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모 (플루트 연주자, 정신지체 3급)
3년 전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과 함께 사는 고정모 단원은 2년 전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 입단해 플루트를 연주한다. 작은 내과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며 두 아들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웃음을 잃지 않는 건 두 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 몇 년 전 고정모 단원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계단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머니의 눈가가 젖어온다. 하지만 아들이 오케스트라에서 형과 친구들, 선생님과 소통하는 법을 익혀 학교생활도 변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성실함이 최고 강점인 고정모 단원은 연습실에 매일 나와서 연주를 한다. 서로 다른 악기가 어우러져 만드는 하모니를 들으며 세상으로 나아가고, 무대에서 박수와 칭찬을 받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 고정모 단원. 그에게 오케스트라는 친구이자 미래이며 꿈이고 행복이다.
이성민 (색소폰 연주자, 자폐성 장애2급)
“제 장래 희망은 일반인이 되는 것입니다.” 생후 23개월 무렵 이성민 단원이 소아정신과에서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어머니는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매일 아들과 함께 학교에 갔다. 장래 희망이 ‘일반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장애를 설명하던 학창 시절. 그런데 2006년부터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말을 잘 못하고 가만있지 못하던 이성민 단원이 달라졌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 한 시간 넘는 연습 시간 동안 자기 자리 지키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면서 사회성이 향상된 것. 그 덕분에 2012년 나사렛대학교 관현악과를 졸업한 이성민 단원은 현재 일반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의 예술 강사로도 활동한다. 이제 학교는 강의하러 가는 곳일 뿐, 더 이상 힘든 곳이 아니다. 그의 직함은 순수한 동심에 더 많은 박수를 받는‘예술 강사 이성민’이니까!
왼쪽 한주현 (바이올린 연주자, 자폐성 장애 3급)
오케스트라 악장인 한주현 단원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산다. 어머니는 수영장 관리 보조 일을 하며 받는 월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빠듯한 형편이지만, 아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깨의 무거운 짐이 사라지는 듯 행복하다. 고등학교 2학년인 한주현 단원은 음악대학 입학을 준비한다. 지난 1월에는 예능음악신문사에서 주최한 전국 음악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멋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자신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되고 싶은 속 깊은 소망을 품고 있다.
오른쪽 천재윤 (첼로 연주자, 자폐성 장애1급)
중증 장애가 있는 천재윤 단원은 첼로 같은 멋진 클래식 악기 연주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작년에 복지관에서 우연히 악기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첼로로 연주하는 ‘반짝반짝 작은 별’을 들을 수 있다면 10년이 걸려도 행복할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악보 읽는 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어머니가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면 아들이 첼로에서 음계를 찾는 반복 훈련. 이후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예비 단원을 육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하트뮤직아카데미에서 첼로 연주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운 지 1년 만에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이 되었다. 부모에게는 아들의 이런 모습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연주회는 천재윤 단원에게는 첫 데뷔 무대라니, 그날 부모님 가슴은 또 얼마나 뜨거워질까.
이한결 (트럼펫 연주자, 발달 장애 3급)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창단 멤버인 이한결 단원은 기초 생활 수급자 가정으로, 폐휴지를 수집해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와 두 동생과 함께 산다. 악기를 접해보지 못한 그는 2006년 오케스트라 오디션 당시 복지관에서 배운 리코더를 불었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뽑힌 후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만나 본격적으로 연주를 배웠다. 정해진 행동만 하고 표현력이 부족해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늘 놀림받던 이한결 단원은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고, 자신감을 갖자 ‘음악 천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2014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시 전형에 합격해 내년부터는 ‘음대생’이라는 멋진 타이틀도 갖게 되었다.
최근 극장에서 큰 인기를 누린 영화 <그래비티>. 샌드라 불럭이 연기한 여주인공 스톤 박사는 우주 정거장의 망원경을 수리하다가 우주에서 밀려온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치는 돌발 상황을 맞는다. ‘외계인도 우주 전쟁도 없다’는 영화의 광고 문구처럼 귀신이나 총싸움과는 거리가 먼 잔잔한 영화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은 영화지만 두려웠다”고 말한다. 찬란한 우주에서 혼자,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야 같은 어둠의 무중력 속을 뱅글뱅글 떠도는 그 막막한 심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지능이 자라지 않는 발달 장애 영화 <그래비티>를 떠올리며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생각해보자. 몸은 자라는데 지능이 멈추고, 키는 커가는데 감정 조절 능력이 정지하면 그 사람과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보통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끝나는 ‘육아’가 평생 기약없이 계속되는 가족의 고단한 삶을 생각해보시라. 발달 장애인은 생각과 말, 감정 조절 능력과 사회 행동이 유아 수준이기에 어머니와 가족은 출산 이후 그 자녀에 매여 평생을 보낸다. 서른 살이 된 아들의 덩치가 가녀린 어머니의 체구보다 훨씬 커도, 딸은 중년이 되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 백발이 되어도 자녀 손을 붙잡고 외출해야 하고 돌발 행동을 제어하며 어르고 달래 밥을 먹이고 종일 놀아주는 친구, 선생님, 보호자라는 일인 다역을 오롯이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더딘 삶. 그나마 고등학교까지는 상황이 나은 편. 선생님과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이해를 구하는 마음 아픈 과정을 겪지만, 그래도 자녀를 매일 학교에 보내고 어머니가 겨우 한숨 돌리며 세상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어 그 시절이 소중하다. 그런데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가 지구와 교신이 단절되자 급속히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발달 장애인 가족은 대부분 그나마 유지해오던 세상과의 교신이 끊긴다. 해가 밝아도 갈 데가 없고, 몸은 성인이 된 자녀를 종일 돌봐야 하니 어머니는 평생 자유 시간은 물론 목욕탕의 뜨뜻한 물에 몸을 담글 틈조차 내기 어렵다. 사회가 무관심한 사이 가정이라는 우주복을 단단한 끈으로 묶고 가족이라는 사랑의 줄에만 의지한 채 지구와 점점 더 멀어지는 고독과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대기권 밖이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이웃이 겪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이다.
1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일주일에 2~3회 모여 합주 연습을 한다. 그 외 각 파트별로도 앙상블 연주를 하거나 개인 연습을 하는 스케줄이 짜여져 있다. 2, 3 지휘자의 지시에 집중하며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는 단원들.
발달 장애인을 이해한 하트하트재단 가까스로 우주 정거장에 도착한 스톤 박사는 망가진 통신기로 지구와 교신을 시도한다. 어렴풋이 들리는 지구의 라디오 방송 소리, 특히 반가운 강아지 소리에 오열하며 혼자 동물 소리를 내서라도 세상과 접속, 접촉 혹은 소통하려 애쓰던 장면은 우리 삶이 희망을 갖는 원동력은 소통, 즉 ‘사회성’임을 설명한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하트하트재단은 사람들이 발달 장애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모르던 25년 전부터 발달 장애인의 ‘사회성’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수출용 봉제 완구를 만들던 작은 회사의 하트베어가 미국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자,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세상과 나누고 싶어 한 사업가 부부의 결심이 계기였다.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인 신인숙 씨는 가슴에 꼭 안으면 곰 인형의 심장이 뛰어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하트베어의 의미를 담아 처음에는 미국의 심장재단과 한국의 병원에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심장 수술 비용을 기부했다. 사업이 잘되는 축복을 임직원만 누릴 것이 아니라 세상에 흘러가도록 통로가 되어보자는 선한 뜻으로 시작한 기부가 세상은 물론 임직원에게도 큰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인숙 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 복지를 전공했고, 졸업과 동시에 하트하트재단을 창립하게 된 것이다. 복지 제도나 사회 인식이 낙후하던 25년 전, 재단은 발달 장애인을 최우선으로 돕기로 결정했다. 다른 장애인은 보조기를 하거나 휠체어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장애를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발달 장애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도 나아질 방도가 없어 ‘마지막 장애’라고 부른다. 그만큼 장애인 자신은 물론 가족이 겪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가락동에 재단 건물을 짓고 특수 체육 시설, 작은 공연장 같은 시설을 만들어 지역 사회의 발달 장애인을 교육하는 일을 시작했다. 장애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보려 영유아에겐 조기 교실을, 성인이 된 발달 장애인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혼자 살 수 있도록 간단한 계산, 대중교통 혼자 이용하기, 라면 끓이기 같은 생활 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달 장애인의 사회성 개선에 힘썼다. 20여 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성숙해졌다.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바뀌어 주민센터마다 복지관이 생기자 더 많은 발달 장애인이 하트하트재단과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확대된 것이다.
1 단원들을 지도하고 함께 무대에 오르는 각 파트 담당 선생님들이 주의 사항을 메모해주거나 악보를 넘겨주며 연주 내내 단원들을 돕는다. 2 하트클라리넷앙상블이 무대에서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씨와 협연하는 모습.
사회의 인식을 바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오래전부터 발달 장애인을 교육하는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하트하트재단은 ‘어떻게’를 고민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수년 동안 겨우 젓가락 사용법을 익혀도 식사준비와 요리 같은 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으니, 발달 장애인을 교육하는 궁극 목표인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성’을 갖추는 여정이 너무나 더디기 때문. 또 이 목표를 이루려면 발달 장애인 자신도 사회성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나섰을 때 조금 서툰 말투와 느린 행동을 기다려주고 따듯하게 보듬어주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도 시급했다. 양쪽이 함께 달라져야 비로소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지 한쪽만 변해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보편적 복지는 이제 나라에서 많은 부분을 맡아주니, 보다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민간 재단은 어떤 역할로 이들을 도와야 할까? 기존보다 효율적으로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실험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2006년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멀쩡한 우리 딸도 음악 못 시켜요.” 오케스트라 창단을 위해 관공서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때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편견이라는 장애를 앓는 일반인에게도 ‘인식 개선’이라는 따뜻한 치료가 시급했다. 발달 장애인이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장애인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놀라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사회 인식 개선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돈 낭비하지 마라, 음악 대신 기술을 가르쳐 취직을 시켜달라,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발달 장애인의 특성을 잘 아는 신인숙 이사장과 하트하트재단의 선생님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에서 아름다운 현의 선율을 맡은 하트현악앙상블. 악기 연주를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악 파트는 단원 수가 부족해 오디션을 통해 계속 충원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작은 사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방음 시설을 한 개인 연습실, 단원들이 연습에 지쳐 흥분하거나 피부가 가렵지 않도록 최상의 환기와 통풍 시설을 한 합주실, 멋진 공연장, 아늑한 식사 공간까지 갖춘 시설로 건물을 재단장했다. 복지관에서 배운대로 리코더를 잘 부는 아이, 박자 감각이 좋은 아이 등 음악적 재능이 보이는 단원을 오디션으로 발탁했고, 관악단이 가장 먼저 구성되었다. 일반 연주자도 부러워하는 좋은 시설은 물론 악기가 없거나 레슨을 받을 수 없는 단원에겐 악기와 장학금까지 지원하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발달 장애인 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악기를 연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오케스트라 예비 교육 프로그램인 ‘하트뮤직아카데미’에서 다른 연주가들과 함께 음악의 기초와 오케스트라의 사회성을 동시에 익힌다.
물론 실력이 좋아지면 오디션을 볼 수 있다. 지방의 발달 장애인을 위해서는 열 곳의 지방 기관과 연계해 점점 더 음악 실력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포르테’라는 음악 교실을 운영해 발달 장애인의 행복 지수를 높이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친구의 친구, 이웃 아이까지 오디션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져 여덟 명이던 관악단이 30여 명의 윈드 오케스트라로 발전했고, 8년이 지난 지금은 현악 파트까지 구성해 단원이 60명이 넘었다. 그만큼 레퍼토리가 훨씬 풍성해졌다. 일부 관악기는 정원이 넘칠 만큼 단원이 많아졌고,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악기는 오디션을 통해 계속해서 단원을 선발하고 있다.심포니 연습을 하던 날, 가락동에 위치한 하트하트재단의 연습실에 단원을 데리고 온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인천, 용인, 의정부에서도 자녀를 태우고 오고, 형편이 괜찮은 부모는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의미로 매월 초등학생의 기초 학원비 정도 되는 돈을 활동비로 낸다.
어린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는 일반 부모와 같은 일상이다. 재단은 안전을 위해 가급적 보호자가 동행할 것을 요청하지만, ‘지하철 몇 번째 칸에서 타고 몇 번째 칸에서 내리는 학습’이 잘된 단원은 혼자서 오기도 한다. 연습실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하기 때문에 아예 아침부터 와서 개인 연습을 하고, 꼭대기층에 있는 식당에 올라가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맛나게 먹고, 선생님이 타주시는 커피까지 디저트로 즐긴 후 다시 연습실에 가서 연주에 몰입하는 ‘종일 연주형’ 단원도 꽤 많다. 웅성웅성, 산만산만, 허기를 잘 참지 못하고, 감정 조절을 잘 못하고, 괴성을 지르거나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발달 장애인 60여 명이 한자리에서 연습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온화한 지휘자 선생님이 기도할 사람을 물으니 수십 명이 적극적으로 손을 든다. 발표를 시킬까 봐 쭈뼛쭈뼛 고개를 숙이는 일반 학교의 교실과는 정반대의 적극적인 참여다. 앞뒤 문장이 잘 맞지 않는 웅변 같은 기도에 모두가 각오를 다지듯 ‘아멘’으로 화답하고 합주곡인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악장의 리드에 맞춰 음을 조절하고 지휘자의 주문에 따라 배가 항구를 출발하듯 미풍을 맞으며 교향곡이 흘러간다. “오케스트라는 작은 사회다”라는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의 말처럼 그들이 연주하는 것은 음악 이전에 ‘사회’였다. 기다리고 듣고 시간에 맞추어 즐거운 활동을 하며 드디어 스스로 발을 딛고 살아내야 할 사회의 질서를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이다.
1, 2 전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 대회 성공 기원 음악회’에서 연주해 큰 박수를 받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12월 15일 오후 2시,예술의전당에 오르다 “잠깐만~, 바이올린은 조금 더 작게!” 지휘자는 설명하고 단원들은 듣는다. 중간중간에 앉아 함께 연주하는 각 파트 담당 선생님이 악보를 넘겨주며 진행을 돕는다. 긴 시간, 물론 단원들은 쉴 새 없이 목을 긁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중얼중얼거리도 한다. 과자도 먹고 싶다. 하지만 현 파트가 연습할 때는 관 파트가 기다려주고 클라리넷이 연주할 때는 색소폰이 음을 받쳐준다. 지휘자가 요구하는 대로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고 연주를 변화시킨다. 정신 지체 장애를 가진 심벌즈 연주가도 전곡을 기다려 꼭 필요한 박자마다‘쨍’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 연습실 구경을 간 기자도 뭉클해지는 이 놀라운 장면이 자녀와 눈 한 번 마주치려고 평생을 노력하며 애태운 가족에게는 얼마나 기적 같은 드라마일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시큰해졌다.
재단은 단원의 부모가 연습 시간만큼은 다리를 쭉 뻗고 쉬도록 부모 대기실을 뜨끈한 온돌방으로 만들었지만, 어머니들은 대부분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연습실 구석에 서 있다. 자녀가 놓친 부분, 지휘자의 주의 사항을 익혀서 자녀가 개인 연습을 할 때 도움을 주려는 진한 모성으로. 그간 자체 기획 공연, 단체나 기업의 초청 공연을 주로 하던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드디어 2013년 12월 15일 오후 2시, 최초의 유료 공연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인다. 유료 공연은 장애인의 연주를 들으러 오라는 자선의 의미가 아니라, 8년간 연습한 진중한 심포니를 감상하러 오라는 예술적 의미를 상징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발달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수준 높은 공연! 아나운서 김동건 씨가 진행하고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가 협연하는 이 공연을 디딤돌로 60여 명의 연주가는 발달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 ‘전문가’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얻을 것이다.
포르테 프로그램으로 꿈을 키우는 학생들, 특별히 초대받은 소외 계층의 사람들, 그리고 일반 관객과 세계적 명성의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들으며 ‘인식의 하모니’를 이루는 멋진 순간을 상상해보시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작은 씨앗이다. 이 연주를 씨앗으로 싹이 나고 가지가 뻗고 잎이 열리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세상 저 멀리에서도 한눈에 알아보는 천재 연주가도 탄생하기를 빌어본다. 갖은 노력 끝에 지구에 도착한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처럼, 우리 주변의 많은 발달 장애인도 이 오케스트라의 활약에 힘입어 너른 세상 가운데 빛나는 별로 행복하게 안착하기를! 공연 문의 02-43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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