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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전 <마음속의 천국>을 연 이명숙 씨 "저 바라만 봐도 참 좋더라, 우리 부부처럼
스물아홉 살에 의사 월급 몇 달 치를 모아 남관 화백의 작품을 처음 손에 쥐었다. 생애 첫 소장품을 거실 벽에 걸어놓고 애인처럼 애틋하게 바라보곤 했다는 이명숙 씨는 이후 40년간 귀한 인연을 만나는 마음으로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예술적 동지이자 평생의 반려자이던 故 백충현 교수와 함께 채워나간 예술 인생. 그 안에는 작품과 작가를 향한 부부의 온전한 애정이 가득 차 있다.


1
황주리, ‘무제’, oil on canvas, 45×60cm, 1988.
2 살바도르 달리, ‘승마 여인상’, 도자기, 39(원형)×5.5cm, 1970.
3 작자 미상(소련 작가), ‘궁핍’, oil on canvas, 68×79cm, 1992.
4 Georges Bassil, ‘ Flower Lady’, oil on canvas, 77×67cm, 2007.
5 남관, ‘여인’, oil on newspaper, 42×33cm, 1997.
6 이정웅, ‘붓’, oil on koreanpaper, 138×202cm, 2008.
7 인쥔Yin Jun, ‘Crying’, fibre glass, 30×30×60cm, 2007.
8 인쥔Yin Jun, ‘Crying’, oil on canvas, 150×150cm, 2007.

인생이라는 시계에도 봄날의 오후처럼 쉬어 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살아온 이명숙 씨에게는 그 지점이 칠순이었다. 생일을 맞아 그림에 대한 깊은 애정과 혜안으로 그가 40년간 모아온 미술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시는 오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 예화랑에서 하기로 한 후, 거실과 서재 등에 걸려 그의 집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던 미술품을 한 점 한 점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알알이 박힌 작품들이기에 한 점도 소홀할 수 없었다. 여의도에서 ‘이명숙치과의원’의 원장님으로 지낼 당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인사동 화랑 여행을 즐기던 그에게 그림은 속 깊은 친구이자 동료이며 애인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버지 이준 화백의 작품 ‘선회’를 비롯해 작고 작가인 문신, 남관, 이응노, 전혁림 화백과 이청운, 황주리, 곽훈, 천성명 씨 등 한국 화단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 그리고 펑정지에 장샤오강 등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백 교수가 여기에 와 계시겠지요?” 하고 말하는 그에게 이번 전시는 6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시 부제가 ‘어느 컬렉터의 이야기_백충현+이명숙’이다. 전시한 소장품 대 부분이 부부가 함께 컬렉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명숙 씨는 갤러리 입구에 “당신과 나의 열정적이고 달콤했던 삶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이 전시회를 그리운 당신께…”라고 적으며 전시를 남편에게 바쳤다. 2백여 점의 소장품 중 70점이 조명 아래 놓였다.

물감 냄새 풍기던 부산 피란 시절 그는 화가의 딸이다. 우리나라 대표 구상화가인 이준 화백의 장녀로, 일본 오사카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해방 후 정착한 부산에서 아버지가 일본에서 가져온 아끼던 미술 서적을 그의 외할머니가 저울에 달아 팔고, 그림 없는 얇은 종이는 튀김 포장지로 쓰곤 했다고 회상한다. 누구나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의 집은 화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서로 먹고살기 힘든 시절인데, 김환기 화백 부부가 우리 집 다락방에서 살았어요. 아유, 사모님은 그리 고운데 우리 선생님께서는 왜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나 몰라요. 피란 온 화가들이 르네쌍스 다방에 모여 앉아 차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기다려요. 프레임 없이 그림 한 점 벽에 붙여놓고…. 혹시라도 누군가 그림을 사 가면 기분이 걸출하게 좋아져 술 몇 잔 마시는 거지요. 약주를 하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숙아~ 센베이(전병) 사 왔다!’ 하고 들어오셨어요. 매일 밤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과자를 얻어먹곤 했답니다. 대여섯 살이던 저를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다고 참 예뻐하셨어요.”
물감 냄새 솔솔 풍기는 집에서 성장한 그가 남다른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준 화백이 국전 제2회 때 ‘만추’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온 가족이 상경했다. 남보다 두 살 어린 나이에 학교에 입학해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은 영특한 소녀이던 그가 서울대 치대에 입학해 의학의 길을 갔지만, 그림은 언제나 모태 신앙이었다.

스물아홉 살, 생애 첫 컬렉션하다 “우리 딸, 그렇게 행복하니?” 제 돈으로 미술품을 처음 구입한 날,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온 아버지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에게 말했다. 이준 화백은 “잘 샀다. 너, 좀 과용했구나. 하하하.” 농하시면서도 딸의 안목을 칭찬해 주었다. “그래요 아버지, 너무 좋아요.” 화가의 딸이지만 돈을 절약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하는 마음이 아주 기특했으리라.
“ ‘Tres Ancien’이라는 제목의 1965년 작품인데 그냥 마냥 좋았어요.작가이신 남관 선생님이 직접 추천해주셨지요. ‘몇 달 월급을 절약하면 살 수 있겠다’ 하며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고른 작품이에요. 선생님도 이준 화가의 딸이 산다고 하니 좋은 작품을 골라주셨지요. 사색을 하게 만드는 그림이라 주로 서재에 두었습니다.” 남편은 그보다 더 좋아했다. 다른 여인네처럼 옷이나 화장품 등에 사치하지 않고 돈을 모았다가 작품을 산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이후 한 해에 여러 점을 사기도 하고,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이 없으면 몇 년간 구입하지 않기도 했다. 미술품을 컬렉션한다고 하면 으레 부자의 투자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40년간 모은 작품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판적이 없다.

“좋은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마음에 들면 막 갖고 싶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면 그림이 며칠 동안 눈에 아른거리지요. 아직도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모두 살순 없지만, 그래도 여러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곤 합니다.” 가난하지만 실력 있는 작가들의 그림을 구입해 후원하기도 했고, 한 작가를 향한 깊은 믿음으로 시대별 작품을 남몰래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옆에는 늘 남편이 있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남편 백충현 씨는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홀로 갤러리를 찾았다. 같은 갤러리를 들른 날 부부는 서로 마음에 드는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물으면 우리 부부의 생각이 항상 같았어요. 믿기지 않지요? 남편에게 ‘아내가 아마 이 그림을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매개로 동질감을 느꼈지요.” 그렇게 그림은 늘 식탁 위화제였다.

1 화가 양만기 씨가 이명숙 씨를 위해 완성한 ‘이명숙 초상화’.
2 신혼 시절, 뉴욕에서 남편과 함께. 매일 보아도 또 생각나는 잊지 못할 시절,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3 2012년 10월 7일 아버지 이준 화백의 아흔네 번째 생신 때 미국에 있는 막내 여동생을 제외한 삼 남매가 모였다. 여전히 소녀 같은 어머니는 올해로 88세가 되었다.

김환기, 이청운 화백과의 인연 “성북동 김환기 선생님의 집 마당의 키 작은 소나무 아래 선생님의 백자 달항아리 작품이 놓여 있더군요. ‘마음에 들면 니 가져가라’ 하셨는데, 부담이 되어 ‘와서 볼래요’ 하고 말았지요. 어릴 적 인연도 있고 선생님 작품 한 점 갖고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파리 유학 이후 작품 가격이 너무 올라 살 수가 없었어요.” 작품에 대한 소유욕이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집에는 김환기 선생의 작품이 없다. 작품과도 억지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이청운 화백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화랑을 통해 백 교수와 함께 이청운 선생을 만났는데, 아내와 딸에 대한 살뜰한 애정을 가진 따스한 사람이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치열하게 작업하는 그의 작품을 의심없이 구입했습니다. 이후 이 화백은 파리 유학을 떠났고, 6개월 만에 미술 전람회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누구보다도 기뻤어요.” 이청운 화백이 이명숙 씨의 첫 소장 전시에 남긴 글에는 그를 향한 고마움이 뜨겁게 묻어난다. “지나간 것은 그립고 추억이고 삶의 역입니다. 조금은 부끄럽고….”

울림이 있는 작품을 컬렉션하라 1970년대에는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화랑이 기껏해야 열 개 남짓이었다. 늘 화랑을 통해 작품을 구입했기에 그의 컬렉션은 우리나라 화랑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한다. 미술품 컬렉션 1세대로 그는 생애 첫 소장품을 고민하는 기자에게도 살뜰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화랑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미술계에 대한 예의입니다. 작품을 비롯해 배송 등 총체적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계약서 등 영수증은 잘 관리해야지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시대별로 작품을 소장해보세요. 작가가 그림을 다루는 경향의 변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 특히 부부가 함께 그림을 좋아해야 한다는 전제도 꼭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거나, 고가의 작품을 구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정말 내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소장했을 때 발견의 기쁨은 비교할 수 없어요. 내가 몇 달을 절약하면서까지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 가치는 배가됩니다. 전시를 많이 경험하면서 그림 보는 안목을 높이세요. 구입했을 때 얼마나 잘 관리하는가 또한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10년을 더 기대합니다!” “1970년대에 만난 1세대 화랑 주인들은 가난한 작가의 재능을 발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가능성 높은 젊은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화랑 대부분이 비즈니스적이지요. 이른바 돈이 되는 작가의 작품이 항상 우선순위라는 점이 안타까워요.” 그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자신이 소장한 미술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더 고민 중이다. 칠순이 되어서도 청바지를 입는 빼어난 멋쟁이인 그에게서 삶을 아름답게 갈무리하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다정한 눈빛으로 작품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초록의 봄에 가장 먼저 눈뜨는 동백꽃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직접 만든 전시 도록 서문에 그림에 대한 애정을 담은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서서 바라보면서 얘기도 나누고, 조각은 닦아주고 만져주면서 속마음 털어놓기도 하고, 풍경화 속에서는 배경 속에 나를 넣어보기도 하고 내품에 떠난 내 자식들을 올려보기도 하면서 지낸다. 싫증 나면 바꾸기도 하고 한참 동안 잊고 지내며 잠시 혹은 오래도록 외면해도 배신했다 여기지 않고, 서러워할 줄도 모르고 내가 다시 찾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내 그림들은.”
 

이명숙 씨의 <마음속의 천국>전과 함께한 사람들
순수한 눈을 가진 컬렉터의 특별한 소장전

이명숙 씨의 소장전에 이청운, 김종학, 정일 작가를 비롯해 유희영 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이수성 전 총리, 그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제자들과 백 교수의 서울대학교 법대 제자, 동료 등이 찾아 전시를 축하하며 부부와의 추억을 되새김질했다. 따스한 인품과 성정으로 주변 이들에게 항상 존경과 신뢰를 받아온 그의 삶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축제 같았던 전시.

“이명숙 선생은 전 예화랑 대표시던 저희 어머니(이숙영)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오랫동안 인연이 있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두 분이 함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여전히 기억나요. 그래서 예화랑을 통해 선생님이 작가와 작품을 만난 적도 많았습니다. 이명숙 선생님은 아주 ‘모범적인 컬렉터’세요. 작품을 보는 눈이 남다르셨고,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항상 지니셨기에 이번 소장전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보시면 한국 근대 작품부터 컨템퍼러리 작품까지 그 장르가 다양해서 관람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두 번째, 세 번째 소장 전시를 계속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_예화랑 대표 김방은 씨

“파리에서 ‘살롱 도톤’ 대상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이명숙 씨에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내 작품의 가치를 제일 먼저 발견하신 분이거든요. 당시 저는 열정 하나로 치열하게 그림만 그리는 가난한 화가였고, 그는 그런 제 그림을 높이 평가했지요. 백 교수와 함께 부부 내 외가 제 그림을 구입했기에 화가로서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요. 맑은 눈과 그림을 보는 선견을 지닌 분입니다. 이런 컬렉터는 작가에게 큰 용기를 줘요. 당시 대상을 받은 작품 ‘몽마르트르의 지붕’은 무조건 이명숙 씨의 그림이어야 해요.”_화가 이청운 씨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적지만 제 작품 ‘속삭임’을 컬렉션했다고 들었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아침마다 작품을 보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분명한 취향을 갖고 컬렉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행을 좇아 재테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컬렉터도 있습니다. 오늘 전시에 와보니 이명숙 씨는 작품 고유의 멋을 잘 이해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액자도 시간이 묻어 있는 모습 그대로 교체 없이 소장하는 점도 보기 좋았습니다.”_화가 정일 씨

 

 취재 협조 예화랑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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