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아름답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절감한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인도양의 몰디브 해변인데, 산호초 사이로 아기 상어의 꼬리까지 다 보이는 투명하고 얕은 해저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혔다. 두 번째는 오로라가 휘감는 한겨울 노르웨이의 최북단 도시 트롬쇠에서였다. 종일 해가 뜨지 않아 광활한 수천 개의 별을 머리에 이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 그 생경한 풍광이란! 놀라운 아름다움에 휘감기니, 예기치 못한 질문이 나 자신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저 많은 별 중 내가 사는 이 별은 얼마나 클까?” “저기 어디에서 지구를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까?” “이 거대한 세상에서 나란 존재는 뭘까?” “저 거대한 우주는 누가 만들었을까?” 지식도 없고 답도 없이 이러한 질문들에 빠져 종일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렬한 여운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인문학자 도정일의 글은 아름답다
최근 화제인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를 읽었다. 그간 몰디브 해변처럼 예쁜 글은 간혹 보았지만, 트롬쇠의 하늘처럼 생경하고 광활한 글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제목 발상이 생경하고, 문장에 담긴 지식이 광활하며, 삶을 보는 시선이 몹시 입체적이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 예기치 못한 질문이 자신에게서 쏟아져 나온다. “나는 왜 지구에 왔을까?” “산치算痴는 꼭 박멸해야 할까?” “타이 사람의 오징어 셈법이 왜 감동적일까?” 지식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에 빠져 산문집을 들여다보자니 불편과 불만이 한 다스이던 마음에 모처럼 구멍이 생긴다. 생각의 구멍, 숨 쉴 구멍, 다른 세상으로 잠깐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이 얼마나 아름답고 세련된 글쓰기인가!
이 산문집을 낸 주인공은 영문학 교수이자 인문학자, 시민운동가, 우리 사회의 원로이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대학장인 도정일 교수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십수 년 전부터 시민 단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만들어 활동한 학자이던 그는 틈날 때마다 여러 매체에 독서 문화의 확산을 위해 글을 기고했는데, 수년간의 기고문을 모은 것이 이 산문집이다. 10여 년 전 어느날, 그의 글을 늘 살펴보던 방송사의 프로듀서가 연락을 해와 전 국민이 열광한 초유의 프로그램도 만들었으니, 바로 MBC 프로그램 <느낌표>의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였다. 도정일 교수가 방송에 출연해 좋은 책을 추천하면 전 국민이 그 책을 사서 보았고, 출판계의 수익금 중 일부를 기부받아 그를 비롯한 故 정기용 건축가 등 뜻있는 시민운동가와 건축가가 당시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전국 곳곳에 말 그대로 ‘기적의 도서관’을 무려 열한 곳이나 지었다.
도정일 교수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활동은 지금도 계속 돼 현재 서울 도봉구에 열두 번째 기적의 도서관을 짓고 있다. 또 칠순을 넘긴 대학자이자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원로인 그가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대학의 교양 교육이란 무엇일까?” 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전공이나 진출 분야를 넘어 전 생애에 걸쳐 한 인간의 삶과 활동의 바탕이 되는 특별한 능력을 길러주는 게 교양 수업이라는 생각에 교양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전면 쇄신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열었다 (2011년부터 경희대의 모든 신입생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강좌로 구성한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양 교육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간 체계가 없던 한국 대학의 교양 수업을 대폭 개편한 것이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습관이다
“우리 사회의 대학은 그간 교수도 학생도 이 바쁜 시대에 무슨 교양이냐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질문 훈련 대신 ‘정답 찾기 훈련’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각종 인문학 강좌에 돌아다닙니다. ‘법륜스님, 정답 주세요. 교수님, 강사님 정답 주세요’ 하는 바보짓을 하지요. 그건 인문학이 아닙니다. 답이 없는 질문과 만나고 그 질문과 대면하는 질문의 근육을 키우는 게 인문학이에요. 정답이 없으니까 누가 찾아야 합니까? 스스로 해야 합니다. 답을 수집하러 다니는 사람은 1백 년이 지나도 인문학의 인 자도 알 수 없어요. 질문의 능력을 쌓고 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찾는 열린 정신 근육을 만드는 게 인문학입니다.”
‘당신은 교양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당신은 질문하는 습관이 있는가?’와 같다. 여기에 독서의 중요성이, 그가 평생 실천해온 독서 운동의 중요성이 있다. “책을 읽으면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혹은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는 힌트를 책에서 발견하기도 하지요. 혹시 지금껏 3천 년 전의 서사시를 읽는 것이 우리가 그 시대로 여행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아닙니다. 3천 년 전 서사시를 읽으면서 우리 시대를 만나고 우리 시대의 인간을 만납니다. 어떤 때는 마치 처음 느끼는 것처럼 인간을 만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집니다. ‘아, 이게 인간이구나. 인간이 이렇구나’ 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독서의 기쁨, 발견의 기쁨이지요.”
1 도정일 문학선 1권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지난 20여 년간 신문, 잡지 등에 자유롭게 기고한 글의 일부를 모아 담았다.
2 도정일 문학선 2권인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는 작년 11월 ‘책읽는사회만들기’12주년 행사에 맞추어 낼 양으로 준비한 산문집이다.
3 국내 대학 최초로 교양 과목을 통합하는 혁신을 이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양 수업 교재. 통섭적 교양 교육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주제의 읽을거리를 담았다. 모든 신입생은 졸업까지 총 35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인문학에서 독서는 ‘내가 이 시대와 사람을 만나는 행위’를 뜻한다. 어느 시대의 책이든, 어떤 분야의 책을 읽든 그것은 결국 이 시대의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는 통로다. 최근 “이 대학에서 나는 정의의 꿈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하며 대학을 자퇴한 어느 대학생을 생각해보자. “이게 어찌 된 걸까? 그 학생이 말하는 정의란 뭐길래?”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정의’에 관한 책을 찾아본다. 자연스레 독서를 하게 된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질문이 없는 삶은 공허한 삶, 무엇보다 잔인한 삶입니다. 자기를, 주변을, 사회를, 공동체를 망치죠. 나는 지구에 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늘 해야 해요.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내가 하는 모든 사회 활동에 대한 질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도정일 씨는 왜 후마니타스 대학에 있는가, 김민정 씨는 왜 <행복이가득한집>의 문화교양팀에 있는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왜곡된 기사를 쓰려고 기자가 되었나? 사람을 구하지 않기 위해 해경이 되었나? 거짓말하고 나라를 망치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도 안 하니 남에게 잔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궁극적 질문을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하면서 살게 하는 게 인문학이지요.”
인문학은 관계의 건축술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이 ‘의미’에 대한 질문을 평소에 하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비로소 그 질문과 맞닥뜨렸을 때 겪을 부작용이 새삼 걱정되었다. 도정일 교수는 특히 성취 끝에 도달하는 허무를 가장 조심하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어느 순간 여전히 허무한 생각이 들면 어떨까요? 돈벌이를 경멸하거나 벌이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가 자살하는 건 자신의 돈에서 의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흔히 시장적 가치, 즉 잘 살려는 게 개인이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착각하잖아요. 아닙니다. 비시장적 가치가 진짜 동력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떤 것인가?’ 같은 가치의 문제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적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동안 개인과 사회가 튼튼해지고 경제 발전이 일어나고 성숙해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비시장적 가치와 반시장적 가치를 헛갈리지 말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중요한 것은 비시장적 가치다.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고 돈이 안 벌리는 가치, 그래서 쓰잘머리없다고 느끼는 것, 그런데 그게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허사인 그것, 바로 그게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의 목록’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건 좋은 현상이에요.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그러던데 인문학을 하니 창의성에 도움이 되더라’ ‘어느 기업이 돈 버는 데 도움이 되었다더라’ 하는 얄팍한 실용적 타산 끝에 인문학을 접하려는 게 문제죠. 인문학적 질문을 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하다 보니 내 정신도 건강해지고 잃어버린 내 마음을 찾기도 하고 개인과 사회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돈도 벌리는 것이지요.” 비시장적 가치는 의미와 가치에 이어 목적에 관한 질문도 유발한다. 이것이 인문학의 3대 관심사다. 그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 지상에 온 것은 아닌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한 세월 이 지상을 걷기 위해 온 것은 아닌가?” 흥미롭게도 이 질문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 하는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저처럼 여든 살쯤 살아보면 3백 명하고 SNS 친구를 맺는 것보다 ‘정말 좋은 친구’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평생을 같이 건너갈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자신들도 모르게 가치의 동맹이 맺어졌을 때 그런 친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치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끔 산치가 되기도 한다. 도정일 교수는 그의 산문집 1권 15쪽의 ‘타이 사람들의 오징어 셈법-산치 예찬’에서 음정을 잘 못 잡는 사람이 음치라면 계산을 잘 못하는 사람을 산치라고 표현했다. 가치나 관계를 실리 계산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산치이기를 선택한다. 그는 이런 사람을 ‘지상의 산법을 버리기로 작정한 퍽 ‘철학적 산치’라고 했다. “산치가 이처럼 희귀종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 목표가 ‘산치 박멸’이기 때문이다…. 산치 부족의 적극적 박멸 작전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문학에서조차 산치들을 만나기 어렵다. … 이런 바보들의 이야기로 한때 풍요로웠던 것이 문학의 세계다. 그 바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입에 사탕 세 개가 있다. 두 개를 더 넣으면 몇 개지?’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한입 가득요’라고 대답하는 어린 소녀가 아직 세상에 남아 있을까?”
교양의 최종 목표, 환대하는 인간 되기
산치 박멸이라니,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이토록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 사회에 정감이 사라진 데도 이 산치 박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 시간이 몇 초 더 지체되니 다른 사람이 안전하게 들어올 만큼 회전문에서 걸음을 늦출 필요가 없고, 내 에너지가 더 소모될 테니까 백화점에서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지 않는다. 내 차의 속도가 줄어드니 건널목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클랙슨을 울리는 게 편하다. 혹시 당신도 그러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교양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교양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환대할 줄 아는 인간의 양성’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꽂이를 배우고 잡학다식해지는 게 교양일까요? 아닙니다. 교양 있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은 열린 정신을 만들어 타인을 이해하고 환대하는 인간이 되도록 만듭니다. 인간에게 환대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양 수업의 최종 목표지요.”
환대는 사람만 잘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필요한 삶의 태도를 뜻한다. 자연의 꽃 한 송이, 바람 소리, 날아가는 새의 울음소리 등 모든 것이 가슴을 드나들고 열린 정신으로 대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비로소 그 사회에서 환대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정일 교수는 이 환대의 능력 중 최고 경지는 바로 ‘타인을 나의 식탁으로 초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왜 나사렛 예수를 존경합니까? 그가 평생 만들려고 한 게 환대의 식탁입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나 천한 직종의 사람과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용서가 안 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는 식탁에 어부를, 창녀를, 세리를 초대해 같이 식사를 했으니 온통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겠죠. 국경, 인종, 직업, 귀천으로 사람을 향해 칸막이를 칠 것이 아니라 환대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환대의 관계, 환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결국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줄 겁니다.”사실 우리 자신도 이미 매일 환대하지 못하는 사회로부터 시련을 겪고 있다. 지하철역 계단에서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고, 밤이 되어도 퇴근하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배가뒤집히는 사고 앞에서도 사람을 먼저 구하려는 ‘정의’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것’이 바로 환대라지만, 이 따뜻한 말 한마디, 배려, 무엇보다 정의의 실천은 우리 사회에서는 갈수록 요원한 난제로 남았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철저한 산치 박멸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 이르러 더 비관적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를 위한 여름 독서
“독서를 하다가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는 있지만, 강좌를 들었으니 독서를 안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대중 강연의 맹점은 사람이 듣기 좋은 이야기, 덜 아픈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죠. 그런데정작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하는 질문과 대면할 수 있도록 정신 근육이 자라야 하는데, 대중 강연으로는 하기 어려워요. 이런 비관적 질문을 만나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나를 불편하게, 우리 아이를 불편하게 해서 우리를 강하게 키워주는 책도 읽어야 합니다.”도정일 교수는 독서를 위해 어떤 모델이나 포맷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번 여름방학에 자녀에게 진짜 교양 수업을 시키고 싶은 부모가 할 일은 아주 명료하다. 부모들이여 당신부터 읽어라! “자녀와 함께 읽을 책을 당신 손으로 찾아내 여름 독서 목록에 넣으세요. 물론 추천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부모가 먼저 읽어보고 내 아이에게 읽힐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부모 자신이 독서 능력과 판단 능력이 없는데 자녀를 독서가로 키우려는 욕심은 언감생심. 그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니 올 여름방학을 자녀와 독서하며 보내고 싶다면 당신 자신이 먼저 독서꾼이 되어야 한다.
“여름 별 아래서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 여행 중에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한 대목이 유년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경험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단, 독서에 어떤 비결이 있을까 하고 좇아다니는 대신, 먼저 책을 읽고 그다음 아이와 같이 읽되 다 읽은 후 시험 치듯 감상에 대한 질문을 하지 마세요. 이 책의 주제가 무어냐 묻지 말라는 뜻입니다. 독서 소감 같은 건 안 써도 됩니다. 대신 어떤 대목을 같이 이야기해보세요. ‘그 아이는 왜 그랬을까?’라고 질문해보세요. 아이에게 재미나게 묻고 같이 답하며 이야기를 풀고 의견을 나누면 그 안에 책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게 독서입니다.”
또 타인을 위한 봉사 활동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는 요즘처럼 긍정심리학을 이야기하기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깨달은 지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도와줄 때 자신의 존재 상승과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자아가 솟구쳐 오르고 자존감의 너비가 커지는 것이지요. 슬픔은 사람을 위축시키지만 기쁨은 사람을 넓게 만듭니다. 아울러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는 순간이고, 이것은 곧 환대의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본성으로 지닌 질투나 사악성을 견제하는 것이 바로 환대이지요.” 그렇다면 인문학과 행복은 어떤 관계일까. 어떤 연관성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인문학에 열광하는가. 오히려 행복 강박증을 경계한다는 도정일 교수가 인문학의 거장다운 낮은 목소리로 이에 대한 지혜를 이야기한다. 내가, 우리 가족이 새겨들어야 할 인생의 지혜다.
“인문학이 곧바로 행복 학문은 아닐 겁니다. 나는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이 인문학의 3대 관심사라고 주장해왔어요.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하나라도 빠지면 삶이 공허해지고 공허한 삶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추구할 만한 가치를 추구할 때에만, 혹은 내 삶이 어떤 가치와 연결되 어 있다고 여길 때에만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려 드는 것은 헛수고일 수 있다. 가치를 추구하라. 그러면 행복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좀 고쳐서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목적인 행복한 삶보다는 좋은 삶을 사는 거다.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일부러 행복 타령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