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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기다리는 다섯 명의 봄 이야기 당신도 봄꿈을 꾸나요?
올봄에 새로 낸 시집에서 이해인 수녀는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함께 행복해지는 꿈을 꾸는 마음이기도 하지요. 흔히 햇살 아래서 잠들 때 꾸는 꿈을 ‘봄꿈’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봄꿈이라는 단어에는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보는 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이 봄에 자신을 혹은 남을 위해 꿈꾸며 사는 다섯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의 봄꿈
당신의 남은 생애가 정원처럼 아름답기를
2013년부터 서울을 벗어나려고 계획을 세운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는 올봄에 드디어 속초 중도문마을에 정원학교를 열었다. 영국에서 7년간 유학하는 동안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지방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영국은 도시 외곽 지역과 지방에 정원 문화가 자리 잡았고,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주민이 런던 사람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도시를 벗어나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속초에 가든 디자인 작업을 하러 왔다가 2km만 가면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로는 설악산이 드리워진 아름다운 풍광의 중도 문마을을 보고 감명받았다. 더 놀라운 건 따뜻한 기온. 해양성 기후인 속초 지역은 마치 영국처럼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기온이 온화했다. “이곳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수종도 재배할 수 있어요. 대나무, 감나무, 무화과, 키위, 다래 같은 수종도 정원에 심을 수 있지요. 마을을 둘러보다가 오랫동안 폐가로 방치되어 잡초가 어른 키만큼 자란 2백년 된 영동 겹집 한옥을 발견했어요. 우람한 한옥이 아니라 서민의 소박한 기와집이었죠. 지난 1년 동안 남편과 함께 수리해서 우리 마음에 딱 맞은 집으로 만들었어요.”


겹집은 옛 나무의 골조를 살리고 싶어서 최소한으로 수리했고 부엌과 이어진 외양간을 정원학교 사무실로 꾸몄다. 이번 봄이 깊어지면 정원의 멋도 점점 깊어질 것이다. “작은 한옥이지만 이곳에서 가든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싶어요. 정원을 배우고, 정원을 감상하고, 놀러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꾸지요.”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는 이곳에 특히 대도시 사람이 많이 와주길 바란다. 이렇게 지방을 오가며 정원을 경험하고 정원 문화에 익숙해지면 은퇴 후에라도 자연스럽게 거주지를 지방으로 옮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영국에서는 의사도, 은행가도 은퇴 후에 정원과 관련한 두 번째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목원이나 정원을 돌보는 봉사를 하는 그들은 큰돈을 벌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로 세상에 기여하며 남은 삶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간다

“인생의 정점을 찍고 쇠퇴해가는 과정을 웰 에이징well aging하는 방법으로 정원을 가꾸세요. 그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사람의 품성이 노년에도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영국에서 참 많이 느꼈습니다. ”그의 정원학교는 지원자가 넘쳐 계획에 없던 오후반도 만들었다. 고작 여섯 명만 받은 소수 정예 수업이니 큰 수입이 될 리 없지만, 오경아가든 디자이너는 이제 갓 싹을 틔운 정원학교가 사람들에게 행복한 노년을 가꾸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기를 바라는 봄꿈을 꾸고 있다.


김승권 두꺼비하우징 대표의 봄꿈

헌 집을 새 집으로 나눠 쓰며 마을이 살아나기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꺼비하우징이라는 이름이 독특한 사회적 기업의 김승권 대표는 ‘도시의 노후한 주거 시설을 잘 고치면 골목이 살아나고 이웃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김미정 건축사 등 유능한 주거 전문가와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첫 시도는 사회 취약 계층의 곰팡이가 피고 비가 새는 집을 쾌적하고 편안한 집으로 고쳐주는 것이었다.

“한 집을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한 마을을 변화시켜 그 안에서 이웃끼리 서로 돌보면 도시의 온기 회복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은평구 산자락 아래 있는 산새마을의 집을 고치기 시작했어요.” 재개발은 보류되고 기대와 반대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산새마을에서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학교’ 개교. 매서운 눈초리로 대하던 주민들이 취약 계층의 집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깔끔한 집으로 변화시키며 지속적으로 설득하자 마을 학교로 모여들었다.


“주민끼리 마을의 장단점을 생각해본 다음, 마을 대청소부터 하기로 했고 뒷동산에 40여 년간 방치한 옛 개 사육장 터에서 쓰레기부터 들어냈어요. 은평구청에서 청소 트럭 수십 대를 지원할 만큼 양이 많았지만 주민과 민간 기업에 행정력까지 더해 민관 가버넌스가 이뤄지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금방 해결되었지요.” 마지막 쓰레기를 내보내던 날, 마음이 벅차오른 주민들은 집에서 맛난 먹거리를 내왔고 수육을 삶아 함께 고생한 자원봉사자와 공무원들에게 대접하며 즐거운 마을 잔치를 벌였다. 지금 그 터는 마을 주민의 공동 텃밭으로 변화했다. 이곳에서 키운 각종 채소를 수확해 주민들이 함께하는 비빔밥 축제를 벌이고, 공동 김장을 해서 마을의 취약 계층에게 선사하니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이 이보다 다채로울 수 있으랴!

“작년부터는 노후 지역 안의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1인 가구와 청년에게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는 공가共家 프로젝트가 큰 호응을 받고 있어요. 함께라는 뜻의 ‘공가’ 프로젝트는 집을 개인의 사적 재산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치와 재미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보지요.” 빈집이 팔리지 않아 고민하던 집주인은 고정 수익을 얻고 청년들은 주변 원룸 시세의 80%로 집을 얻어 저녁에도 불이 켜져 있는 집으로 퇴근할 수 있으며, 노인이 많이 사는 노후 지역에 청년들이 살게 되니 동네에 활력이 살아난다. 이렇게 정겨운 골목이 살아나 친구와 이웃이 있는 작은 마을이 모여서 도시가 되고, 그 안에서 소규모 일자리도 창출되는 도시를 바라며 두꺼비하우징은 오늘도 두 눈을 깜빡인다. 바지런히 소박하게 그러나 헌신적으로 한 걸음 내딛는 두꺼비의 행복한 봄꿈.


이유빈 기린아 자원봉사자의 봄꿈
소아암 환우에게 따스한 봄 햇살이 비치기를
대학에서 미디어정보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복수 전공했고, 지금은 서울 시내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 지도 교사로 일하며 사회복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이유빈 학생. 아직 푸른 나이인 그는 인생의 새싹 시절을 병원에서 보냈다. 외고 입시 준비로 치열하게 공부하던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았기 때문. 그래서 친구들이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해 큰 꿈을 꿀 때 그는 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며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되어 검정고시를 보았고 수능 시험이 코앞에 닥쳤을 때 뇌종양이 재발했다.

이번엔 방사선 치료를 하고 항암 치료까지 해야 했지만, 친구들이 한창 자라고 공부하던 7~8년을 병원 생활과 맞바꾼 끝에 또다시 완치되는 행운을 얻었다. 투병 중에도 틈틈이 공부해서 또래보다 2~3년 늦었지만 대학에 합격했고, 지난 1년간 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실에 자원봉사를 지원해 금요일마다 혼자서 소아암 환자를 방문하며 보냈다. “보통 소아암 환자는 영유아가 많은데, 저는 철이 든 청소년기에 7~8년을 투병했어요. 그래서 어린 소아암 환자보다 병원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더 많이 알 수 있었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소아암 병동을 라운딩(병실을 방문해 환우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할 때 환아와 보호자가 “좋은 일 하시네요. 우리 아이도 선생님처럼 다 나아서 아픈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렵게 견뎌온 지난 시간이 지금 힘든 사람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소아암 완치 환자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기린아’ 모임에도 한 달에 한번 참석해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아픈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도와야 더 큰 도움이 될지 지혜를 모은다. 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실의 한빛사랑회가 소아암 환우를 위해 매년 여름과 겨울에 진행하는 캠프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어 해마다 일대일 멘토로 참여한다.

“병원의 정식 직원이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제가 기쁨과 보람을 얻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이런 활동이 제 삶의 일부가 되었어요.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또 건강한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더 많은 기린아가 이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에 병원에서 지루하게 투병하는 소아암 환우에게 봄 햇살 같은 환한 웃음과 용기를 선물하고 싶어요.”


박정수 배우의 봄꿈

언제든지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신감을 갖기를
나 자신을 이기는 도전은 몇 살까지 해야 할까? 40여 년간 품위 있는 사모님 역할을 주로 해온 배우 박정수는 이번 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을 택했다. 생애 첫 연극을, 그것도 퓰리처상의 드라마 부문과 토니상 등을 석권하고 아카데미 영화상에까지 노미네이트된 번역극 <다우트Doubt>라는 높은 산을 정복하기로 결정한 것. 그는 2006년 경 갑상샘암 수술을 하면서 목소리를 잃어버려 낙심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아홉 시간에 걸쳐 성대 가까운 곳의 암세포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6개월이 지나니 겨우 쉰 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노래하기가 힘들어요. 항암 치료 때문에 체력도 많이 떨어져 지난 5~6년간 오후만 되면 오이지처럼 몸이 시들었죠. 그런데 2년 전쯤부터는 많이 회복되었어요. 그때 실험극단에서 세 번째로 연극 출연 요청을 했고 차갑고 깨끗한 수녀 역할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오케이~ 하겠어요!’라고 말했죠.”

평소 시원한 성격대로 흔쾌히 수락했지만, 새로운 산을 오르는 건 생각보다 더 험난했다. 연극 공연 이전에 종영하리라 생각한 드라마가 한 달 연장되어 연극 공연 기간과 겹쳤고, 그래서 초보 연극 배우 주제에 선배 연극인이 연습하는 시간의 반절도 연습하지 못하니 산 중턱에서 길이 막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연극은 콕 찌르면 대사가 줄줄 나오도록 외워야 하는 나날의 생방송이잖아요. 첫 연극을 하는데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까지 연장되었으니,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제 성에 차지 않아 괴로웠지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해내야 진짜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대사 외우기를 멈추지 않았고, 더블 캐스팅을 요청해서 스케줄을 조정했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예전보다 자신감이 충만해졌어요. 저보다 어린 배우들이지만 ‘어머, 난 네가 위대해 보인다’라고 감탄을 연발해요. 카메라 동선에 익숙하던 내가 ‘연극은 감정을 바꾸고 싶을 때는 이렇게 시선만 옮기는 거구나!’ 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죠. 상대배우인 서태화 씨 말로는 아마 내가 마지막 공연 때 펑펑 울 거래요.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 아직 잘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두려움을 이겨내니 반대로 이젠 행복이 느껴진다는 그는 누군가 날 인정하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곧 희망이라고 말한다. 박정수라는 탤런트가 연극인 박정수로 거듭나는 봄, 어려움이 중첩된 상황에서 자신을 이겨냈다는 큰 의미에 도전하는 여배우의 봄은 의심할 여지없이 에너지가 넘친다. 유쾌하고 싱그러운 봄기운이 그에게 넘친다.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의 봄꿈
일상에서 우리 전통의 풍류를 더 자주 누려보기를
국악은 지루하거나 고루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국립국악원에 새로 부임한 용호성 기획운영단장은 올 한 해 관객에게 국악의 재미를 일깨워줄 꿈에 부풀어 있다. 예술경영박사 학위를 받은 마케팅 분야의 전문 지식과 지난 30년간 연간 1백 편 이상의 공연을 관람하며 쌓은 관객 경험이라는 두 가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도 우리 국악은 ‘재미와 매력’ 자체라는 게 까다로운 문화 수요자인 그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인적 자원이 풍부한 국립국악원이지만 작년까지 1년에 반 이상 무대가 비어 있던 건 국악의 이러한 다채로운 매력을 대중에게 잘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자기반성을 거쳐 날개를 펼쳐 올 연말까지 1백80편의 공연이라는 파격적 도약을 시도할 것이다.

“매일 매번 다른 공연이 펼쳐질 겁니다. 무모하지만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는 계획이죠. 이미 첫 회부터 전 석이 매진되었어요. 국악 관객을 개발할 수 있도록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각각 다른 테마로 공연을 진행하지요.” 예를 들어 수요일에는 수요 춤전이 벌어진다. 전통 춤과 국악의 만남으로, 춤은 시각적 볼거리와 리듬감이 넘쳐 평소 문화적 취향이 빼어난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공연이다. 목요일은 진성 국악 관객은 물론 클래식 관객도 흡수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관객 1백여 명이 둘러앉는 국악원의 풍류사랑방에서 열리는 공연은 국악기가 마이크 없이 제 소리 그대로 관객과 만난다.


클래식, 특히 실내악 마니아가 매료될 만한 공연이다. “금요일은 공감의 날이에요. 대중음악, 재즈, 클래식, 연극,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관객을 끌어안아 ‘새로운 것을 보려면 국악원에 가야 해!’라는 새로운 문화적 시류가 만들어지기를 꿈꿉니다.” 국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음악인 정악이 각 분야의 다양한 손님이 펼쳐놓는 이야기에 곁들여지는 토요일 공연은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적합하다.

국악 공연과 식사, 박물관 관람을 한데 모은 노년층을 위한 패키지, <브레멘 음악대>의 국악 버전을 시도하는 장기 공연, 왕실 전통의 태교 음악 공연, 유모차를 끄는 부부를 위한 야외 가족 국악 공연까지 180이라는 숫자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재능이 출중한 퓨전 국악인과는 다담이라는 토크쇼나 빛나는 불협화음이라는 여름 축제로 화합할 것이고, 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과는 프린지 형태의 페스티벌을 열어 소통할 계획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사람이 우리 국악의 팬이 되어 국악 공연이 국립국악원의 무대를 벗어나 국내와 세계 곳곳의 일반 공연장에 오르기를, 용호성 단장과 국립국악원 단원들은 이토록 설레는 봄꿈에 빠져 있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민희기 | 캘리그래피 이애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