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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에서 감상하는 역사의 명작 간송문화전 10선
박물관의 인공조명이 아닌, 간송이 손수 지은 소박한 미술관에서 햇살 아래 오묘한 청자를 감상할 때 느끼는 감격은 얼마나 벅찰까요? 그 감동의 섭리를 깨달은 어떤 이는 해마다 봄가을이면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마다하고 성북동 간송미술관 앞에 줄을 선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지난 1년 동안 <행복> 독자는 긴 줄을 서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그림 소담’이라는 인기 연재 칼럼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명작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소상히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올해 3월부터는 간송미술관의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성북동 언덕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던 진풍경이 지하철 타고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재현됩니다.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유선형 건축물 안에서 제아무리 현대 감각과 첨단이라 해도 도무지 따라 할 수 없는 옛 선인들의 경이로운 예藝와 술術의 진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테니, 그 대조와 조화의 공감각을 느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는 전시입니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을 통해 간송미술관 관계자들은 그간 작은 미술관에 들어오려고 줄 서던 관람객에게 미안해하던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겠지요. 또한 성북동까지 가기 어려워 인쇄물로만 우리나라의 귀한 문화재를 감상하던 <행복> 독자는 그 오묘한 선과 색감과 빛을 가족이나 친구와 더불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보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는 수고와 모험을 결심한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DDP에서 전시하느라 올봄 간송미술관의 특별 기획전은 한 걸음 쉬어 갑니다. 하지만 가을부터 다시 학술 연구에 초점을 맞춘 더욱 정제된 기획전을 계속해서 진행하니 성북동에도 DDP에도 긴 줄이 이어지겠지요. 누구나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해 입장할 수 있는 DDP의 <간송문화전>은 올해 ‘간송 전형필’과 ‘보화각’이라는 주제로 2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여기, DDP 전시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 10점을 <행복>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간송문화전 -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기간 1부 : 2014년 3월 21일~6월 15일 2부 : 2014년 7월 2일~9월 28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주제 1부 : 간송 전형필 2부 : 보화각
운영 시간 10:00~19:00 평일, 일요일, 공휴일 / 10:00~21:00 수요일, 금요일 /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일반 8천 원 , 학생 6천 원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靑磁母子猿形硯滴 12세기 중반, 높이 9.9cm, 국보 제270호

1937년에 간송이 일본 도쿄에 가서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사들인 고려청자 가운데 하나다.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품에 안았다. 어미 원숭이는 두 팔로 새끼를 받쳐 안고, 새끼는 왼손을 어미 가슴에 대고 오른손으로 어미 뺨을 쓰다듬는다. 어미 원숭이의 눈과 코, 새끼 원숭이의 눈을 철채로 마감해 사람 생김새와 비슷해졌다. 그래서 모자간의 정이 더욱 애틋하다. 원숭이 몸체는 단순하게 추상화했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사실감 있게 묘사했다. 어미 배꼽이 이 청자의 화룡점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미 원숭이의 머리 위에는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 원숭이의 머리에는 물을 따르는 구멍이 뚫려 있다. 고려 도공들의 정교한 상형 기술뿐 아니라 비색 청자의 고운 빛깔을 담고 있는 이 작고 귀여운 청자는 고려 귀족 문화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13세기, 높이 41.7cm, 국보 제68호

1935년 간송은 일본인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 당시 기와집 20채 가격에 해당하는 2만 원을 주고 이 매병을 구입했다.

둥근 입, 짧고 좁은 목, 벌어진 어깨에서 굽까지 유려한 곡선을 지닌 고려 매병 가운데서도 제일 화려하고 풍만한 작품이다. 짙은 회청색 유약을 씌웠으며 전체에 빙렬이 남아 있다. 흑백상감으로 이중 원을 두르고 원 안에는 하늘로 날아가는 학을, 원 밖에는 땅으로 내려오는 학을 넣었다. 학 모습은 크기와 형태가 거의 비슷하고 여백에는 버섯 모양 구름을 채웠다. 주둥이 아래에는 연꽃을 백상감으로, 굽 위에는 이중 연판문대를 흑백상감으로 둘렀다. 고려청자에서 운학문은 상감청자 초기부터 등장했다. 처음에는 넓은 여백에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한 두세 마리 학과 버섯 모양 구름을 시문하다가 13세기 이후에는 점차 학과 구름의 크기가 줄어들고 대신 그 수가 증가하면서 여백도 줄어든다. 흑백의 이중 원문 안에 학과 구름을 넣는 방식은 주로 13~14세기에 나타나는데, 이 매병은 최고급 청자를 제작한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 지역 가마에서 13세기 중·후반경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18세기, 높이 42.3cm, 국보 제294호

1936년 간송이 일본 최대 골동상인 야마나카와 치열한 경합 끝에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사상 최고가인 1만 4천5백80원에 낙찰받았다.

조선 초기부터 중국의 화려한 청화백자나 알록달록한 오채 그릇이 유입되어 퍼졌지만 검소함을 중시한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은 약간의 장식이 들어간 소박한 느낌의 백자를 애호하는 성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문화 절정기인 영·정조 대에 와서 귀족들의 호사 취향에 힘입어 조선백자에도 절제된 화려함이 시도되었다. 이 백자는 그러한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한 수작이다. 목이 길고 몸체가 달항아리처럼 둥그런 유백색의 병으로 산화코발트, 산화철, 산화동을 안료로 사용해 청색, 갈색, 홍색으로 장식했다. 세 가지 안료는 모두 성질이 달라 온도와 가마 상황에 따라 발색이 차이 나서 제작하는 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복잡하고 고난도의 소성 과정 때문에 제대로 색이 나오는 것은 극히 드물다. 병의 몸통에 우측으로 올라간 국화와 좌측으로 뻗은 세 줄기 난초가 주 문양이다. 흙을 붙여 만든 국화꽃은 동화로, 국화 줄기와 잎은 철화로 칠했다. 청화로 칠한 난초는 색감이 상당히 선명하고, 동화로 채색한 벌은 허공에서 훨훨 날아다닌다. 공간을 나눈 선이나 종속 문양이 없고 목 위로 문양을 넣지 않아 군더더기가 일절 없다. 더군다나 다른 병과 달리 주둥이를 칼로 벤 듯 일자로 처리해 파격의 아름다움까지 갖추었다. 유백색 유약은 맑고 깨끗하니 수많은 조선백자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앉기에 충분하다.

압구정狎鷗亭 정선(鄭敾), 견본 채색, 20.0×31.0cm

겸재 정선이 60대 후반 한강의 명승을 사생해서 꾸민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안에 들어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산 310번지의 2백50년 전 모습으로, 언덕 위에 높이 자리한 것이 압구정 정자다. 잠실 쪽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본 시각이기 때문에 압구정동 일대와 강 건너 옥수동, 금호동 일대가 한눈에 잡혀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짙은 초록빛 산이 남산이다. 정상에 큰 소나무가 서 있는 것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저 큰 소나무는 그렇게 서 있었다. 남산을 뒤덮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강조하려고 남산 줄기만 짙은 녹색으로 덧칠했다 그 뒤 삼각산 연봉은 짙은 푸른색을 물에 희석해 흐릿하게 칠했다. 압구정동 뒤로 보이는 원산은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일 것이다. 압구정이 서 있는 높은 언덕 아래로 층층이 이어진 강변 구릉 위 기와집과 초가집에는 서울 대갓집들의 별서別墅가 상당수 섞여 있을 듯하다. 강바람에 송뢰가 일고 거목의 그림자가 마당을 이리저리 쓸어가는 강마을의 시원하고 해맑은 운치가 화면에 넘친다.




* 해당 기사는 당월 셋째주에 최종 업데이트 됩니다.

 이미지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글 탁현규(간송미술관 연구원, <간송문화전> 도록에서 발췌 및 정리) | 담당 김민정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