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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떠나요 산을 오르며 나를 위로하네
봄이 되면 산에 오르고 싶다. 생채기를 견뎌낸 산의 속살이 꽃봉오리 터지듯 퐁퐁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혹독하던 겨우내 온풍이 부는 산을 그리워했다면 산 애호가 네 명이 꼽은 봄날의 산길을 올라보자. 누구나 쉬엄쉬엄 오를 수 있는 코스를 골랐다.


“참 좋지요?” 야간 산행을 감행해 온몸이 서슬처럼 파래져 있는 내게 한 등산객이 말을 건넸다.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한 발짝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밤의 공포가 놀라움으로 변한 것은 그때였다. “여기가 어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자 내 생애 가장 많은 별이 쏟아졌다. 그건 쏟아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늘에 빈틈없이 박힌 수백 아니 수천 개 별이 나를 꼿꼿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축복에 가까운 별빛의 축제. 열아홉 살 네팔에서 처음 경험한 산 위에서의 기적, 그렇게 산은 내게로 왔다. 그 영험하던 밤의 기적을 시작으로 당나귀가 짐을 실어 나르는 산악 마을 푼힐까지 여자 둘이 닷새를 걸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길눈이 어두워 지도에 표시된 위험지역도 알아채지 못하고 꿋꿋이 걸었다. 길을 가다가 등산객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았는지 신나게 떠들어댔다. 나는 그립다.

쏟아지는 햇살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신체가, 땀을 앗아가던 히말라야의 바람이, 속도를 조절하며 길을 안내하던 못생긴 들개가, 착한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과 지독하게 맛이 없던 산닭구이가(근육이 많아 질기기만 했다), 그리고 그림 같던 화려한 산맥의 위용과 그 신비로운 고요가! 이후 주기적으로 산을 찾는 것은 당시 맛본 모든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력이 뛰어난 등산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겠지만….

산을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은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침묵하고, 어떤 이는 예찬하며, 어떤 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건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로 강가푸르나Gangapurna 정상에 오르고 전설의 여성 산악인이라 불리는 남난희 씨도 마찬가지다.
“하긴 에베레스트의 8848m 고지를 오르며 그 숨막힘을 즐거움이라 누가 감히 얘기할 수 있을까? 산은 절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즐거움과 아주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상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 산행에 어떤 목적을 두었을 때 그리고 그 목적이 선명하면 할수록 산은 즐거움과 무관한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악인 남난희 씨의 수필집 <하얀 능선에 서면> 중) 현재 어머니의 삶을 택한 그는 여전히 아이들과 백두대간을 오르며 산을 찾는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등정이 아니라, 행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걷기 예찬론자인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했다”고 말했다. 걷고 오르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에서 지혜를 배운다는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는 산을 언제나 여유 있게 가라고 조언한다.

“산에도 예약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례로 올려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산스러운 산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산은 차근차근 씹으며 음미하면서 올라야 비로소 산의 깊은 경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산행의 기본입니다.”(이시형 박사의 에세이 <이제, 다르게 살아야 한다> 중) 알피니스트도 천천히 간단다. 우리에겐 산이 너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른단다. 쫓기는 일상에선 산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산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산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리라. 하지만 등산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몸이 가장 건강해질 수 있는 곳, 심신을 치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룩한 장소다. 부모 손에 이끌려, 단체 엠티로, 상사가 강요해서, 친목회 나들이로, 등산을 시작한 이유는 제각각 달라도 문득 하늘을 바라보고 싶을 때처럼 산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온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어떠랴. 스님이 포행하듯이 느릿느릿 걸어가자. 걷다가 무릎이 시큰거리면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 가자. 밥풀에 길든 산새가 파드닥거리며 다가오면 눈인사를 나누자. 봄은 산을 오르기에 가장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다.


사진가 손재식 씨 추천
출렁이는 진달래 물결 전남 여수 영취산

남도에서는 어느 산에 봄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오는지 아는가? 바로 전남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영취산이다.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이면 해발 510m의 이 낮은 산에 진달래가 온 능선을 뒤덮는다.
초록 잎사귀보다 분홍 꽃잎이 먼저 피어 솜사탕처럼 군락을 이루는 풍광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영취산은 20여 년 전부터 수도권에 사는 산 애호가들에게 알려져 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 ‘진달래 군락지’로 손꼽힌다. 영취산 초입에 있는 흥국사는 보물인 당우堂宇와 수월관음도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액인 공북루拱北樓 등이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니 등산길에 꼭 한번 들러볼 것. 대웅전 문짝마다 달려 있는 큰 문고리를 만지면 삼악도를 면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영취산은 수도권 사람들에겐 다소 거리가 먼 단점이 있지만, 맑은 날에는 남해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도 드넓게 펼쳐지는 조망을 자랑한다. 누구라도 쉽게 산책하듯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봄 등산길로 제격인 이유다.

TIP 정상 등반을 위한 등산보다 진달래 군락을 감상하며 걷기를! 카메라를 챙겨 갔다면, 역광으로 진달래를 촬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니 참고하자. 북쪽이나 동쪽에서 산을 오르면 된다.
난이도 바위가 적고 나무가 많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추천 코스 및 예상 소요 시간 1코스(약 3시간) 흥국사 → 봉우재 → 영취산 정상(510m) → 상암초등학교 2코스(약 3시간 30분) 예비군 훈련장 → 457m 지점 → 영취산 정상 → 봉우재 → 흥국사 3코스(약 4시간) 중흥초등학교 → 헬기장 → 영취산 정상 → 봉우재 → 시루봉(418m) → 사근치
장비 챙기기 헤드램프는 항상 첫 번째로 챙기는 장비다. 하루쯤 굶고 안 마셔도 견딜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꼭 필요하다. 기후가 나쁘지 않더라도 보온하는 데 꼭 필요한 방풍 재킷을 잊지 말자. 추위엔 눈만 내놓고 머리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인 바라클라바(목출모)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상시에 대비한 식량은 섭취 후 몇 시간이 지나야 소화되는 단백질류보다 쉽게 에너지로 바뀌는 초콜릿 등 당류가 요긴하다.


산악대장 김미곤 씨 추천
비밀스러운 환상 계곡 내장산국립공원 내 입암산

입암산은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곳. 내장산에 오는 등산객 대부분이 서래봉 코스나 백양사 코스를 찾을 뿐, 남창계곡을 따라 이어진 고즈넉한 이곳을 찾는 이는 드물다. 입산로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계곡을 따라 편백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편백 숲 등산로다. 맑은 물소리와 숲이 주는 따스함은 복잡한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그래서 명상하는 마음으로 산을 찾는 이에게 추천한다. 생각이 정리될 즈음엔 입암산성이 모습을 드러내며 시선을 잡는다. 완만한 산성을 걸으면 몸이 자연스레 이완해 고도가 높아져도 쉽게 갓바위에 오를 수 있다. 산 정상에 있는 넓고 평편한 너럭바위도 입암산의 매력이다. 갓바위에서 내려다보면 능선이 멀리 상황봉과 백학봉으로 이어지고, 방장산과 드넓은 호남평야가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줄곧 등산을 하는 나도 이곳에서 종종 힐링 시간을 갖는다.

TIP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계곡에 수량이 풍부하고 울창한 산림이 정상 직전까지 이어져 삼림욕 장소로 일품이다. 특히 가을이 되면, 내장산 부럽지 않은 단풍을 뽐낸다. 갓바위에서 내장산을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환상적이다.
난이도 비교적 평이한 등산로가 4시간가량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마무리 지점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초입길이 완만하다고 체력 안배에 소홀하면 능선 안부에 오르기 전에 지칠 수 있다.
추천 코스 및 예상 소요 시간 종주 코스(약 4시간) 전남대 수련원 → 은선동계곡 → 갓바위(정상) → 북문 → 남문 → 산성골계곡 → 새재 갈림길 → 전남대 수련원
장비 챙기기 중간에 약수터가 없으니 물은 반드시 챙길 것! 중간에 배가 고플 수 있으니 간단한 간식거리도 잊지 말자. 개인적으로 등산복과 등산화, 스틱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항상 챙기고 배낭 속에는 방수 재킷, 장갑, 모자, 방한복, 여벌 옷, 비상약품, 헤드램프가 들어 있다.

<월간 산> 부국장 한필석 씨 추천
가장 먼저 봄을 만나는 곳 제주도 한라산

제주 한라산은 육지에 있는 산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풍광을 자랑한다. 하구벽·오백나한·삼각봉·왕관봉 같은 기암절벽과 산릉을 덮은 나무들, 여기에 산기슭 곳곳에 크고 작은 오름(기생화산)들이 솟구치고, 산자락 끝으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도 바라다보인다. 한라산만이 지닌 독특한 생태적 아름다움은 이곳을 반드시 걸어야 하는 이유다.

TIP 백록담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판악 - 백록담 - 관음사 코스(7~8시간)를, 가벼운 산행과 더불어 한라산다운 독특함과 웅장함, 산자락에 올망졸망 형성된 오름을 조망하려면 윗세오름 코스(3~4시간)를 추천한다. 돈내코 - 남벽 분기점 코스는 적설기에는 길을 찾아 오르기 쉽지 않다.
난이도 성판악에서 정상을 지나 관음사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총 8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한다. 경사가 완만한 길이 이어지는 윗세오름 코스는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추천 코스 및 예상 소요 시간 총 다섯 코스 성판악 → 정상(동릉 정상_4시간 30분), 관음사 → 정상(동릉 정상_4~5시간), 어리목 → 남벽 분기점(3시간), 영실 → 남벽 분기점(2시간 30분), 돈내코 → 남벽 분기점(3시간 30분)
장비 챙기기 4월이라도 한라산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날씨가 매우 심하게 변한다. 따라서 방풍ㆍ방한복은 물론, 방한모와 장갑도 준비하자.
또한 내리막길은 탐방객이 미끄럼을 많이 타 전체적으로 얼음판이 생겨 미끄러우니 아이젠을 꼭 지참한다.

홍천산림청 남혜인 씨 추천
이야기가 흐르는 길 구룡령 옛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구룡령 옛길을 추천한다. 옛 사람들이 한양에 갈 때 이용한 길로 잘 알려진 구룡령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강원도 홍천 명개리에서 양양 갈천리까지 약 6km의 산길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책길 같은 등반로다. 생선을 팔기 위해, 또는 곡식을 거두어 다른 지역에 팔기 위해 고개를 넘던 서민들의 역사와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본이 강점기에 백두대간 허리를 파고들어 55번 국도를 냈고, 이를 위해 일대 주민들을 강제 징집한 슬픈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운영하던 철광소와 케이블카도 인근에 남아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계곡과 맞닿아 있어 숲길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선조들이 걷던 길을 따라 걸으며 온몸으로 향수를 느끼고, 정상에서 장엄하게 뻗은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다.

TIP 오붓한 숲길을 걸으면 갈천리, 묘반쟁이, 솔반쟁이, 횟돌반쟁이, 서서물나들, 영골약수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이어져 지루할 새가 없다.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산길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 또한 걷는 자의 즐거움이 아닐까!
난이도 길이 비교적 평탄하고 경사도 완만해 쉽게 오를 수 있다. 계단이나 돌길 등 보조 시설물을 설치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추천 코스 및 예상 소요 시간 종주 코스(약 4시간) 양양의 갈천분교 → 옛날삭도 → 묘반쟁이 → 솔반쟁이 → 횟돌반쟁이 → 정상 → 서서물나들 방향으로 하산 → 영골약수 → 명지1교
장비 챙기기 쉬운 등반길이지만, 중등산화와 스틱을 챙기길 권한다. 길이 평탄하고 산세가 아름다운 만큼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도 챙길 것. 개인적으로는 손수건을 가져간다. 손목에 묶어 땀을 훔치거나 계곡물에 적셔 목에 감으면 시원하게 산행을 할 수 있고 부상 시 응급처치 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글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