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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_보는 밤_포토 에세이 별 보는 밤
천체망원경을 가진 우리보다 시력이 좋은 눈을 몸에 장착한 인류의 조상이 훨씬 더 우주적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는 매일 밤 맨눈으로 달의 고도가 낮은 지역인 달의 바다까지 볼 수 있어 “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했지요. 알퐁스 도데의 소설 속 목동은 스치는 유성을 보며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을 떠올렸습니다. 이처럼 별을 보고 사는 사람들의 우주관은 실재적이고 또 낭만적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컴퓨터 없이도 그려내고, 그 속에서 내 존재는 무엇인지 철학서 없이도 깨닫습니다. 당신의 우주관은 어떤가요? 당신은 저 넓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본 지 얼마나 되었나요?


한국 지리산 재석봉의 새벽 1시

여름밤, 무거운 촬영 장비를 둘러메고 지리산 재석봉에 오르는 일은 고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해발 1800m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난 재석봉에 오르자 힘든 야간 등산의 기억에 순간 진공 상태가 찾아왔습니다. 수만 개의 별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하늘 아래선 그저 넋 놓고 서 있을 수 밖에요. 곧이어 몸이 빙글빙글 돌아 시골집 마당에서 은하수를 보던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합니다. 그 옛날 우리 집 마당에서 보던 밤 하늘도 이토록 찬란했습니다. 이 사진은 뭉클한 마음, 아련한 기억에 젖어 진공 상태를 여러 차례 경험한 밤에 촬영한 은하수의 중심 부분입니다. _2013년 6월, 타임랩스 사진가 박정원 씨


노르웨이 최북단 도시 트롬쇠의 새벽 1시
노르웨이의 오슬로 공항에서 출발해 북극 아래 도시 트롬쇠에 착륙하기 직전 하늘에서 잠깐 해를 보았습니다. 북극아래 있어 오래된 교회의 이름도 ‘북극교회’인 트롬쇠의 겨울은 점심때쯤 잠깐 해가 뜬다고 하지만 구름 위에서 본 것처럼 선명한 기운이 없고, 종일 한밤중처럼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아기자기한 전구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해 없는 거리를 밝히고, 오랫동안 떠 있는 수많은 별이 이정표가 되어 동방박사를 인도하듯 여행자를 안내합니다. 그러다 밤이 깊어 자정이 지나면 고요한 도시 위로 노던 라이트(오로라)가 불을 밝힙니다. 마치 아름다운 트롬쇠의 풍광에 감동받은 여행자가 북극교회로 들어가 몰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리고 신비롭게 지금껏 보지 못한 빛의 연주가 창공에 흘러 전율을 느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_2003년 12월, <행복> 김민정 기자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렌게티 초원의 자정
한 카메라 브랜드의 광고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아프리카 세렌게티 국립공원에 갔습니다. 마침 우기가 시작되는 때라서 어둠이 깊어지자 지평선 끝에서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멀리 숲 속에서 사자 울음소리도 들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드는 밤이었지요. 우리 일행이 머물던 국립공원 내 로지lodge에는 별도의 울타리가 없어 선뜻 밖으로 나서기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구 상의 마지막 청정 지역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의 밤하늘이 달의 인력처럼 우리를 끌어당겼습니다. 야생 동물과 사람, 초원과 태양계, 지구와 우주의 별이 고요와 적막 속에 뒤섞이는 놀라운 시간과 경험이 이 사진 속에 담겨 있습니다. _2013년 12월, 타임랩스 사진가 박정원 씨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빌리지의 자정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가장 높은 곳을 ‘오로라 존aurora zone’이라고 합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노르웨이 트롬쇠, 스웨덴의 아비스크 등이 오로라 존에 해당합니다. 이 중 캐나다의 옐로나이프는 산이 없는 평지 지형에다 3백65일 중 2백40일 이상이 맑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저녁노을을 보듯 오로라를 봅니다. 이 사진을 찍은 날에는 갑자기 오로라가 밝아지면서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브레이크 업break-up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흰 눈이 오로라의 형광빛으로 물드는 듯한 신비로운 풍광이 펼쳐졌지요.작은 집의 지붕 위로 오로라가 노을처럼 내리는 마을, 그래서 이 마을은 이름도 ‘오로라 빌리지’입니다. _2013년 3월, 오로라 사진가 권오철 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유레이거 국립공원의 21시
시드니에서 북동쪽으로 48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레이거 국립공원을 취재하러 간 하루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미개발된 해안 지역을 탐험하고 절벽과 바위가 많은 히스림 지대를 지나고 바다 같은 호수를 건너는 대자연의 탐험.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함과 탄성이 밀려들었지만, 도시인의 육체 둘레에서 공전하는 피로와 한계라는 혹성도 무시할 수 없었지요. 텐트를 설치하고 게 눈 감추듯 황급히 저녁 끼니를 때우자 그제야 밤을 맞은 유레이거 국립공원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포만감에 기지개를 켜며 문득 고개를 드니, 호주의 초저녁 하늘에는 벌써 이렇게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직 온전히 짙어지지 않은 하늘인데도 말입니다. _2013년 9월, 사진가 김재욱 씨

기획 <행복> 문화교양팀 | 사진 나인수(인물), 김은수(리터칭)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