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시집 이후 4년 만에 산문집 <각설하고,>를 펴냈다. 산문집을 낸 계기가 있는가? 한겨레신문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연재한 칼럼을 모았고, 새로운 산문을 추가했다. 사회성 짙은 글이라기보다는 ‘투덜대는’ 일상의 기록에 가깝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편집자이기도 해 평소 많은 문인의 글에 옷을 입히는 역할만 했다. 그러다 내 것을 들여다보니 다르더라. 원고를 태워버리고 싶다고 농담할 정도였으니… 후후. 출판사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다. 동시대에 사는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편집자로서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준비했다. 6월 출간 이후 현재까지 많이 회자 되고 있는데, 뿌듯할 것 같다. 황현산 선생은 젊은 시인을 정말 사랑했으며 시를 보는 눈이 남달랐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데 관심이 없었고 원고도 흩어져 있었다. 30년간 써온 칼럼을 압축 파일로 받아 한장씩 프린트해 읽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글이 아니었다. “눈물이 났다” “꽃이 졌다” 하는 문장에도 큰 울림이 있다.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었고, 독자에게 꼭 알리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뿌듯하고…. 지난 6월에 연 출간 기념회 때 해가 가기 전에 10쇄를 찍는 것이 소원이라고 농담했는데, 실제로 지난 12월 말에 10쇄를 찍었다.
직장 다니면서 시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일과 시작詩作의 균형은 어떻게 이루는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잡지사 기자로 일했고, 밤샘 마감하면서 감히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처럼 은밀한 곳을 찾아 시를 썼다. 유난 떤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몇 개월간 일을 쉰 적이 있는데 오히려 우울하더라. 사람을 만날때 더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일상과 닮아 있어 공감이 간다. 미용실에서 커트하는 사람이나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이길 바란다. 매일 원고를 썼기 때문에 ‘오늘 일’이다. 하루에 일어나는 일이 참 많지 않을까?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2부 ‘용건만 간단히’는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인데, 휴대폰으로 원고를 썼다. “얘들아, 밥 시켜. 원고 써야 해” 하면서 점심시간에 휴대폰 블랙베리로 원고를 써서 송고하곤 했다. 그렇게 1년간 연재를 했다. 종일 남의 원고를 봐야 하는 직업이라 시간을 내어 내 원고를 쓰기 어려웠다.
이제는 원고지에 시를 쓴다고 들었다. 반성을 많이 했다. 오래전에 김훈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버려진 꽃은 피었다, 버려진 꽃에 피었다” 이 두 문장의 조사 하나를 갖고 수십 일을 고민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가 많이 된다. 이성복 선생님 댁에서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초교 원고를 본 적이 있다. 하도 고쳐서 고친 부분이 두꺼워질 정도였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초심을 배웠다.
책 표지가 인상적인데, 어떻게 선정했는가? 폴란드 화가이자 영화감독인 빌헬름 사스날의 2001년 작 ‘ANKA’이다. 국내 에이전시가 없어 연락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영화감독으로 방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용 영화 평론가의 도움을 받아 폴란드 영화 배급사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겨우 얻었다. 작가는 무척 기뻐하며 흔쾌히 사용을 허락했다. 개인적으로 그림에서 문학 이야기가 파생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림 속 여인이 본인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네 살 된 조카가 있는데, 그림을 보고 ‘이모’라고 하더라. 신기하게도 많은 이가 나와 닮았다고 말한다. 쓸쓸하게 고개를 돌리는 여성의 뒷모습이 많이 슬퍼 보여서 좋았다. 이 여인을 사랑하는 작가가 저 순간을 용케도 잡아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의 산문도 마찬가지다. 밝고 명랑한 글이지만 슬픔의 정서가 깔려 있다. 글에서는 내면을 감출 수가 없다.
다음 시집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올 한 해 열심히 써서 내년 초에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두 번의 시집에서 상상 속의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이야기를 썼다면, 세 번째는 내가 보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미 제목도 <영신사 문 대리>로 정했다. 인쇄소에 갈 때마다 지게차를 운전하고 종이를 세고 색을 조절하는 직원의 치열한 노동 앞에서 늘 겸손해진다. 신사옥을 지었을 때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시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영신사 문 대리는 승진했지만, 난 여전히 그를 문 대리로 부른다. 후후.
산문집 <각설하고,> 김민정 시인의 첫 산문집. 여러 매체에 연재한 단문과 그의 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론, 사랑에 관한 글을 모았다. 유명 편집자이기도 한 그는 사물과 사람을 향한 다정함으로 부유하는 소재를 발굴해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사람을 향한 연민과 그리움의 정서가 깔려 있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 한겨례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