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5 인생 2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란 늘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 있는 주부에게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독신 여성에게도 그 도전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2년<행복>에서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30~40대 여성을 응원합니다. 가열찬 용기로 인생 2막을 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파타타!(이탈리아어로 감자라는 뜻)” ‘김치’ 대신 ‘파타타’를 외치며 카메라 앞에서 시원스레 웃는다. 모험심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열린 마음이 그를 계속 여행하게 만든다.
모자와 오렌지 컬러 티셔츠, 운동화 그리고 오렌지와 블랙이 믹스된 장갑은 모두 몽벨.
옐로 그린 컬러에 오렌지 지퍼 디테일이 돋보이는 아우터는 오로빌.
다크 브라운 팬츠는 빈폴 아웃도어. 백팩과 스틱은 머렐, 블랙 슬리핑 백은 코오롱 스포츠 제품.
가슴에는 꿈을, 주머니에는 비자금을
제가 걷기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입니다. 북적대는 7남매의 넷째 딸로 태어난 저는 부모가 말릴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다독가였죠. 소꿉놀이 대신 집에 꽂혀 있는 러시아, 독일, 영미 문학 전집을 즐겨 읽곤 했습니다. 책 속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괴테・베토벤・톨스토이 등 대문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산책을 즐겼다는 점이에요.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음악적 영감을 얻고, 삼나무 숲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고, 해결책을 찾고,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이 쉬울 리가요! 스물세 살에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그때부터 여행이라는 꿈은 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 품을 벗어나면 나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웬걸요, 아이들 양육과 집안일이라는 울타리가 겹겹이 쌓이더군요.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두 딸을 키우는 일이 여행보다 더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언젠가 이룰 꿈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 자금이었죠. 매달 3만 원씩 불입하는 적금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소액 단기 적금 상품이 많았습니다. 3만 원으로 3년, 5만 원으로 3년…. 통장 수가 늘어나고 잔금이 쌓일수록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는 믿음으로 어깨가 절로 들썩였습니다. 남편 몰래, 두 딸 몰래 준비한 ‘엄마의 비자금’이었지요. 살림하면서 3만 원, 5만 원을 모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소비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3만 원, 5만 원이 모여 산티아고와 스웨덴 여행 자금이 되었다고 쉽게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1998년 IMF 사태가 터지자, 남편의 사업도 위태로웠습니다. 미국에 있는 두 딸의 유학 자금을 보내는 일도 어찌나 힘들던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억 원을 목표로 저축했고, 15년이 지나자 목표액에 가깝게 도달했습니다.
1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김효선 씨. 본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남기기가 어렵다.
2 도쿄에서 온 은퇴자 두명이 시코쿠 불교 사찰을 순례 중이다.
3 순례길은 배낭을 지고 걷는 수행길.
사찰 순례길의 흔적을 담은 납경장. 보물 같은 기록이다.
떠날 때가 오면 떠나야지
“만세! 이제 떠날 때가 왔구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어깨에 강철같이 들러붙어 있던 짐을 벗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응원했고, 남편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죠. 여행 자금을 보태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말려도 떠날 것을 아니까요.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온 것인데! 원하는 만큼 걷고 보고 웃고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자유, 오십이 되어서야 얻게 되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할 요량으로 딸들이 어릴 때 학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영어 교습을 도맡아 했습니다. 교육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소문난 영어 선생’까지 되어 있더군요.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행 중에 펼쳐질 우연이라는 세계가 더욱 기다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안전하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두려움은 없었지만, 여행에도 노하우가 필요하니까요. 본격적인 여행으로 이미 알려진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괴테의 작품 속 배경을 따라가는 여행과 음악 기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보는 여행, 영국의 시골 기행과 박물관 투어 등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실천했습니다. 이어 두 딸이 거주하는 뉴욕을 기점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기차 여행에도 도전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세계사 공부를 합니다. 수험생처럼 수십 권을 읽으며 사전 공부를 하다 보니, 부족한 언어로 낯선 지역에 도착해도 두려움이 덜하고 이해도 빠르더군요.
아줌마도 산티아고 갈 수 있다! 50~60대의 중・장년층, 산업사회의 격동기를 겪은 이른바 베이비 부머와 실제 경제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의 ‘2차 베이비 부머’까지, 현대인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온 만큼 걷기 여행 같은 ‘슬로 트래블링’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제 본격적인 걷기 여행은 산티아고에서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예수의 열두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km의 길로, 9세기 교향청에서 성지 순례길로 선포한 이래 1천2백여 년의 역사가 스민 길입니다. 은퇴 후 첫 번째로 가고 싶은 곳 제1위에 꼽힐 만큼 도보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이죠. 산티아고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 가이드북 한 권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그 길을 걷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러던 중 브라질에 사는 ‘50대 교포 아줌마(!)’가 산티아고를 다녀와 책을 출간한 것을 보았습니다. ‘아, 갈 수 있는 곳이구나! 아줌마도 할 수 있구나!’ 마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고 있었는데, 덕분에 산티아고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구할 수 없어 두 딸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관련 서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영한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단어는 찾아가며 온종일 공부했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항공권을 끊고 곧장 떠났습니다.
걷기 여행은 인생의 축복
산티아고를 다녀온 뒤에는 일본 시코쿠의 88개 사찰을 순례했습니다. 고베, 오사카와 가까운 동쪽 도쿠시마 현의 1번 사찰 료젠지에서 출발해 섬 둘레 1200km를 시계 방향으로 돌아 에히메 현의 88번 사찰 오쿠보지에 이르는 사찰 순례길입니다. 낯선 땅 위에서 만난 순수한 사람들, 그들과의 아름다운 우정과 감동적인 기억은 걷기 여행에서 얻은 보물입니다. 스웨덴에서 20일간 여행한 쿵스레덴이라는 길도 잊지 못합니다. 260km를 걷는 고행길이었지만, 북유럽의 원주민인 사미족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도보 여행을 한 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벌써 그 결과물로 일곱 권의 책을 냈네요.
두 발로 걸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걷다 보면 나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생기며, 인생의 많은 부분이 정리 정돈되는 경험을 합니다. 걷기의 고달픔은 같이 걷는 낯선 이들과 함께 나누곤 합니다. 위로를 주고받으며 친근해지면 서로 다른 문화도 이해하게 되고 서로 닮아가는 것을 느끼며 함께 걷는 동반자로 사랑하게 됩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길에서는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서 배운 지혜와 내적인 성숙함으로 가족들에게 더욱 충실하게 되고 긍정적 에너지를 주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신명 나니 얼굴도 빛이 납니다. 가슴 깊이 눌러 담은 화火와 미워하는 마음이 가라앉고 용서와 이해라는 놀라운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저와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니 나이 드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으니까요.
(오른쪽) 순례자 증명서를 제출한 사람만 받는 완주 증명서들.
“엄마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
여행의 꿈을 가진 사람들의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여행을 향한 간절한 바람을 잘 알기에 되도록 성심껏 답장하고 떠남을 독려합니다. 여행을 다녀온 분들이 “내게 꿈을 주어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내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딸이 “나, 엄마처럼 늙고 싶어”라고 말하더군요. 쓸쓸하고 쇠락한 뒷모습이 떠오르는 노년이 아니라, 육아와 경제활 동에서 벗어나 훨씬 보람 있고 흥미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떠났더라면 다른 제약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와 아내의 책임과 의무를 충실하게 해냈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채 온전히 제 힘으로 꿈을 이뤘습니다. 걷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연도 많이 하고, 걷기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을 맡아 길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15년간 준비해 꿈을 이뤘고, 자연스레 걷기 여행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제 몸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겠지만, 아줌마인 저도 해냈습니다. 인생의 거친 시간을 겪은 세대가 더 두려울 것이 있나요?
* 김효선 씨를 여행 멘토로 한 일본 시코쿠 걷기 여행에 함께하세요. 자세한 내용은 본지 298쪽 ‘행복이 가득한 여행’ 을 참조.
인생 2막을 사는 김효선 씨의 조언 첫째, 준비 없는 인생 2막은 난센스다 “여행 자금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집안일은 누가 하지요?” “영어는 알파벳도 모르는데…” 강연을 나가면 늘 비슷한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목표를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나요?”라고 되묻곤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꿉니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그 지점으로 가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언어 실력이 부족하면 영어 공부를 하고, 세계를 여행하려면 당연히 세계사 공부를 해야죠. 돈도 모아야 합니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항목을 먼저 적어보세요. 자금, 언어, 체력, 세계사 공부, 사전 여행 등 필요한 항목을 준비하시길! 둘째, 주부들이여, 남편을 놔줘라 자녀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경우나 자녀도 다 자라고 여행을 떠날 시점이 왔는데도 많은 주부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남편 챙기기입니다. 장기간 도보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의 여행에 동의하지 않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본인 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내가 없으면 남편 저녁 밥상은 어쩌지?’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이런 걱정거리는 대부분 발생하지 않아요. 스스로 본인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아내가 없어도 남편은 굶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집착도 버리세요. 아이들과 남편을 놔주십시오. 여행으로 당신이 행복해지면 오히려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셋째, 가족이 있기에 홀로 떠날 수 있다 젊은 엄마라면 가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을 버릴 수 없습니다. 지금껏 살아보니 엄마는 가족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배역임을 알았습니다.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엄마라면, 물론 자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엄마인 그대 자신을 위해서 자녀에게 시간을 쏟길 바랍니다. 훗날 그대가 홀가분하게 홀로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면 말입니다. 지금은 망설임 없이 가족에게 투자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꿈을 위해 준비하고 투자하는 것도 잊지 말길! 저는 인생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시간이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습니다. 가족이 있기에 홀로 떠나는 여행도 꿈꾸는 것이 아닐까요? (오른쪽) 산티아고 순례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김효선 씨의 아이콘. 직접 그렸다. |
일러스트레이터 최익견 스타일링 박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