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스에서 유학 중인 여동생 유미와 버킷 리스트를 쓴적이 있다. 그중 1순위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산후 조리원을 운영하시는 엄마는 15년간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현재를 엄마와 공유하고 싶었다. 패션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하다가,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성대에 문제가 생기면서 예상치 않은 3주간의 휴가를 얻었고, 이때다 싶었다. 성대 수술을 끝내자마자,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니스에 있는 동생은 현지 여행 일정을, 나는 엄마의 개인 비서를 맡았다.
‘마마님의 즐거운 여행’ 패키지 동생과 내가 잘 알고 있는 니스를 비롯한 프랑스 남부와 체코 프라하를 여행지로 골랐다.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 해변과 유럽의 길 위에서 우리가 느낀 낭만을 엄마도 함께 만끽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동생이 먼저 일정표를 보내왔다. ‘행복한 여행사에서 제안하는 사랑하는 마마님의 즐거운 여행’이 패키지 제목. ‘유미 셰프의 맛있는 메뉴는 카르파초와 연어 스테이크’ ‘간식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토’ ‘니스 프라이빗 비치에서 선탠하기’ ‘프하라에서는 호텔 픽업 서비스로!’ 등 약 열흘 간의 일정표 안에는 레스토랑 이름과 이동 수단, 아침 예배 시간과 여행지 설명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만능 여행 가이드가 되어 가장 행복한 순간을 엄마에게 선물하는 것이 목표였다.
니스 해변에서 독서를 즐기는 ‘마마님’.
(왼쪽) 모녀는 함께 몽돌 해변을 산책하며 바다 수영을 즐겼다.
(오른쪽) ‘엄마 모시기’ 여행에서 딸은 짐꾼을 자처했다.
엄마, 여왕이 되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가 다 준비할게”라고 말한 대로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밤까지 여행 가방도 챙기지 않으셨으니까. 계절에 맞는 옷을 꾸리는 일부터 커피를 대접하고 되도록 좋은 비행기 좌석을 챙기는 등 생애 가장 까다로운 VIP 클라이언트 모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여인처럼 뒷짐 지고 걸으면, 우리는 엄마 짐을 들고 쫓아가며 통역관이 되었다. 시차 부적응으로 저녁 7시면 곯아떨어지는 엄마를 위해 여행지를 대폭 축소하고, 하루 일정을 간소화하는 등 ‘엄마의 맞춤 일정표’를 다시 짜곤 했다.
프랑스의 음유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은 마을 빌프랑슈쉬르메르와 칸을 거쳐 동생이 살고 있는 니스에 도착했다. 8월 중순의 한여름에 만난 니스 해변은 휴가 온 유럽인으로 북적였다. 프랑스인이 선베드 위에 몸을 누인 채 떨어지는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고, 해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의 테라스에는 근사한 스타일의 남녀가 열띤 대화를 나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온풍은 우리 모녀의 마음을 더욱 살랑거리게 했다. 아침 예배를 마치면 우리는 함께 간단한 해변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낮에는 깔깔거리며 바다에서 수영을 즐겼다. 엄마가 이렇게 행복한 얼굴을 한 적이 있었던가! 비록 아침마다 아몬드 크루아상과 라면 국물을 대접해야 했고, 짐꾼과 도어맨이 되었지만….
그저 함께한다는 목적 실제 엄마가 니스보다 더 좋아한 곳은 체코였는데, 중세의 올드 시티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체스키에서 엄마는 소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쭈뼛거리며 말하던 엄마가 프라하에서는 체코어를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여행을 즐겼다. 체코어 ‘데쿠유Dekuju(고맙습니다)’가 충청도 사투리 ‘됐구유’와 비슷하다며, 가는 곳마다 “됐구유, 됐구유” 말하곤 해 줄곧 웃음바다가 되었다.
니스 해변을 산책하고, 체코의 낭만 가득한 길을 함께 걸으며 할머니가 되어도 소녀 같은 얼굴로 우리와 함께 꽃을 이야기하고, 낭만을 그리워하는 엄마가 되길 마음속으로 바랐다.이 황금 같은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엄마의 향기가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내년 여름 여행지를 또 계획해야겠다.
|
여행 정보 여행 기간 10일 추천 코스 니스와 칸을 포함한 남부 프랑스 도시들 - 체스키 - 프라하 추천 이유 코트다쥐르 주의 주도인 니스는 프랑스인뿐 아니라 유럽의 대표 휴양지.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 등 수십 개의 아름다운 갤러리와 야외 테라스를 갖춘 낭만 가득한 카페들, 채소와 꽃향기가 넘치는 전통 시장 등 여자들이 좋아하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니스에서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는 체코에도 들러볼 것.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도시 체스키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딸의 조언 여행지를 함께 고민하는 ‘행복한 시간’을 먼저 가졌으면 좋겠다. 여행지 레스토랑, 숙소 등 모든 일정에 엄마의 의견을 반영하면, 현지에서 문제가 덜 생긴다. 예산을 너무 절약하려다 보면 피곤한 여행길이 될 수 있다. 숙소는 되도록이면 시설이 좋고 안전한 곳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많은 곳을 여행하려는 욕심을 줄이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여유롭게 잡고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