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사진집과 단행본
1 PLAY IN THE WORLD 사진가 박상숙, 서지애가 한 달 동안 촬영한 사진을 모은 사진집. 50쪽의 얇은 종이 책 안에 특별한 설명 없이 단편 이미지가 나열되어 있다, 주제는 없지만 디렉터의 시선에는 취향이 있다. 그들이 길 위에서 발자국처럼 남긴 기록이자,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의 찰나. 박상숙·서지애.
2 공상구락부 코우너스 퍼블리싱의 ‘철도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하나로 저작권이 만료된 한국의 중·단편 소설을 편집해 출간했다. 소설가 이효석의 ‘공상구락부’를 비롯해 이무영과 채만식 작가의 단편을 수록했으며, 리소그래프 인쇄를 사용하고 실로 제본했다. 마치 스탬프를 찍은 것 같은 종이 질감이 아날로그적 온기를 풍긴다. 코우너스 퍼블리싱.
3 HON 사진가 김강이가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 근교의 작은 동네 햄든Hampden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 혼페스트Hon Fest(2009)를 촬영한 흑백 사진집. 축제 행렬과 각자 이국적 개성을 뽐내는 사람들의 초상을 담았다.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르지만, 역동적이면서 위트 넘치는 시선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김강이.
4 About mama “엄마를 꽉 껴안을 때 느껴지는 온기, 그 친근한 살냄새가 좋다”고 시작하는 는 엄마 청춘 수집서. 딸 조윤경이 엄마 이영형을 주인공으로 엄마의 청춘 시절 사진, 대학 시절 노트 등을 모으고 짤막한 인터뷰를 실었다. 엄마에 의한, 엄마를 위한, 다정한 엄마 예찬가歌. 조윤경.
5 당신이 버린 꿈 “당신은 어떤 꿈을 버렸나요?”라는 질문에 관한 빅데이터. 설치미술가 박혜수의 작업은 그가 던지는 화두의 시각적 발현이지만, 그 이면엔 3년간의 긴 리서치와 수집, 인터뷰 등이 있다. 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작가 스스로 1인 출판사를 차렸다. 흥미로운 질문과 예술로 발화하는 과정의 절절하고 세밀한 기록. 갖고싶은책.
6 map C:소규모 취향 공동체의 사각망루 ‘자기 나름의 패션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부제처럼 패션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전하는 패션에 관한 단상. 글 쓰고 사진 찍고 소설 쓰는 사람 등이 필자로 그 안에는 스스로 “패션을 혐오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패션에 대한 애증, 오해, 의심, 사랑, 편견을 쏟아낸다. 프로그라마.
그 어디에도 없는 비정기간행물
1 그대로 우리보다 앞서 시간을 걷고 있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그대로’ 담는 인터뷰 중심의 온·오프라인 매거진. 그 첫 출발은 60년 전통 이발관 명랑 할머니 이덕훈 이발사와 을지면옥 위 을지다방 박옥분 사장과의 인터뷰다. “늙어간다는 것은 마냥 슬픈 일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그대로.
2 Panorama 463 건축을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탄생한 매거진. 호마다 특정 버스 노선을 선정해 그 노선에서 만나는 건축을 이야기한다. 매거진 파노라마의 세 번째 이야기는 서울 간선 버스 463번. 세운상가, 탑애견상가, 서울역 등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책을 읽고 463번 버스를 타보면 어떨까? 매거진 파노라마.
3 영화잡지 anno 잡지 첫 장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주목받을 가치가 이는 영화들에 대한 주석(annotation)으로서의 비평을 담았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영화를 학술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전무한 만큼,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와 그 흐름을 같이 한 1990년대 영화 잡지 를 떠올리게 한다. 호마다 하나의 특정 주제 아래 펼쳐지는 필자들의 다양한 담론을 만날 수 있다. 영화사달리기.
4 그랜드매거진 할 <그랜드매거진 할>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양복 만드는 황재홍 할아버지, 허미숙 모델 할머니, 구두 수선장 심복석 할아버지 등 한길을 걸으며 거룩한 역사를 만들어온 어르신의 인생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찬찬히 좇는다.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그랜드 세대의 진짜 ‘멋’. 롸이팅라이더즈.
5 Documentum 건축 사진가 김용관이 창간한 건축 잡지. “한 장의 건축 사진이 가진 사회·문화적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건축과 사진을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한 형식과 사진을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대중과 건축의 간극을 좁히고 기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건축 잡지. 아키라이프.
사연 있는 그림책
1 몽땅 : 작은 풍경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는 강인경 그림책 작가의 ‘풍경 이야기’ 시리즈 중 첫 번째 그림책. 조랑말 ‘몽땅’이 빛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작가가 리넨에 바느질한 그림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제주 조랑말이 자유롭게 뛰어다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그림책의 배경이 되었다. 홀씨북.
2 Ma peach “아빠가 엄마에게 주었던 꽃은… 복숭아 네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그림책은 일러스트레이터 부부인 토끼도둑과 경의 태교 그림일기. 배 속의 아기 복숭아(태명)를 기다리며 주고받은 엽서와 그림,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담았다. 현재 복숭아는 건강하게 잘 태어나 부부는 육아에 여념이 없다고. 토끼도둑&경.
3 여우모자 독립 출판사 텍스트컨텍스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김승연 작가의 그림책으로, 혼자 있기 좋아하는 소녀가 새끼 여우를 돌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개성 있는 캐릭터들, 절제된 타이포 디자인과 여운을 주는 이야기까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참 괜찮은 그림책. 로그프레스.
4 갯강구 일기 ‘갯강구’라는 필명으로 그림을 그리는 최지수의 유럽 여행 만화 일기다. 파리, 암스테르담, 브뤼셀, 베를린, 프라하를 한 달간 여행하며 블로그에 기록한 그림과 일기를 재구성했다. 낯선 시공간 안에서 느끼는 소소한 단상을 위트 있는 만화와 함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읽고 보는 즐거움이 크다. 현지에서만 알 수 있는 생생 여행 정보는 보너스! 갯강구.
5 깎은 손톱 손톱을 깎으면 다시 자라고, 다시 깎아도 또 자라는 것처럼 소녀의 첫사랑을, 노부부의 평범한 하루를, 새 생명이 주는 벅찬 기쁨을 영원히 붙잡아둘 수는 없다. 하지만 깎은 손톱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자연 순리에 관한 이야기. 시나리오를 쓰는 정미진 작가가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터 김금복이 그림을 그렸다. 담담하게 읽다가 울컥거리며 가슴을 부여잡게 되는 책. 엣눈북스.
나와 가족 그리고 동네 이야기
1 빌려온 동네 우리가 한때 ‘빌려’ 살던 동네에 관한 쓸쓸한 기록. 그 첫 번째 마을은 만리동 고개로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지만 잊혀가는 공간의 흔적을 담았다. 김하나.
2 낭만서촌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 오래전부터 이 동네를 만든 게 아닐까 싶은 곳”이라고 서촌을 묘사한 문희정의 서촌 예찬가. 그가 서촌에 살면서 걷고, 먹고, 보고, 느끼고, 누린 골목 구석구석의 공간과 사람을 소개한다. 문화다방.
3 오산보 vol.7: 구좌이웃 제주의 소문난 벼룩시장인 벨롱장에서 베이글을 파는 방지연 작가는 제주에서 여러 여행지의 기록을 모은 작은 책자 <오산보Osanpo>를 만든다. 오산보는 일본어로 산책이라는 뜻. 그가 제주 동쪽 한동리, 평대리, 하도리, 종달리에서 만난 ‘구좌 이웃’을 기록했다. 방지연.
4 엄마 시집 아기가 태어난 지 50일부터 첫돌이 지나기까지, 엄마 김연희가 매일 쓴 시. 현재 상수동에서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는 그녀의 육아 시집으로, 찬란하고 생생한 육아를 예순네 편의 시로 담았다. 꾸뽀몸모.
5 남기면 쓰레기 “버려두면 쓰레기가 될 글들을 모아 <남기면 쓰레기>라는 시집이 되었다”고 소개하는 박경석의 시집. 독립 출판물 제작자인 박준범의 시집 <우주는 잔인하다> 이후 ‘문학과 죄송사’라는 이름으로 펴낸 세 번째 책이다. 마지막 장에는 “다 읽으신 책은 냄비 받침 또는 여러 받침으로 사용하기 좋습니다. 남기면 쓰레기 됩니다”라고 쓰여 있지만, 받침으로 쓰기엔 아까운 시집. 문학과 죄송사.
6 두 번째 퇴사 스물여덟 살의 저자 오지혜가 홍보대행사에 취직해 두 번째 퇴사를 하기까지 메모장에 적어둔 글들을 엮었다. “아, 정말 이건 내 이야기야” “맞아, 그땐 그랬지” 하고 공감하며 위로를 얻는 시집이자 에세이. 지혜로운 생활.
7 둘째 심보 “나의 가족에게”라고 시작하는 시집은 모든 페이지에 두 줄의 시가 실려 있다. “주방에서 들리는 엄마의 놀이 소리/ 뽁뽁이가 한 칸 두 칸 터지고 있다” “엄마는 자랑스러운 딸을 믿고 또 믿고/ 나는 쉬어가려는 나를 밀고 또 밀고” 등 저자 남근영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두 줄로 압축한 2백27편의 시 묶음. 704호
소규모 독립 출판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헬로인디북스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46길 33, 010-4563-7830, helloindiebooks.com 유어마인드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35길 7 뷰빌딩 5층, 070-8821-8990, your-mind.com 가가린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02-736-9005 다시서점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6길 21 1층, 010-9285-4869 더 북 소사이어티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2 2층, 070-8621-5676, thebooksociety.org 스토리지 북 앤 필름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115-1 1층, 010-2935-9975, storagebookandfilm.com 책방피노키오(그림책 전문 서점)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94-11, 070-4025-9186, blog.naver.com/pinokiobooks 오디너리북샵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6가길 1 1층, 070-8288-8715 별책부록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30길 21, 02-333-0580 제주 소심한 책방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동길 29-6, 010-6374-1826, sosimbook.com
도움말 김경현(다시서점), 김정은(오디너리북샵), 이보람(헬로인디북스), 이희송(책방 피노키오), 장인애(소심한 책방)
-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보통 사람들의 소규모 출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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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만들었다.”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기획부터 유통까지 도맡아 완성하는 출판물의 제작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육아 일기, 엄마의 처녀 시절 기록서, 동네 어르신의 인터뷰 등 보통의 기록부터 학술 간행물까지 소규모 출판물을 작은 서점에서 추천했다. 그 안에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진솔하게 녹아 있다.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언제나 살 수는 없는 조금 특별한 책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