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작품 ‘Bonbon 2014-새로운 시작’, mixed media, 150 x113cm, 2014
박현웅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금속조형 디자인학과와 동 대학원 공예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그간 예술의전당, 인사아트센터 등에서 3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와 아트페어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해마다 개인전에서 다음 해에 열 개인전의 주제에 대해 힌트를 주는데,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20일까지 인사동의 선화랑에서 연 개인전에는 ‘숨은그림찾기’라는 주제 아래 보호색을 입은 작은 오브제를 그림에 숨겨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딱딱한 어른도 말랑말랑한 아이도 대환영합니다.” 박현웅 작가의 그림이 걸린 전시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나팔수가 이렇게 환호하며 팡파르를 울리는 듯하다. 마치 한 시인이 그의 작품에 대해 “보는 그림인데 들리는 그림 같아 눈이 아닌 귀를 갖다 대보는 일도 박현웅 그림의 감상법 중 하나였으니…”라고 묘사한 구절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쿵작쿵작 멜로디는 들려오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악단은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 멋쩍은 마음에 허허 웃으며 두리번거린다. “아아, 나는 말끔한 면 분할과 엄격한 모노크롬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색색의 봉봉이가 순식간에 내 마음에 노래를 불어넣다니!” 어른의 감성은 따로 있다는 듯 콧대를 높이던 경직된 자아가 박현웅 작가의 상상력으로 대환영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감성이 딱딱한 사람도, 상상력이 말랑말랑한 사람도, 평소 모노크롬을 좋아하는 사람도, 유난히 파스텔컬러에 환호하는 사람도 자신의 경계와 한계를 풀어놓은 채 그의 작품 앞에선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고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지난 5월 선화랑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작품 속에 숨은그림찾기 요소까지 담았으니, 관객의 감성과 이성이 쿵작쿵작 저만의 상상력 퍼레이드를 벌일 수밖에. 핀란드산 자작나무를 손으로 직접 깎고 모양을 오려서 물감으로 색칠하니 애초에 작품의 시작은 딱딱하고 평평하고 일차원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평평한 2층 버스 위에 핑크색으로 칠한 코끼리를 올리면서 작품이 2차원으로 변화한다. 거기에 알프스 산맥을 더하고 기차를 쌓고 돛단배를 덧대면서 점점 3차원을 향하던 작품은 꽃이 피어나고 손 흔드는 곰돌이가 등장하고 색색의 봉봉이(박현웅 작가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그란 풍선을 이렇게 부른다)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4차원, 5차원을 넘어 아름다운 색채 세계로 들어간다.
‘fly fly’, mixed media, 57 x35cm, 2008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색감과 형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나무에 그린 그림을 덧붙이는 작업은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스페인, 스위스 등을 여행했을 때 마음에 남은 장면,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몰래 펼쳐본 상상을 그림 속에 담지요.” 스스로 즐거워야지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박현웅 작가는 가장즐거운 일로 여행을 꼽는다. 혼자서 하는 여행도 좋지만 깊이 사랑하고 몹시 편안한 사람, 바로 가족과 하는 여행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아름다운 스페인 남부를 혼자 여행했으나, 목가적 풍경과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장면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만 크게 남아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데리고 다시 그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아내 역시 그림을 그리는 작가고 딸도 감성이 풍부해 세 가족은 함께 여행하면서 그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공상하곤 한다. 장소마다 숨어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장면마다 그다음에 벌어질 사건을 추리해내는 식이다.
좋아하는 소품과 그릇도 쏙쏙 골라 여행 가방에 담아 오고 공상과 추리가 가미된 이야깃거리와 밝고 경쾌하고 신나는 컬러 배합의 영감까지 담아 오니 그에게 여행은 빚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인생의 기쁨이다. “조각이 많은 작품은 완성하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하고 한꺼번에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막히면 여행을 가고, 아이디어가 넘치면 기록을 하지요. 보통은 스케치를 하지만 짧은 글도 쓰고 있지요.” 몇 해 전부터 그는 그림과 함께 장편掌篇 소설을 쓰고 있다. 손바닥 장掌 자를 뜻하는, 손바닥 하나만큼 짧은 글이지만 스페인에서 만난 점 빼는 의사 이야기, 아내의 손이 요리를 배우러 가출한 이야기, 동물원의 유리 벽이 갑자기 깨지는 이야기 등 여행과 삶의 이면을 추리한 재미난 사건과 상황을 담았다. 그러니 글에선 그림이 나오고 그림에선 갖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그림이 직관적으로 풍성하고 관념적으로도 입체적인 이유 역시 이러한 상상력의 순환 작용 때문이다.
이렇듯 풍성한 작가의 통찰력에 대한 반사 작용으로 어른 관객의 딱딱한 마음에 저절로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스며든다. 여행의 추억, 배색의 감동, 상상의 호기심, 입체의 미감이 줄거리인 그의 그림은 아름답게 색칠해 쌓아 올린 어른을 위한 동화다. 겹겹이 삶의 재미와 동심을 일깨우는 어른을 위한 우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