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곡동의 한적한 전원 마을에 위치한 작업실.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살았다가 지금은 작업실로만 사용하는 이곳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전남 여수와 제주도 사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거문도. 전교생이라곤 고작 다섯 명뿐인 작은 분교에서 평생 한 가지 일을 해온 한 장인이 몸소 특강을 하던 날, 각시탈의 발차기 역습 같은 질문이 날아들었다. “(헉…) 나?” <식객> <타짜> <각시탈> <비트>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Q>까지, 그의 68년 인생 중 무려 50년간 그린 만화가 기차역 대합실의 안내판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머릿속에서 척척척척. 그리고 장인의 입에서 답이 튀어나왔다. “나는 <날아라 슈퍼보드>를 그린 허영만 할아버지야.” “우아~ 치키치키 챠카챠카 초코초코 초! 사오정이 나오는 만화요?”
아마추어리즘은 곤란하지
올해로 데뷔 40주년, 문하생으로 만화를 그린 9년까지 더하면 내년 1월에 허영만 작가는 만화를 그린 지 50년을 맞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고 지금껏 단 하루도 만화를 그리지 않은 날이 없이(그는 작업실을 벗어나 등산이나 여행을 가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만화 일기를 그린다) 반백 년간 한 우물만 파며 살았다. 데뷔 초기에 <각시탈>의 큰 성공으로 음악 교사이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여러 연재 만화가 계속해서 큰 인기를 누려 아들 석균과 딸 보리 역시 남부럽지 않은 인재로 키웠다. 그리고 손오공 같은 손주도 셋이나 얻었으니 만화가가 아닌 개인으로도 행복한 인생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이탈리아인 셰프에게 낙지전골 만드는 만화를 쓱쓱 그려주었더니 파스타 대신 맛난 낙지전골이 나왔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그의 인생엔 만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예순여덟을 맞은 올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허영만에게 만화는 생업이자 재미이고, 즐겁게 세상을 사는 ‘마술’과도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고 한 지인의 소감처럼 말이다.
잘해서 오래 하게 되었는가 오래 해서 잘하게 되었는가? 2004년 허영만 작가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만화계 인사들과 후배들이 그를 위해 글을 쓴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이라는 책에서 그를 인터뷰한 손상익 만화 평론가는 그가 이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를 투자와 절제를 제대로 할 줄 아는 ‘프로 기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 to 7, 벤츠, 골프’라는 의외의 세 단어가 그 프로 정신의 핵심 단어다.
여기, 2015년 현재 그가 그린 일과표를 보시라. 그의 일과는 11년 전인 2004년의 일과와 달라진 게 없이 ‘모범적’이다. 데뷔 시절, 출판 편집자가 요구하는대로 이른바 공장 만화를 그리던 때는 그도 만화라는 건 당연히 밤새워 그리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철야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가정생활이 어려웠고 사회적 교류를 할 틈도 없었으며 건강도 나빠지는 건 인과응보. 조물주가 사람이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자게 하도록 만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체 리듬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부터 그는 수십 년간 철저하게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화실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거의 매일 저녁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즐기지만, 다음날 일어나는 데 지장 없을 양 만큼만 마시고 자정이 되기 전 잠자리에 들어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고수한다. 그리고 이 규칙적인 출퇴근을 위해 1992년에 만화가로서는 드물게 벤츠 300SEL을 구입했다.
“승용차는 화실과 집 이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휴식 공간이자 교통수단인데, 그걸 좀 ‘확실한 놈’으로 준비 한 셈이지. 프로 만화가라면 좋은 작품을 창작해내기 위한 투자로 벤츠는 절대로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라는 프로 정신에 기반한 대가의 생활 투자 법칙인 것. 종일 책상에 앉아 만화를 그리느라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자 수십 년간 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진통제 대신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껏 골프를 열심히 해 어깨 통증을 털어낸다. 주중에 화실에서 만화만 그리니 주말엔 밖으로 나가 ‘잘 놀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해소 철학 역시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백두대간부터 히말라야까지 곳곳으로 산행을 즐겼고, 혼자 가거나 가족과 함께 여행도 자주 다녔다. 이처럼 프로 정신에 기반해 절제하고 투자하는 생활 덕분에 달력이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그리고 2015년으로 거침없이 넘어가도 그는 여전히 강건한 현역이고 늘 최고라 불린다. 실제로 허영만 작가는 지난 10년간에도 <식객>과 <꼴> 같은 만화로 데뷔 초창기보다 더 큰 호응을 받았으며, ‘원작 뱅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각색된 히트작을 속속 탄생시켜 우리 문화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요즘도 유력 일간지에 <커피 한잔 할까요?>라는 새 만화를 연재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니 ‘9 to 7, 벤츠, 골프’로 상징되는 허영만식 인생 법칙은 그야말로 활화산이 아닌가.
허영만 작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허영만 : 창작의 비밀>전이 4월 29일부터 7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그의 만화 인생 50년, 데뷔 40년간 발표한 작품을 총망라해 전시하고, 특히 매일 거르지 않고 그려온 그만의 만화 일기도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의 취재 가방에 들어 있는 소품을 그린 위의 그림처럼 만화 일기에 50년 만화 대가의 실제 생활을 유쾌한 그림과 글로 솔직하게 기록했다.
안 심심할 방법을 찾아야지
“만날 하는 이야기지만 저는 항상 2등이었어요. 이현세 작가가 나오기 전에는 이상무 작가가 늘 1등이었고, 극화가 유행하면서는 이현세 작가가 1등이 되었죠. 출판사 편집자가 조금만 더 하면 저 작가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 독려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저 혼자 도를 닦았어요. 5등 안에만 들면 된다고 말이죠. 그러면 편집자한테 싫은 소리를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 여태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지금은 나이 든 작가가 저밖에 없어요. 그래서 무주공산無主空山에서 혼자 1등이죠, 뭐.”
전문가들은 연륜 있는 작가들이 거의 없는 만화계에서 허영만 작가가 압도적으로 롱런을 하는 이유로 ‘다양한 소재와 전문성’ 그리고 ‘작가의 젊은 의식’을 꼽는다. 허영만 작가의 독서량과 꼼꼼한 현장 답사는 익히 유명하고, 숨차게 변화하는 외부 요인을 과감히 수용하는 적응력도 뛰어나다. 한국의 토속 음식 문화를 찾아다니는 재미와 정보의 대장정인 <식객> 같은 만화와 관상가에게 수년간 관상 보는 법을 직접 배워 그린 <꼴>같은 만화는 그의 이러한 성향과 노력이 최고조에 이른 작품.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그가 요즘 유명 일간지에 <커피 한잔 할까요?>라는 인기 만화를 연재하며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독서와 답사라는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만화가는 만화 속 주인공의 머리 위에 깜박깜박 전등이 켜지듯 갑자기 영감을 얻어 일필휘지로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인터뷰하는 날, 그는 커피 만화에 취객의 얼굴을 그리려고 ‘얼굴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년간 각종 매체에서 스크랩한 술 취한 남자 수백 명의 얼굴이 들어 있는 장부였다. 십수 명의 취객을 탈락시키고 겨우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선택하자, 이번에는 그 취객이 앉아 있는 커피점의 배경을 그리기 위해 국내외 커피점 수십 곳의 내부를 스크랩한 파일을 연다. 공간의 느낌만 보는 게 아니라 커피 기구, 테이블 위치, 원근감까지 딱 맞는 사진을 찾는다. 이처럼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갈무리하는 과정을 통해 치밀하게 계산해 허영만표 만화 한 컷이 재미있게 창작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화는 그저 마술처럼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물레로 실을 잣듯 한지를 꼬아 바구니를 만들 듯 장인의 수많은 시도와 인내, 말도 못할 시행착오와 철저한 준비로부터 건져 올린 공예 작품 같은 것이다.
“요즘엔 체력이 떨어지는구나 하는 기분도 들어요. 평생 처음으로 아침에 ‘아, 오늘은 일하기 싫다’라는 생각도 하죠. 박영석 대장이 산에 가서 안 돌아왔고 주변 사람도 하나 둘씩 사라져서 심심하게 된 지 4년 정도 되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안 심심할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책상 앞에만 있는 것보다 중간중간에 잘 노는 게 후반에 가서 보면 훨씬 낫습니다.”
요즘 그의 출퇴근은 6 to 6로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문하생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 6시에 작업실에 가서 점심때까지 집중해서 만화를 그린다. 문하생들이 배경 작업을 할 수 있게 넘겨준 후에는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45년간 한결같은 습관으로 낮잠을 15분 정도 잔다. 오후에도 집중해서 작업을 하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뒷산으로 운동 겸 산책을 간다. 그리고 6시에 퇴근! 이때부터는 잘 노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다.
“잘 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토요일, 일요일에도 화실에 혼자 나와 음악 듣고 책보고 혼자 술을 마실 때도 있어요. 1966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첫 만화 스승으로 모신 네 살 위의 선배와 다른 친구 한 명과는 셋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만납니다.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낄낄대는데, 그 시간이 마치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49년째 그러고 있지요. 물론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다가 헤어지는 날도 있지만, 며칠 있다가 또 만나자고 서로 연락을 해요. 친구란 참 고마운 존재죠.”
혼자 있는 시간은 검색이 아닌 ‘사색’을 많이 할 수 있어 소중하다. 요즘 그가 가장 많이 사색하는 건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문제. 답은 없지만 젊으나 늙으나 돈 욕심을 내면 추하니 돈 욕심 내지 말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약간의 돈만 가지고 성질을 죽이면서 살자는 결심을 했다. 건강을 잘 지키고 걸을 때 가슴을 쫙 펴자, 뒷짐을 지지 말자라는 몇 가지 생활 규칙을 정해 노력했더니 “자세가 좋다”는 칭찬도 많이 듣는다.
“만화가 고우영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어요. 그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골프를 치면서 15년 남짓을 매일 붙어 다녔지요. 곳곳에 그 사람의 흔적이 있고 가끔 ‘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다 보면 나도 남이 나를 ‘아 보고 싶다’라고 느끼는 삶을 살고싶어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한다는 건 스스로 수양한다는 것이겠죠. 만화를 그리는 방법은 몸에 배어 있으니 사색을 하는 게 중요해요. 오늘 저녁에는 어떤 사람과 재미있게 술을 마실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오늘 저녁에는 홍어를 먹을 거예요.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자주 열어라’는 옛말이 삶의 진리죠.”
‘6 to 6, 포르쉐(옆의 그림일기를 보니 그의 자동차 키가 포르쉐 마크로 바뀌었다), 골프’에 사색을 더한 일관된 일상에서 그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매일 진화하고 있다. 절제가 책 읽기와 소재를 관찰하는 시간을 벌어주고 자신과 남에게 베푸는 투자가 젊은 감각을 지니게 해준 덕분이다. 이런 과정으로 창작의 나이테가 50년에 이르렀으니 누가 감히 이 거목을 꺾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깊이가 중요하지
“10년간 가장 변하지 않은 건 소재에 대한 갈구예요. 예나 지금이나 소재를 찾는 게 제일 어렵죠. 하나만 찾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소쿠리에 넣고 그중 어떤 게 제일 좋을까 들여다보는데, 갈수록 생활과 밀접한 것, 큰 재미보다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것을 골라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식객’ ‘꼴’ ‘커피’ 같은 주제로 만화를 그렸지요.”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지 않고 끝까지 다 보여주는 미국 영화보다는 유럽 영화를 더 즐겨 본다는 허영만 작가는 만화도 독자의 몫을 남겨줘야 한다고 믿는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은 못 하고 자신은 할 수 있는 연출과 악센트 방식으로 감동의 여운을 조절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것이 ‘연륜’이라고 말한다.
“악센트를 주는 방법이 1부터 5까지 있다면, 나는 5는 굉장히 아껴야 한다고 봅니다. 만화에 무리해서 5를 집어넣지 말아야 해요. 4까지 했으면 독자가 이미 5를 알기 때문에 낱낱이 다 보여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연출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표현하는 방법이 1부터 10까지 있다면 7이냐 8이냐의 문제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단편 만화야 관객의 생각에 다 맡기겠지만, 장편 만화는 독자에게 생각의 길을 열어주되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깊이’입니다. ‘죽었으니까 복수한다’라는 식의 단순 논리 말고 내면적 동기 같은 것이 있어야죠.”
반면, 지난 10년간 가장 변한 건 연필 대신 펜 마우스를 쓴다는 현실이다. 원고 용지를 직접 재단해 와서 반드시 종이가 얹힌 순서대로만 고집스럽게 작업하던 낡은 책상은 작업실 한쪽에 두고, 작년 초부터는 컴퓨터와 펜 마우스가 있는 책상을 새로 들여와 요즘 젊은 작가들처럼 연필 대신 펜 마우스로 만화를 그리고 클릭 한 번으로 신문사에 원고를 전송한다.
“연필은 4B냐, 2B냐, HB냐에 따라 선을 긋는 맛이 다른데 펜 마우스는 미끈미끈하고 선이 빠져도 잘 따라오지 못하고 아주 기분이 나빠요. 하지만 예전엔 원고를 신문사에 가져다주느라 반나절을 까먹었는데, 지금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 변화하는 세상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것이죠. 저 혼자만 종이를 고집하면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바탕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대세를 따라가야죠. 하지만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다시 종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용’이라는 문제를 가장 앞에 놓고 보면, 최신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그 내용 안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디지털 기기가 갈수록 단순해져서 이용자가 인내심, 즉 인간성을 가질 필요가 없어진 세상이 아니던가.
“사람끼리 직접 부대끼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성이란 것이죠. 저마다 손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너는 그래, 나는 이래’라고 말하며 따로따로 자신의 것만 즐기면 인간성을 완전히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나 만화의 소재로 인류의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이 종종 등장하는데, 물이나 불이 아닌 스마트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스마트폰을 안 보는 유일한 시간이 술 마시는 때니 그 얼마나 소중한 시간입니까. 하하.”
사람이 인간성을 잃으면 자기감정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니, 이런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콘텐츠를 창작하는 일이 신인이나 원로나 이 시대의 예술가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1백 년의 절반, 50년째 만화를 그리는 허영만 작가도 날마다 그 방법을 연구한다.
“전부 생존 방법을 연구하겠죠. 한 명은 날아갔으면 할 테고 다른 사람은 잠수함을 타고 가야지 할 텐데, 그중에 가장 늙수그레한 허영만은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깊이가 답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요즘 모바일 웹툰 중 <술 마시는 도시 처녀들>을 재미있게 보는데, 그들의 술자리가 너무 재미있어 보여 ‘저 캐릭터들과 술 한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감동만큼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 만화는 모바일의 강점을 충분히 이용해 순발력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죠.”
돌아오지 않는 캠핑카 여행을 떠나야지
감동과 공감이라는 면에서, 그가 8년간이나 일간지에 연재한 만화 <식객>은 작가 자신에게도, 독자에게도 새로운 생존 방식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작가가 평생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꼭 맞으면서 독자에게도 인정받는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큰 행운인데, <식객>은 작가에게 취재와 여행의 즐거움을 주었고 독자에게는 사라져가는 고향 음식의 소중함을 공감하는 감동을 주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하루에 세 번씩 먹는 것만큼은 신경을 쓰니 독자층이 넓어져 그간 남성 독자가 더 많았던 허영만 작가는 <식객>을 통해 전 국민의 이야기 친구가 되었다.
50년째 만화만 그리며 30여년째 절제와 투자의 일과를 이어온 허영만 작가가 그리는 내일의 장면은 어떨까? “지금 연재하는 커피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 더 나중에는 돌아오지 않는 캠핑카 여행을 하고 싶어요. 일정을 정해놓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섬에 들어가 며칠 섬사람들과 소주도 한잔하며 머물고 이동하는 그런 여행이죠. 아마 그때도 어디서든 만화로 기록하고 있을 겁니다. 천성이 이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만화를 그리니까요.” 이렇게 기록한 만화 일기가 벌써 스물한 권, 허영만 작가의 데뷔 40주년을 맞아 4월 29일부터 7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에서 그 기록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만화가로서는 국내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반백 년간 이 많은 콘텐츠와 캐릭터를 우리에 문화계에 내준 만화가의 작품을 총망라해 보여준다.
“국내 만화가가 이렇게 큰 전시를 여는 건 처음이니, 내가 잘해야 앞으로 만화 전시회가 두 번 세 번 더 열리겠지요. 그러니 열심히 해야죠.” 15분간 낮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오늘도 산책을 나섰다. 뒷짐 지지 않고 가슴을 쫙 펴고 앞으로! 일과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살아온 반백 년, 그 굳건한 반석 위에서 허영만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눈부신 현역이다.
- 만화가 허영만 반백 년, 한 가지 일만 했으니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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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대중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는 성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스무 살 청년이 일흔을 앞둔 노인이 되었어도 재치와 감각이 마르지 않는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 우리 시대 최고의 만화가 허영만의 인생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