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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예술 학교 트리니티 라반의 안소니 보운 총장 우뇌를 움직여야 인생이 달라져요
우리 몸은 몇 가지 능력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 답을 아는 이는 두 부류다. 조물주와 우뇌를 사용하는 인간. 대부분의 사람은 학교 교육을 받아 좌뇌를 주로 사용하지만, 예술 활동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우뇌를 발달시킨 사람은 자신이 모르던 삶을 개선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지난 5월, 영국의 창의력 교육에 관해 한국 학계와 의견을 나누려 방한한 안소니 보운 총장. 한양대학교 발레홀에서 만난 그는 우리 모두의 삶에서 창의력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수년 전부터 영국 정부와 학계는 의기투합해 범국가적 미래 교육 목표로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 즉 창의력 교육을 강조해왔다. 언뜻 생각하면 경제 대국의 여유만만한 취향처럼 들리지만, 영국 최고의 명문 예술학교 트리니티 라반 컨서 버토아 오브 뮤직 앤 댄스Trinity Laban Conservatoire of Music and Dance를 이끄는 안소니 보운Anthony Bowne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이 창의력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창의력이 예술가뿐 아니라 각 사람의 인생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예술학교, 좌우로 나란히 놓이다
“창의력이란 사람이 현재 직면한 환경에서 새롭고 적절한 삶의 해답과 즐거움을 찾는 능력입니다. 예술 분야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지요. 전통적으로 영국 학교도 학생에게 지식을 전하는 교육을 주로 해왔습니다. 좌뇌를 발달시키는 교육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그 지식을 적용하는 사이 세상이 또 변합니다. 그래서 이 숨가쁜 세상을 더 이상 좌뇌로만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세상에 잘 살려면 우뇌도 움직여야 하지요. 그 우뇌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창의력 교육의 목표입니다.”

영국 정부와 학계가 주목하는 우뇌의 주요 활약 분야는 리더십, 창의력, 공감 능력, 패턴 인식 능력 등이다. 이런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회사에서 바라는 업무 그 이상을 해내는 경우가 많고, 사회에서도 기대한 활동 그 이상을 수행하니 어느 분야에서나 호감을 산다. 좌뇌와 우뇌가 균형을 이루어야 세상살이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창의력 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한 영국 정부는 국민에게 한층 체계적인 창의력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05년에 런던 시내에 분산되어 있던 음악학교와 공연예술학교를 합병해 트리니티 라반이라는 명문학교를 탄생시켰다. 이 학교가 자리한 위치 또한 창의적이다.

지구의 경도를 결정하는 기준점인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사이에 두고 영국 전통 건축 양식의 음악학교와 현대미가 물씬 풍기는 건축물인 무용학교가 마치 좌뇌와 우뇌처럼 나란히 자리했다. 이 전통 건물은 런던의 명소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Christopher Wren이 지었고 현대 건물은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으로 잘 알려진 스위스의 헤어초크&드 뫼롱 팀이 디자인했다. 재학생의 30%를 차지하는 외국인 학생을 포함해 1 천 명의 예술 영재가 이 두 건물에서 일반 예술 대학의 세 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으며 전문 예술 교육을 받고 있다.

좌뇌와 우뇌가 균형을 이룬 인생 “어릴 때부터 창의력 교육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요? 정부와 함께 진행한 여러 연구 결과, 창의력이 높은 사람은 나중에 변호사나 회계사가 되어도 그 분야의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늘 남과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니까요.” 트리니티 라반은 1천 명의 풀타임 학생에게뿐 아니라 3세부터 93세까지의 시민에게도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첫째, 어린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예술적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고, 둘째 목표는 창의적 활동으로 뇌를 발달시켜 영국 시민이 각자의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즐겁게 살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작년 한 해에만 1만 6천여 명이 수강할 만큼 요즘 영국 사람들은 자신의 우뇌를 발달시켜 인생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관심이 높다.

좌뇌와 우뇌를 고루 개발해 새로운 행복을 찾은 대표적 사람이 바로 안소니 보운 총장. 경제학을 전공하고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에서 금융 분석 전문가로 일하던 20대 시절, 무용 공연을 본 그는 몸짓과 음악만으로 관객의 감정을 회오리치게 만드는 그 놀라운 소통 방식에 푹 빠졌다. 그래서 20대의 열정으로 경제 전문가의 길을 뒤로하고 트리니티 라반에 진학했다. 지금껏 좌뇌에 주눅 들어 있던 그의 우뇌가 마음껏 활개를 펼칠 세상으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20대는 프로 무용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그러나 이미 꿈틀대기 시작한 그의 우뇌는 무대 조명 전문가라는 생각지 못한 해답을 그에게 제시했다. 직면한 환경에서 새롭고 적절한 삶의 해답과 즐거움을 찾는 능력, 즉 창의력이 그의 인생을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지난 방한 때 짧은 인터뷰로 <행복>을 만난 그는 이번 지식 강연에서 한국의 대중을 직접 만나 영국의 창의력 교육 사례와 그 중요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들려줄 예정이다. 
“조명은 흐르는 빛 자체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환경을 만들어내지요. 영화감독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면을 만들어내듯 조명술로 무대에서 30~40m 떨어진 곳에 앉은 관객의 시선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조명과 공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런던 대학교의 유명 건축학교로 다시 진학했다. 그곳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트리니티 라반에서 조명술을 강의했다. 더불어 트리니티 라반의 이름 높은 무용단에서 일도 맡았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그 무용단과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선보이러 오기도 했다(당시 공 연에는 현대적 남성 발레로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백조의 호수>의 유명 안무가 매슈 본도 무용수로 참가했다). 이후 그는 홍콩의 공연예술학교에서 무대 조명과 건축을 가르쳤으며, 상하이와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의 건축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즈음 트리니티 라반은 헤어 초크&드 뫼롱 팀과 함께 새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예술, 건축, 경제 분야를 통찰하는 전문가로 그를 지목했다.

창의력은 행복을 위한 인생 기술 “비즈니스, 건축, 예술 분야를 두루 경험한 제게 헤어 초크&드 뫼롱 같은 세계적 건축가와 함께한 프로젝트는 그간 모든 분야에서 익힌 제 스킬을 재조합하는 계기였죠.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트리니티 라반의 새 건물은 영국 최고의 건축상인 스털링Stirling 상까지 수상했지요.” 이후 트리니티 라반의 총장에 오른 그는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바로 예술 영재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기로 한 것.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예술학교 졸업생이 정규직으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지만 트리니티 라반은 영국 정부가 전국 1백62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제치고 취업률 2위에 등극했으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통적 음악 교육은 예술가의 예술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교육은 자신의 예술 행위를 대중에게 어떻게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법을 학교에서 익혔기 때문에 세상의 무대에서도 성공하는 것이지요.” 또 트리니티 라반은 영국 정부와 공동으로 영국의 미래 세대를 위한 다채로운 창의력 및 예술 교육 연구를 수행하는데, 그 결과는 종종 예술 영재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 설계에 교훈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트리니티 라반이 영국 전역의 여덟 개 영재 센터에서 3백50여 명의 무용 분야 영재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자.

어떤 아이가 성공하는지를 오랜 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 역시 예술 분야에서 대성하려면 천부적 재능은 필수였다. 하지만 연구팀은 타고난 재능외에 두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을 더 갖춘 백조가 하늘을 더 잘 나는 성공 패턴을 확인했다. 가족이나 친지의 긍정적 지지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스스로 즐기면서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예술가가 성공하는 데는 재능, 지지, 즐기는 마음의 조화가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재능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이 중 하나가 빠지면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꾸려갈 저마다의 재능을 타고난다. 그러니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재능이 사장되지 않고 삶에서 열매 맺게 하는 것은 두 가지 변수가 좌우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스스로 즐기는 마음이 그것. 당신은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살고 있는가? 이 두 가지 변수를 조절하는 데는 역시 좌뇌보다 우뇌의 활약이 필요하다. 계산보다 감성, 지식보다 시도와 경험이 활약하는 인생이 한편의 고유한 드라마가 되니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접할 때 자연스럽게 개발되는 우리 내면의 능력인 창의력은 그 멋진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꼭 필요한 인생 기술이다. 이것이 안소니 보운 총장과 영국 정부가 창의력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는 속 깊은 이유다.


영국의 창의 교육이 궁금하세요?
주한 영국 문화원 지식 강연 시리즈 8
주한 영국 문화원은 개원 4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3년부터 영국의 명사를 한국으로 초대하는 ‘지식 강연 시리즈’를 선보여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가을, 그 여덟 번째 강연인 ‘크리에이티브 런던Creative London’을 주제로 한국 국민과 이야기를 나눌 명사는 바로 트리니티 라반 컨서버토아 오브 뮤직 앤 댄스의 안소니 보운 총장. 그는 이번 강연에서 런던이 세계 창조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되기까지 기울인 노력과 과정 그리고 영국의 창의 교육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일시 10월1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 8시
주제 크리에이티브 런던Creative London
강연자 안소니 보운 총장(트리니티 라반 컨서버토아 오브 뮤직 앤 댄스)
장소 광화문 올레스퀘어 드림홀
신청 온라인 예약(www.britishcouncil.kr)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박우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