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기담> (2008), <시차의 눈을 달랜다>(2009)에 이어 5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오래 기다렸다.
시는 속도를 낼 수 없다. 사람마다 몸의 리듬이 다르듯 시가 다가오는 순간은 다르다. 시를 연재할 수 있는가? 한 번도 시를 그렇게 다룬 적이 없다. <기담>은 몸이 이끄는 대로 쓴 것이고, <시차의 눈을 달랜다>는 여행 직후 한 달 만에 완성했다. 그렇게 시가 다가온 것이다.
‘괴물 같은 시인’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란 찬사와 함께 난해하고 어렵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하지만 네 번째 시집 <고래와 수증기>는 간결하고 대중적 느낌이다.
“시가 어렵다, 난해하다, 시가 멀어진다” 하는 소리에 질식할 것 같더라. 시는 지혜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시인이 겪은 어떤 진실의 색깔 같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5년간 머금고 깎아내는 작업을 했고 형식적으로는 간결해졌지만 비평적 측면도 강하다.
‘시인의 피’라는 제목의 시가 반복해 등장한다. 굉장히 종교적 울림처럼 다가오는데, 시작詩作의 고뇌에 관한 것인가?
시인이라면 어떤 피를 지니고 있을까, 골몰했다. 시인은 참 많은데, 멋진 시인은 드물다. 나부터가 그렇다. 시의 완성도를 떠나 시적인 삶을 추구하는 시인이 얼마나 될까? 시인을 향한 대중의 고착화된 시선도 문제지만, 패러다임에 갇혀 시를 잘못대하는 시인도 있다. 시에 온전하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시인을 보지 못했다. 시를 쓰는 순간만 시인이어야 한다. 그들을 비판하고 싶다기보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거다. 미래에 사람들은 과연 나를 어떤 시인으로 기억할까, 종종 생각한다. “아이들이 손등에 데려와 놀다가 놓아준 마른 개미의 숨소리 그건 저녁의 다른 이름/ 새들이 공책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건 내 살을 가진 어느 이슬들의 이름/ 양말을 두 손에 끼고 잠들면 더 이상 방문으로 찾아오지 않는 울음 그건 내가 만든 고아의 이름/ 이를 갈며 자다가 깨어나 보니 혀에 하얀 새 떼가 돋아 나는 일처럼/ 이 날숨으론 말(語)에게 돌아갈 수 없다/ 그건 지난밤 숨소리 속으로 마른 새 떼가 지나가는 일”_ ‘詩作:干涉’ 전문
우리가 일상에서 시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면서도 어렵다고 느낀다.
왜 시가 대중에게서 멀어졌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완성도 높은 시를 교감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했고, 그 시초가 10년간 해온 낭독 모임 ‘펭귄라임클럽’이다. 참여자는 사람들 앞에서 시를 소리 내서 읽는다. 이렇게 소리 내어 시를 읽으면 라임rhyme(압운)이 들리고 작가의 호흡이 보인다. 노래 부를 때 숨이 들어가듯이 글 안에 호흡이 숨어 있다. 단순히 시를 읽을 때는 의미를 보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주술을 걸어 작가의 호흡을 빼낸다. 그렇게 하면 시의 질감과 느낌을 놀랄 만큼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것이 내가 하는 시 운동이다.
태어날 아이와 아내에게 보내는 글을 모은 시문집 <자고 있어 곁이니까>(2013)를 읽고 무척 놀랐다.
다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내가 알던 김경주 시인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건 하나의 제스처다. 머뭇거리는 것에 대한 반성적 태도이며 행동과는 다르다. 후후. 시라는 것은 상징적 언어가 아닌가. 시를 쓰는 순간과 바깥에서의 자아는 다르다. 나는 본래 웃음이 없는 대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한 ‘간절기間節期’에서도 썼듯이,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다. (“허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푸딩을 떠먹는/ 우리의 입술을 그려본다 예의도 없이.” _ ‘간절기’ 중에서) 문학을 질병처럼 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항상 설렘을 좇는다고 했는데, 요즘엔 어떤 작업에 설레는가? 8년간 퇴고한 작품인 2인극 <블랙박스>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기관사 출신의 선원과 학회 출장으로 일주일의 대부분을 비행기 타는 학자가 불안에 대해 싸우는 부조리극으로, 6월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직관과 언어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른바 ‘기내극’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시비를 걸고 싶었다. 또 올해는 계획된 국외 활동이 많다. 이미 미국의 대표 문학지 <보스턴 리뷰Boston Reivew>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다.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알고 있다. 미국 12개주를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 계획이며, 5월에는 일본에서 희곡집이 나온다. <밀어>는 파리8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내 언어가 외국 사람들과 만났을 때 어떤 화학 반응을 일으킬지 설렌다.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 김경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그의 시 51편을 담았다. 조재룡 평론가의 해설을 빌리자면, 이번 작품은 초기 시에 비해 형식적으로 간결해졌지만 일상의 말을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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