층 견고해진 작품을 통해 심리적 치유와 행복을 경험해보자.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40일간의 공예 축제 보고 즐기고 체험하라
아닐라 퀘윰 아그하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혜영 전시 공동 감독이 이끈 기획 전시 <잇고 또 더하라 : The Making Process>에서는 ‘진화’를 거듭해온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방식의 21세기형 현대 공예를 보여준다. 가장 주목할 점은 공예뿐 아니라 순수 미술까지 범위가 확장됐다는 것이다.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 ‘도구’를 다룬 첫째 섹션에서는 작가들이 작업을 하면서 쌓아온 자신만의 제작 방식과 작가의 또 다른 손이자 제작 과정으로의 ‘공예의 도구’를 선보인다. 둘째 섹션 ‘유산’에서는 한국나전칠기박물관, 박을복자수박물관, 한국자수박물관, 재단법인 예올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았다.

‘확장’을 주제로 한 셋째 섹션은 첨단 과학 기술과 재료들이 어떻게 공예에 사용되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를 펼친다. 벨기에의 언폴드, 미국의 너버스 시스템, 뉴질랜드의 필 커튼스, 제프리 사미엔토, 하지훈, 이규홍, 주세균 등이 참여. 더이상 손을 쓰지 않아도 공예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현대 작가들의 최첨단 스킬을 적용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기획전과 알랭 드 보통 특별전 외에도 백남준 특별전, 청주국제공예페어, 주말 공예 장터, 알랭 드 보통 특별 강연 ‘공예와 충만한 삶’, 국제 공예 워크숍, 키즈비엔날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특별전 전시장 한편에는 관람객이 직접 선인장과 다육식물을 식재해보는 체험 공간 ‘알랭 드 보통의 정원’을 마련했다. 미술 에세이 형식의 도록과 전시 관련 디자인 상품도 판매한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1만 원(사전 예매 8천 원), 학생 5천 원(사전 예매 4천 원)이다.
주소 충북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문의 043-277-2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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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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