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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티스트 김종구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으니 보기 좋더라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목각 인형이 몸을 일으키자 마술처럼 춤을 추고 노래하고 윙크를 한다. 그 뒤에는 인형에 연결한 수십 개의 줄을 열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한 남자가 있다. 국내 유일한 가족 극단 ‘보물’의 대표이자, 마리오네트를 위해 온 생을 쏟아부은 김종구 씨다.


그가 연출한 <제페토 할아버지의 꿈>의 마지막 장면에는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껴안으며 “오랜 나의 꿈이 이뤄졌네” 하고 노래한다. 김종구 씨는 그 노랫말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라고 고백했다. “꿈을 잃지 않고 산다면 꼭 이뤄진다는 것. 사람들에게 제가 그 본보기가 되면 좋겠어요.”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발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피노키오가 손을 높이 들어 인사를 건넨다. “와~ 마술 같아요!” “엄마, 진짜 움직여요!” 숨죽이며 무대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설명하느라 극장 안이 술렁인다. 신기한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어머, 눈썹이 막 올라가네.” 인형이 작은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탄성과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발레리나, 색소포니스트,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네발로 달려가는 강아지, 얼굴을 순식간에 바꾸는 변검술사 등 다양한 캐릭터 인형 뒤에는 무대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는 김종구 씨가 있다. 목각 인형 제작부터 연기와 무대 연출까지 도맡고 있는 그의 마리오네트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왔다”고 고백할정도로 척박한 길 위에서 그가 오랫동안 좇은 것은 ‘꿈’이었다.

“아, 바로 이거다!”
“유럽의 정통 인형극과는 섬세함에서 달랐지요. 머리와 손발 정도만 움직이는 것에서 진화해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인형이 해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1997년 일본의 이다 인형극제에서 마리오네트 공연을 본 이후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1994년에 창단한 인형극단 ‘보리떡과 물고기’를 맡고 있었고 한 가족의 가장이자 아빠였지만, 마리오 네트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망이 그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학으로 이끌었다. 당시 그의 나이가 마흔네 살이었다. 극단 ‘보물’을 함께 이끄는 아내 송옥연 씨는 남편의 결심을 지원한 것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인형 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인형 연기는 10년 이상의 단련이 필요한 일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남편의 작품을 향한 목마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옆에서 응원할 수 있었어요.” 며느리 이슬기 씨는 김종구 씨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의 아들 김해일 씨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김종구 씨의 뒤를 이어 완성도 있는 마리오네트 공연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마흔네 살에 떠난 러시아 유학
지독한 고독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러시아의 추위와 힐난한 투쟁을 하면서 얻고자 한 것은 오로지 ‘목각 인형’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찬물 샤워로 정신을 차리고 학교에 가면, 강의실 불이 켜지는 순간부터 꺼질 때까지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나무를 만지고 또 만졌다.

“행복했습니다. 사막 위의 여행자가 한 모금의 물을 마신 것처럼, 오랜 배움의 갈증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소통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제작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중년의 동양인을 불편해하던 선생님도 점차 마음을 열고 더 많은 가르침을 주었지요.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지만, 당신이 최고의 제자입니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내게 해준 이 말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생애 한 번도 조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그 부족함이 인형을 만드는 열정을 이기진 못했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쳤지만, 그럴수록 작업량은 늘었다. 고된 시간을 이겨낸 노고와 인형을 향한 깊은 애정이 축적되어 그가 현재 엄격하고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1 김종구 씨는 무대에 올리는 모든 인형을 직접 만든다.
2 <제페토 할아버지의 꿈>의 주인공 피노키오. 움직이는 눈망울부터 실룩거리는 엉덩이까지 정교하게 제작했다.
3 발레리나 미미. 실제 발레리나가 할 수 있는 모든 발레 동작이 가능하다.



‘보물’은 그의 가족으로 구성한 가족 극단. 아내 송옥연 씨와 며느리 이슬기 씨는 그와 함께 마리오네트 공연을 하고, 아들 김해일 씨는 조명과 무대를 담당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마리오네트
마리오네트는 목각 인형의 관절 마디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그 줄을 조종하며 움직이도록 연출한 인형극이다. 18~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정통극은 단순한 아동극이 아니었다.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도 하고, 정치를 풍자하는 역할도 했다. 특히 체코는 3백여 년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 독일어 사용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유일하게 인형극만은 체코어로 펼쳐졌다. 체코인에게 마리오네트는 삶 자체이자 동반자였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아동극에 머물러 있지만, 그의 인형극을 보니 가능성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의 인형극을 본 관람객이 본인의 자녀와, 가족과, 지인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일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10년 전에 <목각 인형 콘서트>를 대학로의 소극장 무대에 처음 올렸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반응에 무척 놀랐지요. 소극장 좌석이 매일 매진되면서 극장 네 곳을 돌아다니며 연장 공연을 했어요. 그때 마리오네트의 가능성을 확신했습니다. 완성도 있는 인형극은 관객이 반드시 알아줍니다.”
그는 공연 중간중간 마리오네트를 공부하면서 보낸 러시아 유학 생활과 목각 인형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동이 필요한지에 관해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그의 삶을 간접 경험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흥미가 아닌 감동으로 다가가는 것. 영혼을 모두 던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참된 노동을 배움으로써 아이들은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올해 59세가 된 김종구 씨는 앞으로 오지 마을같이 희망이 필요한 곳을 방문해 인형극의 즐거움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계획이다.

“인형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려요”
김종구 씨는 왼쪽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다. 조각칼로 인형을 제작하다가 손가락 일부가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반복된 상처가 만든 투박한 손은 산호처럼 거칠지만, 인형을 만들 때만큼은 섬세한 감각으로 칼을 다룬다. 흉터는 그가 걸어온 마리오네트 역사의 흔적이 며, 거룩한 기록이다. “목각 인형 하나를 완성하려면 최소 3개월이 걸립니다. 스케치하고 입체적으로 도면을 그린 다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점토로 모델을 만들지요. 나무는 성질이 질기고 튼튼한 은행나무가 좋아요. 거의 완성한 인형도 수정이 불가능할 때에는 다시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최근 카드 마술을 하는 인형을 만드는 중이다. 인형의 손 안쪽에 홈을 내어 카드를 숨길 수 있도록 해 무대 위에서 진짜 마술 연기를 펼치는 인형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모든 각도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목공예 장인도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단순히 나무를 잘 다루는 것과는 달라요.” 어쩌면 인형은 그의 영혼의 영원한 숙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주는 영양분으로 생명을 얻은 인형들은 그를 가장 그답게 만드는 존재임을 그의 인형극을 보면 안다. 한 인간의 깊이는 자잘한 삶의 동요가 가라앉아야 비로소 얼굴에 드러난다고 했다. 그의 얼굴은 해면의 찰랑거림이 가라앉아 해저의 말간 모래가 반짝거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한길을 가는 사람의 뒷모습에는 강철 같은 인내와 노동의 결실이 비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면의 소리를 따라 달려온 그의 척박한 여행길을 응원하고 싶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순수를 위하여.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서송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