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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뭐기에] 마흔 증후군 극복 사례_마흔 앓이 극복한 정경화 씨 1백 일간 매일 5km씩 걸으며 글을 썼다


서른이 되면 아주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마흔이 되어 있었다. 마흔이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몸이 아팠다. 길을 가다가 자주 무릎이 꺾이는 무력감에 휩싸였고 이대로 그냥 시간을 보내기에는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솟구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함과 조급함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날이 그날 같던 내 단조로운 일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15년 동안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모험의 길을 나선 것이다. 이른바 말하는 ‘마흔 앓이’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마흔은 내게 공자의 ‘불혹’이 아니라 시인 윤동주의 ‘바람’과 ‘흔들림’으로 다가왔다. 아주 작은 일에 감동했다가 다시 아주 작은 일에 흔들렸다. 자주 길을 잃었으며 매일매일 헤맸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도 완전히 길을 잃지 않도록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너의 길을 가. 나는 네 편이야. 마음 놓고 한번 너의 길을 가봐!” 마흔의 속삭임이 강하게 들리던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몇 가지 일을 실행에 옮겼다. 먼저 위시 리스트를 작성했다. 의식 개혁 프로그램 참여하기, 지속적으로 인문학 공부하기, 요가 배우기, 글쓰기 공부하기, 마음 공부하기 등등! 그러다 이 방향 없는 길 찾기에 초점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시도한 것이 ‘나를 바꾸는 1백 일 프로젝트’였다. 1백 일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하나의 목표를 정해 1백 일 동안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마침 내가 소속해 있던 글쓰기 모임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1백 일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리라 다짐했다.

시처럼 살기, 꿈대로 살기! 글쓰기 수업에서 “시詩처럼 산다”라는 문장 하나를 읽던 날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꿈대로 산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그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며 내 인생에 작은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시처럼 사는 것, 꿈꾸며 사는 것,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 계획한 100일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일 5km씩 걷고 그 느낌을 글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의식적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1백 일 동안 일정한 시간에 매일 같은 것을 반복했다. 반복을 통해 삶의 습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2011년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1백 일 동안 나는 매일 5km 씩 걸으며 길 위에 핀 작은 들꽃과 스치는 풍경을 사진에 담았고, 하루를 마감하는 매일 밤 홀로 깨어 글을 쓰며 나를 만났다. 살아오면서 그토록 정성을 들인 적은 없었다. 단지 매일 정해진 길이의 걷기와 정해진 한 편의 글을 썼을 뿐인데…. 1백 일 프로젝트는 내게 강인함과 유연함을 선물로 주었다. 더불어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글을 쓰니 마흔이 좋더라 글쓰기 모임에서 ‘마흔’이라는 주제의 책을 준비하고 있었고, 겁 없이 공저에 참여해 최근 <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또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손을 놓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한 철학 공부를 비롯해 인문학 공부를 계속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결국 나는 마흔다섯 살의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다시 학생이 되었다. 전공은 ‘심리상담’이다.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학문이다. 평소 사람과 세계에 관심이 많았기에 심리 상담 공부는 운명 같았다. ‘늦지 않았을까?’ ‘이제 시작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망설임과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과감하게 도전했다. 생각보다 고되고 힘든 과정이지만 다시 책을 읽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또 다른 질문들이 생기고 탐구하고 싶은 주제들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흔들리니까 마흔이지, 그래도 내 편이다 나는 지금 마흔이라는 강을 건너는 중이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운 명처럼 마음속의 문장이 다시 속삭인다. ‘때때로 삶이 다시 풀어야 할 문제처럼 다가오고 힘겹게 여겨질지라도 걱정하지 마. 1백 일 프로젝트 하며 걸은 산책길의 작은 들꽃들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 들여다보면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로 가득 차 있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신비를 마음껏 경험하렴!’ 내 앞에는 아직 건너야 할 마흔의 강, 그 이후 인생의 강이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앞으로 펼쳐지는 삶에 저항하지 않으려 한다. 마흔, 정말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마음껏 흔들리며 가볼 테다.

“나이 마흔에 봄을 탄다는 것을 알았다.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싹이 돋고 산마다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서 좀처럼 감정을 주체하기도 힘들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가? 새삼스러운 의혹에 시달린다.” _ 윤대녕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중

<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정경화 씨가 공저에 참여한 책으로 ‘마흔 앓이’를 극복한 일곱 명의 이야기다. 마흔 앓이를 현명하게 이겨낸 인생 선배가 전하는 따뜻한 조언!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아름다운 사람들.
글 정경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