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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의 첼시 플라워 쇼 2013 관람기 백년의 유산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가 2013년 1백 주년을 맞았다. 정원, 원예 쇼가 1백여 년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건 누가 뭐래도 영국 국민 전체가 생활 속에서 정원을 가꾸고 원예를 즐기는 문화에 있다. 도심 속에서도 작지만 자신의 정원을 꾸미고 사는 것을 삶의 최고 문화요, 쾌락이라 여기는 사람들. 이런 정신이 한 세기 이상 이어져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꽃 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2013년 첼시 플라워 쇼 최고의 상인 베스트가든 상을 받은 작품. 영국관절염연구회의 정원으로, 환자들이 관절염 진단을 받고 고통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식물과 동선으로 디자인했다. 식물의 구성이 어떤 정원보다 다채롭고 향기와 촉감까지 느낄 수 있어 심사 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1백 년 전통의 플라워 쇼
첼시 플라워 쇼는 1862년 영국 그레이 터런던 주 중부의 켄싱턴에서 처음 열린 그레이트 스프링 쇼에서 유래했다. 2013년은 첼시 플라워 쇼가 켄싱턴에서 첼시 지역으로 옮긴 지 1백 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올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행사장을 찾는 등 더욱 특별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1913년 첫 번째 플라워 쇼의 포스터를 시작으로 전시장 곳곳에서 1백 년의 역사를 기록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는데, 전통과 혁신을 넘나들며 발전해온 행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매우 의미가 깊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흰색 테니스복만 고집하듯 첼시 플라워 쇼 역시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색채 조각물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각물을 정원 내에 쓸 수는 있지만 색감을 넣어서는 안 되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꽃의 색감이나 조화를 감상해야 할 전시가 자칫조각으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913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플라워 쇼에 참가해온 업체가 있는데, 바로 맥빈의 난초 회사와 블랙모어 앤 런던이라는 곳이다.1951년 설치한 천막을 2000년 조립판식 천막으로 교체하면서 철거한 천막 천으로 7백여 개의 가방과 앞치마, 재킷 등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첼시 플라워 쇼는 단순한 가든 디자인을 선보이는 행사가 아니라 정원이 기업 홍보나 지역, 국가의 관광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영국의 지방 자치 단체인 요크셔는 2014년 ‘투르 드 프랑스’의 개최지가 된 후 세계적 자전거 경주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첼시 플라워 쇼에 참가했다. ‘르 자르뎅 드 요크셔’는 대회의 상징인 자전거 바퀴와 함께 요크셔를 대표하는 축산을 보여주기 위해 산양 조형물로 꾸몄다.


가든 디자인의 패션쇼
첼시 플라워 쇼의 진수는 역시 가든 디자이너들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쇼가든 전시다. 해마다 디자이너 30여 명이 작품을 출품하는데, 올해 관람객이 선정한 최고의 정원으로는 크리스 비어드쇼 디자인의 ‘영국관절염연구회 정원’과 ‘르 자르뎅 드요크셔’의 디자인이 뽑혔다. 영국관절염연구회 정원은 인체를 상징하는 독특한 조각품과 정원의 조화가 남달랐다는 평. 세계적 자전거 경주 대회인 ‘2014년 투르 드 프랑스’의 개최지로 선정된 요크셔의 ‘르 자르뎅 드 요크셔’도 홍보 효과를 얻었다. 첼시 플라워 쇼의 공식 후원사인 M & G 투자 회사는 해마다 디자이너를 선정해 영국의 전통성과 현대의 결합을 보여주는 정원 디자인을 출품하고 있다. 올해는 디자이너 로저 플랫이 1백 년 전 영국인에게 가장 사랑받은 식물부터 현재 가장 인기있는 식물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여주는 정원을 제안했다.

이처럼 첼시 플라워 쇼는 정원 작품의 의미뿐 아니라 스폰서의 의지도 매우 중요한 행사로 꼽힌다. 관절염학회나 암연구센터 등에서는 건강한 몸을 위해 정원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매해 새로운 이론으로 뒷받침해 메달을 수상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의 나라도 정부의 지원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선보이며 국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철저한 스폰서 관리가 쇼를 고품격 박람회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만큼 해마다 양질의 스폰서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더 많은 스폰서가 정원쇼에 관심을 갖게 하는 비결이 된다.


1 B&Q의 후원으로 지니 브롬이 디자인한 ‘Forget-me-not’ 정원. 영국 헤리 왕자가 펼치는 자선 모금 단체인 ‘레소토왕국돕기’를 후원하기 위해 만든 정원이다. 둥근 집과 볼록볼록 심은 식물들은 레소토 왕국의 토속적 모습을 재현한 것.
2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사가 후원한 정원. 올해는 세계적 가든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브래들리 홀을 선정해 일본 정원의 간결함과 단순함을 결합한 모던 잉글리시 가든을 선보였다. 정원을 영국 토종 식물로 채우고 틀을 일본의 젠 스타일로 구현했다.
3 맥주를 만드는 회사인 스토크톤 드릴링의 지원으로 제이미 던스턴이 정원을 디자인했다. 보리 재배 현장을 정원에 접목한 작품. 이처럼 농업 현장도 아름다운 정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자주 등장한다.
4 호주는 해마다 국가 지원으로 첼시 플라워 쇼에 정원을 소개한다. 이번 작품은 필 존슨이 디자인한 정원으로 테마는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 호주 토종 식물로만 구성했고 돌, 물, 바닥은 모두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소재를 사용했다. 쇼가든 부문 베스트가든상을 수상했다.


식물을 디자인하다
쇼의 가장 큰 특징은 가든 디자인이 아닌 ‘식물 디자인’이다. 첼시 플라워 쇼는 식물 디자인을 무엇보다 중시하는데, 어떤 식물을 왜, 어떻게, 어떤 형태와 색감으로 구성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식물을 색감, 형태, 질감 등으로 구분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가미해 선정한 후, 매해 새로운 식물 심기를 시도한다. 단순한 디자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식재의 방식까지 보는것이 첼시 플라워 쇼를 감상하는 포인트. 놀라운 것은 일반 관람객이 디자이너의 디자인 콘셉트를 정확하게 읽고, 새로운 식물을 수첩에 적어갈 정도로 그 수준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눈에 띄는 작품은 베스트가든상을 받은 제임스 바순 디자인의 ‘애프터 파이어After fire’와 일본 전통 다다미방으로 구성한 디자이너 이시하라의 ‘앨코브 가든An alcove garden’이다. 애프터 파이어는 실제로 산불이 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식생을 그대로 가져와 식물이 땅을 어떻게 복원하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정원 디자인의 테마로 삼았다. 불타버린 나무의 잔재와 검게 그을린 땅속에서 초록으로 돋아나는 식물의 색감을 강렬하게 대비시킨 디자인이 신선했다.

디자이너 이시하라는 매년 일본의 전통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각광을 받았다. 올해에는 전통 사상을 강조한 ‘차 마시는 정원’을 테마로 꾸민 작품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어떤 행사가 1백 년 동안 지속했다는 것은 그 역사만으로도 쉽게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정원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관광 목적의 전시 개최에서 벗어나 좀 더 알찬 문화를 이끌어내는 수준 높은 가든 디자인 전시가 간절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1 영국의 정원용품과 아웃도어 리빙 체인점 가운데 하나인 ‘홈베이스’가 후원한 정원으로 조 스위프트가 디자인을 맡았다. 정원 이름은 ‘Sowing the seeds of change’ 로 도시 속의 키친 가든(채소와 과실수를 키우는 정원)을 콘셉트로 잡았다. 도시 환경은 점점 우리를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고, 손수 가꿔 먹는 채소와 과일을 접할 수 없게 만든다. 조 스위프트는 이 정원을 통해 도시의 정원에서도 식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 일본 가든 디자이너 이시하라의 작품으로 아티잔 가든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이시하라는 10년 이상 쇼에 참가하며, 지속적으로 일본식 현대 정원을 선보여 일본 정원이 영국에 뿌리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 프레시 가든 경쟁 부문에서 최고 상인 베스트가든상을 수상한 ‘애프터 파이어’ 정원. ‘영국암연구센터’ 후원으로 제임스 바순이 디자인했다. 산불은 생태계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자연은 모든 것이 사라진 화재 현장에서도 초록의 생명을 다시 틔워낸다. 정원의 시작은 생명이 움트는 데 있고, 이런 자연의 지속적인 재생력을 주제로 삼은 정원이다.
4 첼시 플라워 쇼의 공식 후원사인 M & G 투자 회사의 정원. 올해는 디자이너 로저 플랫이 ‘Window through Time’이라는 디자인 정원을 선보였다. 로저는 첼시 플라워 쇼 1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영국다운 정원 디자인을 구상했다. 


글을 쓴 오경아 씨는 영국 유니버시티 에식스(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에 설립한 가든 디자인 전문 회사 ‘오가든스’의 디자이너로, 전시와 강의 등을 통해 독창적인 가든 디자인을 소개한다. 저서로는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등이 있다.
담당 이지현 기자 | 글 오경아 | 사진 임종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