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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영화와 문학 작품 속에서 찾은 군산
도시 자체가 근대 문화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역사 박물관인 군산은 창작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여러 편의 문학작품과 영화가 초고속 근대화의 길을 걸은 개항지 군산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영화 속에서, 책 속에서 만나는 군산의 서정과 서사.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1899년 개항한 군산은 호남, 충청의 쌀을 일본으로 강제 수출하는 창구였다. 군산만의 독특한 근대 문화가 생겨난 바탕이 바로 이것이다.


1 1998년 개봉, 2013년 재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의 무대 초원사진관.
2 군산은 손에서 소금꽃이 피도록 갯일 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땀이 서린 동네이기도 하다.
3 군산 내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터널인 해망굴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됐다.

해망동 부두에서 낮은 뱃고동 소리가 울먹이면 젓조기 비린내 물씬한 흥정꾼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잠겼다 떠오른다. 신창동 오래된 집 기왓장에 산벚나무 그늘이 드리우면 골목은 금세 초저녁처럼 눅진해진다. 포구가 영락없이 째보(언청이)를 닮았다는 째보선창의 구석구석으로 물비린내가 훅 몰려온다. 아, 이 모든 건 군산의 냄새. 찡하게 엉겨오는 군산의 바다 냄새다. 금강과 서해 바다가 만나 곡식이 많고 물길 또한 편해 살림살이가 넉넉하던 땅, 하지만 그 탓에 외세의 간섭에 고단하던 군산. 일제 강점기엔 일본인들이 호남 지역 쌀을 앗아가던 거점 항구였고, 일본인들이 자신들만의 살림집·창고·세관·은행· 상가·관공서·절·교회 등을 짓고 거들먹거리며 산 동네. 일본인들이 해방과 함께 비우고 떠난 ‘적산 가옥’이 원형 그대로 가장 많이 남아 있어 요즘 많은 사람은 군산으로의 ‘타임슬립Time Slip’에 열광 중이다. 우리를 1백년전 시간 속으로 훌쩍 데려가는 이 도시만의 매력 때문에 수많은 영화가 군산을 촬영지로 택했다. 영화 <타짜> <장군의 아들> <8월의 크리스마스> <가비>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모래시계> 등이 이 도시 속으로 그들만의 타임슬립을 거쳤다. 채만식의 <탁류>, 고은 시인의 <만인보> 등 예부터 많은 문학작품이 땅심 좋은 군산에서 그 자양분을 빨아들였다. 늘 문門과 같은 곳, 그 문으로 찡하게 바다 냄새 엉겨오는 곳, 군산으로의 여행을 지금 시작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초원사진관, 해망굴
왠지 시장기 같기도 하고 몸살 기운 같기도 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도시. 사랑과 유사 감정인 이 애매한 기운 때문일까? 군산 말고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상상하기 힘들다. 시한부 인생을 살며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음과 대면하게 된 정원(한석규 분), 생의 활기로 가득한 다림(심은하 분)의 짧은 사랑, 그 이야기를 이 도시의 도처에서 촬영했다. 나이 든 아버지에게 작은 사진관을 물려받은 정원의 일터이자, 찰나의 사랑이 스쳐가던 곳은 도시 한 귀퉁이 신창동의 초원사진관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정원의 회고하는 음성이 흐르던 학교 운동장은 군산서초등학교였다. 친구(이한위 분)와 거나하게 술을 마신 정원이 “철규야, 나 곧 죽는다”라고 고백하던 담벼락은 군산서 초등학교 주변 교회의 담벼락이었고, 다림이 칼국수집에서 쫓겨나 동료와 햄버거를 먹다 장 보고 돌아오는 정원을 만난 곳(가까워지는 정원을 보며 얼른 햄버거를 동료에게 넘기던 다림의 행동과 표정만으로도 설렘을 느낄 수 있던 그 장면)은 해망굴이었다. 정원이 툇마루에 앉아 발톱을 깎고 먼 풍경을 바라보던 집도, 빨간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길도 모두 군산의 도처였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초원사진관은 원래 차고였는데, 촬영 장소로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다니다 지친 제작진이 카페에서 쉬던 중 창밖으로 여름날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차고를 발견하고 택한 장소다. 한 달 동안 만나주지도 않는 차고 주인을 제작사의 수석 피디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 감동시키고, 원상 복원을 조건으로 개조를 승낙받았다. 촬영이 끝난 후 약속대로 철거했다가 이후 군산시에서 복원했다. 복원한 이곳은 영화 속 초원사진관처럼 그립고 그윽한 멋은 덜하지만 촬영 당시 쓰던 의자, 카메라, 진열대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정원의 마지막 대사처럼 당신과 나의 사랑도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아니, 우리 삶이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이란 언제나 ‘삶’쪽에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도 믿는다. 이율배반적으로 슬프지만 따뜻한 죽음과 닮아 있는 이 영화, 겨울의 절반은 햇살이 따뜻하고, 봄의 절반은 바람이 찬 군산과도 참 많이 닮았다.
초원사진관 군산시 구영2길 12-1 해망굴 군산시 중앙로 230


영화 <타짜> <장군의 아들> 등을 촬영한 히로쓰 가옥은 섬세하게 배치한 정원과 전형적 일본 건축 양식을 따른 가옥 구조 등이 특징이다.


히로쓰 가옥의 창문 장식.

영화 <타짜>와 히로쓰 가옥
평경장: 아수라 발발타! 아수라 발발타! 돈을 벌고 싶니? 부자가 되고 싶니?
고니: 예! 아쏴!
평경장: 그 학습 태도가 뭐이가? 이놈 오고부턴 내 정서적인 사상까지 없어지네.”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 분)가 평경장(백윤식분)에게 본격적으로 화투를 배우는 장면을 히로쓰 가옥에서 촬영했다. 꽃으로 하는 싸움 ‘화투’ 안에 인생이 있다고, 삼팔광땡처럼 ‘인생을 예술로 한번 살아보기 위해’ 화투판을 떠나지 못한다던 한 사내의 흑싸리 피 같은 인생이 시작되는 찰나다. 죽음을 각오하고 꽃싸움에 뛰어 드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품고 있는 바로 그 ‘욕망’ 때문이었다.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모든 게 부질 없는 꿈이었음을, 인생무상임을 깨닫는 이 영화처럼 히로쓰 가옥에 얽힌 이야기도 참으로 무상하다.

이 저택은 일제 강점기에 포목상과 농장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1925년에 지었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두 채를 올렸는데, 목재와 기와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다고 한다. 두 건물 사이의 정원에는 석등과 일본식 석탑, 내실로 들어가기 전 손을 씻는 수수발 등을 두었다. 히로쓰는 자녀들이 결혼 후 거주할 보금자리로 쓸 요량으로 집 안에 온돌방 여섯 개, 부엌, 식당, 화장실 두 개, 창고, 다다미방 세 개 등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공들여 지은 이 집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으로 믿은 히로쓰는 해방 후 빈손으로 강제 귀국당한다. 애면글면 욕망에 사로 잡혀 사는 삶도 결국 인생무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일본 무사들의 고급 주택 양식인 야시키(屋敷) 형식으로 지은 이 집은 그 특유의 이국미와 운치 덕분에 영화 <장군의 아들> <범죄와의 전쟁> 등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등록문화재 제183호.
히로쓰 가옥 군산시 구영1길 17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창문이 많고, 단청에 장식이 없는 등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을 따랐다.


해망동의 동국사 근처에서는 벽화마을도 만날 수 있다.


일본 에도 시대의 팔작지붕 홑처마 양식을 띠는 동국사 대웅전.

시인 고은의 <만인보>와 동국사
“누가 떠나는가/ 목쉰 뱃고동 소리로/ 나는 태어났다/ 누가 돌아오는가/ 한밤중/ 멍든 뱃고동 소리로/ 나는 자랐다/ 벌써 석 자 세 치였다// (중략) 누가 또 떠나는가/ 억울한 것/ 서러운 것/ 누가 또 돌아오는가/ 내 고향 군산은/ 백 년이나 울어준 항구였다// 천 년이나 기나긴 탁류로 울어준 샘이었다.”_‘군산’
시인 고은이 경이적 시작詩作을 용출하듯 내뿜게 한 정신적 자양분이 바로 군산의 흙이다. 군산에서 태어난 고은 시인은 이미 중학교 시절 <한하운 시초>를 읽곤 엉엉 울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문둥병에 걸리리라” 결 심했다.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했지만 후유증으로 고막을 심하게 다친 뒤 방황하다 동국사에 머물던 객승 혜초 스님을 만나 참선을 배웠고, 군산북중학교 미술 교사로 있던 19세에 혜초 스님에게 중장이란 법명을 받으며 출가했다. 10여 년 후 그는 환속했고 팔순의 나이가 된 지금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국가 대표’ 시인으로 살고 있다. 한밤중에도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아이들이 돛대처럼 자라는 곳, 늘 누군가 떠나는 곳, 그러다 안개가 걷히면 누군가 돌아오는 곳. 군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썰물과 밀물처럼 오가며 환생하는 인간의 삶을 이곳에서 깨우친 것일 테다.

그의 대표 시집 <만인보>에는 자신의 출가 사찰인 동국사가 자주 등 장한다. “염불 하나/ 장성 백양사까지 소문나 있지요/ 금하 스님/ 주금하 스님// 불전 푸짐히 놓으면/ 그 염불 찬란하지요 으리으리.”_<만인보 7> 중 ‘동국사 금하 스님’
동국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 대사가 건립한,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에서 모든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이 절은 에도 시대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는데, 찬찬히 살피면 그 ‘왜색’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장식이 없는 단청, 미서기문을 많이 매단 건물 외벽, 75도의 급경사를 이룬 지붕 물매, 일직선인 용마루가 그 왜색의 증거다. 고은 시인은 그의 자전적 소설 <나의 산하 나의 삶>에서도 “군산북중학교 교사 시절 혜초 스님의 불꽃 튀는 설법을 한 시간쯤 듣고 멍청해졌으나, 마음의 근원에서 기쁨이 일어나 틈만 나면 동국사를 찾았다” “새 기운이 넘치는 절” 등 동국사를 자주 언급했다.
동국사 군산시 동국사길 16(금광동 135-1)


일제 강점기에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조선은행 군산 지점. 현재 보수해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보수 전 모습.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구 조선은행 군산 지점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려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그러나 항구라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된다.”
채만식의 <탁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바람이 바다와 강을 불러내는 땅, 강과 바다가 은밀히 만나 온몸 속속들이 서로의 살을 섞는 땅, 군산. 이곳이 아니었다면 근대문학의 이정표라 불리는 <탁류>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호남 지역 쌀 수탈의 거점 항구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본 사람이 모여들던 ‘돈과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다 간 우리 민족에겐 삶이 내동댕이쳐지는 현장이었다. <탁류>의 주인공 정주사는 식솔을 거느리고 군산의 째보선창으로 흘러들어와 미두米豆(현물 없이 쌀의 시세로 거래하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하바꾼(밑천 없이 투기하는 사람)으로 전락 한다. 가난과 협잡, 싸움과 투기, 횡령과 추행, 간통과 흉계 그리고 살인 등 정주사와 그의 딸 초봉의 삶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1930년대 식민지 시대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파멸과 몰락의 길로 떨어지는 이야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되는’ 서사가 <탁류>에 담겨 있다.

<탁류>에서 정주사가 딸 초봉을 조선은행 군산 지점에 근무하던 고태수에게 팔아넘기는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구 조선은행이다. 이 건물은 1923년 당시 경성 말고는 이렇게 큰 건물을 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다.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이 건물은 대리석과 적벽돌을 사용하고 지붕의 경사가 급한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적용 했다. 지붕 중간에 유리창을 설치해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한 특이한 구조다.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본래 높이는 4층 건물에 해당할 정도로 높다. 현재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374호로 지정되었다.
군산근대건축관 군산시 해망로 214(장미동 23-1)


그 밖에 꼭 가봐야 할 군산의 명소

1 이성당 1910년 ‘이즈모야’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화과점을 1945년 故 이석호 씨가 인수하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하는 빵집’이란 뜻의 이성당으로 이름을 바꾼 국내 첫 빵집. 베스트셀러인 단팥빵과 야채빵이 연간 5백만 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동네 빵집’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군산시 중앙로 177

2 경암동 철길마을 영화 <홀리데이>와 <소년, 천국을 가다>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할 장소다. 옛 군산역에서 페이퍼 코리아(신문 용지를 만드는 회사)까지 이어지는 화물열차용 철로로, 1944년 개통해 2008년까지 화물열차가 운행했다. 웬만한 골목보다 좁은 이 철길로 열차가 곡예 운전을 하며 지나가고, 그 옆으로 집 앞에 고추를 말리고 가지런히 빨래를 너는 사람들의 일상이 함께하는 곳. 그 풍경이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동네다.

3 이영춘 가옥 1920년경 일제 강점기 전국 최대의 농장주이던 구마모토가 지은 별장으로, 외관은 유럽의 주거 형식을, 평면 구조는 일본의 중복도형 양식과 한식의 온돌방을 결합한 가옥이다. 해방 후 ‘한국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농촌 보건 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박사가 거주해 ‘이영춘 가옥’으로 불린다.
군산시 동개정길 7
글 최혜경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