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그림엽서, 사랑의 증표
“학교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배구를 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청년이었죠…. 그는 못하는 운동이 없었어요. 권투, 철봉, 뜀박질 등을 멋지게 해냈죠. 노래도 참 잘 불렀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미술 수업을 마치고 붓을 씻고 있는데, 옆에 그가 있었죠. 단둘뿐이었어요. 그가 자연스레 말을 걸어왔고, 그때부터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마사코가 훗날 이중섭 화가와 처음 만난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렇게 사랑은 왔다. 스물다섯, 분카가쿠잉(文化學院, 3년제의 전문학교 과정)의 유화과를 졸업하고 연구생 신분으로 학교에 남은 이중섭은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랑에 빠졌다. 민족적 성향이 강한 그가 식민지 종주국의 여성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연모의 정이 깊어질수록 일본인 여성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으리라. 하지만 감기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 사랑 아닌가…. 사랑의 증표로 이중섭은 1940년 연말부터 마사코에게 글 없는 그림엽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수신자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만 붙여 관제엽서의 한쪽 면에 그림만 그려 보냈다. 1940년에 한 점, 1941년에 여든 점 안팎, 1942년에 열 점 안팎, 1943년에 두 점으로 남았다. 이중섭은 관제 엽서의 소인 찍는 부분과 보내는 이의 이름 사이에 그림을 그린 달과 날짜를 숫자로 표시했고, 그림을 그린 면에는 제작 연도와 서명을 넣었다. 4년 동안의 엽서 그림은 그의 초기 화풍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다.
나의 발가락 군
이중섭의 편지글 속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발가락 군’은 야마모토 마사코의 애칭이자 그녀 발가락의 애칭이기도 했다. 체형에 비해 발이 유난히 큰 데다 못생겼다 해 이중섭은 마사코를 발가락 군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또 그 발가락이 영락없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 해 ‘아스파라거스 군’으로도 불렀다. 이 애칭들은 같이 길을 가다가 발가락을 다친 마사코를 정성 들여 간호한 추억이 있는 이중섭과 마사코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애칭이다. 후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띄운 편지에는 “내 가장 사랑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사랑하게 해주시오” “나의 발가락 군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엽서화’,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1941. 6. 3
요정 마사 マサ
이중섭의 어떤 그림보다 채색이 고운 이 그림은 요정들의 신비한 세계다. 나무와 여성이 한 몸을 이루고 있고, 가지와 팔이 분간 없이 하나로 이어진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중섭은 이 그림의 서명 옆에 그림 제목을 써두었는데 마사マサ, 그러니까 마사코의 이름 가운데 ‘마사(方)’를 일본어 문자 가타가나로 썼다. 바로 그 꽃나무의 요정은 야마모토 마사코의 모습이다. 엽서에 이 그림을 그려 발송한 4월 2일 수요일은 개학 다음 날로, 꽃들로 뒤덮인 교정을 샅샅이 찾아다녔지만 이미 학교를 졸업한 마사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그림자와 향기만 가득할 뿐. 이중섭은 그 한 해 동안 매주 한 점씩 연서를 보냈다. ‘엽서화’, 종이에 수채와 잉크, 14×9cm, 1941
연꽃을 쥔 아이
어린아이는 우리 문화유산에 자주 등장하는 전통 소재다. 연꽃을 쥔 아이 또는 포도 넝쿨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이 새겨진 고려청자나 다산을 의미하는 아이들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신혼 새댁의 방에 둘러치는 병풍이 그러했다. 이중섭은 일생 동안 전통 소재를 조형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노력이 이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어린아이는 이미 엽서 그림을 그리던 시기부터 이중섭의 그림에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엽서화(새와 소년)’, 종이에 잉크, 9×14cm, 1941. 10
사랑의 편지, 대향大鄕 이남덕南德에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온 그들은 1945년 5월 원산 광석동의 넓은 집 마당에서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마사코는 남남북녀 대신 남녀북남이라며 ‘남’, 더덕더덕 아들딸 많이 낳아서 한 5백 년 후엔 대향남덕국을 만들자며 ‘덕’이라 붙여 ‘이남덕李南德’이 되었다. 조산아로 태어난 첫아들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은 후, 이듬해 여름 둘째 아들 태현이, 1949년엔 아들 태성이 태어났다. 전쟁통에 부산과 제주로, 다시 부산으로 옮겨 다니던 이중섭은 1952년 여름, 이남덕과 태현, 태성을 일본으로 보내고 편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는 “오직 하나의 즐거움, 매일 기다리는 즐거움은 당신에게서 오는 살뜰한 편지뿐”이니 “빨리빨리 사진과 편지를 보내”달라고, “조금만 참으면 되”니 “더욱더 우리 네 식구 의좋게 버티어”보자고 썼다.
1954년 11월 10일
언제나 내 가슴 한가운데서 나를 따듯하게 해주는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건강하오? 아고리*도 건강한 데다 제작이 더욱더 순조로워 쭉쭉 작품을 진행하고 있소.
자신도 놀랄 정도의 작품이 완성되어 감격하고 힘이 넘치고 …추위에도 지지 않고 굴하지 않고 … 어두운 새벽부터 일어나 전등을 켜고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여!!! 마음속으로부터 기쁘게 … 서둘러 편지를 정리해주시오.
하루라도 빨리 함께 살고 싶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과를 올려주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이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버린다오.
한없이 상냥한 나의 멋진 천사여!!
서둘러 편지를 나의 거처로 보내주시오.
매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그대는 알 거요.
사진도 서둘러 보내주시오.
작품에 필요하다는 핑겟거리로라도 발가락 군의 (포즈)만큼은 꼭 보내주시오.
김인호 형이 카메라로 찍은 내 사진 (뒤편 바위산에 올라 찍은 것이오)도 보내오.
지금 아고리는 사방 작품에 파묻혀 …어질러진 방 한구석에서 그대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소식을 쓰고 있소.
자, 건강하게 성과를 거둘 때까지 굴하지 말고 버티어냅시다.
* 아고리: 이중섭의 일본식 별명. ‘턱(아고あご)이 긴 이씨’라는 말을 줄인 표현으로, 분카가쿠잉 유화과에 재학 중일 때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교수가 성이 이씨인 여러 명의 학생들을 구분 하기 위해 만들었다.
1954년 12월 연말(추정. 전시 직전), 서울
나의 가장 높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나만의 오직 한 사람, 현처 남덕 군.
건강하오?
내 가슴은 그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오.
수속 절차가 순조롭지 않다고 해서 조바심 내거나 애태우지 마요.
소품전을 마치면 바로 구형(시인 구상)의 힘을 빌려 갈 테니 그대의 아름다운 마음이 동요하지 않도록 해주오.
하루 종일 제작을 하면서 남덕 군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까, 마음속에서 그것만 준비하고 있다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가장 멋진 천사 남덕 군, 힘내서 마음을 더더욱 밝고 건강하게 가져주오.
이제 곧 상냥한 남덕 군의 마음과 그대의 모든 것을 포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고리는 만족스러워 혼자서 마음속으로 히죽거리고 있다오.
사람들은 아고리가 제 아내만 생각한다고 여길지 모르나, 아고리는 그대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오직 하나로 일치해서 서로 사랑하고, 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참인간이 되고, 차례차례로 훌륭한 일(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것, 계속해서 대작을 제작하는 것)을 하는 것이 염원이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아내를 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독신으로 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고리는 그런 타입의 화공은 아니오.
자신을 바르게 보고 있소.
예술은 무한의 애정 표현이오.
참된 애정으로 차고 넘쳐야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져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이오.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좋소.
힘껏 사랑하고 한없이 사랑하면 되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 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의 멋진 전부를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것이오.
오로지 더욱더 깊고 도탑고 열렬하게, 한없이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여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도리를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중략)
자, 나만의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한없이 상냥한 유일무이한 사람, 귀중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모든 애정의 주인, 나만의 천사,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군 힘내시오.
파파 중섭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이중섭 화가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 유화, 채색화, 드로잉은 물론 유학 시절 글 대신 사랑을 전한 그림엽서, 가족에게 보낸 그림 편지 등을 만날 수 있으며, 한국의 미국문화공보원장이던 아서 맥터가트가 1955년 미국 모던아트뮤지엄에 기증한 은박지 그림 세 점이 처음 국내에 공개된다. 전시를 계기로 화가 이중섭의 그림 인생을 담은 책 <이중섭의 사랑, 가족>(디자인하우스) 도 발간됐다. 연애 시절 마음을 전한 그림엽서, 일본에 떨어져 지내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차곡차곡 담았다. 전시는 2015년 1월 6일부터 2월 22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문의 02-2287-3591
- "나의 상냥하고 소중한 사람, 마음 가득히 유일한 사람, 나의 소중한 아내, 나의 남덕 군에게" 로맨티스트 이중섭의 연서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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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만 전한 1백여 점의 엽서, 일본에 있던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과 그림…. 연인을 향한 마음을 애틋한 손 글씨로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이중섭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내 귀여운 당신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를 생각하고 있소. 그 사마귀에 오래 키스하고 싶소.” “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드리지요. 지금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는가요.” 부대껴 살다 보면 사랑의 온도도 미지근해지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그럴 틈이 없습니다. 운명의 여인 마사코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다시 기약 없는 이별까지… 화가 이중섭의 사랑은 그림과 편지로 남아 고스란히 화석이 되었습니다. 화가이기 이전에 한 여자를 송두리째 사랑한 한 남자로, 두 아들의 다정한 아빠로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 간 그의 연서를 소개합니다.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우리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만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절절한 사랑.#이중섭구성 신진주 기자 | 자료 제공 갤러리 현대(02-2287-3591), <이중섭의 사랑, 가족>(디자인하우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