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꼬이&stay에서 이른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정지원 셰프.
“우리 집은 친구들이 언제든 밥 먹으러 놀러 오는 곳이면 좋겠소.” 터울이 큰 형들 사이에서 자라 또래와 벗하며 사는 살가운 가정 문화를 만드는 게 소원이던 아버지는 신혼 초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덕분에 정지원 셰프는 어릴 때부터 손님을 맞는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했고 좋아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밥을 지어 대접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가정의 문화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선 도자기를 전공하고 대기업에선 해외 광고를 담당했지만, 외국에 출장 갈 때마다 본 멋진 케이터링 문화에 더욱 마음이 갔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요리를 배우다가 홈 베이킹, 일본 가정 요리, 테이블 스타일링 등을 섭렵해 케이터링과 쿠킹 클래스 등을 제공하는 브랜드 ‘오위소’를 만들었다. 오위소는 날로 번창했지만 마흔이 넘어서는 좀 더 편안한 공간에서 술 한잔 곁들여 밥 먹고 싶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남몰래 준비한 곳이 ‘이꼬이’로, 서울 이촌시장 골목에서 동네 주민은 물론 뭇 손님에게 술과 요리와 유쾌한 웃음을 주는 곳으로 이름난 심야 식당이다.
“이촌동 이꼬이가 유명해지니, 이번에는 내 프라이빗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몇 년 전부터 심야 식당 영업을 끝낸 토요일 아침(일본 만화 <심야식당>처럼 단골손님들의 요청으로 이촌동 이꼬이는 특별히 매달 셋째 주 금요일은 새벽 4시까지 요리를 낸다)이면 무조건 일어나 제주도로 날아왔어요. 참 많이도 걸어 다녔지요.” 많은 사람을 위한 케이터링에서 동네 이웃의 요릿집으로, 다시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프라이빗 공간으로 그의 초대가 소박해질수록 지역의 선택은 원대해졌다. 아버지의 고향인 하동도 후보에 올랐지만, 지인을 따라 7년간 자주 드나든 제주도가 더 끌렸다. 차를 타고 20여 분만 나가면 산에도 이르고 바다에도 닿는 자연환경이 그가 오랜 기간 지낸 미국 샌디에이고 느낌과 비슷해 더 마음에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부쩍관심을 가지는 지인들을 보며 2013년 여름 전에 꿈을 실행하지 않으면 ‘그곳에 내 것은 없겠구나’ 하고 직감한 현실적이고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그리하여 2013년 6월 1일 뚝딱 등기 이전을 해 생애 처음으로 집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제주시 일도일동의 ‘이꼬이&stay’이다.
“제주도에서 집을 살 경우 대부분 숲이나 바다 쪽으로 가지만 저는 시장과 상가가 모인 이곳 구제주의 오래된 도심이 좋아요. 해안 도로의 집은 여름이 지나면 폐허처럼 변하고, 숲 속 집은 저녁에 사람들과 술 한잔만 마셔도 대리 기사를 불러 어두운 숲길을 차를 타고 가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곳은 아침에 생선 경매 시 장에 걸어가고, 요리하다 재료가 떨어지면 오일장에도 걸어가고, 탑동 바다에도 걸어갈 수 있으며 서울에 갑자기 일이 생기면 공항에도 몇 분 안에 도착하니 무엇보다 오가기 편리한 게 가장 큰 장점이죠.”
2층은 방마다 더블베드가 있어 10인 가족이 머물 수 있다.
2층의 전경, 화이트 컬러의 벽돌과 높은 층고가 특징이다. 3층은 기본 인테리어는 같지만 방 배치와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4층에 위치한 정지원 셰프의 집. 거실과 주방은 원목 파티션으로 구분했다. 공간의 구조를 이용해 가구를 배치하니 거실이 작은 서재와 너른 리빙룸으로 분리되는 효과를 보았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 낡았으나 사통팔달해 입지는 참 좋은 곳에 위치한 그의 집은 서울에서 급파된 후배가 멋스럽게 단장해주었다.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라고 초대하는 건물답게 1층은 아침 식사 시간과 저녁 시간에만 문을 여는 키친, 2층은 패밀리 공간, 3층은 프렌드 공간, 4층은 정지원 셰프의 홈, 지하는 쿠킹 클래스나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꾸몄다. 늦은 저녁 슬리퍼를 신고 혼자 편히 놀러 왔다가 둘러앉은 다른 손님과 이야기 나누며 절로 우정이 쌓이는 심야 식당처럼 3층은 여럿이 함께 와도 잠은 각자 침실에서 편히 자고 이야기는 모여서 실컷 나눌 수 있도록 다섯 개의 개별 침실을 배치해 싱글베드를 놓았다. 각 층에 두 개씩 있는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 사용해야 하지만, 또 다른 방 하나는 아예 히노키 탕으로 꾸며 혼자 또는 여럿이 향기로운 히노키 탕에서 뜨끈한 목욕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했다.
가족을 위한 2층은 더블베드 다섯 개를 커다란 방 세 개에 배치해 10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다. 친구 가족이나 부모님 모시고 제주 여행을 온 가족이 한 층을 다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정지원 셰프의 프라이빗 건물인 만큼 지금은 제주에 오는 그의 지인이나 지인의 추천을 받은 사람의 예약만 받고 있지만, 3층의 프렌드 공간은 제주로 혼자 온 여성 여행자의 예약 문의도 가능하다. 2층의 가족 공간도 경우에 따라서는 각 방의 개별 예약도 받으니 이메일로 예약 가능 여부를 물으면 된다.
“아침 식사는 1층의 키친에서 드립니다. 그날 장을 본 재료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일본식 가정 요리로 미리 요청을 하면 토스트나 그릴드 치즈 같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드립니다. 얼마 전에 저와 후배 셰프 둘이서 간단한 그릴드 치즈를 만들어 먹었는데, SNS에서 그 사진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하러 제주로 날아오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침과 저녁에만 문을 여는 1층의 이꼬이는 이꼬이&stay에 머무는 손님과 지역 주민, 여행자 누구나 들러 아침 식사와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리하고 햇살 좋은 낮의 브레이크 타임에는 신나는 오일장에 장보러 가고 서귀포 해안을 달려 소문난 피자를 먹으러 가는 일상은 제주 이꼬이가 정지원 셰프에게 주는 선물이다. 원하는 사람은 오고 혹여 불편하게 느끼면 안 와도 좋은 이촌동의 심야 식당처럼 제주시 일도일동의 이 집에서는 주인도 손님도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다. 돌담으로, 청보리 숲으로, 모래사장으로 자유롭게 일렁이는 제주의 바람처럼, 맑은 사케 한잔 곁들인 우동 샐러드처럼 제주 이꼬이&stay의 초대 는 자유롭다. 싱싱하고 즐겁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후배가 간결하게 단장해준 공간에 꼭 필요한 가구만 놓아 개방감을 유지한 거실.
3층에 있는 히노키 욕실.
20년 된 건물의 외관은 기존 벽돌을 최대한 재사용하는 방법으로 보수했다.
정지원 셰프에게 묻다 _제주에서 건물을 개조하려면?
그 동네의 영업 허가 조건을 살펴라
서울에서도 음식점의 영업 신고를 해보았지만 제주의 절차는 훨씬 더 복잡하고 준비할 서류가 많아 놀랐다. 여러 가지 사항을 확인해보지 않고 영업 신고를 하러 왔다가 위생과에서 싸우는 사람을 많이 보았으니 각종 사항을 잘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안 도로 몇 미터 이내에서는 제조업을 할 수 없고, 음식점을 하려면 간판필증, 가스필증 등 서울에서 필요 없던 서류도 사전 확인을 거쳐 준비해야 한다.
제주에는 같은 상호가 하나도 없다
제주에서는 동일한 상호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상호를 정하기 전에 위생과에 미리 문의해 확인해야 하고, 간판업자를 불러 간판필증을 받은 후에 영업 신고가 가능하다.
건물의 설비는 제주 사람에게
여러 가지 문화 차이를 이유로 많은 건축주가 서울 사람을 불러 건물의 인테리어 시공 작업을 하기도 하고 제주 사람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향후 AS를 고려하면 수도나 전기 등 설비 시설은 제주 업체에 의뢰하는 것이 좋다. 서울 팀에 맡긴 경우 다시 고치려 할 때 제주 업체 에는 부품이 없어 다시 서울 팀을 불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제주의 늦은 밤에 맛보는 일본 가정 요리
이꼬이&stay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지하 스튜디오 공간.
신선한 제주 흑돼지를 굽고 조려 달큰한 맛을 낸 삼겹살찜.
이촌동 이꼬이의 인기 메뉴인 우동샐러드. 제주의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로 요리한다.
이촌동 이꼬이의 사진과 여러 작품 사진으로 단장한 이꼬이&stay의 키친 내부.
아침 7시 반에 문을 열어 오전 10시에 닫는 이꼬이&stay의 오전 식당은 일본 가정집의 온 듯 한 아침식사를 맛볼 수 있는 곳. 기본적으로 밥과 국, 생강을 올린 생선구이와 각종 채소를 곁들인 찬으로 구성한 아침 식사를 스테이 손님에게는 무료로, 외부 손님에게는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한다. 전 세계 가정 요리에 능한 셰프가 상주하는 만큼 스테이 손님이 미리 요청하면 빵과 구운 치즈 등 색다른 메뉴로 아침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저녁 6시에 다시 문을 열어 11시까지 운영하는 늦은 식당에서는 초저녁의 한갓진 식사도, 사케나 맥주를 곁들인 느지막한 반주도 자유롭게 주문할 수 있다. 제주시 서문시장에서 매일 아침 골라 오는 흑돼지를 오래도록 조려 맛이 달짝지근하고 식감이 부드러운 삼겹살찜, 제주 생물 고등어의 살을 발라 약한 불에서 정성스럽게 볶아 뜨끈한 밥에 올려주는 고등어 소보로 덮밥, 천혜향의 달콤 새콤한 향기가 천연 소스가 되는 천혜향 샐러드까지. 제주의 자연 재료가 정지원 셰프의 창의력을 만나 정겨운 가정 요리로 탄생하면 손님은 그 앞에서 차가운 사케 한잔, 시원한 맥주 한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늘 찾아오는 단골손님과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 그리고 제주의 새로운 문화 변화를 주도하는 문화계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편안한 분위기도 이꼬이&stay의 매력이다. 가족 여행이나 모임, 피크닉 때 특별 요청하면 정지원 셰프의 스타일링 감각까지 느낄 수 있는 파티 음식이나 케이터링 서비스도 가능하다.
주소 제주시 중앙로 5길 18
문의 070-8239-9408 ikkoinsta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