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전지연은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SUNY 뉴 팔츠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흐름(Flowing)’이라는 주제의 얼개 연작을 선보이는 그는 서울과 뉴욕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독일 등에서 단체전에 참가했다.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에서 전지연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본향本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생부터 본디 마음을 쉬고 위로받고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 본능적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 찰나가 모인 긴 흐름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그것일 테다. 전지연 작가가 그의 평생 본향인 화가라는 꿈을 꾼 건 다섯 살 때였다. 그림에 열정이 있지만 아들이 환쟁이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가 아연실색하던 시대에 성장한 그의 외할아버지는 도쿄에서 법대를 다니고 서울에서 의대를 다닌 뒤 사업가로 일가를 이루고 만년에 손주를 본 후에야 드디어 평생 품고 있던 화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장아장 걸음을 걷기 시작한 전지연 작가와 그의 동생을 데리고 나루터로, 강가로 매일같이 스케치를 하러 다녔다. 덕분에 전지연 작가의 어린 시절은 할머니가 손수 싸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자연 속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그림 그리며 놀던 추억으로 채워졌다. 그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어린 손녀는 ‘그림을 그리며 살 테야’라는 생각 외에는 단 한 번도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간 예고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유학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 화가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미술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동양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 직후 떠난 미국 유학에서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지요. 동서양의 문화 차이부터 우뇌형인 제가 좌뇌형의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게 된 삶의 변화까지 갑자기 여러 변화를 한 번에 겪으며 새로운 경험과 인내를 하면서 제 자신이 굉장히 겸손해졌어요.”
특별한 계기로 기독교 신앙을 갖자 ‘겸손’이라는 단어가 화가의 마음으로 흘러들어왔고, 특히 아이를 낳고는 더없이 겸손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신이 사람을 주관하는 데에는 그가 무엇을 많이 가지고 적게 가졌는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절대적 존재가 자신을 공고히 안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니 구름 위를 나는 독수리가 비를 피하는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고,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주권 안에서 겸손하게 묻고 답하며 삶이 흐르도록 노를 저어야 한다는긍정의 마음이 넘쳐났다.
‘작품을 못 해도 상관없어. 나를 지켜주실 거야’ 라는 밝고 든든한 마음이 흘러들자 작품은 저절로 환한 색감으로 흘러 나왔다. 충만한 본향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의 인생처럼 개인전 후 한달여의 휴식 기간 외에는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열정이 이어져왔다. “제 작품에 등장하는 얼개(조형물)는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여러 가지 흐름의 파노라마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절대자, 자연, 이웃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가 이어지는데 이 모든 관계는 결국 화해와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이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각각의 얼개는 본향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얼개는 뾰족하고, 어떤 것은 둥글며, 화려한 조각도, 텅 빈 조각도 보인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만은 없으므로 작가의 삶이 감사하고 행복하게, 이따금은 우울하고 차분하게 흘러갈 때 그 흐름은 자연스레 화려한 얼개, 딱딱한 얼개, 비워진 얼개 등에 덧입혀 흘러간다. 그래서 그는 얼개의 연작에 ‘흐름(flowing)’이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얼개의 조각 중 화려한 부분도 있지만 비워진 부분도 많은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많이 나누어야 비로소 온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생의 끝에 이르는 본향에는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으므로 우리가 가진 것을 가까운 데부터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겠지요.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조각, 그 아름다운 면을 우리 인생의 관계 속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치유나 위로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는 추상 작품에 좋은 색, 묘한 색, 잊히지 않는 색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미국 유학 시절의 교수는 “당신의 색은 굉장히 밝은데 밝지 않고 굉장히 차분한데 또 밝다. 화려하지만 묵직하다. 당신은 색을 참 잘 쓰는 작가다”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익숙한 산이나 바다를 보면서 받는 객관적 위로를 모두에게 줄 수는 없겠지만, 제 작품 앞을 스쳐 지나다 ‘저런 색도 있구나’라고 기억한 어떤 사람이 어느 날 들녘에 나가 ‘저런 색을 어느 작가의 작품에서 보았지’라고 떠올리는 기억의 흐름을 가질 수 있기를, 그 정서의 연결 고리 안에서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추상 작품을 대할 때 관람객의 정서가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흘러가기를, 그 행복한 관계망 속에서 우리 모두의 인생이 저마다의 본향을 향해 아름답게 흘러가길 꿈꾸며 작가의 작품과 인생은 오늘도 멈춤 없이 즐겁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