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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초이의 포토 에세이 내 어머니는 해녀입니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다를 품에 안습니다. 아침밥을 배불리 먹을까 말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을 콱 조이는 고무 옷을 입고 네댓 시간, 일고여덟 시간 바닷물에 몸을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갯바위를 맨발로 걸으면 손발이 곱아 감각을 잃고 고통을 참다 못해 소리쳐 울기도 합니다. 얼굴에는 물안경 자국이 난 채로 살아갑니다. 정녀의 몸은 바닷물에 뺏겼지만 바다에서 삶을 찾습니다. 생활에 강한 어머니며 마음이 여린 여자입니다. 우도에 사는 수필가 강영수 씨가 평생 지켜본 해녀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해녀는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바다를 본다. 바다 날씨에 따라 하루 일과를 결정한다. 보통 사람은 비바람, 눈보라에 시선이 가지만 해녀는 파도에 시선이 머문다. 높은 파도가 아니면 물때 맞춰 작업을 해야 하므로 테왁에 몸을 싣고 생계의 텃밭으로 나간다. 바다밭에 이르면 바닷물에 목숨을 맡기고 열 길 물속을 오르내리며 바닷속을 헤집는다. 몇 번 오르내리다 보면 숨이 거칠어진다. 그러다가도 물건이 보이면 저절로 ‘물숨’이 나며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전복, 소라, 해삼이 눈앞에 보일 때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심리적 숨인 ‘물숨’. 생리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라 해녀가 아니고는 쉴 수 없는 숨, 그 신비로운 숨을 쉬는 해녀는 자연이다. _우도에서 <내 아내는 해녀입니다>를 쓴 수필가 강영수 씨



“물때를 어질지 마라.” 옛 어른들은 이렇게 일러주셨다. 썰물과 밀물, 바람과 파도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다. 썰물에 몸을 싣고 나갔다가 밀물에 몸을 맡겨 돌아오는 해녀는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갑자기 요동치는 물살에 쓸려가면 처음 물질할 때 익힌 주문을 되뇐다. “당황하지 마라. 그래야 살 수 있다”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면 살아날 구멍이 생기는 법이니까. 얕은 바다에 이르렀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물이 얕을수록 바위가 많고 거친 파도에 부딪치는 건 바다나 삶이나 비슷한 이치가 아닌가. 거친 파도가 몸을 때리면 그 아찔한 마음을 보듬고 세 번을 꾹 참자. 어떤 파도든 세 번은 치게 되어 있다. 강, 중, 약 그리고 순간의 고요. 그때 몸을 추스릴 기회가 온다. 바다에서나 삶에서나 세 번은 참아야 비로소 살 수 있는 것이다. _우도 해녀 김은희 씨


해녀들이 살아온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말 그대로 ‘초인간적인’ 것이었다. 물질하며 팔십 평생을 살아온 백발의 해녀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또 해녀 하실래요”라고. “응, 할 거야.” 단 일초의 주저함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질하는 삶은 너무 고달프지 않나요?” “그래도 나는 또 할 거야. 바닷속에 들어가면 해산물 따는 재미가 있지, 돈도 생기지, 몸도 안 아프지.” “그러면 따님도 해녀를 하면 좋겠어요?” “아니! 딸은 안 시켜! 그렇지만 나는 또 할 거야. 취미가 있으니까.” 여기서 할머니의 ‘취미’라는 단어의 의미는 계속 되씹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배 속에서 물질을 배워 바다에 몸을 맡기며 산 거친 세월. 그들에게 바다는 저버릴 수 없어 또다시 따뜻한 아침상을 차려주는 미운 남편 같을 테다. 속살을 비비며 산 반려자이자 마음을 다준 취미인 것이다. _우도에서 해녀를 찍는 사진가 준초이 씨


사진가 준초이 씨가 제주의 우도에서 강렬한 해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유명한 광고 사진가인 그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이자 가족의 생을 지키는 놀라운 정신이기도 한 해녀에게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떠올렸고, 그 감동의 찰나를 기록하려고 작년부터 우도로 이주해 살면서 사진 작업을 합니다. 해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고, 그들이 출가 물질을 가면서 일본에도 해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0년째 제주 해녀 문화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사이, 최근 일본도 해녀 문화 보존과 유네스코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해녀 문화를 국가 브랜드화하겠다고 공언 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준초이 씨는 자신이 찍은 해녀 사진을 본 많은 국민이 해녀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하길 바라며, 해녀들이 역사와 세계의 보호를 받는 데 힘을 모아주기를 기대합니다.

구성 김민정 기자 | 사진 준초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