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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 밀라노를 매료시키다
지난 4월 8일부터 13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관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 디자인을 전 세계인 앞에 내놓은 뜻깊은 자리가 펼쳐졌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는 밀라노에서 한국 공예의 역사를 새로 쓰는 자리였다.


올오리고니&슈타이너 스튜디오에서 전체 구성과 연출을 맡은 전시 현장.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아 밀라노에서 한국 전통 공예품을 선보인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전에 대한 현지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자동차와 휴대폰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 제품이 아니라 전통의 뿌리를 들고 나온 한국인의 위력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지요?” 개막 행사장에서 만난 손혜원(크로스 포인트 대표) 예술 감독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전시를 기획ㆍ연출한 이로 우리 전통 공예품의 가치를 전 세계인에게 알리는 자리이기에 이 전시가 더욱 의미 있다고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공예전이 열린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관은 밀라노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곳으로, 전세계 디자인 트렌드의 각축장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손꼽히는 전시장 아닌가.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 나전, 도자, 섬유, 한지 등 전통 공예 다섯 분야의 장인 21인의 작품 1백74점을 선보여, 말 그대로 한국 전통 공예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작년보다 규모가 두 배나 커진 널찍한 공간이건만 설치 작업처럼 전시한 작품에서 장인의 내공이 느껴져 기운마저 남달랐다. 입구에는 이봉주 장인의 작품으로 크기가 서로 다른 방짜 유기 좌종 18점을 배치해 관람객이 직접 채를 들고 종을 치며 소리를 내볼 수 있게 했고, 천장에는 김효중 침선장을 비롯한 한산모시 장인 아홉 명이 만든 한산모시 조각보 작품 1백여 점을 설치해 전시장에 청량감을 불어넣었다. 조각보를 마주한 세계적 평론가 질로 도르플레스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비대칭의 조형미가 돋보이는 조각보는 충격적이다. 이 전시는 이탈리아가 어떻게 과거를 분석해서 이 시대의 진정한 공예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며 옛 기법 그대로 오늘의 장인들이 진화시킨 진짜 명작이라고 격찬했다.

이강효 작가의 분청사기와 황삼용 작가의 나전 조약돌 오브제 등 나전 칠기 작품 앞에서도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고, 중요무형문화재 박명배 장인(소목)과 한경화 장인(한지 배첩)이 만든 ‘삼층지장三層紙欌‘과 이기조 작가의 백자는 소박하면서 고졸한 멋으로 전시장에 기품을 더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디자인 평론가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한국 전통 공예품은 가장 현대적이면서 세련된 수공예품으로, 밀라노를 2년째 매료시키고 있다”라고 호평했으며,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관장 안드레아 칸첼라토는 “전통을 토대로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해 인상적이다”며 혁신 그 자체라고 전시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이번 한국 공예전은 우리 전통 공예품이 케이 팝K-POP과 케이 드라마K-DRAMA 열풍을 이을 또 다른 한류임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변화에 순응하며 근본을 잃지 않는 우리 전통 공예품이야말로 법고창신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밀라노가 격찬한 한국 전통 공예품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전에서 밀라노를 매료시킨 금속, 나전, 도자, 섬유, 한지 등 전통 공예 다섯 분야의 장인과 대표 작품을 소개한다. 전통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 소재를 활용한 작품 일색으로 한국 공예의 절제미와 단순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방짜 유기 좌종, 이봉주
놋쇠, 방짜 기법, 지름 42cm×높이 28cm×위 지름 39cm
“묵직한 좌종에서 나오는 맑고 웅장한 소리가 바쁜 현대인에게 휴식의 시간과 위로를 전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18점의 방짜 유기 좌종은 중요무형문화재 이봉주 장인의 작품이다. 좌종이란 범종에 비해 크기가 작은 앉은뱅이 종으로, 승가에서 사용하는 악기의 일종이다. 타종 시 울려 나오는 웅장한 소리는 놋쇠를 여러 번 두드려야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소리뿐 아니라 조형미 또한 휼륭한 좌종은 주거 공간에 신비한 기운을 더하는 오브제로도 손색없다.


한산모시 조각보
김효중(침선장)ㆍ김기자ㆍ김정옥ㆍ 방승임ㆍ백송배ㆍ이순동ㆍ주경자ㆍ황길남ㆍ허미희

한산모시, 가로 120cm×세로 150cm
“예부터 ‘모시고 다루는 천’이라고 할 정도로 귀하게 다룬 모시의 자투리 조각을 일일이 손바느질로 이어 만들었지요.”


전시장 천장에서 바람결에 잔잔하게 일렁이며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한산모시 조각보는 김효중 침선장을 비롯한 9인의 한산모시 장인이 함께 만든 작품. 면의 대조를 위해 진한 베이지색의 생모시와 물에 한 번 담가서 색을 뺀 중간 베이지색의 생모시 그리고 표백한 흰색 모시를 이용했다. 게다가 굵은 모시부터 머리카락만큼 가는 세모시까지 다양한 굵기의 모시로 만들어 투명도의 차이를 강조했다. 크고 작은 조각보가 천장을 가득 메우며 드리워졌는데, 한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서영희 스타일리스트가 연출했다.

삼층지장, 박명배(소목)ㆍ한경화(한지 배첩+라이팅)
오동나무ㆍ참죽나무ㆍ문경한지, 가로 73cm×세로 47cm×높이 131cm
“장의 내부에 조명등을 설치해 가구와 한지, 빛의 상관관계를 현대의 삶에 들이고자 했습니다.”


나무에 종이를 바른 삼층지장. 기둥과 가로지른 쇠목을 제외하고 문판의 목재 테두리까지 전통 한지를 두 겹으로 발랐다. 여기에 사용한 문경한지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뽕나무의 일종인 닥나무 껍질을 재료로 전통 기법에 따라 제작해 색과 질감은 물론 통풍도 잘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삼층지장 안에 LED 조명등을 설치해 밝게 밝혔는데, 등불의 빛이 한지에 투과될 때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간접 조명 효과를 낸 것. 한지 장의 골격을 이루는 목공 작업은 중요무형문화재 박명배 장인이, 한지 배첩은 한경화 장인이 각각 맡았다.

나전문자도상자, 이성운
끊음 기법ㆍ줄음 기법ㆍ타발법,
가로 36.4cm×세로 25.9cm×높이 9.5cm
“회화의 느낌과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밑그림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림을 그리듯 옻칠 위에 바로 자개를 붙여나갔습니다.”


나전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높은 것을 반영하듯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전문자도상자는 끊음질과 줄음질을 모두 사용해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창의력과 솜씨가 돋보인다. 자개로 끊음질한 ‘월月, 야夜, 오우가五友歌’ 등을 한자로 힘차게 표현하고, 그 위에 줄음질한 ‘강남 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이라는 한글 유행가 가사를 겹쳐 표현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음을 담는 그릇, 김은혜
한지, 한지 꼬기 기법, 가로 21cm×세로 21cm×높이 7cm
“그릇을 만드는 내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담았습니다. 편안한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지요.”


종이 공예품은 손때가 묻으면 윤기가 나고, 모서리가 닳으면서 부드러워져 쓸수록 멋이 더해진다. ‘마음을 담는 그릇’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글을 쓰던 종이조차 아껴서 생활에 필요한 기물을 만들었듯 작가 자신의 마음을 더해만든 것이다. 먹글씨가 새겨진 전통 한지와 순지를 1.5cm 폭으로 잘라 씨줄과 날줄을 꼬고 엮었다.


시간을 통해 익어가는 놋, 이경동
놋쇠, 방짜 기법, 가로 50cm×세로 46cm,
가로 42cm×세로 38cm, 가로 34cm×세로 31cm, 가로 26cm×세로 23cm
“이번 전시의 주제인 ‘법고창신’의 의미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 유기 제작법으로 만든 것으로, 비대칭 모양으로 디자인해 현대적이지요”


이경동 작가의 방짜 유기는 현대적 미감이 돋보인다. 금속에 열을 가한 상태에서 두들겨 조직이 세밀한 공예품을 성형하는 단조 기법으로 만든 방짜 유기 접시로 현대인의 감각과 생활에 맞게 디자인한 것. 전통 유기 접시에는 없던 굽을 은銀땜하여 붙인 것도 새롭고, 놋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찬물에 담갔다 빼는 ‘담금질’ 과정에서 천일염 간수를 사용해 놋쇠의 성질이 한결 부드러운 것도 특징이다.

사각제기수반, 이기조
백자토, 판성형 기법,
가로 45cm×세로 45cm×높이 26cm
“간단하되 군더더기 없는 조선백자의 조형성과 기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구조적 형태의 오브제에 능한 작가의 작품답게 ‘ 사각제기수반’은 격조 높은 조선백자의 미감이 감각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조형미가 빼어난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판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잇고, 다른 판을 잘라서 다시 이어 마치 도자기 조각보 같다.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밀대를 이용해 점토를 납작하게 만들어, 두껍고 납작한 판으로 자르고 합쳐서 오브제를 창작하는 판성형 기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조선백자 제기 형태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현대에 맞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분청산수, 이강효
청자 태토ㆍ화장토, 가로 45cm×세로 45cm×높이 26cm
“분을 바를 때 자연의 느낌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고 싶다면 사물놀이처럼 역동적인 음악을 듣습니다. 내 안에 있는 에너지가 표출돼 작품으로 옮겨지지요.”


모양이 인상적인 옹기 항아리처럼 흙을 쌓아 올리는 기법으로 형태를 만들고, 어두운 색의 도자기 몸통에 여러 가지 백토를 화장하듯 분을 발라 만든 것. 하늘ㆍ산ㆍ물ㆍ바람 등을 표현한 것으로, 자연은 작가가 화두로 삼는 영원한 주제다.

동해, 정창호
끊음 기법, 지름 40cm×높이 19cm
“자개의 실낱같은 선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도록 애썼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건칠 과반果盤은 실낱처럼 가늘게 자른 자개를 끊어 붙인 것. 특히 자개를 심을 때 과반의 한가운데와 가장자리의 크기가 다른데도 자개를 중첩하지 않은 것이 돋보인다. 가장 동양적 세공 작품으로, 모던한 형태와 절제된 선이 특징.

지승매판ㆍ지승동구리, 강성희
매판_ 한지, 한지 꼬기 기법, 가로 60cm×세로 60cm×높이 17cm
동구리_ 한지, 한지 꼬기 기법, 가로 45cm×세로 45cm×높이 18cm
“지승 작업의 반은 한지 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가락이 재봉틀의 바늘이 되는 셈이지요.”


‘지승매판’과 ‘지승동구리’는 능란한 손재주의 소산이다. 종이를 가늘고 길게 잘라 하나하나 꼬아서 끈을 만들고, 이것을 둥글게 말아 올려가며 만들기 때문. 이른바 한지 꼬기로, 이 작품은 한지를 2cm 폭으로 잘라서 홑줄로 꼬아 모은 다음, 겹줄을 만들어 사용했다.

조약돌, 황삼용
FRP 수지ㆍ자개ㆍ옻칠, 끊음 기법, 가로 90cm×세로 50cm×높이 36cm
“커다란 조약돌 모양에 자개를 끊음질로 접목해 평범함 속에 무한한 우주의 에너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받은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나전 조약돌 오브제는 스툴로 활용해도 편안하고 멋스럽다. 플라스틱으로 형태를 만들고, 자개를 얇게 끊어 붙이며 모양을 표현하는 ‘끊음질’로 만든 작품으로, 오랜 시간 풍화되어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멩이를 연상시키며 오묘한 색감이 일품이다. 나전 끊음 기법의 달인임에도 그간 경제적 어려움으로 하청 작가로 일해온 작가는 “강원도 홍천강에서 주운 조약돌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찬사를 보내는 이가 많아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글 신민주 수석기자 | 사진 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02-398-7900)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