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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클리닉-서울수면센타 한진규 원장 숙면의 묘약 걱정 일기
잠이 오지 않고, 자고 일어나도 피로를 떼낼 수 없다. 그래서 “잠을 못 자서 그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미국 국립수면재단과 서울수면센타의 한진규 원장이 숙면의 묘약으로 걱정 일기 쓰기를 권한다.


“수면을 방해하는 걱정과 불안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신체적 걱정과 불안, 정신적 걱정과 불안이죠. 만약 내가 입을 벌리고 자면 몸과 뇌가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또 입 벌리고 자?’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투덜대면서 몸 자체가 걱정하는 것이죠. 이처럼 원인이 다양한 신체적 불안은 수면 검사를 거쳐 의사의 진단과 치료로 해결하죠. 그렇지만 정신적 걱정과 불안이 남아 있으면 또다시 잠을 자지 못할 수 있어요. 이때 일기를 쓰면 걱정과 불안을 해결하는 데 대단히 도움이 됩니다.”

서울수면센타의 전문의이자 미국 수면학회 회원인 한진규 원장은 걱정의 악순환을 제어하기 위한 수면 인지 교육의 한 방법으로 걱정 일기 쓰기를 권장한다. 가령 회사에서 갑자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이 걱정과 불안으로 며칠 못 자면 수면 리듬이 깨져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이전만큼 잘 자기 힘들다. 이때 ‘며칠 잠을 설친것쯤 아무 일도 아니야’ 하고 무시하고 안정을 취해 원래 리듬을 되찾으면 정상적인 수면 사이클을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왜 잠이 안 오지?’라고 걱정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잠 걱정으로 전이된다. 약을 먹을까, 그 약은 수면제일까, 수면제는 중독된다던데… 등 걱정의 주제만 바뀔 뿐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숙면은 더 멀어지고 수면 리듬은 계속 깨져 마침내 수면을 ‘잃는’ 진짜 문제에 빠진다. 이런 걱정의 악순환을 끊고 긍정의 힘을 키우는데 잘 듣는 약이 ‘걱정 일기 쓰기’로, 미국은 오래 전부터 다각적 연구를 진행해 일반인에게도 걱정 일기 쓰기 치료법을 적용한다.

“걱정 일기 쓰기는 여느 일기 쓰기와 다릅니다. 단기 목표가 확실하고 비용과 시간 대비 효율적인 치료 방법이지요. 일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걱정의 자기 인식 차원에서 날짜를 쓰고 하루에 한 가지라도 그날의 걱정, 아주 사소한 걱정을 꾸준히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다 끝내지 못한 원고부터 주말의 비 소식, 부모의 건강, 이번 여름휴가 계획, 내년 이사 문제 등 마치 온 세상이 걱정하기 대회를 하듯 매일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다. 실상이 이런데 걱정 일기장이 스케치북 사이즈라 한들 이 많은 걱정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일기장의 첫 페이지에는 평생 걱정 칸을 만드세요. 무엇을 하고 살지, 가까운 분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든지 하는 걱정을 쓰는 칸이죠. 그다음 페이지부터는 60년 뒤 걱정, 10년 단위의 걱정, 그다음에는 내년 걱정, 6개월 뒤 걱정, 다음 달 걱정에 할애하세요. 일기장의 앞부분에 여러 걱정을 다 써놓았으니 이제부터는 날짜를 쓰며 매일 걱정만 적을 차례입니다. 보통 인류 의 평화나 지구 온난화를 매일 걱정하지는 안잖아요. 걱정을 써보면 매일 뻔해요. 그걸 인식 해야 하죠. 걱정 일기 옆에 ‘합리적인 대안’ 칸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생각을 달리하면 우리의 정서도 따라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걱정 일기를 매일 쓰다 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보이고 특별히 답이 없는 문제도 보인다. 해결책을 찾는 순간 걱정이 사라지고, 적어보니 낯뜨거운 소소한 걱정은 아예 무시해버리고, 써도 써도 뾰족한 답이 없는 문제는 ‘그냥 받 아들이자’ 하고 체념하게 된다. 일기장 앞부분에 이미 큰 덩어리를 떼어놓았고, 매일 작은 덩어리를 덜어내니 날이 갈수록 걱정 일기에 쓸 것이 없다.

서울수면센타의 수면 인지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걱정을 쓴 다음 그에 따른 불안감을 스스로 판단해 점수로 적게 한다. 그리고 걱정 일기 옆에 만든 합리적인 대안 칸에는 각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을 쓰고 이때 예상되는 점수도 적는다. ‘생각을 달리하니 불안감이 7점에서 4점으로 떨어지네’라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치료법으로, 이 때 행복 일기를 곁들이면 걱정 일기의 치유 효과가 배가된다. 일기장의 왼쪽 면에 걱정 일기를, 오른쪽 면에 행복 일기를 배치해 두 일기를 함께 쓰는 방식이다.

“행복 일기에는 그날그날 오감으로 느낀 행복감을 적어보세요. 예를 들면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 우리 아이의 얼굴을 만질 때,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 남편의 손을 꽉 잡았을 때 행복했다’라고 쓰는 겁니다. 오감으로 느낀 소소한 행복을 일기로 쓰면 일상에 대한 감사가 늘어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긍정하고 감사하는 훈련이 되면서 자연스레 걱정 일기 칸에 쓸 게 줄어들지요.”

정리해보면, 걱정 일기는 걱정이 기질이나 체질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어 긍정적 사고를 증가시키는 일종의 ‘훈련’이다. 가벼운 노트 한 권, 손에 맞는 펜한 자루만 있으면 되는 아주 간편한 훈련. 하지만 그 효과는 매우 뛰어나 수면 장애 요인의 80%를 차지하는 걱정과 불안이 해소되고, 긍정이라는 내적 질서가 회복되며, 몇몇 연구에서는 신체의 면역 체계도 향상된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수면제보다 유용한, 부작용과 불편함이 없는 걱정 일기 쓰기. 그렇다고 걱정 일기장을 채우기 위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매일 꾸준히 일기 쓰기로 걱정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자신만의 긍정 기술을 키워나가면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잠드는 행복한 사람의 범주에 천천히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

“괜찮아. 7시 30분에 걱정할게!”
수면에 도움을 주는 걱정 일기라고 해서 꼭 자기 직전에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중 언제라도 상관없지만, 잠들기 직전에 걱정 일기를 쓰면 오히려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잠자기 2~3시간 전에 하루를 정리하며 쓰는 것이 좋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30분~1시간 정도 ‘걱정 시간’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그 시간에 걱정 일기를 쓰는 것도 괜찮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24시간 걱정하고 다른 생각과 걱정이 종일 뒤섞인 경우가 많다. 이때 생각의 질서를 잡으려면, 예를 들어 저녁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를 걱정하는 시간으로 정한 뒤, 걱정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나중에 7시 반에 걱정할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일에 집중할래”라며 미루면 된다. 그리고 7시 반, 이때는 조용히 앉아서 오직 걱정만 한다. 이렇게 막상 걱정하려고 들면 30분도 할 만한 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을 통찰하게 된다. “나는 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었네”라는 신기한 통찰!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