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삼성생명 브랜드전략팀 김희안 차장
무료 건강검진 이벤트에 당첨된 41세의 K는 지정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담당 의사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3년 11개월입니다.” 이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로 내게 벌어진다면? 토끼 같은 새끼들이 나만 보고 있는데,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지방에 사는 부모님 뵌 지가 오래전인데, 아들내미 군대 보내고 가족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는데… 자신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시한부時限附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진료실에 혼자 남겨진 K는 책상 위에 놓인 ‘종합건강검진결과서’를 떨리는 손끝으로 한 장씩 넘겼다.
“많이 놀라셨죠? 앞이 캄캄하셨죠? 가족의 얼굴도 떠오르셨죠? 혹시 지난 건강검진 때 작성하신 자가 관리 문진표를 기억하세요? 작성해주신 시간을 기준으로 ‘가족 시간’ 검진 센터가 계산해보았습니다. 당신에게 남은 3년 11개월은 살아 있는 시간이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3년 11개월이라는 겁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85세로 가정했을 때 자신의 나이를 뺀 다음 일하고 자고 TV를 시청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 등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상 계산한 것. 일상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측정했으며, 중복 항목이나 시간의 질 등 경우의 수는 고려하지 않았다. K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요동치는 가슴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4년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K 씨의 이야기는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삼성생명 커뮤니케이션팀이 기획해 ‘리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한 TV 광고의 내용이다.
한국 직장인의 가족 시간을 계산하다 “한국 직장인이 가족
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하루 평균 28분에 불과하다는 2012년 신문 기사가 아이디어의 시작이었습니다. ‘10분 이상 30분 미만’이라고 답한 직장인이 45.2%로 가장 많았고, ‘10분 미만’이라고 답변한 직장인도 31.5%에 달했습니다. ‘1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직장인은 9.9%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참 놀라웠습니다.” 커뮤니케이션팀의 김희안 차장은 ‘가족’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감정을 단순하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공감
하고 주변까지 긍정적 파동이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것이 바로 ‘가족 시간 계산기’라는 장치였다.
“각각 인생 스토리가 다른 다양한 연령층의 일반인을 2주에 걸쳐 수소문했고, 무료 건강검진을 제공했어요. 참가자 열 명이 실제로 건강검진을 받았고, 일주일 후에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한 명을 제외한 아홉 명이 진료실로 연출한 촬영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벤처기업가, 성공한 비즈니스맨, 부동산을 운영하는 여성, 캐피털 회사에서 근무하는 워킹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직장인 등 대상은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고 난 직후에는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하거나,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표정이 직접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촬영이라는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뒤에는 한결같이 깊은 상념에 잠겼다. 한 참가자는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지방에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출근한 지 4개월 됐어요. 주말을 함께 보내고 월요일이 되면 아이가 무척 힘들어한다고 하더군요. 매일 아이를 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요.” “대학생 때부터 자취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주 부모님을 찾아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시는 등산을 함께 시작해야겠습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묵묵하게 도와주는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제일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가 처한 사연에 따라 떠올리는 가족도, 그 이유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의 소중함과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 영상의 확산 속도는 더욱 놀라웠다. 2014년 10월 31일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공개한 지 일주일 만에 1백45만 5천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현재 4백75만 6천8백 건의 조회 수를 넘어서고 있다(12월 17일 기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거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링크를 보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암묵적 동참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컸다. 자발적 확산의 요인은 ‘내가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가족 시간 계산기 공식 홈페이지(www.myfamilytime.co.kr)를 개설해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시간의 질’이 해답
가족 시간 계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영상을 본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고백한 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빨라졌고, 영상을 본 한 가족은 함께 윷놀이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나 가족은 있으니까요. 가족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통보’받았을 때 오는 심리적 요동이 큰 것 같습니다. 일에 치여 사는 저 또한 13개월이라는 시간이 나왔어요.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SNS 이용 시간을 줄이고, 푸시업 기능을 차단했습니다.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고, 그 시간을 얼마나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함께할 남은 시간을 강조하는 의도가 거기에 있어요. 2014년에는 마음 아픈 사건도 많았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고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프로젝트는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함께 프로젝트를 담당한 커뮤니케이션팀 홍성제 부장 또한 가족 시간 계산 결과 13개월이 나왔다. 이후 일요일 점심 한 끼만큼은 사춘기 아들과 함께 먹으려고 노력한다.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려온 세대거든요. 저를 포함한 40~50대 가장들이 가족 시간 계산기를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을 통해 스스로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혹시 당신도 바쁘고 일에 지쳤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이유로, 또는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소홀한 적은 없었는지? 함께하는 시간을 미루며 “다음에 만나면 되지” “다음에 만나 밥 먹자” “다음에 갈게”라고 말하지만,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듯이 ‘영원히 머무는 시간’이란 없다. 우리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공유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그 시간에 투자하자.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이 게임에는 손해가 없다.
내게 남은 가족 시간이 궁금하다면 직접 계산해보는 것은 어떨까? 위의 QR코드를 스캔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된다.
- 가족과 보내는 시간, 당신 인생엔 얼마나 남았나요? 가족 시간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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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