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사랑하고 감탄하는 마추픽추.
잉카 시대, 군인들이 상주하던 초소요, 우체국(?)이기도 했던 작은 요새.
우리는 고난의 길을 택했어요 안데스 산맥 속에 신비의 잉카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마추픽추Machu Picchu는 해발 2400m로 꽤 높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용 버스가 좁은 산길을 수없이 지그재그로 기어올라 그 굉장한(?) 높이까지 실어다준다. 그러니 보통 관광객은 산꼭대기 주차장까지 타고 올라와서 그것도 평지를 한 200m나 걸을까? 산꼭대기인 줄도 모르고 가이드를 따라 걷는데,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사진에서 보던 그 스펙터클한 파노라마가 요술같이 ‘쨘!’ 하고 그대로 펼쳐진다. 정말이지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의 장관이다. 그런데 우리 팀 여섯 명은 완전히 다른 방법 다른 길, 한마디로 고난의 길을 택하여 그곳에 도달했다. 가파른 산길은 기본, 공기까지 희박한 4000m의 높은 능선을 오르내리며 꼬박 3박 4일을 고대 잉카인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 마추픽추에 도달했다.
트레킹은 고대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에서 82km 떨어진 곳이라 ‘82km 지점’이라고 부르는, 우루밤바 강이 휘감아 도는 한적한 시골 마을 피스카쿠초에서 포터들과 함께 시작했다. 매일 12~16km씩 산행을 해 북쪽의 마추픽추에 도달하는 여정. 최저 고도가 2680m, 최고 고도는 4215m였다.
이런 프로 호텔식 서비스를 받아봤나요? 어둠도 덜 가신 싸늘한 고산의 새벽, 우리를 깨우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코카차가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후 “아구아agua(물)”라는 소리가 나기에 텐트를 열고 밖을 내다보니 코앞에 대령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이 담긴 파란 플라스틱 세숫대야. 이불 속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니 귀부인이 된 기분이다. 혹시라도 뭐가 필요해 두리번거리면 어김없이 포터 중 하나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말은 안 통해도 뭐든지 도와주려는 저 마음씨, 정말 고맙다. 식사를 마치고 먼저 출발한 우리가 거의 탈진 상태로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하면 벌써 전에 도착한 포터들이 각자 앞에 손 씻을 물을 준비해놓고 옆에는 종이 타월을 든 포터가 시종처럼 대기하고 있다. 텐트에는 테이블과 의자와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다. 점심 식사 전에 먼저 음료수부터 한 잔. 정식 식사가 나오고 식사 후에는 뜨거운 차를 준다.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줄여주려고 음료수 마신 컵으로 그냥 차를 마시겠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차는 찻잔에···.” 국립공원 내 공동 화장실에 가는 게 불편할까 봐 앙증맞은 간이 텐트 화장실도 만들어 제공한다.
위나이와이나 캠프 사이트의 안내판.
잉카의 계단식 밭.
이건 정말 좋은 윈윈 점심 식사 후 우리는 먼저 떠난다. 그런데 고산 증세로 기진맥진해 캠프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어느새 우리를 앞질러 도착한 포터들이 텐트와 식당을 다 설치해놓고 기다린다. 특공대도 이렇게 날쌘 특공대가 없다. 각자 텐트에 가면 어김없이 더운물이 담긴 세숫대야가 기다리고 있다. 씻고 나면 티타임. 갓 튀긴 팝콘과 쿠키와 차가 나오고 한 시간쯤 뒤에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피로와 고산 증세로 정신이 몽롱해도 그날의 메뉴가 정말 기대된다. 포터들의 대장 셰프는 요리 하나를 해도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입고하지 않는다. 그런 고산임에도 텐트로 주방과 식당을 꾸미고 셰프는 눈부시게 하얀 조리복을 입고 하얀 셰프 모자까지 단정하게 쓰고 기가 막힌 솜씨로 요리를 해서 페루의 전통 식탁보를 깐 식탁 위에 큰 접시에 담은 요리를 내온다. 여느 고급 호텔식과 똑같이 애피타이저로 시작해서 메인 코스에 디저트까지. 물론 셰프의 솜씨로 즉석에서 요리한다. 억지 쇼가 아니니, 감탄을 지나 감동까지 준다.
혹시, 좀 ‘있는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오래전 상영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에서 본 백인과 흑인 사이의 주종 관계 같은 호사를 누리고 거들먹거린 건 아니었느냐고? 절대로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건 페루 안데스 산맥 속에서 누린 이동하는 호텔 서비스다. 그 점이 다른거다. 그들은 트레커들에게 최상의 이동 호텔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어 행복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토론토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 귀한 돈을 대가로 주고 환상적인 서비스를 받아 행복한 윈윈win-win인 것. 그러니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콧대를 높일 일도 없고, 서비스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비굴할 일이 없다. 서로 당당하고 모두 행복한 일. 그것도 공기조차 희박한 4000m 지대에서 말이다.
안데스 산 속 최고의 프로 셰프! 셰프 프란시스코의 무릎 위에서 나온 요리는 매번 우리를 놀라게 했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침에는 토스트, 오믈렛, 팬케이크, 소시지에 달걀 요리를 주로 준비한다. 점심과 저녁은 닭고기 요리, 돼지고기찜, 참치롤, 각종 튀김, 볶음, 샐러드에 키노아quinoa와 감자의 본고장답게 갖가지 감자 요리가 제공된다. 그리고 프라이팬 두 개로 만들었다는 애플파이부터 케이크까지 마치 호텔 식당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속. 보통 캠핑이었다면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제대로 된 요리뿐 아니라 온갖 차 종류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한 메뉴로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일은 정말로 상상도 못한 것. 식사 때마다 셰프와 포터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우리의 셰프 프란시스코는 과묵하면서도 직업 정신이 투철한 남자. 일단 주방 텐트에 들어가면 도시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처럼 새하얀 셰프 모자부터 쓴다. 정말 얼마나 하얀지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주방 텐트를 들여다보면 그는 조그만 접는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도마를 놓고 칼질을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 “왜, 식탁에 놓고 하지 그래요?” 했더니 식탁은 조립식이라 흔들려서 기술 발휘가 안 된다나? 그런 그가 이런 코미디를 연출했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왔어도 한국인이니까 나름대로 생각해주느라 된장국을 끓인 거다. 여러 날 여행을 하다 보면 무기력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김치찌개나 된장국 한 그릇만 먹으면 신기할 정도로 금방 회복되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문제는 제아무리 국제(?) 셰프라고 해도 된장 맛이야 어찌 알겠는가? 그만 준비한 된장을 몽땅 넣어 소금 소태를 만든 것. 그러나 우리는 모 두 그의 정성만으로도 그에게 감사했다.
1 셰프 프란시스코가 만든 감자버섯 샐러드.
2 안데스 고산 꼭대기에 설치한 우리의 식당 텐트.
3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에게 아주 신성한 장소였다고.
4 아침이면 어김없이 더운물을 담아 각 텐트 앞에 놓아주는 세숫대야.
5 안데스 산맥의 꽃.
6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포터들.
7 절벽에 잔도棧道같이 낸 길을 따라 걷는 잉카의 길.
제대로 걸려든 고산 증세 “Baby step! Baby step! Please baby step!” 가이드 프레드가 박자를 맞추듯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하는 말. 한마디로 욕심내지 말고 아기같이 아장아장 걸으라는 뜻이다. 첫째 날은 백두산 높이와 비슷한 해발 2680m에서 출발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걷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3300m를 넘으니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혈액순환이 늦어져 나타나는 증상이다. 4000m가 넘자 한 걸음씩 세면서 가야 할 정도로 숨이 차고, 몇 걸음만 걸어도 100m 달리기를 한 것같이 아프도록 심장이 뛰질 않나,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그냥 꺾일 것 같다. ‘이래서 언제 정상까지 가지?’ 고도 문제만 없다면 10분이면 올라갈 거리인데, 이 속도로는 한 시간은 가야 할 것같이 아득하다. ‘카메라를 보조 가이드 에드워드에게 맡긴 건 정말 잘했어. 이 상태로는 사진 찍는 건 고사하고 카메라 꺼낼 기운도 없는걸.’ 4200m를 오르내리느라 가장 힘들었던 그날 저녁, 드디어 튜브에 든 화장품이 폭발했다. 폭발! 기압이 낮아져 해발 3400m의 쿠스코에서부터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뚜껑을 열면 멈출 줄 모르고 줄줄이 새어나왔는데, 해발 4200m로 기압이 더 낮아지자 이젠 한계에 이르렀는지 아예 튜브가 터져버린 것. ‘말로만 듣던 기압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고 절감했다.
“아스타라 비스타 마추픽추” 마침내 마추픽추에 도달했고 따라서 포터와 작별해야 하는 시간. 그동안 일한 임금과 우리가 추가로 준 팁을 받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그야말로 입이 귀에 걸려 시종 싱글벙글 웃는다.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우리가 뿌듯하더라니까. 처음 트레킹 비용을 지불할 때는 솔직히 트레커 1인당 미화 7백 50달러는 좀 비싸지 않나 싶었다. 호텔에 묵는 것도 아니고 캠핑하는 데 무슨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까 했는데 지금은 포터들의 얼굴만 떠올려도 그 돈이 아깝긴커녕 더 주고 싶다. 웅장한 안데스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포터들의 순박한 미소와 상상 밖의 서비스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이런 신선한 감동을 어디서 경험해볼 수 있겠는가? 떠올릴 때마다 행복해지는 이런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대자연 속에서 멋진 포터들과 보낸 트레킹 여행의 추억은 행복이자 감동이었다. 그 행복한 기분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멀리 안데스에 인사를 전한다. “아스타라 비스타 마추픽추 (Hasta la vista Machu Picchu(마추픽추야 또 보자)!”
글을 쓴 안정숙 씨는 인하대학교 국어교육학과와 대학원을 수료한 후 1982년 영국 런던에서 은행에 근무하다가 1988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지금은 프라이빗 파일럿private pilot이며 사업가인 남편과 업무를 나누어 재택근무를 하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 주말은 토론토 산사모 트레킹 멤버로, 언제든지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