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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손현주 섬의 경계를 찾아간 예술적 모험
“당신은 삶의 중앙에 있나요, 경계에 있나요?” 지난 7월 10일부터 19일까지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손현주 작가의 사진전 <안면도 오디세이>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도시의 중앙으로 떠났다가 순수한 감각의 경계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그는 이미지인 동시에 서사라는 사진적 모험을 시도했다.

읍내의 작은 단층 상가 건물에 마련한 손현주 작가의 작업실. 누구라도 작고 소박해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 삶이 무너 지지 않는다고 손현주 작가는 생각한다. 주방 한켠의 책상이라도 자신만의 창작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안면도,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10년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처럼 30여 년 만에 안면도로 귀향한 손현주 작가의 사진 서사시에는 꽃지 해변의 아름다운 낙조 대신 해안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피사체로 등장한다. 갯벌에 묻힌 파손된 쪽배와 깨진 거울, 찌그러진 주전자와 오래된 부표의 모습이 낯설고 외롭지만 홀연히 아름답다. 그래서 그토록 혼자서 갯벌에 파묻힌 사연을 따라가게 만든다. 감성과 다큐멘터리가 교차하는 감상을 좇아 관객이 닿은 곳은 섬의 외곽, 중앙선을 따라다니면서도 도무지 볼 수 없는 섬의 둘레요, 섬 주민의 속살인 그곳이다.

20년 차 편집 기자의 귀향
“엄마처럼 평생 밭고랑에 앉아서 살지 않을 거야”라고 모진 말을 한 19세 소녀 손현주는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 안면도를 빠져나왔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신문사의 편집 기자로 20년 간 근무했다. 그는 매일 수백만 장의 사진을 보며 때론 다큐멘터리가, 때론 감성이 살아 있는 사진을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골라내는 일을 했다. 그가 어떤 사진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독자는 그 기사를 주목하거나 혹은 흘깃 본다. 그는 종종 다큐멘터리와 감성 사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제3의 관점을 발휘했고, 그 파격적 시도 덕분에 2004년에는 ‘사진기자가 뽑은 올해의 사진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목_5279’, 2014
오스트리아에 취재를 갔다가 나폴레옹이 머문 쇤부른 궁전에서 열린 디너에 참석한 후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5년간 와인을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와인 애호가이자 전문가였으니 회사에서 신문에 와인 칼럼을 쓸 지면을 내주어 와인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그렇게 20년, 국내 유력 언론사의 보직 부장으로 곧은 중앙선을 지나듯 시원스레 내달리는 삶이었다.

“신문사에서 일한 지 딱 20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마음에 바람이 휙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괜히 커피를 마시러 왔다 갔다 했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정확한 내 자리인가?’ 하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어요.”

자꾸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휴가를 내고 일주일간 혼자서 제주도를 배낭여행했다. 여행 끝에 사표를 낸다고 했던가. 서울로 돌아온 그는 별안간 사표를 냈고, 잘나가는 보직 부장이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다음날 곧장 짐을 싸서 남편이 머물던 고향 안면도로 내려왔다.

안면도 정당리에 있는 멋스러운 펜션인 그의 집 소무를 나서면 한적한 농로가 이어지고 그 길의 끝으로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서해안의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다. 
“남편은 기계공학도로 살았지만 원래 꿈은 정원사였어요. 마흔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서 살자고 약속한 우리 부부는 살면서 틈틈이 제주도로 여수로 우리가 살 곳을 보러 다녔는데, 제 고향인 안면도만 한 곳이 없더군요. 친정어머니가 농사지으며 사는 마을 언덕에 땅을 구했고, 남편이 먼저 내려가서 직접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있었지요. 혼자서 성실하게 1천 평이 넘는 정원을 가꾸며 이렇게 아름답게 변모시켰어요.”

남편의 본디 꿈이 정원사였듯 소녀 손현주의 꿈은 화가였다.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가 언제였던가를 되짚어보면 늘 그림을 그리던 청소년기가 떠오를 만큼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또 안면도에서 보낸 청소년기에는 한학자이자 훌륭한 스토리텔러이던 아버지에게 지역에 관련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감성을 키웠다. 편집 기자로 산 20년은 어쩌면 안면도에서 영근 감성을 야금야금 파먹는 시간이었다는 걸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 마음에 불어온 바람 때문에 깨달은 것이다.

<안면도 오디세이>는 대형 작품 13점과 소형 작품 1백6점 등 총 1백19점을 선보인 특별전. 2010년 그가 처음으로 섬의 경계를 일주하며 자동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작가주의로 발전한 후 같은 곳에서 찍은 2014년의 사진을 함께 전시했다. 가운데 전시된 작품은 ‘바람아래_9692’, 2014 
“열아홉 살까지 살았지만 막상 내려와보니 낯설었어요. 늘 중앙 도로로 자동차를 타고 다녔으니 외곽 지역을 볼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남편에게 선언하고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집 옆에서부터 섬의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어두워지면 남편이 데리러 오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그 장소로 데려다주었지요. 어느 날은 아는 사람 집에서 자기도 하고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남편과 길이 엇갈리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섬의 해안을 도보로 일주하는 모험을 하는 데 꼭 보름이 걸렸어요.”

그때가 2010년. 매일 걷다 보니 발톱이 빠져서 며칠을 쉬어야 한 그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이 안면도의 수려한 풍경 대신 모래사장에 버려진 TV, 파손된 부표, 알전구와 바가지, 밥사발과 콜라병 등 갯벌에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찍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그 사물들이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은 보지 못하는 섬 주민의 일상을 그 사물들은 알고 있으니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우리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그의 안면도 오디세이는 ‘우리의 잃어버린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다.

‘내파수도_7107’, 2013
해변에서 발견한 우리의 자화상
그런 작업을 수년간 반복하면서 기록사진은 자연스럽게 작가주의 사진으로 발전했다. 읍내에 있는 소박한 상점을 작업실로 꾸미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최종 프린트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색 보정을 하거나 사진의 일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등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작업했다. 사물이 등장하는 낯선 풍경에 작가의 시선이 더해지니 갯벌의 돌멩이와 바지락 껍데기 조각을 찍은 ‘영목5279’ 같은 사진은 마치 밤하늘의 별 사이에 있는 행성을 찍은 듯한 착각이 든다. 파손된 스티로폼 부표를 멀리서 찍은 ‘바람 아래 9692’는 에메랄드 컬러의 생소한 늪지대에 떠 있는 미확인 물체처럼 궁금해진다. 분명 해안에 실존하는 풍경인데, 작가의 선택과 배치에 따라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오묘한 이미지로 전이되어 관객이 한참 동안 들여다보게 만든다. 신문사의 편집 기자로 일할 때처럼 다큐멘터리와 감성 사진을 이분하지 않는 손현주 작가의 개방된 시선이 제3의 이미지, 즉 손현주 작가만의 안면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작업한 사진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더니, 런던의 갤러리에서 요청이 와서 첫 개인전인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를 한국이 아닌 런던에서 먼저 개최한 특이한 이력이 생겼다. 섬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그의 사진전을 찾은 영국인은 작가에게 많은 질문을 건넸고, 며칠 더 찾아와 작품을 들여다보고 어느 날은 가족을 데리고 와 또 본 후에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기대 이상으로 꽤 많은 작품이 판매되었으니 인생의 경계에서 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에게 런던 전시의 호응과 성과는 꽤 오랫동안 신화로 남았다.

‘독개_8033’, 2014 
“어쩌면 난 섬 경계를 따라 일주한 최초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 고행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밀물에 도망치고 썰물에 따라가며 육체와 정신은 직관과 사유로 포박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러면서 난 섬의 어느 특징에 매몰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내 심장을 찌르고 상처를 입혔다. 바로 부표다. 이 걷기는 5년 전 가을 이후 두 번째다. 3만여 장 결과물이다.” ‘섬은 부표다’라는 작가 노트에 쓴 그의 글처럼 손현주 작가의 심장은 안면도라는 섬을 향해 뛰고 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해변을 혼자 고집스레 걸으며 섬의 속살을 느끼고, 남편이 가꾼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고, 자신만을 위해 만든 읍내의 작은 작업실을 해변에서 모아 온 조개껍데기와 유리병 조각으로 멋스럽게 단장한 후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 이따금씩 서울에서 찾아오는 와인 동호회 사람들과 해변으로 나가 들꽃을 꺾어 바구니에 꽂아 차린 테이블에서 소박한 음식을 곁들여 와인을 마시고, 지역의 식재료를 탐구하고, 지역 출신의 셰프와 만나 안면도만의 파인 다이닝을 연구하는 그의 안면도 오디세이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쿨하게 인생의 중앙선을 벗어나니 우리 삶의 경계에는 이토록 많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