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관에서 전시 중인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씨의 ‘거시기 머시기, 것이기 멋이기’.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거시기, 머시기’라는 주제처럼 보편적인 ‘것이기’와 특별하고 창의적인 ‘멋이기’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보다 직접적인 역할을 고민한다. 전시는 디자인의 산업화에 초점을 두면서 상품화로 연결하는 개발을 과감하게 시도해 디자인이 경제적 부가가치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강조한다. 또 디자인 역할을 환기하는 공공 디자인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확대했다. 선비들의 땅, 문학과 시와 풍류의 고을, 민주와 인권을 주창하는 뜨거운 열정의 도시 광주가 디자인 도시라는 수식어까지 얻는 것이기도 하다. 11월 3일까지 59일간 열리는 이번 전시는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의재미술관이 그 무대다.
전시의 총감독은 <행복>의 발행인이기도 한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가 맡았다. 총 20개국에서 3백28명이 참여했으며, 본 전시를 비롯해 장외 전시, 국제 학술 회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 광주 전역에 6백여 점의 ‘디자인’ 잔칫상이 차려졌다. 주제관에 들어서면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씨의 작품이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그는 <우리문화박물지>(이어령 지음, 디자인하우스)에 실린 64개 사물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 DNA 중 옛 생활용품을 오브제로 설치물을 디자인했다. 주제관을 시작으로 디자인과 디지털, LED 컬러 테라피를 전시하는 제1전시실, 착한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제2전시실, 아세안 11개국 가구의 원형과 현대의 디자인을 모은 제3전시실, 사업 디자인 아트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는 제4전시실, 광주를 모티프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제5전시실로 구성했으며, 전시관은 건물 내 야외 브리지를 통해 동선의 단절 없이 이어진다.
다섯 개의 전시관 각각의 전시 구역을 천으로 블라인드처럼 조닝zoning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 패브릭은 전시가 끝난 후 업사이클링 디자인 상품으로 재생산할 계획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소비하지 않으려는 고민을 엿 볼 수 있다. 대중과 디자인 사이의 통로를 만들고자 한 2013 광주디자인 비엔날레에서 <행복>이 주목한 열 가지 전시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밭도 예쁠 수 있다 밭을 디자인하다
비엔날레 전시관 입구 앞은 회색빛 콘크리트 광장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실제 농사를 짓는 ‘농사짓는 건축가’인 그는 이 무無의 공간을 나비와 벌이 모이는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팔레트를 사용해 농부 스튜디오와 구조물을 세운 그는 폐천막으로 금귤나무 화분을 만들고 식재료 식물을 재배하는 키친 가든, 허브 가든 등을 꾸몄다. 곤충이 싫어하는 꽃인 마리골드를 심어 자연 방충이 되도록 했고, 배추 새싹에 플라스틱 페트병과 유리 뚜껑을 덮어 온실효과를 냈다.
아이가 자연과 자연스레 친근해질 수 있는 키즈 가든, 수확한 농작물과 함께 작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팜 파티 공간, 하늘소나 무당벌레처럼 이익충이 머물 수 있는 벅스 호텔과 나비 집 등 식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배려가 돋보이는 최시영 씨의 가든 디자인은 밭의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플랜팅은 오가든스의 오경아 대표가 맡았으며, 레스토랑 라프레스코 대표이자 천연 발효빵 연구자인 이영환 제과기능장이 가상의 베이커리인 ‘농부의 빵’을 함께 전시한다.
1 아이를 위한 키즈 가든.
2 수확한 농작물을 보면서 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
3, 4 콘크리트 광장에 팔레트를 쌓아 만든 정원과 다양한 식재료가 자라는 키친 가든.
건축가 최시영 씨 나누고 싶은 디자인 “경기도에서 실제로 밭농사를 짓고 있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밭을 일구던 경험이 실제 가든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사람들이 “밭을 디자인한다고요?” 하고 의아해하더군요. 도시에서 텃밭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귀촌이나 귀농을 통해 밭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 밭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이는 드물어요. 밭을 가꾸는 일을 즐거움보다는 먹거리 투쟁이나 노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문화를 바꾸고 싶고, 변화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밭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예쁜 취미를 갖는 것과 같거든요. 저의 가든 디자인을 보고 ‘아,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우리 남편한테도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면 전 만족합니다. 가든 디자인의 지혜를 사회와 공유하고 싶어요.” |
업사이클링의 미래 어뉴디자인
빗자루가 거실 분위기를 완성하는 스탠드 조명등(빗자루)이 되고, 학교 수업 시간에서나 보던 슬라이드 트레이가 세련된 감각의 테이블 무드 등(피에로)으로 탈바꿈했다. 버려진 일상용품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해 디자인 제품으로 완성한 주인공은 디자이너 양영완 씨.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프로덕트 디자인 전공 교수인 그는 제품을 해체하고 재가공하는 통상적 업사이클링이 아닌, 물건 자체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제품의 주체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전시 제품을 보면 조악하거나 어설픈 느낌이 없다. 구매 욕구가 생길 만큼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어뉴aNew’ 생활용품을 꼭 만나보시길. 그의 디자인 철학과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도 함께 볼 수 있다.
1 페트병을 활용한 컵 시리즈, ‘PET 파티’.
2 유리 소주잔과 포크, 금속 소재의 호스 밴드를 이용해 만든 촛대.
전통의 현대화 동양화 주제 공간 디자인
물과 달, 바람, 산수가 공존하는 공간은 실내・외 경계가 모호하다. 동양화 한 점이 떠오르는 이 매력적인 공간은 모노콜렉션 대표 장응복 씨, 공간심재 대표 이규석 씨, 작가 허은경 씨, 우리 옷 디자이너 배영진 씨가 함께 완성한 부티크 호텔. 음양오행을 기본으로 한 조화로운 삶을 호텔이라는 휴식 공간으로 재현한 것. ‘ㄷ’자 형태의 한옥 구조를 모티프로 했으며 게스트룸, 리셉션 공간인 대청, 부엌, 카페 라운지 등 각각의 공간에 맞게 꾸몄다. 개성 있는 공간 전문가 네 명이 완성한 이번 전시는 호텔이 가진 ‘휴식’이라는 키워드가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만났을 때 뿜어내는 심미적 상승 효과를 보여준다.
공간 디자이너 이규석 씨가 공간 전문가 세 명과 협업으로 완성한 ‘진풍유기(대청)’.
공간 디자이너 이규석 씨 자연의 기를 끌어오다 “대청마루는 한옥의 심장부예요.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죠. 영상 디자이너 사이먼 몰리Simon Morley의 ‘달의 궁전’ 양쪽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산만폭동도’를 벽면 전체에 채워 외부의 기를 내부로 끌어들이려 노력했습니다. 리셉션 공간에 속하는 이곳은 정선의 그림처럼 물과 바람이 주요 테마입니다. 달빛이 비추는 테이블 위에는 자작하게 물결이 흘러 실제로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각기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휴식과 치유의 자리입니다. 개인적으로 광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풍류와 문학, 맛과 사람의 정이 합일을 이루는 광주는 제 고향이자, 그리움의 대상이지요. 그래서 항상 광주를 알리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상의 예술화 예술 같은 가구
기업과 미술 기관, 개인 컬렉터를 위한 아트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는 강희경 씨의 기획 컬렉션으로 벤저민 롤린스 콜드웰, 마티아스 벵그트손, 젠스 프라트, 레미&베인하위전, 톰 프라이스, 최병훈, 노일훈 씨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의 각기 다른 개성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가구의 소재. 덴마크 작가 마티아스 벵그트손은 컴퓨터 레이저 방식을 사용해 수평 방향으로 자른 알루미늄으로 의자를 만들었다. 페트병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만든 벤저민 롤린스 콜드웰의 의자도 흥미롭다. 버려진 잡지 조각을 분쇄한 종이를 압축해 디자인 스툴을 만든 이탈리아 출신의 젠스 프라트의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1 톰 프라이스의 ‘녹여서 만든 의자’.
2 마티아스 벵그트손의 ‘알루미늄 슬라이스 체어’.
3 젠스 프라트의 ‘종이로 만든 벤치’.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KDM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후 변화가 늘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친환경적 삶을 위한 ‘업사이클링 디자인’은 가장 필수적인 디자이너의 역할처럼 보인다. KDM(Korea Design Membership)의 대학생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향수’라는 대주제로 진행한 업사이클링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업사이클링의 개념과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시계로 탈바꿈한 자동차 계기판(데쉬보락), 펠트 자투리로 만든 자연 가습기(김태진 씨), 추억이나 생각을 담은 메모지를 넣은 램프(대구 경북디자인센터) 등 대학생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선배와 후배 디자이너가 각각 ‘멘토’와 ‘멘티’로서 유기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1 폐차의 계기판을 재활용한 시계는 김준영, 전민성, 심하은 씨의 작품.
2 대학생 디자이너들의 업사이클링 작품들.
식당과 디자인의 만남 광주 맛집 테이블 세팅
소문난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광주에 특별한 상차림이 더해진다면,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있을까? 맛있는 도시 광주를 더욱 맛있게 만들기 위해 전문가 다섯 명이 상차림을 제안했다. 조은숙 아트&라이프스타일 대표 조은숙 씨는 광주 무각사의 점심 공양을 여백과 비움이 있는 정갈한 소반 차림으로 제안했다. 신경옥작업실 대표 신경옥 씨는 ‘술과 음식을 통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고 말한 황톳길의 상차림을 소박한 옹기로 표현했다. 술과 안주로 풍류를 즐기는 광주 시민을 위한 상차림이다. 광주의 대표 음식인 육전 전문점, 대광식당의 상차림은 품 서울 대표인 노영희 씨가 맡았다. 손님상에서 바로 전을 부치는 것을 고려해 무쇠로 바 테이블을 만들었다. 육전과 보리굴비로 유명한 식당 연화의 상차림은 SK F&C 이사 김선경 씨 작품. 레스토랑 오늘의 유기그릇으로 보리굴비 잔칫상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대담 미술관장 정희남 씨는 음식과 술을 직접 만들고 빚으며 남도 전통 한정식을 내는 귀향정의 상차림을 맡았다.
*‘광주 맛집 테이블 세팅’ 전시에 소개한 레스토랑 다섯 곳의 정보는 이어지는 ‘광주 맛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노영희 씨가 제안한 대광식당의 상차림.
2 신경옥 씨는 황톳길의 상차림을 소박한 옹기로 표현했다.
소재의 한계를 넘다 대나무로 만든 벤치
옛 선인들은 대나무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길 정도로 친숙하지만, 내구성이 약해 가구 소재로는 한계가 있는 편. 이런 소재적 한계를 문종훈, 조병주, 최도영 디자이너가 가공 방식의 현대화와 디자인으로 극복해 벤치를 만들었다. 대량생산하기 위한 표준화 작업을 위해 일정한 두께와 너비로 재단했고, 구조를 이루는 부분은 가공한 금속으로 구조적 약점을 보완했다. 조형적 아름다움과 사용자를 위한 가구의 기능을 함께 고려해 만든 벤치는 전시 기간 동안 직접 만져보고 앉을 수 있다.
1 대나무의 곡선을 살린 문종훈 작가의 벤치 ‘언덕’.
2 쿠션으로 실용적 기능을 더한 최도영 작가의 ‘흐름’.
생활용품의 현대화 밥솥과 자전거의 진화
한국인에게 밥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생활의 필수품. 또한 자전거는 가장 대중적 이동 수단이다. 이 두 가지 디자인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병렬 구도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은 우리 삶의 진화다. 1817년에 탄생한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부터 전기 자전거까지 소재와 기능, 개념의 확장을 볼 수 있다. 가마솥에서 전기밥솥에 이르기까지 우리 집 역사와 함께한 밥솥의 만 남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 밥솥에서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와의 협업 작품, 광주 은혜학교와 서울 대영학교 장애 학우들의 그림으로 채운 <그로잉 드림스Growing Dreams> 전시도 함께 진행한다. 인터그램 그래픽스 대표 안동민 씨가 기획했다.
1 밥솥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아티스트의 작품들.
2 밥솥과 자전거의 디자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히스토리 월.
광주 시민 1천 명의 참여 프로젝트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
수백 개의 수틀로 이뤄진 샹들리에는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씨의 작품. 그는 광주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거대한 시민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획을 비롯해 도안 작업, 수틀 키트 제작과 설치는 서영희 씨가 도맡았고 광주 현지에서 리서치를 하고 수틀을 나누고 다시 거둬들이는 일은 다문화 사회적 기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대표 양용 씨가 맡았다. “광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광주 시민 1천 명에게 했고, 가장 많이 나온 무등산을 비롯해 수박, 5·18 민주화 운동, 김대중 전 대통령, 정情 등 많이 나온 단어 스무 개를 뽑았다.‘수를 놓는’ 과정을 통해 광주 시민으로서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기를!
광주 시민 1천 명이 참여해 완성한 여섯 개의 수틀 샹들리에.
사회적 기업가 양용 씨 광주 시민의 마음을 읽다 “ ‘이거 하면 돈을 주나요?’ ‘이걸 왜 해요?’ 하는 서운한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이 도안을 직접 그려 수를 놓아 보내기도 하고, 수틀 키트를 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죠. 설문 조사를 하고 키워드를 정리했을 때 참 놀랐습니다. 무등산이 1위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광주 시민이 이렇게 애국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광주에서 태어난 광주 시민으로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정情’이에요. ‘정’이야말로 광주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투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우러나오는 따스한 정이 많아요. 힘들고 고되기도 했지만, 광주 시민이 한마음으로 꽃을 피우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낯선 도시의 디자인 호주ㆍ뉴질랜드
아세안 국가 11개국이 참여한 국제 관 전시에서 호주·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현대 디자인은 가장 낯선 경험이었다. 호주의 굿 디자인 대표이자 차기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의 회장인 브랜던 기언Brandon Gien이 기획을 맡았다. 전시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호주 국제 디자인상과 뉴질랜드 베스트 디자인 상을 수상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디자인 제품들을 보았을 때 ‘혁신’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건강 산업과 농업, 레저와 의학 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수준 높은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 3 네오 디자인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호주·뉴질랜드관의 작품들.
2 호주의 굿 디자인 대표 브랜던 기언 이 기획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