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인터뷰를 앞두고 사랑니를 뽑았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재미있는 우연이다. 후후. ‘사랑니’는 누구나 있지만 신체에 가장 필요 없는 부분 아닌가. ‘사랑니’가 주는 상징성을 주목했고, 로맨틱한 어감에 끌렸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줄기세포를 추출할 생각은 없지만, 뽑은 내 사랑니는 잘 챙겨 왔다.
근황은 어떤가? 소설 집필 이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세 번은 MBC 라디오 <k의 사생활="" 즐거운="">음악 작가로 방송국에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운영하는 카페 ‘생선캠프’에서 글 작업을 한다. 소설을 쓰는 동안 읽지 못한 책도 몰아서 읽고 있다.
여행 에세이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에 이어 3년 만에 장편소설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을 쓴 배경이 궁금하다. 마흔다섯 살 이전에 소설 한 편을 꼭 써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두 편의 여행 에세이를 쓰면서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됐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소설의 논리적 서사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홉 시간 이상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글 쓰는 자신을 보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단편이었으나, 장편소설이 되었고 3년이 걸렸다.
필자 소개에서 “나는 반드시 글을 써야 하는 쪽은 아니었다” 라고 썼다. 스스로 말했 듯이 ‘미래가 불확실’한 글을 쓰는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횡단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안해왔다. 그 이후 자연스레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작가’라 불리는데,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오로지 혼자 싸우고 극복해야 하는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머릿속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희열을 느낀다.
직접 책을 소개한다면?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늘었지만, 그걸 향유할 만큼 우리가 성숙한 존재인가, 하는 궁금증이 출발이었다. 의학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노화를 멈춘 한 노인이 죽음 직전에 사랑과 청춘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 건조하게 흘러간다. 언젠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것이 있는가? 여든아홉 살의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가 투영된 캐릭터다. 은퇴 후 칠순을 홀로 맞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남자의 고독을 느꼈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는 없고, 과거의 찬란한 시절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외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하는가, 그것이 화두다.
남자 주인공은 죽음 직전에 비로소 사랑을 발견한다. 당신이 정의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많은 이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노을이 지는 풍경은 아름다운 거야’ ‘쓰레기통은 더러운 거야’ 하고 아름다움을 정의하지만, 쓰레기통 안에 있는 꽃도 아름다울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단순히 같이 살고 싶고, 호감이 가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헌신과 책임, 배려의 복합적 결과물이 사랑이다. 노인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할머니와 어머니 외에는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내내 아팠다고 했다. 지금은 건강이 나아졌나?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소설의 우울한 정서에 몸 상태가 따라가더라. 감정을 누르다 보니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불안정했지만, 현재 치료를 받으며 많이 치유된 상태다.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으니….
정주하지 않는 삶이란 당신에게 숙명처럼 보인다. 스스로 외로운 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인터뷰 전에 항해사 자격증을 따려고 해양수산부에 전화를 걸었다. 배를 타고 항해하며 글을 쓰는 인생을 살고 싶은 꿈이 있다. 꿈을 꿀 수 있다면 청춘이 아닐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뒤틀린 사랑 이야기나 역사 소설에 관심이 많고, 단편집을 낼 계획이다. 여행 에세이를 써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 소설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서가에 두고 찾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오래 오래 친구처럼 남아 있는 그런 책.
장편소설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생선’이란 필명으로 잘 알려진 여행 작가 김동영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작사가와 드러머, 음악 작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지닌 그가 이리카페에서 1년 반 동안 거의 종일 글을 썼다. 소설에는 내면의 찬란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슬픈 고독이 강물에 뜬 풀잎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