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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전시한 사진가 구본창 노먼 포스터, 구본창의 사진에 반하다
한눈에 들려고 서슬 퍼렇게 나대는 일도, 거드름을 피우는 일도 없이 담담한 구본창 작가의 사진. 그 작품이 세계적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와 유럽의 예술인들을 감동시켰다. 노먼 포스터는 구본창 작가의 전시를 자신의 겨울 별장이 있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어 문화 예술계 명사에게 그 작품을 찬찬히, 세세히 소개했다.

1 스키 시즌에 예술가와 컬렉터들이 많이 묵고 가는 호텔 ‘빌라 플로르’ 곳곳에 구본창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유럽의 오래된 저택이 지닌 디테일과 오묘하게 어우러진 ‘백자’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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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벽과 담쟁이 넝쿨의 겨울 초상을 찍은 ‘화이트’로, 노먼 포스터의 침실에도 이 ‘화이트’ 연작 중 하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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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라 플로르에 전시된 ‘Portraits of Time’. 

만고풍상의 시간을 버텨낸 벽, 꼭 있어야 할 것만 남겨둔 듯 거칠한 벽. 세상의 고요가 거기 다 모인 듯 적요하다. 보고 있자니 저 벽처럼 말없이 앉아서 밤이가고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무욕하게 바라보고 싶어진다. 흰 벽과 담쟁이넝쿨의 겨울 초상을 찍은 구본창 작가의 ‘화이트’ 연작 앞에서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도 비슷한 감응이었나 보다. 그는 이 작품을 10년 넘게 벽에 걸어두고 매일 그 벽의 고요를 마주하며 잠든다.

‘하이테크 건축’이란 레터르를 달고 다니는 세계적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 여백과 정적만 남은 사진으로 말하는 구본창 작가. 어딘지 사이가 떠 보이는 이 만남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레나 포스터(노먼 포스터의 부인)가 발행하는 잡지 에 실린 구본창작가의 기사(주로 풍경을 찍은 작품 소개)를 보고 노먼 포스터는 작품을 직접 보고 싶다는 청을 보냈다. 그렇게 런던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은 ‘화이트’시리즈 대형 작품이 노먼 포스터의 침실과 거실에 자리 잡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4년 초, 엘레나 포스터가 운영하는 아이보리프레스Ivorypress 화랑에서 구본창의 사진전이 열렸다.

그리고 2014년 12월 28일, 스위스 엥가딘Engadin 계곡에 자리한 빌라 플로르Villa Flor, 만년설이 알프스의 샅을 타고 번들거리는 그 아름다운 계곡의 호텔에서 구본창의 사진전이 또 한 번 열렸다. 유럽의 예술가와 컬렉터, 부호들, 브리지트 바르도 등의 유명 배우가 겨울을 지내다 가는 이 생모리츠Saint Moritz 지역에서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노먼 포스터의 바람 덕분이었다. 이 지역은 노먼 포스터 부부의 겨울 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백 년 이상 된 개인 저택을 호텔로 꾸민 빌라 플로르와 사색의 기운이 가득한 구본창의 사진은 오묘하게 어우러졌다.

4 구본창 작가의 ‘Soap’ 연작으로, 거품으로 사라지기 전의 작고 초라한 비누를 찍은 작품. 
5 자연 채광 속에서 작품들이 제 목소리를 담담히 낼 수 있도록 큐레이터가 액자 크기 하나까지 면밀하게 계산해 설치했다. 
6 왼쪽부터 한스 요르그 루흐, 구본창, 엘레나 포스터, 노먼 포스터가 함께한 사진이다.

“2004년 노먼 포스터의 제안을 받고 그의 건축 작품집을 자세히 살펴보니 구조는 남성적이고 크지만 형태는 단순 간결하고, 합리적 기능으로 빼곡한 건축이더군요. 최근 작품인 애플 신사옥을 보고는 ‘최소한의 아름다움’이란 면에 정점을 찍었구나 싶어 감동했고요. 이어지는 부분이 분명 있으니 이렇게 만났겠죠. 빌라 플로르에서 전시를 열자고 했을 땐 그동안 제 작품을 주로 회색 공간에서 전시해왔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죠. 하지만 가서보니 유럽의 오래된 저택이 지닌 디테일(문 형태, 세월을 고스란히 머금은 가구처럼)과 제 사진이 보여주는 ‘사연’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오히려 자연 채광 가득한 생활 공간에서 실생활의 사물과 제 작품이 어우러지니 색다른 맛이 났죠.”

흰 벽과 담쟁이넝쿨의 겨울 초상인 ‘화이트’ 연작, 먼지 낀 회벽을 사색적으로 바라본 ‘시간의 그림’ 연작 같은 풍경 사진과 그의 대표작인 백자 사진 등 19점의 작품이 빌라 플로의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이곳에 들른 유럽의 ‘문화인’은 구본창 작가의 군더더기 없고 아련한 사진을 보며 사뭇 감동을 받았다. 이제 살짝 지겨울 시점이 된 예술가의 셀프 포트레이트와 과격한 에로티시즘에, 풍경을 찍어도 눈시리게 드라마틱함만 잡아내는 유럽 작가의 사진에 물릴 대로 물린 그들에게 구본창 작가의 사진은 ‘좀다른’ 세계였다. 조선백자를 찍어도, 희읍스레 낡아버린 벽을 찍어도, 부서지고 쪼그라진 비누를 찍어도 그 안에는 사라지는 것, 잃어버린 것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구본창 작가의 사진을 그들은 연신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덧없는 사라짐의 존재를 위무하는 듯한 온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조금 설명하지만, 그러면서 많이 설명하는, 드러내면서 숨기는 그사진에 유럽인은 매료되었다. 특히 이번에 그들이 열광하며 사들인 흰 눈 위의 솔잎 사진처럼 여백만 남은 것 같지만 그 안엔 무거운 비밀을 담고 있는, ‘구본창 사진’만의 힘에 이끌렸다.

1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건축가 한스 요르그 루흐의 미술관. 
2 한스 요르그 루흐의 컬렉션 중 스위스 작가 마티아스 스피샤Mathias Spescha의 작품과 구본창 작가의 작품.(왼쪽 아래, 빈 집을 찍은 연작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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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포스터 부부가 체사 푸트라에서 구본창 작가를 위해 연 파티의 상차림. 구본창 작품의 컬렉터들을 초대해 작가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파티를 열었다. 
4 생 모리츠 지역에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체사 푸트라. 호박 모양의 외관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노먼 포스터 부부는 4박 5일 동안 특별한 파티를 마련해 작가를 환대했는데, 첫째 날은 구본창 작품의 컬렉터들을 대접했다. 둘째 날은 유명 건축가이자 컬렉터인 한스 요르그 루흐Hans-Jörg Ruch가 자신의 미술관이 될 공간에 초대해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설치할 공간을 보여주었다. 그날 저녁은 노먼 포스터가자신이 설계한 체사 푸트라Chesa Futura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그는 예술 애호가들에게 “10년째 구본창 작가의 ‘화이트’ 작품을 침실에 걸어두고 있는데, 그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바꿀 생각 없이 즐겨 보고 있다”고 구본창 작가를 소개했다. 마지막 날, 또 한 번의 특별한 만찬이 열렸는데, 한스 요르그 루흐가 레노베이션한 1600년대의 건축물 아페로Apero의 주인이 바로 그 파티의 호스트였다. 그 자리에는 아트바젤의 디렉터인 마르크 슈피글러 Marc Spiegler,프랑스 아를에 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인 스위스 부호, 바젤과 엥가딘에 있는 폰 바르타Von Bartha의관장 등 예술계 명사가 함께했다. 노먼 포스터 부부는 작년에 펴낸 구본창 작가의 작품집 <슬로 토크 Slow Talk>에 이어 좀 더 큰 규모의 작품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또 유럽에서 구본창 작가의 새로운 전시를 열기 위해 힘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주소 빌라 플로르 Villa-Flor Somvih 19, 7525 S-chanf, Schweiz http://www.villaflor.ch

노먼 포스터는 누구?
최신 공법과 재료를 결합한 하이테크 건축으로 짧은 기간 동안 명성을 쌓았다. 이후 그는 ‘지속 가능성’을 추가해 구조적으로 대담하면서도 기능이 효율적인 광대한 스케일의 건축물을 완성하고 있다. 홍콩 상하이 은행 본사 건물(1979)을 비롯해, 스페인 빌바오 지하철(1995), 베를린 독일연방의회 의사당(1999), 런던 시청(2002), 런던 스위스레 빌딩(2003) 등을 설계했다. 1990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99년엔 남작 작위와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자료 제공 구본창 스튜디오

#노먼 포스터 #구본창 #최혜경
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