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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보는 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박석재 박사 달이 좋은 동양인, 해가 좋은 서양인
동양과 서양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데 해와 달, 별을 보고 느끼고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왜 다를까. 한국의 우주 산업을 이끄는 천문연구원의 박석재 연구위원이 동양과 서양의 우주론을 저울의 두 추에 달아 흥미롭게 소개한다.



쟁반 같은 둥근 달이 뜬 밤, 동양인 철수 씨와 서양인 마이클 씨는 각각 어떤 행동을 할까? 먼저, 마이클 씨. 일찌감치 자려고 창을 커튼으로 가린다. 달은 라틴어로 luna. 정신병은 lunacy, 정신이 나간 상태는 moonstruck, 즉 달에게 얻어맞았다고 하니 서양에서는 이렇게 큰 달이 뜬 날은 외출을 삼가는 게 상책이다. 기분 탓인지 달 밝은 밤 돌아다니는 늑대 인간의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 마이클 씨는 등골이 서늘하다.

달의 운행에 따라 사는 동양인
“반면, 동양에서는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정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달맞이하러 들로 나서기도 합니다. 무던히도 달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특성입니다. 우리의 처녀 귀신이나 도깨비는 달빛이 없는 그믐 무렵에나 활동하지요.”
박석재 박사의 설명처럼 해는 선을, 달은 악을 상징하는 서양 문화와 달리 동양 문화에서 해와 달은 동등하다. 해와 달은 각각 양기와 음기를 가지는데, 예로부터 음과 양은 어느 것 하나 나쁜 게 없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상생하며 우주를 만들고 사람을 이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태곳적부터 하늘의 삼총사(해, 달, 별)를 보고 살아온 인류지만 서양의 우주론과 동양의 우주론은 다른 형태로 발전했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를 이루는 4대 원소 물, 불, 공기, 흙을 설명하며 고대 우주론을 이끌었다. 우리 학생들도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이 원리를 배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시인은 위대한 천문학자였어요. 동양의 우주론은 태호복희가 만든 음양 우주론입니다. 세상 만물은 음과 양 그리고 별, 특히 우리 눈으로 확인 가능한 행성인 목(나무), 화(불), 토(흙), 금(쇠), 수(물)의 오행으로 이루어집니다. 상호작용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이론과 달리 동양 천문학의 이 5원소는 서로 상생하고 하나를 건너뛰면 상극이 되기도 합니다. 서양의 우주론보다 훨씬 더 발전해 상호작용까지 설명하는 근사한 우주론이지요.”

이렇게 훌륭한 동양의 우주론이 있는데도 왜 우리는 학교 수업에서 서양의 우주론만 배울까? 이 간극은 근세에 서양에서 천체망원경이 개발되면서 생겼다. 동양인은 두 눈으로 못 보는 토성 밖 행성을 서양인이 먼저 볼 수 있었으니까. 박석재 박사는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블랙홀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문학은 관측 천문학과 이론 천문학으로 나눕니다. 관측 천문학은 천문대에서 우주를 관측하고, 이론 천문학은 그 관측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저는 이론 천문학자입니다. 50년간 우주를 연구했으니 ‘뭐 눈에 뭐만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 삶 속에 떠 있는 해, 달, 별의 영향력이 보였습니다. 화투장 8광에 그려진 보름달을 보며 행운을 떠올리고, 신문 만평의 새벽녘 초승달 그림에 피씩 웃는 식이지요. 초승달은 저녁에만 뜨니까요.”

한국인의 일상 속 천문 상식
천문 상식은 일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소대장이 보초에게 “오늘은 상현달이 떴군. 상 현달은 자정을 못 넘겨. 새벽에는 달빛이 없을 테니 새벽 경계를 더 강화 하도록!” 하고 말할 수 있다면 우주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고대 천문학은 세계 최고였을 것입니다. 전 세계 고인돌 중 3분의2가 우리나라에 있는데, 고인돌마다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랍죠.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 양식이니, 그때부터 돌에 별을 새길 만큼 하늘을 잘 안 것이지요.” 

허블의 팽창 우주 이론을 배우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 입각한 블랙홀 연구를 한 정통 과학자인 박석재 박사는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천문 지식을 발견할 때마다 놀라움을 느낀다. 서양의 우주 이론 못지않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 우리나라의 천문학. 구설수가 많은 <환단고기>를 읽다 오성취루의 기록을 발견했을 때도 호기심이 일었다. “무진 50년에 오성취루가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1993년 제 동료이던 故 라대일 박사와 박창범 박사가 논문으로 발표한 이 현상을 저는 문방구에서 파는 천문 소프트웨 어를 이용해 검증했지요.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의 5행성이 늘어서고 여기에 달까지 끼어든 우주 쇼가 기원전 1974년 7월 12일 저녁에 있었습니다. 무진 50년, 즉 1973년과 1년의 오차가 있지만, 4000년 전이니 1년 오차는 정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시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이 동지였는지 추분이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널리 우주를 이롭게 하자
과학적으로 볼 때 오성취루 같은 천문 현상을 임의의 날짜로 맞출 확률과 사람이 계산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는 <환단고기> 중 일부 내용은 사실이라고 믿는다. 반면, 훗날 첨삭된 가필의 흔적도 꽤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자국의 개국보다 앞서는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수년간 전국의 고서를 찾아 태워 우리나라 상고사 비교 연구의 맥을 철저히 끊어버린 사실이 더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동양의 음양오행과 24절기, 주역과 역술을 탄생시켜 결혼 날짜를 잡거나 이사 날짜를 잡는 데 지금도 도움을 주는 태호복희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밝히는 것이 상고사 연구의 키포인트겠죠. 태호복희는 중국에서 신격화되니, 그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난리가 날 겁니다. 중국에는 각지자체가 주장하는 태호복희 묘소가 네 군데인가 있어요. 하지만 태호복희의 출생지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밖에 없죠. 그곳은 과거 한민족이 살던 곳이니 태호복희는 배달국의 아들인 것이죠.”

그런데 한국에서 태어난 태호복희가 왜 중국의 추앙받는 황제가 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 그는 <개천기>라는 소설의 1편을 냈고 후편을 준비 중이다. 상상과 호기심이 줄거리가 되고 천문학 지식을 팩트로 제공하는 과학 소설이다. “개천절을 공휴일로 지키는 우리나라는 하늘 관찰을 즐기던 민족입니다. 우리만의 고유성과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세계화에도 동참할 수 있어요. 내 나라의 역사와 고유성을 자부하면 저절로 애국심이 생기지요. 이것이 제가 말하는 천손사상天孫思想, 즉 하늘에 길을 묻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천문연구원 대장을 6년간 한 박석재 박사는 종교, 이념, 빈부, 세대 차이로 사분화해 티격태격하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을 컴퓨터처럼 말끔히 포맷해버리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포맷한 우리나라에 새롭게 설치할 프로그램을 추천하라면 이 천손사상이 제격. 홍익사상을 품은 하늘의 자손이 지상으로 내려와 이웃을 극진히 돌보고 서로를 배려하며 사는 우주 속의 지구, 지구 속의 한국, 이 얼마나 근사한 우주관인가.


서양의 행성과 항성
하늘의 삼총사 해, 달, 별. 그중 별은 크게 행성과 항성으로 나눈다. 영어로 행성은 planet, 항성은 star인데 행성은 해를 공전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 태양계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등 여덟 개 행성이 있다. 행성은 항성과 달리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햇빛을 반사한다. 하지만 다른 별보다 지구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더 밝은 별처럼 보인다. 특히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밝게 보인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어두워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해는 가까운 행성일수록 더 강한 중력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해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더 빨리 해를 공전해 원심력을 증가시켜 해의 중력을 이겨낸다.

동양의 오행성
음양오행 원리는 한국 사람이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벗어날 수 없는 원리. 오행 원리는 그림처럼 수 → 목→화→토→금 의 순서로 순환한다. 나무 뿌리에 물이 있어야 자라고, 나무가 타야 불이 살며, 불에서 흙이 태어났다가, 흙 속에 쇠가 있으며, 쇠에서 물이 나오도록 상생한다.
글 김민정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