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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건축_건축가 추천 리스트 내 마음을 울린 바로 그곳
여행을 가면 으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지만, 사실 도시를 대표하는 아름답고 상징적 건물 중 종교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면 건축가 10인이 ‘구원’과 ‘영성’을 경험한 감동의 종교 건축물을 주목해보자.

임영환_ 성 이냐시오 채플
나를 비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곳

성 이냐시오 채플St. Ignatius Chapel은 시애틀 대학 내에 위치한 550㎡ 규모의 작은 성당이다. 디림건축 임영환
소장은 몇 년 전 시애틀 방문길에 렘 콜하스의 시애틀 도서관과 이곳을 답사했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스티븐 홀이 말하는 ‘돌함 위의 빛병“이라는 개념은 직사각형의 단순한 평면 위에 서로 다른 모양의 지붕을 통해 발현하고 있었다. 괴상하게까지 보이는 지붕의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 계절, 날씨에 따라 다른 감각으로 공간을 변화시키며 종교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건물 전면의 반사 연못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이는 건축가의 감각적 디자인 어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장치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체험하기 바란다면 해 질 무렵에 방문하길 권한다. 특히 사람들이 복작이지 않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가면 채플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

구만재_ 클라우스 경당
원초적 오감을 오롯이 경험하다

세계적 건축상 수상자지만 상업 프로젝트는 절대 하지 않아 건축계의 은둔자, 동네 건축가로 불리는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2007년 독일의 작은 마을 바겐도르프에 지은 클라우스 경당(Brother Klaus Field Chapel)은 건축보다는 조형물에 가깝다. 스위스의 한 농부가 의뢰한 프로젝트로, 광활한 평원에 은둔하듯 고고하게 서 있는 이 경당은 구축 과정이 무척 특별하다. 원목 각목 1백여 개를 텐트 치듯 쌓고 콘크리트를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 역할을 한 원목 텐트를 3주 동안 불태워 없앤 것. 외벽의 가로 줄은 공사할 때 부은 하루 치의 콘크리트로 시간이 곧 디자인이 된 셈이다. “이곳은 들어가는 순간 숯 냄새가 나요. 지극히 원초적 방법으로 향까지 담아냈죠. 현대적 감각은 보통 시각적 자극과 이미지에만 치중되게 마련인데, 이미지는 단순화하고 향으로 깊이를 담았다는 경지가 놀라워요.” 온통 까만 벽은 태우는 과정에서 생긴 재가 화석처럼 굳은 것. 천장 구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벽면을 비추는 모습이 마치 성령을 맞는 듯 경건하고 엄숙한 감동을 준다.

문훈_ 경동교회
단순함이 전하는 최고의 감동

종교 건축은 무엇보다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집중하려면 소재를 단순화하는 건 필수다. 좋아하는 음악도 두 곡을 동시에 들을 수 없듯 가장 좋은 것 하나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나머지를 과감하게 빼는 것 또한 고수의 경지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경동교회는 하나의 물성으로 이뤄진 건축물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교 건축이다. 파사드는 물론 바닥과 나머지 벽 모두 붉은 파벽돌로 마감했는데, 이 벽돌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온통 콘크리트가 둘러싸고 있는데, 창문을 통해 시간마다 투과되는 빛에 따라 다양한 톤&매너를 연출한다. “멀리서 보면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형태가 인상적이에요. 실제 가까이 가면 거대한 공간이 분절되어 강인함이 느껴지고요. 그리고 내부로 들어서면 콘크리트가 펼쳐지니, 그야말로 반전을 거듭하는 묘미를 즐길 수 있지요.”

김찬중_ MIT 채플
누구에게나 열린 빛의 향연

미국 보스턴 MIT 캠퍼스 안에 있는 채플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주변부터 둘러보자. 그리고 그 안에서 ‘빛’을 빼보자. 무엇이 남는가? 빛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태양광인지, 형광등 불빛인지, 간접조명인지에 따라 같은 사물도 너무나 다른 느낌을 준다. 더시스템랩 김찬중 소장이 유학 시절에 일부러 찾아간 MIT 채플은 그야말로 빛의 미학을 집약한 공간이다. “에로 사리넨이 1960년대 설계한 MIT 채플은 실린더 타입의 아주 작은 공간이에요. 하지만 모빌처럼 공중에 매달린 작은 금속들이 파워풀한 감동을 주죠. 빛이 금색 조각들과 부딪쳐 어른거리며 정지한 순간까지 무언가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데, 그 자체로 무척 신성한 느낌을 받습니다.” 빛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서양적 관점이다. 빛을 끌어들이는 아이디어로 시각적 감동을 완성한 MIT 채플. 누구나 마음의 번뇌를 잊기 위해 쉽게 찾을 수 있는 이곳은 규모나 기법, 마감재 등이 장엄하지는 않지만 색다른 소재로 충분히 힐링을 이끌어낸 종교 건축이다.

정의엽_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비정형적 공간의 미학

AND건축사사무소의 정의엽 소장은 종교가 없지만 여행 갈 때마다 사찰이나 대성당 같은 종교 건축을 많이 둘러본 편이다. 그중 그의 기억에 남은 건축은 로마 부근에 있는 대성당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바로크 양식의 이 건축은 건축학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건물이지만, 여행객에게는 로마 바티칸 성당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유럽 종교 건축 대부분이 돔이 있듯 이곳에도 성전 천장에 돔이 있는데, 이 돔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원형 돔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돔은 원이 약간 눌린 듯한 타원형이에요. 타원형 돔과 복잡한 곡선의 평면이 공간을 비정형적으로 만들고 빛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오게 하지요. 성당 안으로 떨어지면서 다채롭게 분산되는 빛이 지붕을 받치는 열주에도 영향을 미쳐 마치 성당 벽면에 빛이 파동이 이는 것 같아요.” 타원과 원이 뒤섞인 성당은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상像을 만든다. 그래서 공간이 정적이지 않고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병안_라 투레트 수도원
근대건축의 경이로움

프랑스 파리 근교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라 투레트 수도원(Couvent de la Tourette)은 건축가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종교 건축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근대건축의 5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 “라 투레트 수도원은 숙박이 가능한 곳이에요. 1인 1실인 수도원 방이 있는데, 이 방은 천장도 낮고 공간이 간소해 개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신과 만나는 곳인 대성당은 천고도 높고 화려한 색상을 띠는 긴 창문이 있다. 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다채로운 빛깔을 자아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르 코르뷔지에 건축만이 지니는 디테일과 공간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어요. 건축이 이토록 사람의 감성과 이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죠.”

권형표_절두산 순교성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곳

종교 건축은 건축적 가치를 차치하더라도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천주교 박해 때 수많은 신도가 목이 베여 참수당한 절두산 순교성지가 바로 그러하다. “집 근처에 있어서 가족과 함께 종종 찾는 곳입니다. 이희태 선생이 설계한 성당 건축도 천주교 역사를 잘 드러내는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주변 성지가 잘 조성되어 정신없는 도시에서 잠시라도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찾지요.” 절두산 기슭에 한강을 바라보며 자리 잡은 성당은 무성한 숲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성당은 순교자를 상징하는 갓 모양 지붕과 천주교 신자를 참수한 칼을 의미하는 종탑 등 천주교의 아픈 역사를 건축적으로 풀어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갓 모양 지붕 너머로 종탑과 십자가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성전에 다가갈수록 자연스레 순교의 역사와 신을 떠올리게 된다.

임형남_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곡선과 직선의 이국적 오마주

가온건축 임형남 소장은 종교가 없다. 그런 그에게 이슬람 사원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였을 뿐이다. 블루 모스크로 유명한 술탄 아흐메트의 모스크 Sultan Ahmet Mosque 역시 터키 여행 중 우연히 찾은 곳.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질펀한 돌로 포장된 길에 길게 투영된 여섯 개의 미너렛과 버섯처럼 송골송골 피어난 돔이 만드는 환상적 영상에 취해 안에까지 들어갔죠. 사원을 아름답게 만드는 미너렛은 뾰족한 첨탑으로 등대라는 의미가 있어요. 예배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둥근 돔과 수직의 미너렛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묘한 감흥을 주지요.” 내부로 들어서면 사방이 탁 트여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나온다. 의자 같은 건 없다. <코란>이 놓인 나지막한 책상 몇 개뿐. 신자들이 와서 넓은 공간에서 경외심을 느끼라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형태는 선명하고 건축 기법은 완전무결한 블루 모스크의 백미는 바로 천장. 천장이 둥근 모스크는 마치 왕관을 쓴 것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데, 푸른빛 도자 타일이 타국의 낯선 감흥을 더욱 증폭시킨다.

김백선_파리 생트 샤펠
빛이 만들어낸 작품

백선디자인스튜디오의 김백선 소장은 지난 7월 말경 파리에 다녀왔다. 일이 아닌 여행으로 떠난 길이라서 발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 마음 편히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파리 시내 시테 섬에 있는 대성당 생트 샤펠Sainte Chapelle에 도착했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대성당만큼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 않아 여행객 사이에서 아주 인기 있는 성당은 아니지만, 김백선 소장은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내리쬐는 찬란한 빛이 공간을 감싸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보통 유럽의 종교 건축은 창문 하나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넣는 것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단순히 장식 요소로 사용하는데, 생트 샤펠은 그와 반대로 스테인드글라스가 건축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공간의 유희가 생경하게 다가오지요. 계단을 올라가는 공간부터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느낌이 여느 성당과 매우 다릅니다. 빛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공간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한만원_카펠라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지 위의 보석

스위스 루가노 북쪽 몬테 타마로Monte Tamaro, 완만한 알프스 산맥에 석조 건축이 길게 누워 있다. HNS건축사사무소의 한만원 소장에게 인상 깊은 이곳은 카펠라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Capella Santa Maria degli Angeli. 흔히 ‘몬테 타마로 예배당’ 또는 ‘마리오보타 예배당’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고 엔초 쿠치Enzo Cucchi의 성화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멀리서도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몬테 타마로의 예배당은 고원지대의 황량한 풍경 속에서 하나의 구심점이 됩니다. 언덕과 이어지는 건물 위에 기다랗고 좁은 통로가 이어지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알프스 산의 거대한 계곡을 품으며 하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죠. 거대한 대자연 속에 놓인 작은 건축이 만들어낸 힘은 압도적이고 감동까지 불러일으킵니다.” 성인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에게 헌사하는 이 교회는 티치노 지역의 전통 석조 방법으로 견고히 축조했다. 기다란 천창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예배당 내부는 엔초 쿠치의 아방가르드한 성화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룬다. 

글 이지현, 김민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