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별 보는 밤] 별 헤는 남자, 영화 평론가 정지욱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요
자정이 가까운 시간, 칠흑같이 어두운 운동장에 차량이 하나 둘 들어온다.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수신호로 자리를 안내하면 헤드라이트 불빛을 줄이며 신속하게 주차하는 사람들. 광해光害를 피해 어둠을 찾아온 이들은 유성우를 보기 위해 강화도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 모인 별 여행자들이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작은 불빛에 의지해 저마다 챙겨 온 망원경을 설치하는 약 스무 명의 사람 중에는 영화 평론가 정지욱 씨도 있다. “휙~ 하고 지나가요. 어! 하는 순간 사라지는데, 알면서도 어느 쪽으로 떨어졌어? 하고 별빛이 지나간 자리를 오래 응시했죠. 아, 아깝다! 짧게 탄식하며 허공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후후.” 그렇게 인터뷰 전날 새벽까지 유성우(흔히 우리가 별똥별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성’이고, 유성이 짧은 시간에 먼지 부스러기처럼 흐드러지며 떨어지는 현상이 ‘유성우’다)를 관찰하고 아침에야 집에 들어왔다는 정지욱 씨를 강북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그의 정릉 집에서 만났다.

보기만 해도 묵직한 무게가 전해지는 관측 장비와 천체 관련 서적이 빼곡한 그의 방은 별을 사색하는 곳이고, 옥상은 그의 개인 천문대(그의 고양이 ‘나나’의 이름을 따서 ‘나나 천문대’라고 이름 지었다)다. 천체 시계를 계산해 유성우가 떨어지는 달이나 구름 한 점 없이 말간 날에는 어김없이 망원경을 챙겨 같은 취미를 즐기는 별지기들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 사계절 내내 별을 만날 수 있지만, 요즘처럼 습도가 적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겨울은 별을 관찰하기 가장 알맞은 계절. 덩치가 큰 장비 탓에 차량 이동은 필수! 때론 마음에 맞는 이들과 합석을 하기도 하고, 캠핑 장비를 챙겨 철야 관측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별을 관측하는 일은 별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고독한 행위지만, 여럿이 함께 움직인다는 면에서 오히려 사회성이 강한 취미 활동이기도 하다.

새해에 처음 만난 유성우
“어제 새벽에 ‘사분의자리 유성우’가 떨어졌어요. 올해 첫 번째 유성우를 본 셈이니 의미 있는 시작이랄까요?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1월에 만날 수 있는 겨울 현상이에요. 페르세우스ㆍ사자자리ㆍ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대표적 유성우지요.” 정지욱 씨는 지난밤 카메라 조리개를 20초 열어 수십 번의 반복 촬영을 거쳐 ‘포착’한 사분의자리 유성우를 보여주며 말했다. 헤드라이트에 반사한 빗줄기처럼 작은 빗살무늬가 별빛 사이로 휙휙 지나가는 형상이다. 길이는 짧지만 자국은 선명하고 방향은 자유롭다. “유성은 수시로 떨어져요. 우주에 떠다니던 불순물이 지구 중력에 의해 대기권에 진입할 때 마찰로 타버리면서 나타나는 모습이거든요.”

초등학교 때 어린이회관에서 운영하는 ‘육영천문회’ 회원이던 그는 한국 우주소년단 선생님에게서 천문학의 기초를 배우며 별 탐험가가 되었다. “한 달에 두 번 별 수업을 듣고 철야 관측을 했어요. 친구들끼리 서로 망 원경을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였을 정도로 별을 좋아했지요. 별자리를 하나씩 찾으며 성도와 대조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요즘엔 자동 추적 장치가 있는 고토Goto 시스템을 탑재한 망원경이 나와 별을 관측하기 훨씬 수월해졌어요. 옛날처럼 성도를 보고 별을 찾아보는 재미는 사라졌지만,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별을 여럿이서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죠.”

별 보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행복
요즘 정지욱 씨처럼 천문학자가 아니지만 취미의 일환으로 별을 보러 밤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 천문대뿐 아니라 야산이나 학교 운동장 등에서 혼자, 또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별을 바라보거나 온라인 동호회를 통해 관측 모임을 하기도 한다. 정지욱 씨 또한 아마추어 천문 동호회 ‘별하늘지기’를 통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별을 관측한다. “10대부터 70대까지 동호인의 연령대가 다양해요. 어제 관측지인 강화도에는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시누이와 함께 온 여성도 있었지요. ‘할 수 있을까, 무섭진 않을까, 애 딸린 엄마가 해도 되는 취미일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별 보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행복해진다는 글로 후기를 전했습니다. 별 보기란 두려움을 이겨내는 행복이라는 말과 함께요.”

하지만 단순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별을 관측하는 일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더군다나 망원경 설치만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하니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비 앞에선 솟구치는 의욕도 사그라지기 마련. “개인적으로 휴대용 망원경을 선호합니다. 직수입 마트에 가면 30만 원대에 구할 수 있어요. 장비를 고민하기 전에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하세요. 공지에 나와 있는 관측지에 가면 베테랑들이 어떻게 별을 관측하는지 직접 볼 수 있죠. 별을 보고 싶다고 요청하면 누구라도 쉽게 망원경을 내주고 조언도 해줍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별을 향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돼요. 망원경은 그 이후에 준비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는 최소한 사계절의 별자리를 경험해야 별을 좇는 별지기가 된다고 말한다. 1년이라는 주기를 거치며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보면 어느새 별이 가슴에 안착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별이 그리워서 찾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 거리고 있어요. 그럴 땐 청소년 시기에 별을 보며 다짐한 꿈을 가슴에 품고 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답니다. 밤을 응시하고 멀리 바라보세요. 시간이 무의미하고 정신이 말개지면서 정화하는 기분이 들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별의 시간처럼긴 호흡으로 다가가면 그 움직임이 눈에 보입니다.” 몸의 리듬이 별에 맞춰진 그는 오늘도 모은 사람이 잠든 밤에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가 35년 전 처음 만난 별이 여전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별 관측할 때 이것만은 주의하자
1 자동차로 관측지를 방문할 때에는 하향등을 켜고 천천히 진입하며 먼저 와 있는 사람의 수신호를 따라 주차한다.
2 휴대용 랜턴은 빨간색 셀로판지를 붙여 사용하며, 관측 장비를 향해서 절대 비 추지 않는다.
3 어린아이와 함께 온 경우 관측지에서 뛰거나 큰 소리로 얘기하는 등 관측을 방해하지 않는다.
4 고가의 관측 장비가 많으므로 선행 관측자의 설명을 듣고 이에 따르며, 장비를 함부로 만지거나 다루지 않는다.
5 관측지에서 나온 쓰레기는 반드시 스스로 회수하고, 쓰레기를 발견하면 솔선수범해 줍는다.
6 관측지에는 야생 동물이 출몰하는 곳이 많다. 여럿이서 함께 움직이고 항상 주변을 주의하자.
7 레이저포인터는 가져가지 않으며 사용하지 않는다.

정지욱 씨가 추천하는 주요 별 관측 장소
정지욱 씨가 국내 아마추어 천체 관측자들에게 입소문 난 관측 장소를 공개했다.

광명 가학광산 서울에서 찾아가기 쉽지만 광해가 많아 사진 촬영에는 한계가 있다. 안시 관측, 즉 망원경만으로 관측하기 적당하다.
강화도 강서중학교 시야가 탁 트여 사진 촬영하기 수월하다. 여름엔 습도가 높은 편이어서 겨울 관측 장소로 추천한다.
양평 벗고개 정지욱 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남쪽 하늘을 관측할 때 찾는다. 겨울에는 스키장의 불빛이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 관측하는 것이 좋으며, 오르막이 있는 국도변 고개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용인 시립축구장 도시와 근접해 있지만 주변 소음이 적고 광해가 적은 장점이 있다. 그 외 안성맞춤 천체과학관 주차장, 보현산 천문대 주차장,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 양평 용문산 국제 천문대, 홍천 천문인 마을이 있다. 더불어 이른바 ‘별 고수’들이 찾는 별 관측 명당은 스스로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글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