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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기울여 들어보니] 연극 연출가 오태석 씨 서른다섯 청년에 머문 인생극
냇가에 징검다리 돌이 놓였다. 다리를 드느라 힘쓰고 돌에 겨냥해서 발을 디디고 뛰고 즐거우며, 원하는 곳에 가는 건 당신이다. 징검다리 돌은 아무 재미가 없다. 누군가 건너주어야 행복하다. 이게 연극이고 인생이다. 그래서 좋은 연극은 관객의 역할이 6할이 넘는다. 한국 연극계의 큰 어른 오태석 감독의 이야기다.


‘연극은 상상력으로 하는 거니까 조건은 조건으로 받아들여야지. 갈등은 무슨.’ 이 생각으로 그는 평생 연극만 했다. 자신이 만든 행복한 허구의 세계에 살 수 있기에 기초 예술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도, 삶의 조건이 팍팍해도 연극만 생각하면 행복했다.


“극을 재미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연출해야 하나요?” “그런 요소를 찾으면 되지. 우리 전통 안에 다 들어 있어. 판소리 창자는 침 닦는 수건과 부채 하나만 들었는데, 이 부채가 이 도령도 되었다 죽일 놈도 되고 사또도 되었다 향단이도 되는 거지. 그런데 희한하게 관객이 다 알아듣고 웃어. 이게 ‘생략’이지.”

생략 모든 걸 설명하려 하지 말라 우연히 한 초등학생의 블로그에서 “토요문화학교의 강연자로 나선 오태석 선생님이 다음 주 숙제로 생략, 비약, 의외성, 즉흥성이 들어간 사건을 써 오라는 숙제를 냈다”는 글을 보았다. 강의 주제는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 쓰기’로, 땅의 기운을 받으려고 맨발로 강단에 오른 선생님이 재미있는 연극의 네 요소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이는 무얼 적었을까? 요즘 은근히 지루해진 내 인생에 ‘생략, 비약, 의외성, 즉흥성’을 더하면 사는 게 한바탕 신명 나게 변화할까? 그를 만나 들어보고 싶었다. 칠순이 넘도록 지독히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비평가들을 일제히 기립시킨 맨발의 선생님을.
“어떤 연극 평론가가 선생님을 뛰어난 리얼리스트, 죽음과 삶을 성찰하는 몽상가, 정신분석가, 철학가, 이 모든 것을 다 넘나드는 어릿광대라고 표현했다지요. 이 많은 수식어 중 무엇을 생략하고 싶으신가요?” “연극하는 분들은 대체로 서른다섯쯤 되면 다른 일을 택해야 해. 남처럼 퐁요롭게 살지 못하고 고생만 하니까 (박희순, 유해진, 손병호 씨 등 현재 영화계에서 연기파로 평가받는 배우들이 그의 극단 출신이다). 하지만 나는 해마다 그 정도 연령에 멈추어 있으니까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겠지. 그러니 나는 서른다섯 근처에 머문 사람? 지진아지 뭐. 흐흐.” 고희를 넘겨 자신을 낮추며 머리를 긁적이는 이 사람은 극단 목화의 대표, 국립극장의 예술 감독, 서울예술대학교 석좌 교수, 교수들과 제자들이 78편의 대본을 16권의 전집으로 엮어 헌정한, 그래서 한국 사회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 된 오태석 씨다.
연극을 쓰고 연극을 하고 연극을 품고 연극에 바친 인생. 그 장면들을 상상해보느라 평소 개점휴업 중인 좌뇌가 모처럼 회전을 시작한다. “좋은 연극은 관객의 쓰지 않는 머리를 회전시키지. 생략과 비약을 해도 줄거리를 따라온 관객이 이미 전지전능해져 그 부분을 메울 수 있어. 따라서 관객은 생략과 비약이 많을수록 더 즐거운 연극을 보는 거야”라는 그의 설명처럼 좋은 연극은 다 설명하고 다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다. 때론 생략과 비약이 지루한 설명보다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뜻. 생략을 주고 또 받으니 극이 재미있다. 혹시 나는 필요 이상의 설명으로 주변 사람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닐까? 적절한 생략이 호감을 이끈다. 이 연출법을 배워 ‘관계’라는 인생극 극본을 수정해야겠다.


국립국악원 단원들과 공연하는 <아리랑>의 연습 장면. 설명하고 장단 맞추고 뛰어나가고 덩실거리다 다시 대본을 보며, 배우들은 쉬어도 맨발의 감독은 열정에 쉼표가 없다.


비약 결과를 향해 내달리지 말라 “연극의 어떤 매력 때문에 고희가 넘게 지진아로 살았나요?” “연극은 허구의 세계야. 실제 세계에는 한국전쟁 같은 전쟁이 나고 지금도 터키에선 난리지만, 허구의 세계에선 실제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과 평화로운 것을 다 해볼 수 있어. 이번에 공연하는 <아리랑>(6월 26~3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도 2018년 평창 올림픽이 열릴 때 남북한이 통일됐다 고 가정하는 연극이야. 60년 넘게 어디서 굴러온지 모르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고통받았잖아. 언제 해결될지 몰라서 답답하니까, 허구의 세계에서 통일을 해보는 거지.” 그가 열한 살 되던 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정부 요직에 있던 부친은 북으로 끌려갔고, 어린 아들은 서울에서 충남 서천군의 아룽구지까지 걸어서 피란을 가야 했다. 기존 질서가 한 번에 무너지는 걸 보면서,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유희적 세계관이 어린 그에게 스며들었다. “내가 쓴 우주는 변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좋아. 평화로 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다 해볼 수 있어. 그동안 쓴 극본이 70여 편이고 책으로는 16권인데, 내가 뒈져도 그 세계는 변하지 않잖아.”
아버지 없는 피란 생활의 다음 장면은 연세대 철학과 입학. 지금껏 그의 인생사를 본 관객은 이제 그가 입신양명해 뒤집힌 세상을 바로잡는 호탕한 결말을 기다린다. 하지만 장면은 50여 년 동안 ‘허구의 세상, 즉 연극’ 주변에서 멈췄는데, 이것이 연극의 재미를 위한 또 다른 요소, ‘비약’이다. “어떻게 연극을 시작했나요?” ”대학 1학년 때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가정교사를 했어. 한창 술 처먹을 소중한 시간을 돈 버는 데 바치니 괴로웠지.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학교에서 먹고 자려는데,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보여 물었더니 연희극예술연구회라고 연극을 한대. 저 자식들한테 끼면 담배하고 술은 얻어먹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희곡이 무언지 연극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때 알게 됐지.”

그즈음 명동 국립극장의 시민예술제 희곡 공모에 거액의 상금이 걸렸다. 생계를 위해 마감 전날 급히 쓴 희곡 <영광>을 응모했는데, 그게 덜컥 당선된 거다. 급한 대로 대학생들을 모아 공연을 하면서 ‘내가 믿을 수 있는 허구의 세계’를 더 만들어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극본을 썼고 연출을 했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국립극장 장막극에도 당선되었다.
또 다른 비약은 남산에 들어선 드라마센터에서 있었다. ‘전통 발견의 교과서’라고 불리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도 우리 식으로 바꾸어 파란 눈의 연극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그이지만, 사실 청년 시절엔 판소리나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한국 근대기 연극계를 이끌던 유치진 선생의 부름으로 드라마센터에서 작품을 연출하던 그에게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의 탄생 3백50주년 기념 연극제를 맞아 유치진 선생의 ‘어명’이 떨어졌다.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가 하인이 양반을 골탕 먹이는 우리 탈춤과 비슷하니 우리 식으로 번안해 공연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오네스코니 베케트니 하는 서양 작가들이 좋았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했지. 그런데 어느새 그게 내 몸에 안개비처럼 밴 거야. 우리 선조들이 해학에서 특히 잘 구사한 것, 즉 ‘생략, 비약, 즉흥성, 의외성’이라는 ‘네 형제’를 그때 만났지. 그 뒤로 <초본>을 쓰고 <태>를 썼어.”
뻔한 결말로 곧장 달려가지 않고 해학의 시간을 연장하면, 관객의 긴장과 재미는 배가되고 새로운 재밋거리를 발견한다. 인생을 사는 방법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론과 성과로 달려가면서 과정의 재미를 놓쳐 인생의 줄거리가 따분해진다. 아마도 재미있는 순간을 충분히 연장하지 못해 행복한 기억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일 터. 인생이 즐거우려면 때때로 비약이 필요하다. 비약은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다는 교훈을 얻는다.


<아리랑> 연습을 마치고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 기둥에 기대어 서서. 오른쪽 오태석 감독은 겨우 짬을 내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즉흥성 짜인 대로만 움직이지 말라 그가 한국적인 것에 더욱 매료된 건 한국에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문예진흥원에서 보내준 뉴욕 연수에서였다고 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서양 연극을 실컷 보고 나니, 갑자기 우리 집 곳간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됐지. 한글과 전통문화는 정말 굉장한 것이었어. 빨리 한국에 가서 그 굉장한 곳간을 열어보고 싶었지. 그래서 1년을 다 채우지도 않고 7개월 만에 그냥 와버렸어.”
즉시 돌아온 그는 생략, 비약, 즉흥성, 의외성을 도입해 극을 재구성하고, 배우들은 구어체를 사용해 3ㆍ4조나 4ㆍ4조로 대사를 하게 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박석고개 얼른너머 춘향집에 다다르니 비나이다 비나이다, 고려 시가부터 현대의 김소월까지 우리말은 운문화하기 좋아서 배우가 대사를 힘있게 던질 수 있어. 말 자체가 신명 나지. 그러니 말 잘하는 사람 또한 신명 나지.” 오태석식 연출에는 사투리가 자주 등장한다. 연극은 관객과의 충돌. 배우가 사투리를 쓰면 무대와 관객 사이의 긴장에 숨구멍이 뚫려 관객이 좀 더 빨리 편안해진다. 텔레비전의 강요로 누구나 표준어를 쓰는 게 못마땅해서 사라져가는 사투리를 채록하려고 전국을 다니기도 했다. 이제는 글씨를 봐도 정확히 발음할 수조차 없게 된 사투리를 보전하려면, 캐비닛에 갇힐 테이프에 사투리를 담을 게 아니라 배우가 무대에서 ‘생’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 다. 무대는 라이브,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그는 공연 때마다 자막기로 배우의 대사를 시각화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관객이 눈과 귀로 소중한 우리말을 지각해, 초라하게 구겨진 우리말이 다시금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게 그의 장래 희망이다.

“오태석의 연극은 같은 연극을 세 번 보러 가라는 말이 있어요.” “의도하지 않은 대목에서 관객이 반응할 때가 있어. 앙드레 지드는 이걸 ‘신의 몫’이라고 했지. 분명 수원쯤 가면 관객이 움찔거릴 줄 알았는데 수원 오산에서도 꿈쩍 않고 신탄진에 가니 겨우 허허 웃어. 그런데 신탄진 이후에는 아무것도 깔아놓지 않았는데도 김천에서 폭발, 대구에서 폭발, 마구마구 폭발해. 그러니 누수 공사를 해야지. 예상치 못한 반응은 키워주고 실망스러운 건 보완하고. 그러면 연극이 매일 달라져. 매일 초연이지.” 아홉 시간 동안 판소리를 하는 창자는 힘이 들면 고수에게 괜한 타박을 늘어놓는다. 극이 졸지에 ‘삼천포’로 빠져도 관객은 이 익살스러운 장면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짧은 순간에 비로소 창자가 쉬고 있다는 걸 모르고. 그러다 “쑥대머리로 들어가는디…”라고 내지르면 관객이 다시 극으로 몰려온다. 극의 긴장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즉흥성’이란 이런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서 즉흥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연출자는 관객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매일 수정된 새로운 극을 만들어낸다. 이래서 오태석 씨의 연극은 매일 초연이라는 말이 나온다.
삶에서 즉흥성은 곧 유연성이리라.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돌아가지 않을 때, 바라던 만큼 상대가 반응 해주지 않을 때 즉흥적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즉각적으로 수정해 상대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다면 ‘관계’라는 인생극이 오늘보다 내일, 훨씬 재미있는 장면으로 변하겠지.



의외성 통념을 빗겨가야 멋스럽다 의외로, 우리 전통에서 발견한 ‘오태석의 네 형제’가 가장 떠들 썩하게 빛을 발한 건 우리나라가 아닌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였다. 한국을 방문해 극단 목화의 연극을 본 에든버러 예술 감독의 요청으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우리 전통의 네 형제를 넣어 재구성했다. “우리는 1년도 아닌 상ㆍ하반기로 사는데, 그 예술 감독이 3년을 찾아오더라고. 시간을 들일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지. <템페스트>를 한국적 요소로 완전히 바꾸었는데, ‘현지에서 셰익스피어가 객석에서 본다면 참 편안하게 느꼈을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왔어. 현지 관객들이 우리나라 관객들보다 더 신나게 웃었어. 우리 전통에서 찾은 네 형제가 ‘세계의 언어’라는 사실을 확인한 거지.” 세계의 명극이 경합하는 그곳에서 기존 틀을 뒤엎은 <템페스트>를 본 비평가들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 결과 작품상인 헤럴드 에인절스상까지 수상한 것을 계기로 그는 요즘 젊은이들도 우리 것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 가락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만든 이번 연극 <아리랑>에도 그런 자신감을 담았다. “보내는 아리랑이 아니라 맞이하는 아리랑을 보여줄 거야. 보낼 때 애달프고 아련하지만, 맞이할 때 웃으며 부르는 생기 있는 아리랑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관객들이 ‘아리랑 참 재미있네 좋은 노래네. 진도에서 밀양에서 춘천에서 북한의 해주에서 가사를 바꿔 불러도 그게 다 노래가 되는 게 아리랑이네’라고 느끼며 사랑하게 될 거야.”
친구가 많을 것 같은 그는 친구가 없다. 연습, 학교, 연습… 일과에 노닥거릴 틈이 없고, 긴장을 풀어주는 술도 혼자 마신다. 극본은 보통 안산의 서울예술대학교로 가는 지하철에 앉아 쓴다. 잘 정돈된 방에서는 졸려서 못 쓰고, 지하철에서는 자리를 뺏길까 봐 한 시간 동안 꿈쩍하지 못하니 가장 어려운 부분을 쓰기에 최적이다. 명작은 담배 연기 자욱한 골방에서 탄생하고, 연극쟁이는 밤마다 벗들과 질펀한 술집 순례를 한다고 여긴 뻔한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검박하고 규칙적이고 혼자서도 행복하다. 생각할 때마다 아이처럼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 전쟁으로 세상이 뒤틀리기 전의 어린 오태석이 오버랩된다. 허구의 세상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허구의 세상에서라면 그도 우리도 언제나 지금처럼 변함없이 행복할 수 있을 테니.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박기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