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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장 씨의 그림 이야기 내안에 살아 숨 쉬는 통영의 푸른 물결
“솔직함과 격조가 어우러진 新문인화”라는 미술 평론가 오광수 씨의 말처럼 前 통영시장 진의장 씨의 작품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맑고 고아한 사대부의 정취가 스며 있다. 오는 10월 17일 예화랑에서 열릴 진의장 씨의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은 그가 ‘고향 통영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와 같다.


‘눈 속에 핀 동백’, 200×176.3cm, 캔버스에 유채, 2013

작품 ‘용’ 앞에 선 진의장 작가.

‘통영항’, 145.5×112cm,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13.


나를 키운 팔 할이 통영 그림과 캔버스, 물감 등이 어지러이 놓인 진의장 씨의 화실 한쪽에는 며칠 전 완성했다는 대작 ‘눈 속에 핀 동백’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 거친 한파 속에서도 온전히 꽃을 피워낸 붉은 동백의 자태가 순박하면서도 강렬했다. ‘신명 나서 그린 그림’이라는 그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내 고향 통영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 하얀 눈 사이로 새빨간 동백이 새치롬하게 고개를 내밀거든. 얼마 전 문득 그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렸어요.” 194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진의장 씨의 그림에는 열정의 기운이 흘러 넘쳤다.
“그림은 평생의 에너지원이에요.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으니까. 도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벽에 크레용으로 정신없이 그림을 그렸는데, 아버지가 보시고는 그 부분만 오려내서 한참 동안 보관하셨어요. ‘이게 우리 장이가 다섯 살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하시면서. 다섯 살짜리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엔 사람 얼굴이 꽤나 사실적이라 다들 신기해했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그림은 꽃을 피웠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리기의 기초를 다졌고, 음악과 시까지 섭렵하며 예술적 소양을 쌓은 것. 하지만 그의 선택은 그림이 아닌 공부였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행정 고시에 합격해 공직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림이란 게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기와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미술대학을 졸업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흐나 고갱 같은 대가 중에도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부지기수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림을 머릿속에서 놓은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나랏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틈만 나면 화실에 앉아 그리고 또 그렸다. <아시아현대미술전>(1980, 도쿄 미술관), <살롱 도톤전>(1988, 파리 그랑파레 미술관), <살롱 앙데팡당전>(1993, 파리 그랑파레 미술관) 등에 출품해 호평을 받은 작품들도 이렇게 완성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여는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이다 보니 많이 설레고 기대도 되네요. 내 어린 시절 추억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나를 키워준 통영의 바다를 선보이는 자리라서 그런가?(웃음) 사실 통영은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하나뿐인 나의 선생님이기도 해요. 통영의 쪽빛 바다, 갈매기 소리, 뱃고동 소리 등 아름다운 풍광이 내 몸 구석구석에 각인돼 지금까지도 그림의 원천이 되고 있으니까요.”


‘학교 있는 풍경’, 45.5×38cm, 캔버스에 유채, 2010

‘흰 꽃’, 55.5×77.5cm, 캔버스에 유채, 2011.



어린아이처럼 그림에 빠져서 그의 작품엔 통영을 대하는 따뜻한 애정의 시선이 녹아 있다. 화가의 마음속엔 다른 무엇보다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 천진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우선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슴 떨림, 설렘이 느껴진다” “소년 같은 순수함과 순박함이 살아 있다”는 세간의 평 또한 통영에 대한 그의 넘치는 애정이 화폭 위에 만개한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파블로 피카소가 평생이 걸려 터득했다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득한 것일지도.
“그림에는 정해진 틀이 없어요.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구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칸막이 안에 가둘 필요가 있어요? 흥이 나면 주변 재료를 활용해 떠오르는 대로 그리면 되지. 난 재료도 가리지 않고 써요. 때론 밥 상보도 훌륭한 화폭이 되는 거고, 빗자루나 주걱도 붓이 될 수 있거든요. 한지도 써보고 먹도 써보고, 생각의 자유, 재료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그림에 몰입하다 보면 가끔씩 그림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다시 봐도 좋아. 힘이 느껴지거든.”

그의 그림은 잔잔하면서도 격정이 넘치고, 고요하면서도 생기가 감돈다. 예순아홉의 화가가 뿜어내는 열정이 이토록 찬란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평생 그림과 함께 해왔다 해도,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한 건 공직에서 물러난 최근 몇 년이니 그 성취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요즘엔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에 쏟아부어요.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 쉬는 시간도 별로 없어요. 그림 자체가 나에겐 ‘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공직에 있을 때도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어요. 복잡한 심사가 맺힌데 없이 술술 풀려나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니 그림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Bonne의 Winery’, 53×45.5cm, 캔버스에 유채, 1996.

‘나다움’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 이 같은 마음의 즐거움과 행복은 고스란히 화폭으로 옮겨졌다. 그의 그림은 곧 그 자신인 까닭에 그의 ‘꾸밈 없는 내면의 기록’엔 한 치의 어둠과 고뇌도 깃들 구석이 없다. 그림뿐 아니라 시도 쓰고 음악도 즐기는 그의 사대부적 풍류와 예술적 소양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 외엔.
“시, 음악, 그림은 하나로 통하는 것 같아요. 내 그림 중엔 ‘내 어릴 때 물속에 첨벙 뛰어들어가 고요히 놀고 있는 물고기를 놀라게 한 버릇이 어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감회를 한쪽에 써넣은 작품도 있고, 라 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영의 파도 소리, 뱃고동 소리, 갈매기 소리로 형상화한 것도 있어요. 그림이 곧 시이고, 음악인 셈이죠.”
물론 늘 행복한 시절만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론 욕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소란스러웠다. 열심히 그렸지만, 한 작품도 완성하지 못한 적도 많다. “그림은 나를 비우는 과정인 것 같아요. 욕심 없이 비워야만 비로소 채워지는 거니까. 욕심 때문에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모두 끌어안고 있던 시절엔 늘 틀 안에 갇힌 것처럼 갑갑했어요. 마음의 감옥이 나를 놓아주질 않았죠. 그때는 제아무리 좋은 것도 채우기만 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몰랐어요.” 비우고 버리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에 좋은 기운이 차오르고,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겸허해졌다는 화가의 마지막 꿈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 물었더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늘 지금처럼 그림에 매진하는 것”이란다. 그의 그림만큼이나 솔직하고 소박한 꿈이다.

“아마 자기 그림에 만족하는 화가는 없을 거예요. 매번 아쉽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서죠.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못생긴 그림 또한 내 모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우고 없애기보다 넉넉하게 감싸 안는 여유가 생긴 거죠. 결국 그림이란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거고,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는 거니까 한 작품이라도 나다운 게 나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욕심 없이, 꾸밈 없이 그리다 보면 언젠간 나다운 게 하나쯤은 나오겠죠.”

글 최혜정 | 사진 이명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