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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뮤지엄김치간間
단순히 김치를 맛보고 체험하는 공간이 아니다. 터치스크린으로 김치를 담그고, 역동적 기운이 느껴지는 영상을 통해 김치와 김장 풍경을 감상한다. 풀무원에서 새롭게 문을 연 ‘뮤지엄김치간’은 김치를 식문화로 풀어낸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 과학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의 김치마당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KBS <요리 인류> 팀과 협업한 영상을 상영한다. 손내 옹기의 이현배 장인이 옹기 뚜껑을 구워서 만든 ‘하늘에서 본 장독대’도 눈길을 끈다. 
1986년 중구 필동에 문을 연 작은 김치박물관이 첫 시작이었다. 1987년 풀무원이 인수하면서 코엑스로 둥지를 옮긴 김치박물관은 지난 30년 동안 김치의 가치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고고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의 특성상 김장독과 김치 모형, 옛 부엌살림이 가득한 유물 중심의 전시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김치박물관이 인사동으로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겨 ‘뮤지엄김치간’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그리 기대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기분 좋게 비껴나갔다. 딱딱하고 지루하던 기존 박물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선한 디지털 전시 기법을 적용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김치의 가치와 문화를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한 것.

김치가 발효하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과학자의 방. 
“뮤지엄김치간은 건물의 4~6층, 세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층은 김치를 색다른 놀이 수단으로 즐길 수 있는 김치마당과 김치사랑방, 과학자의 방, 5층은 김치를 만나는 공간인 김치로드, 김치공부방, 김치움 그리고 6층은 쿠킹 클래스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헌정방으로 기획했어요.”

나경인 학예사는 뮤지엄김치간의 공간을 기획하고 전시를 구성한 인물 중 한명이다. 그와 함께 디지털 전시라는 혁신적 방법을 적극 도입해 이색 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설호정 관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약 1백76평, 다른 박물관에 비하면 규모가 적지만, 알찬 정보와 볼거리로 가득해 뮤지엄김치간은 김치와 함께 문화가 발효하는 공간이다.

김치앤칩스의 작품 ‘링크’가 전시된 김치사랑방. 카메라 앞에 서서 “김치”라고 외치면 녹화된 영상이 모여 독특한 작품이 완성된다. 
‘김치’라는 놀이
김치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이 있을까. 김치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는 그야말로 ‘우리’ 자체다. 김치는 뮤지엄김치간에서 먹는 음식으로서 의미를 넘어 색다른 놀이 수단으로 거듭난다.

“기존 김치박물관에서는 커다란 장독대와 각양각색 배추김치, 김장 담그는 풍경을 보여주는 모형 전시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곳은 아날로그 전시에서 벗어나 모든 공간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전시를 선보입니다.”

김장마루에서는 다양한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1만 5천 원의 비용으로 식감이 아삭한 깍두기를 직접 담근 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나경인 학예사의 말처럼 뮤지엄김치간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인 김치 마당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마트폰을 연상시키는 터치스크린 두 대가 놓여 있다. 터치스크린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배추김치와 백김치를 담그는 간접 체험이 가능한 것.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과정부터 고추 양념을 버무리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디지털 화면을 통해 체험할 수 있으며, 진짜 김장 체험 못지않게 생생하게 와 닿는다. 또 이웃이 모여 김치를 담그는 문화를 반영해 한 명이 아닌 네 명이 함께 터치스크린 앞에 서서 김치를 담글 수 있다. 아이부터 어른, 외국인까지 누구나 스마트폰 게임처럼 김치 담그기를 말 그대로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다.

김치공부방에서 김치를 담그는 풍경과 옛 김치를 재현하는 영상을 감상해보자. 
김치마당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김치사랑방이다. 이곳에는 한국인 손미미와 영국인 엘리엇 우즈가 구성한 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의 작품 ‘링크LINK’가 전시되어 있다. 작품의 의도가 흥미진진한데, 사진을 찍을 때 “김치”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착안해 <김치 미소전>을 기획한 것. 카메라 앞에 서서 “김치이~” 하고 미소 지으면 짧은 영상이 녹화되면서 프로젝터를 통해 검은 종이 상자 위에 흑백 영상으로 나타난다. 관람객의 얼굴을 담은 화면 수십 개가 모여 마치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로 재탄생하며 다채로운 풍경을 이끌어낸다. 관람객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아주 단순하지만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김치 역시 유쾌한 놀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의 방에서는 김치가 발효할 때 생기는 유산균과 그 움직임을 현미경과 대형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이나 두꺼운 자료가 아닌 영상과 사진이 주는 정보가 훨씬 실감 나게 다가온다.

배추김치, 갓김치, 두릅김치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김치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이색 김치를 실물로 전시한 김치움. 
보고, 맛보고, 느끼다
“김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아름답다’ ‘먹고 싶다’라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목적이 확고하다. 나경인 학예사는 뮤지엄김치간에서 디지털 전시 못지않게 돋보이는 점은 김치가 지닌 다양한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KBS <요리 인류> 팀과 협업해 영상을 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5층에 위치한 김치공부방에서는 짧은 영상 세 편이 흘러나오는데, 영화 못지않게 영상미가 빼어나다.

“안동의 유서 깊은 고택인 농암종택의 종부인 이원정 씨가 들려주는 김치 이야기, 팔도 김치 중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김치를 세계김치연구소에서 복원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김치 한 포기에 한 사람의 인생, 특정 지역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을 손으로 터치하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음식을 영상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김치뿐 아니라 일본의 절임 김치 중 하나인 쓰케모노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이색적이다. 무를 훈제한 뒤 말려서 만드는 아키타 지방의 절임 김치인 ‘이부리갓코’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김치가 소중한 만큼 다른 국가와 민족에게도 소중하며 지키고 싶은 음식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김치와 같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절임 채소류를 찍은 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방 전체를 하나의 냉장고로 만들어 갖가지 김치와 김치의 형제자매 격인 세계 절임 김치의 실물을 전시해놓은 김치움도 독특하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김치가 발효될 때 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각종 김치를 비롯해 중국의 짜차이 파오차이, 유럽과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클 등 세계 절임 김치를 감상하면서 유산균이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 2, 3 향초 전문 브랜드 수향과 협업해 앙증맞은 크기의 옹기가 돋보이는 향초와 뮤지엄김치간을 상징하는 공책 등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다면 박물관 한 편에 마련한 뮤지엄 가게에 들러보자. 
6층의 김장마루 역시 뮤지엄김치간의 자랑거리. 좀 더 학구열 높은 이들을 위해 배추김치, 깍두기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쿠킹 클래스를 운영한다. 절인 배추와 고추 양념, 무 등 각종 재료를 활용해 나만의 김치를 직접 만들어서 작은 플라스틱병에 담아 갈 수 있다. 김장마루의 모든 벽은 통창으로 처리해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체험하는 모습을 봄으로써 또 하나의 생생한 전시로 다가온다.

마침내 문화가 발효하다
뮤지엄김치간은 김치박물관을 개관한 이래로 김치와 김장 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기라도 하듯 지난 2013년 12월, 김치와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6층에 마련한 것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헌정방. 유네스코에서 자료를 기증받아 다른 나라의 공동체성과 전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것.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멕시코와 터키의 전통 요리를 포함해 총 여덟 국가의 음식 문화 영상과 사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김치박물관은 유물 전시에 충실한 공간이었지만, 뮤지엄김치간은 여느 박물관과 확연히 다른 것은 분명하다. 들어서는 순간 김치 냄새도 나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김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신경 쓴 점이 역력하다. 요즘은 김장을 직접 하지 않고 사 먹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성을 간직한 김치가 세대를 거쳐 이어나가는 방법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 그 중심에 바로 김치를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풀무원의 뮤지엄김치간이 자리한다.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 김치로드를 따라가면 ‘아삭아삭’ 김치 씹는 소리가 들린다. 
Interview
뮤지엄김치간 설호정 관장
김치를 만나면 문화가 보인다
“전통 사회에서 반찬을 만드는 곳을 찬간, 임금의 수라를 준비하는 곳을 수라간, 양식을 보관하는 곳을 곳간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김치의 역사와 문화를 고이 간직한 곳’이라는 뜻을 담아 뮤지엄김치간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김치와 노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김치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전시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김치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도 강조한다. 김치가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식품이라는 국수적 시각에서 벗어나 염장 채소의 한 가지로 발전한 것이며, 세계 음식 문화사의 큰 맥락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방 전체를 거대한 냉장고로 만들어 우리나라의 다양한 김치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절임 김치를 실물로 함께 전시하고 있다. 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헌정방에서는 우리에게 김치가 소중한 만큼 다른 나라에도 소중한 음식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부리갓코를 비롯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나라의 절임 채소를 만드는 영상도 만들고, 4층 김치마당에서 음식 영화제를 여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옛 신문의 사진과 기사를 발췌해 김장 풍경과 역사를 보여준다.

취재 협조 뮤지엄김치간(02-6002-6456)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김규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