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인생 음악인 윤종신, 그것이 음악이다
살아보니 인생이란 어차피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 그렇다고 해서 안개 낀 황야도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저 드넓은 데 길이 없는 갈대밭 같다고. 그 거대한 갈대밭을 통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가 밟고 지나 길을 만들거나, 남이 지나간 길을 가거나. 마흔여섯, 음악인 윤종신은 자신이 가는 그곳이 길이 되고 궤도가 되도록 25년을 걸어왔다. 그 길이 그만의 태양계가 되었다.


“내가 가는 게 길이 되고 그 길로 잘 따라오는 친구들이 있어 좋았어요, 나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991년에 데뷔해 올해 음악 인생 25주년을 맞았어도 자신이 만든 길을 결산하거나 기록할 생각은 없다. 기록과 평가는 후세의 몫이고 이는 정치나 예술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계속 확인하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한가. 그저 자기 가슴에 물어보면 된다. 그 작은 태양계 속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윤종신의 공전: 25년간 회전한 음악
가수 윤종신은 대학생이던 1990년 015B의 1집 대표곡인 ‘텅 빈 거리에서’를 부르는 객원 가수로 데뷔했다. “야윈 두 손엔 동전 두 개뿐”이라는 수채화 같은 가사를 미성으로 노래했고, 015B의 객원 가수와 자신의 솔로 음반 활동을 병행하며 특유의 애잔한 목소리를 가진 발라드 가수로 20대를 보냈다. “난 지키고 있을게 촛불의 약속~”을 절규하며 ‘너의 결혼식’을 불러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고 느지막이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음악이라는 행성을 기지 삼아 여러 행성을 오가며 30대를 보냈다. 보컬리스트, 작곡가, 작사가, 라디오 DJ, 방송 MC, 시트콤, 드라마, 영화, 영화음악까지 그의 우주선이 비행하는 행성의 수는 갈수록 많아졌다.

그의 태양계는 계속 팽창했고 그만큼 우주인의 원성과 잡음도 늘어갔다. 간혹 음악 행성과 교신하는 데 혼선을 빚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종신 이전에는 평온한 가요계라는 행성을 떠나 광활한 우주로 가보려는 음악인이 드물었다. 지금에야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가수가 많지만 그 시절 그는 프런티어였고 모험과 실험과 실패를 통과의례처럼 겪었다. 30대, 음악 외의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을 더 갈구하는 순작용도 경험했다. “당시에는 저 사람 왜 저러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실패만큼 좋은 교과서는 없죠. 생활의 절반이 예능 활동이니 그 반작용으로 음악을 더 갈구했지요. 예전에 음악만 생각하며 살 때는 음악적 테크닉만 좋아질 뿐 음악으로 표현할 이야기가 없어서 오히려 슬럼프에 빠지곤 했는데 말이에요.”

남이야 뭐라든 음악 외의 삶도 열심히 살다 보니 무엇보다 음악으로 표현할 이야깃거리가 많아져 좋았다. ‘음악은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옳았다. 음악 외의 것에서 모티프를 받아야 음악이 깊어지고 길어지는, 일종의 ‘음악과 삶의 인력 작용’을 안 것이다. “요즘은 어떻게 해야 음악을 잘할 수 있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음악 외의 것을 많이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본 후 음악을 마지막 분출구로 쓰라고 말하죠. 음악은 이야기, 음악은 인생이니까요.”공전, 즉 윤종신이라는 천체天體가 음악 팬의 감성 둘레를 주기적으로 도는 순환이 지난 25년간 ‘삶의 이야기’라는 궤도를 따라 이루어졌다. 때론 가까워지기도 하고 때론 조금 멀어지기도 했지만 두 천체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건 ‘공감’이라는 단단한 궤도로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1 노준구 작품, 11월호. 2 유창창 작품, 6월호. 3 이고은 작품, 8월호. 4 안성진 @Agency TEO 사진 5 김희수 작품, 9월호. 6 윤미선 작품, 2월호.

<월간 윤종신>의 앨범 재킷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사진가 안성진의 스토리텔링이 느껴지는 사진으로 작업을 해왔다. 작년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작가의 도움을 받아 미술계와 협업을 시도했다. 이강훈 작가가 중ㆍ고등학교 때 윤종신의 노래에 심취한 작가 12명을 소개했다. 그들은 윤종신이라는 음악인을 모티프로 자유롭게 작업했고, 윤종신은 마치 월간지의 편집장이 하듯 그의 음악과 아트워크, 사진 등을 배열했다.


윤종신의 자전: <월간 윤종신>의 편집장
요즘 그는 방송 출연을 많이 줄였고 관심의 항로를 음악 행성 쪽으로 더 맞추었다. 그간 경험해보니 음악 외의 다른 활동과 작업을 즐겁게 해내도 ‘내 것’이 아니었으며, 감독이 원하는 것을 작곡하고 연기하고 실현하는 건 결국 ‘내 기능을 다른 이의 목적을 위해 쓰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자신의 창작물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바로 <월간 윤종신>. 그가 2010년부터 매월 월간지처럼 발간해온 싱글 앨범이다. “음악을 한 지 20년 차가 넘어가자 더 이상 이제껏 해온 방식의 음악 발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묘수가 없을 때는 부지런함이 최고예요. 하나의 역작을 낳기보다 꾸준히 오랫동안 노력하며 음악을 발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지요. 어느 정도로 부지런해야 할지, 어느 정도로 꾸준히 해야 할지 몰라 제 자신과 약속을 하려고 <월간 윤종신>을 기획했습니다. 한 달에 하나씩 싱글 앨범을 내도록 말이죠.”

이리하여 스스로 자전주기를 정한 그는 올해로 벌써 5년째 한 달에 한 번 월간 주기로 음악 팬의 감성을 따라 회전하고 있다. 처음 몇 년은 싱글 앨범 발매 경향에 맞추어 <월간 윤종신>을 음반 매장에 선보였다.그러다 보니 앨범 표지가 필요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진가 안성진과 함께 그의 포트레이트 사진 위주로 작업해 앨범 표지를 만들었다. 몇 년 전부터는 음원으로 곡을 내고 젊은 화가들이 윤종신을 모티프로 작업한 작품을 표지로 사용했다. 또 아이튠즈 애플리케이션으로 <월간 윤종신>이라는 디지털 매거진도 제공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 이전의 가요계는 가수가 2~3년에 한 번씩 열 곡 정도 추려서 앨범을 내고 5~6개월 활동한 후 다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 궤도를 대폭 수정하니, 부지런하다는 부러움과 관심이 쏟아졌다. 3년을 지나 4년째로 접어드니 지켜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정기적으로 음원을 구독하는 사람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시도를 한 싱글 앨범이 축적되어 보물 같은 아카이브를 갖춘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부지런한 것보다 습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들게 느끼는데도 열심히 하는 게 부지런이고, 매일 당연히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하는 게 습관이죠. 제 습관과 패턴에 대해 말해주는 건 타인이지, 제 스스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내야 할 만큼 의도적으로 작업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매달 즐거워요. 마감에 쫓기기도 하고 돌아서면 다음 편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여하튼 지금은 즐거워요. 아마 앞으로 5년간은 <월간 윤종신>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듯해요.” 자전, 즉 천체가 스스로 고정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도록 하려면 초간소화ㆍ초경량화한 작업 환경이 필수다. 작사, 작곡, 편곡을 거쳐 최종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가장 빠른 시간으로 구조화했다. 그가 생각하고 곡이 나오고 편곡자와 상의하고 엔지니어의 손과 연주자의 연주를 거치는 시간은 매달 일주일 안팎이다. 곡의 주제 또한 예전에 앨범 낼 때처럼 무겁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에 의미를 둔다. 예전에는 넋 놓고 있을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한 시간 정도만 짬이 나도 <월간 윤종신>을 생각하고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평창동의 카페 로브에서 <월간 윤종신>의 표지 작가들의 개인전을 연이어 연다. 전시를 보고 작품을 사고 어깨너머로 미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남의 식견 없이도 스스로 그림과 사진을 대하는 취향이 생겼고, 그가 구입한 작품들이 작업실 한편을 채우게 되었다.


윤종신의 인력引力: 이끌고 이끌리는 사람들
경량화한 작업 구조의 필수 요소인 편곡은 요즘 그가 운영하는 회사 미스틱89의 ‘포스티노’라는 프로듀서가 도와주고, 곡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음악인과 협업한다. 지난 1월 28일(올해부터 <월간 윤종신>은 매월 말에 발간한다) 선보인 <월간 윤종신>의 2014년 1월호 ‘The Detail’도 윤종신과 포스티노가 공동으로 작곡하고 윤종신이 작사한 감성적인 곡. 최근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 퓨어킴이 보컬을 맡고 개그맨 유세윤과 함께 UV 프로젝트로 활동했던 음악인 뮤지가 랩 피처링을 했다.

이들은 모두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89(프로듀서 윤종신이 주도해 만든 음악 콘텐츠 메이킹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업. 프리랜스 아나운서 박지윤, 가수 김연우, 김정환, 조정치, 김예림, 하림, 박지윤, 퓨어킴, 투개월, 뮤지, 프로듀서 포스티노 등이 소속해 있다)’의 소속 음악인으로, 일종의 음악 연구소이자 브랜드인 팀89 를 결성해 실험적 음악을 시도하면서 앞으로 미스틱89 가 발신하는 음악의 중추신경 역할을 할 계획이다.

“그 친구들의 작업에 내가 개입해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내 곡을 같이 작업하기도 합니다. 꼭 나 혼자 다 하는 것 만이 내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을 통해 터득했어요. ‘우리 작업’을 내세우는 것도 재미있어요. 나 혼자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니까 더욱 기대되고, 혹여 누군가 이런 협업을 불편해하면 그때는 편하게 혼자 작업하도록 해주면 되고요. 보통은 제가 주제를 내고 그것을 함께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월간 윤종신>이라는 독특한 궤도를 완성하기까지 그의 주변에는 마치 행성과 행성이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 작용처럼 지금의 팀89 같은 특별한 협업자들이 늘 함께해왔다.

인복이 많다는 평에 그는 레이더와 관찰력으로 응답했다. “나는 프로 야구 스카우터를 했다면 아주 잘했을 것 같아요. 유능한 인력을 초기에 발견하는 걸 잘하니까요.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 한마디 안 해보고도 교감 포인트가 있는 사람은 느낌으로 알 수 있거든요. 늘 만나는 사람을 또 만나도 눈에 띄는 사람이 생깁니다. 인복은 자기가 찾는 것이지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복이 아니라 능력이죠. 그 사람이 자기 앞에 나타나도 못 찾는 사람은 그 복을 누리지 못하니까요.”

그의 레이더는 본능적으로 그와 화학적 교감이 맞는 사람을 느끼고 일단 레이더에 포착된 사람은 놓치지 않는다. 이는 그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수없이 많은 사람과 부딪쳐보았기에, 또다시 부딪치는 것에 대한 겁이 사라져 저절로 생긴 능력이라고 한다. 몇 해 전 MBC TV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나는 작사와 작곡은 하지만 편곡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늘 음악 노예(편곡자)가 필요한 뮤지션이다”라며 우스갯말로 설명한 것처럼 그는 편곡자와 교감을 통해 음악을 완성한다. 만들어놓은 곡을 편곡해보라며 막무가내로 작업실에 밀어 넣은 뒤 문을 잠근 채 한참 동안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문이 잠긴 줄도 모르고 편곡에 열중해 그에게 ‘환생’이라는 앨범을 완성해주었다는 20년 전 가수 유희열과의 일화, 그리고 군대 후임이던 하림, 프로젝트 그룹인 신치림을 이룬 조정치, 2014년 <월간 윤종신>을 실험적 음악으로 이끌 팀89까지 화학적으로 잘 맞는 음악 동료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기꺼이 그의 음악적 노예(?)가 되고 있다.

“프로 야구로 치면 13승 무패보다 30전 16승 14패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승률을 관리하는 사람은 한심해요. 그런 사람은 긴 인생에서 적은 경험을 하고 떠날 테니까요. 곱게 살다가 관리 잘하고 가는 삶은 내 성격과 안 맞아요. 실패하면 그 맛이 쓰지만 소중한 경험이 남지요. 결국 내 곁에 누가 남는지 아는 겁니다.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 실패했을 때 못 견디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지금의 실패가 사람에 대한 관찰력을 키워줄 거예요.”

<월간 윤종신>은 매월 말 음원을 공개하고, 연말에 한데 모아 스페셜 앨범을 발매한다. 아이튠즈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사진, 아트워크, 협업 아티스트 등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디지털 매거진 <월간 윤종신>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듣고 싶은 사람만 들어라’는 취지로 이야기의 난장을 벌이는 ‘윤종신과 허지웅의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가 콘텐츠에 추가되었다.


윤종신의 태양계: 내가 구애하는 사람, 가족
프로듀서 윤종신은 미스틱89는 세상에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작년에는 김예림이, 최근에는 박지윤이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데 두 사람 모두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소속 가수 대부분이 싱어송라이터라서 스스로 음악 작업을 하고 뮤지, 신치림, 장재인, 투개월 등은 자기 스토리가 있어 그의 개입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김예림은 워낙 연습 벌레라서 음악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이처럼 그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들라면 결국엔 ‘매력’이다.

“저를 좋아해서 우리 회사에 오려는 친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내가 구애를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구애하도록 하는 매력이지요.” 개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력으로 그를 이끄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런 사람을 발견해 결혼해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프로듀싱 작업이 많은 요즘은 새벽까지 일하기 일쑤고, 누구도 하지 못한 작품을 완성해 대중과 교감해 ‘빵’ 터졌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걸 보니, 가족 앞에서는 여전히 ‘이기적 창작자’인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간혹 다투기도 하지만 요즘은 자신에게 포기에 가까운 배려를 해주며 아이 셋을 전쟁처럼 키우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음악인 윤종신은 본디 문화나 결혼에 대해서는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문화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가장 어이없어할 만큼 한계를 짓고 분류를 만들어 그 분류 안에 넣으려는 ‘정체성 확인’을 싫어했고, 결혼은 결혼식을 하는 것이고 이혼은 이혼식을 하는 것이지 그 전후로도 개인은 여전히 개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정확하게는 아이를 낳은 후에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결혼하고도 아이가 없는 사람은 여전히 개인일 뿐 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은 그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무한한 책임감을 갖게 돼요. 더 많은 시간을 내 가족과 함께 있고 싶고, 잘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고, 작업이 잘될 때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 대한 부담감이 늘 마음 한구석을 누르죠.

가족과 함께하는 삶, 이것에서만큼은 보수적 기준이 좋고 그게 삶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어요. 이런 점은 아이를 낳고 나서 저도 모르던 제 자신에 대한 발견이었죠.” 첫째 라익이를 위해서는 유치원에도 많이 갔는데, 둘째나 셋째는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결산도 하지 않고 먼 미래의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는 윤종신이 유일하게 꿈꾸는 먼 미래의 계획은 6~7년 후 자녀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막 떠나는 가족 여행’을 하는 것이다. 가족 모두의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굵직한 추억을 꼭 만들고 싶다.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윤종신에게서 타인은 오히려 명확한 태양계를 발견한다. 태양 둘레에서 여러 개의 행성이 태양의 인력에 따라 공전하고 자전하는 능동태의 세계. 가족이라는 불변의 태양을 돌며 <월간 윤종신>이 한 달을 주기로 자전해 빛을 내고, 작곡과 작사에 능한 음악가의 행성이 25년째 공전하며 명작과 교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스로는 습관이라 하지만 타인에겐 롤모델인 인생, 자전과 공전과 인력의 법칙이 이끄는 특별한 궤도의 인생. 그의 철학대로 음악은 이야기고 인생이다. 가는 곳이 길이 되는 각자의 인생, 그것이 우리의 음악이다.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안하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