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선교사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은 남서울은혜교회 홍장길 목사의 기도, 작은 성당에 감동해 건축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열두 살 소년의 기도가 모여 완성된 생명의 빛 예배당. 홍송(전나무)은 러시아에서 건축자재 사업을 하는 이장균 대표가 자신을 위해 평생 기도한 어머니를 위해 기증한 것.
열두 살 소년의 ‘기도’
프랑스에서 자란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파리 교외 롱샹Ronchamp이라는 마을을 지나다 소박한 성당 건물에 큰 감동을 받았다. 소년은 종탑에 기대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저도 이런 예배당을 하느님께 지어드리고 싶어요.” 그 기도는 소년과 함께 자라 23년 후 아름다운 건축물로 탄생한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자리한 생명의 빛 예배당. 프랑스 건축사로 활동하는 그로노블 국립 건축대학교 디자인과 (ENSAV) 신형철 교수가 설계한 이곳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 단초가 된 건축물이다. 롱샹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다시 지은 곳으로, 허물어진 벽면의 돌을 재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딕 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높이 솟은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화려한 데커레이션이 특징이라면, 롱샹 성당은 엄마 품처럼 둥글고 소박하다. 섬세한 채광과 빛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유기적 곡선은 구원과 치유의 메시지를 건축 언어로 승화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일지라도 열두 살 소년이 꿈을 결정할 만큼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신형철 교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감동을 주는 기계다’라는 철학에 주목한다. 남녀노소,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 기계’로서 건축. 생명의 빛 예배당은 이러한 건축 정신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생명의 빛 예배당이 국내 건축계에서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건축자재다. 반전이 있는 공간을 만났을 때 감동은 배가되는 법. 유리와 폴리카보네이트로 꾸민 외관은 일반 현대 건축처럼 보이지만, 3층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외관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약 330㎡ 면적에 지름 50cm 이상 되는 홍송紅松 8백30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장관이 펼쳐진다. 홍송은 러시아에서 건축 자재 관련 사업을 하는 이장균 대표가 남서울은혜교회 홍장길 목사에게 기증한 것으로, 홍장길 목사는 평소 알고 지낸 신형철 교수에게 홍송을 활용한 예배당 설계를 의뢰한다.
“조형 언어에 거부감이 없는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신격화된 예술 분야를 극도로 배제해 오히려 공간의 거룩함이 사라졌다고 할까요? 저는 종교가 예술을 찾았을 때 감동이 더욱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신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개신교의 상징성은 담되 예술적 조형성을 갖춘 공간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1 설계를 맡은 신형철 교수는 가톨릭과 구분되는 개신교만의 공간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원형 예배당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은 예배당에서 설교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2 생명의 빛 예배당은 남서울은혜교회 커뮤니티 센터 건물의 예배 시설로, 청소년 수련원과 세미나실이 함께 구성되었다. 예배당 준공을 기념해 신형철 교수의 부친인 故 신성희 화백의 전시가 열렸다.
죽은 나무의 ‘구원’
‘신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가 담긴 돔 구조의 예배당. 수백 그루의 나무가 철골 격자 구조에 의지한 채 열두 개의 작은 원을 이루며 사이사이로 은은한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신형철 교수는 자칫 통나무집처럼 보일 수 있는 홍송의 재료적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나무를 수직으로 세웠다. 통나무를 일반 판재나 목재의 개념이 아닌, 살아 있는 나무로 접근한 것. 어떤 것은 땅에 받쳐 기둥으로, 어떤 것은 천장에 매단형태로 ‘생명’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싶은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수십 킬로그램의 나무 기둥을 천장에 매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무마다 형태가 다 다르니 커팅 방법 또한 달라야 했고 안전한 구조 계산은 필수였다. 설계만 2년, 구조 계산에 1년, 시공에 또 3년의 시간이 흘렀고 7천여 장의 세부 도면이 필요했다. “구조 계산을 풀기 위해 많은 업체를 찾았지만, 나무를 천장에서 늘어뜨리는 데다 돔형(원구형)이라고 하니 모두 고개를 젓더군요. 원구형을 끝까지 고집한 이유는 가장 완벽한 형태이자 세상을 상징하는 건축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2천 년 전에 지은 로마 시대의 팡테옹 신전 역시 원구형 구조를 실현했는데, 포기할 수 없었죠. 겨우 찾은 업체가 자하 하디드의 구조 계산을 해주는 볼링거 앤드 그로만Bollinger & Grohmann 이었죠. 구조 계산을 해결하니 이번엔 시공이 문제였습니다. 철 구조와 케이블을 이용해 나무를 고정하는 작업은 국내의 케이돔이라는 시공사에서 맡았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기둥 6백41개, 골조로 세운 기둥 1백92개로 1백 톤에 가까운 나무를 3년간 진득하게 시공한 일등 공신이지요.”
신형철 교수는 나무 돔을 유리와 폴리카보네이트로 감쌌다. 보통 유리는 도시적이라 생각하고, 목재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유리는 자연을 반사하고 빛이 들어오는 동시에 시선도 뚫려 있으니 자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라 판단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추운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이 변수. 유리관에서 1.5m 떨어뜨려 또 한 번 감싼 폴리카보네이트는 중간에 공기층을 만들어줘 단열과 환기에 효과적이다. “모든 건축물이 빛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빛은 무게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역시 무게가 없고, 재질도 없지요. 종교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빛으로 인해 나무가 살아나고, 자연과 인공이라는 서로 다른 물성이 하나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1 예루살렘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 기둥을 형상화했다.
2 프랑스 건축사로 활동하며 그로노블 국립 건축대학교 디자인과 교수로 도시 계획 연구를 맡고 있는 건축가 신형철. 6년 전 생명의 빛 예배당 설계를 맡아 지난 6월에 완공, 돔 형태의 구조 설계로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3 건물 지붕은 유리와 폴리카보 네이트를 1.5m 간격을 두고 층을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하늘을 향해 뻗은 홍송 기둥이 인상적이다.
공간에 새긴 ‘말씀’
종교개혁자 칼뱅Calvin은 개신교적 공간은 ‘원형’이라 정의했다. 앞서 말한 평등의 의미다. 신형철 교수는 설교 강단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둥근 예배당 의자를 원형으로 배치한 뒤 중앙에 십자가를 세웠다. 의자는 바닥층보다 낮게 층층이 배열했고, 가장 아래에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 아래에는 물을 채워 넣었는데 이는 세례 행위를 상징한다. 또한 천장의 커다란 돔 안에 구성한 열두 개의 작은 돔은 예수의 열두 제자를 의미한다. 예배당 한쪽에 커다란 손바닥이 찍힌 나무 기둥은 예루살렘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둥을 형상화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유일한 기둥으로 야긴은 하느님이 세운다는 뜻,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돔 구조에 나무 덕분인지 무엇보다 소리의 울림이 정말 깨끗해요. 목사님이 마이크 없이 설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일방적 설교가 아닌 아무 곳에서 둘러앉아 말씀을 나누는 것이 예배당 디자인의 궁극적 의도입니다.”
수많은 건축 중 거장이 지은 건축물이 가장 많은 영역은 바로 종교 건축이다. 생명의 빛 예배당을 통해 깊이 있는 철학과 창작 의지만이 새로운 감동을 부여할 수 있음을 증명한 건축가 신형철. 그는 교회에 오면 다시 열두 살 소년이 된다.
“종교 건축이야말로 풍부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와서 감동을 느끼는 롱샹 성당처럼 거짓이 없고 너그러워야 하죠. 권위 대신 자연의 엄중함, 감동과 이야기가 있는 종교 건축이 더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길 기대합니다.”
- 가평 생명의 빛 예배당 건축은 감동을 주는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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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서 있다. 죽으면 눕는다. 죽은 나무를 다시 세워 하늘과 땅 사이에 중간 지점을 만든 원구형 돔. 8백30그루의 홍송과 유리관에 스며든 빛이 어우러진 ‘생명의 빛 예배당’은 건축가의 진중한 철학과 창작 의지, 자연의 조우가 건축에 어떤 감동을 주는지 증명하는 결과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