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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어새에게 바치는 정원
새의 수컷은 대개 깃털이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이는 암컷을 유혹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바우어새의 수컷은 색이 요란하지 않고 소박하다. 화려한 깃털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바우어bower(나무 그늘, 정자)’라고 하는 작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꾼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정원사요 숲 속의 건축가, 바우어새의 보태니컬 가든으로 초대한다.


과천 마이알레에서 헤이 마켓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게릴라 전시 <바우어새에게 바치는 정원>은 말 그대로 바우어새(bower bird)를 오마주로 한 설치 작업이다. “우연히 다큐 프로그램을 보다가 바우어새를 알게 되었어요. 꽃잎, 반짝이는 유리 조각, 잘 익은 열매, 돌, 조개껍데기 등을 바지런히 수집해 꼼꼼하고도 신중하게 정원을 가꾸는 모습,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물건을 옮기는 집중력과 열정이 무척 감동적이었죠. 어떤 새는 푸른 쪽빛만 고집해 꾸미는가 하면 어떤 새는 검붉은 오디와 사과 열매 등으로 탐스러운 정원을 완성해요. 과일즙으로 벽에 색칠도 하고요. 저희는 빛깔에 대한 신념이 강한 바우어새처럼 컬러 스펙트럼이 넓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자아내는 ‘블루’를 테마로 인도어 가든을 완성했지요.”

우현미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하고 신비로운 새 둥지가 펼쳐진다. 코끝을 찌르는 진한 숲 내음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나뭇가지와 바닥을 소복하게 덮은 나무껍질에서 비롯한다. 과천 일대의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모아 창가에 가득 설치하고 천장의 와이어 네트에 버들가지를 비롯한 다양한 허브 가지를 거꾸로 매달았다. 실제 바우어새의 정원 만들기는 건축가의 설계처럼 정교하고 치밀한데, 터를 정한 뒤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기둥과 벽을 세운 다음 자신이 원하는 색을 채우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여기에 물뿌리개와 커다란 화기, 타일과 그릇 등 블루를 테마로 한 오브제와 무스카리, 팬지 등 보랏빛이 도는 꽃으로 포인트를 줘 시각적으로 청량감이 느껴지는 정원을 완성했다.

“바우어새는 자신의 전리품을 옮기는 데 80%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요. 돌이나 나뭇가지를 옮긴 뒤 어떻게 보이는지 주변을 총총거리며 살펴보고, 매일 아침 정원을 샅샅이 둘러보며 색이 변하고 시들거나 상한 가지를 골라내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저희는 완벽하게 바우어새가 돼보기로 했어요. 전시가 열리는 2주 동안 오브제의 위치도 바꿔보고, 옷도 바꿔 걸어보고, 마른 꽃잎은 솎아내고…. 무엇보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블루 아이템을 찾는 일이 너무 재밌어요.”

때론 동물의 맹목적 오감에서 생각지 못한 영감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우경미 대표. “하다못해 새도 자신의 취향대로 정성껏 정원을 가꾼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도 우리의 취향이 오롯이 담긴 한 평 정원쯤은 가슴에 품어보길 기대해본다.


취재 협조 마이알레(02-3678-9468)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