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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미르 게스트 하우스 용두암, 건축으로 태어나다
비교적 여행객의 발길이 덜한 제주 시내에 현무암같이 검고 용머리처럼 삐죽 고개를 든 희한한 형체의 건물이 들어섰다. 건축가 문훈이 설계한 미르 게스트 하우스는 여행과 캠핑 마니아인 건축주 고영석 씨의 드림 하우스다.

1 제주시 용암동에 위치한 미르 게스트 하우스는 10분 거리에 있는 용두암에서 모티프를 따와 디자인했다. 옥상 전망대는 용이라는 미르의 뜻처럼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2 검은 현무암 같은 외관과 반대로 실내는 온통 하얀 색으로 마감했다.
3 현무암의 구멍을 모티프로 한 마름모형 창문, 블랙 의자와 새빨간 계단 난간이 백색 공간에 생기를 준다.
4 건물 안에 위치한 중정. 바비큐를 해 먹거나 자전거를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제주시에 위치한 미르 게스트 하우스는 여행을 좋아하는 고영석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곳이다. 재작년 여름, 아내와 노르웨이로 휴가를 떠난 고영석 대표는 피오르의 자연경관에 감동받아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 그는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을 좋아하니, 여행자를 가까이 접하고 그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이러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용두암 옆의 작은 용두암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여러 건축 자료를 찾아보았다. 여행객을 위한 숙소와 카페, 자신의 가족이 살 공간이 모두 한 건물에 있으면서 외관이 독특한 게스트 하우스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문훈발전소가 설계한 ‘락樂있수다’와 ‘롤리팝’을 보고 “바로 이 건축가야!”라며 주저 없이 전화를 걸었다. 고영석 대표의 이야기를 들은 문훈 소장은 프로젝트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주택 설계를 많이 해오던 중 게스트 하우스, 집, 카페 등 세 가지 복합 기능을 갖춘 건축이라고 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또 바다 건너에 건물을 짓는, 첫 해외(?) 프로젝트니까요.”

문훈이라는 건축가를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미르 게스트 하우스를 보면 문훈 발전소에서 설계한 건물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불안정한 형태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문훈 소장은 네모반듯한 형태를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미르 게스트 하우스 역시 벽을 기울이고 과감한 색상을 사용해 주변에 있는 건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용’이라는 ‘미르’의 뜻에서 알 수 있듯 문훈 소장은 10분 거리에 용두암이 있는 용담동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디자인했다.

“처음부터 용두암 근처라는 사실에 가장 끌렸어요. 건축 모티프가 될 수 있잖아요. 전 건축을 즉흥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 주변 에너지를 활용해 직관적으로 디자인합니다. 건축이 추상적이지만 지역 특색을 살리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 어요. 용두암 옆에 새로운 용두암이 생긴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죠.”

옥상에 구부정하게 솟은 전망대가 용머리에 해당한다. 여기에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의 특성을 살려 마름모형 창문을 불규칙하게 배치했고, 마치 검은 돌덩어리같이 거칠게 마감한 외관에 빨간 포인트 컬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언뜻 보기에는 한 건물 같지만, 가운데 벽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게스트 하우스, 오른쪽에는 1층 카페와 2층 고영석 대표 자택이 있다. 일반 게스트 하우스와 달리 손님 공간과 집을 분리하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 입구를 건물 뒤쪽으로 만들어 건물 앞 자택 입구와 구분 지었다.

1 야외 영화관으로 사용하는 옥상. 용머리같이 생긴 전망대에선 제주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2, 4
 2층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를 때 객실과 커뮤니티 공간이 가까워 불편했다는 고영석 대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두 공간을 떨어뜨렸다. 
3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나무 이층 침대 대신 아래층과 위층을 분리했다. 위층 침대를 천장에 매달아 한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침대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했다. 
5 카페 위층에 있는 자택 거실에서 고영석・정미봉 부부. 

여행자의 마음으로 설계한 게스트 하우스

고영석 대표는 사전에 국내 여러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보며 불편한 점과 벤치마킹할 장점을 조사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국내 출장을 가면 호텔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다. “국내 게스트 하우스는 대부분 일반 주택을 개조해 만드는데, 거실처럼 가운데 커뮤니티 공간이 있고 그 둘레에 방들을 배치하죠. 그런데 커뮤니티 공간과 수면 공간이 가까우면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겠더라고요. 또 샤워실과 화장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경우에는 누가 샤워를 하면 화장실을 쓸 수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복도식으로 객실을 배치했고 한쪽에 커뮤니티 공간을 밀어 넣었다. 또 커플이 사용할 수 있는 1층 객실은 객실마다 샤워실 겸 화장실을 두고 2층과 3층에는 층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 4인실과 가족실 손님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 나무 이층 침대 대신 위층 침대를 천장에 매달 아 한 사람이 뒤척거릴 때 침대가 삐걱대는 불편함도 줄였다. 가족실 두 곳에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을 위해 널찍한 슈퍼 킹사이즈 침대를 두는 등 소소한 디테일에서 사용자를 배려한 마음이 묻어난다.

검은 돌덩어리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벽과 천장 마감부터 침대 난간, 패브릭 등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고영석 대표는 “쉽게 때가 탈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청소를 자주 하게 돼 항상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입구 바로 옆에 ‘샤워룸’이라고 써 있는 중정은 집과 게스트 하우스 간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설계했다. 원래 이곳에 암벽장을 만들거나 다른 액티비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안전 문제로 바비큐를 해 먹거나 자전거를 보관하는 건물 안 작은 야외 캠핑장처럼 사용한다. 제주에 비가 자주 내려 샤워룸이라 이름 지었는데, 세차게 비가 내리는 날 괜스레 밖에 나가 비를 맞고 싶은 마음처럼 로맨틱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백색 공간을 지나 3층에 오르면 새빨간 옥상 야외 영화관이 나타난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맥주 한잔 마시며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구현한 곳. 옥상 계단 끝에 솟은 전망대는 위치적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했다. 바다 가까이에 자리한 다른 숙박 시설처럼 근사한 풍경은 없지만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전망대에 오르면 좌우로 저 멀리 드넓은 수평선과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날 때 호텔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를 찾는 이유는 요금이 저렴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떠나온 여행객들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한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게스트 하우스는 예약하기 전에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유럽은 중저가 숙박업소가 많고 대체로 시설이 쾌적한 편이라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국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비용에 맞춰 숙소를 고르다 보면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르 게스트 하우스는 저렴한 비용으로 편안하고 쾌적한 잠자리는 물론, 건물 곳곳에서 숨은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예약 문의 064-900-2561, mirguesthouse.com

글 김민서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