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990년 1월호~1996년 무료로 집을 고쳐드립니다
한때 토요일 오전이 되면 설렌 적이 있었다. 한 방송사에서 무료로 집을 개조해주는 프로젝트 때문. <행복> 역시 그와 같이 무려 6년간 독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 칼럼이 있었으니, 바로 ‘무료로 집을 고쳐드립니다’였다. 엽서와 우편으로 다양한 사연 신청이 쏟아졌고, 신중하게 선별해 의미 있는 결과를 제시하며 “역시 행복답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단순히 집을 고치는 이벤트가 아닌 인테리어 개조, 데커레이션 등의 개념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깊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정주 씨 “이제는 정말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내가 어떻게 고치고 꾸며주었는지.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매 프로젝트마다 디자이너도 집주인도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거죠. 그렇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보람입니다.”
02 1990년 3월호~1995년 신영훈 선생의 한옥 이야기
한국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알린 기사. 신영훈 선생의 한옥 이야기는 옛집의 정취, 한국의 종갓집, 마음으로 보는 집 귀로 듣는 집 등의 칼럼명으로 5년간 연재했다. 대목 신영훈 선생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했을 만큼 정성을 기울인 기사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흥미롭고, 역사를 배우듯 지식을 쌓는 재미가 있었다.
독자 이승민 씨 “대학에서 한국사와 한국 전통문화를 강의하는데, 평소 <행복>에서 한옥을 비롯한 우리 문화를 다루는 것을 알고 자료 찾듯 ‘역추적’해서 만난 기사로 기억해요. 역시 현장에서, 체험과 경험으로 익힌 지식을 지닌분답게 소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설명해주는 배려가 느껴졌어요.”
03 1994년 2월호 전원주택 특집 일곱 가족 스물세 명
전원주택에 관심이 높던 당시, 그저 꿈의 공간이 아닌 실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일곱 가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각 가족의 구성원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어떻게 차이 나는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다룬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전원주택 중에서도 목조 주택 짓기, 단지 내 사람들이 공동체처럼 더불어 사는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행복>전 편집장 조현주 씨(당시 취재 기자) “서울 올림픽을 치른 후, 주거 문화에도 일대 변화가 일었지요. 경제 호황에 따라 생활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도시인이 동경하는 최고의 집이 바로 호젓한 전원주택이었어요. 이 기사에 소개한 주택 단지는 아마 동호인 주택의 효시가 아닐까 싶어요. 목조 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집 짓기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동네 청소도 같이 하고. 단지내 신문도 발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04 1997년 1월호 최미경 씨의 쿠킹 클래스
<행복>이 낳은 스타 주부, 최미경 씨. 이탤리언 음식을 쉽고 맛있게 만드는 비결은 물론, 이를 근사하게 테이블 세팅하는 노하우까지 알려주며 <행복>의 지면을 장식하던 그는 <행복>의 쿠킹 클래스를 통해 1년간 독자들에게 직접 실력을 전수해주었다.
요리사, 레스토랑 8steps 대표 최미경 씨 “원래 제가 이 쿠킹 클래스를 하기 전에는 집 꾸밈, 소품 만들기까지 포함해 다양한 살림 노하우를 알려주는 칼럼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어찌나 한 달이 빨리 지나가는지, 다음 달에 뭘 보여줘야 할까 고민하는 게 힘들어서 연재를 그만두려 했는데, 담당 기자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걸로 해보자며 독려했죠. 그래서 한 우물을 판 게 요리였습니다. 저희 집에 독자들이 직접 와서 요리를 배웠는데, 이게 아마 홈 쿠킹 클래스 원조라죠? 테이블 세팅까지 함께 알려주니 독자 호응도가 무척 높았어요.”
05 1997년 3월호~11월호 전원주택 별책 부록 시리즈
노래 가사에도 있듯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전원주택, 전원생활에 대한 열망이 신드롬처럼 일었던 시기. <행복>에서는 이를 다각도로 다룬 기획 기사를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를 위하여’라는 시리즈 아래 총 여덟 권의 별책 부록을 발간했다. 내 손으로 짓는 전원주택, 전원주택 싸게 짓기, 전원에서 새 삶을 찾은 사람들, 전원에서 함께 살기 등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원생활에 관한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별책 부록을 다 모은 독자에게는 이 모든 책을 함께 모아 보관할 수 있는 북 케이스를 신청자에 한해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독자 김태석 씨 “전원주택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 믿음직스러운 기사로 알차게 구성한 별책 부록은 유용한 지침서가 되었지요. <행복>에서 그동안 참 많은 별책 부록을 냈는데, 전원주택처럼 오랜 기간 시리즈로 낸 것은 이게 유일한 거 같아요.”
06 1998년 12월호 안방에서 장보기, 이효재 씨의 무명 방석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씨.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바로 <행복이가득한집>에서 소개한 무명 방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이효재 씨의 검박하고 단아한 무명 방석이 요리 칼럼에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문 의가 이어졌고, 이를 상품으로 기획해 <행복> 홈쇼핑에서 판매했다. 지금 쇼핑 채널에서 말하는 ‘대박’ 만큼 메가톤급 물량이었고, 당시로서는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문이 쏟아졌다고.
풀무원 마케팅 부장 김수희 씨(당시 취재 기자) “이런 게 운명인가 싶어요. 원래 교자상에 음식을 차리고 여기에 방석을 놓기 위해 이효재 씨에게 소품용으로 방석을 만들어달라고 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주목을 받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요. <행복>과 의기투합해서 무명 방석을 상품화하면서 이효재 씨의 숨은 능력도 속속 드러나게 되었답니다. 그 2탄으로 매실씨 베개도 히트했으니까요.”
07 1998년 6월호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솔직하게 접근한 기사.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40대 남자의 돌연사. 상상하기도 싫은 이야기지만, 현실의 삶을 위해 꼭 생각해봐야 했던 이야기를 <행복>이 먼저 진솔하게 풀어냈다.
독자 이소연 씨 “흔히 노후 준비를 하라는 말은 많이 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대비하라는 이야기는 드러내놓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 기사를 통해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 계기가 되었지요. 이런 일을 겪지 않아 다행이지 싶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 었어요.”
08 1999년 7월호
DIY의 열풍 반쪽이네 집, 지구는 못 바꿔도 우리 집은 내가 바꾼다
DIY 열풍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반쪽이’ 최정현 씨의 셀프 리모델링 아이디어. 만화가이기도 한 최정현 씨는 당시 10여 년간 15평 아파트에 살면서 공간을 보다 넓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직접 선보였다. 베란다 마룻 바닥 아래 청소기도 수납하고 벨크로테이프(일명 찍찍이)를 사용해 쟁반을 부엌 벽면에 붙여서 정리한다. 이뿐만 아니라 익스텐션 테이블 제작은 기본, 스위치를 누르면 책상 안에서 컴퓨터가 솟아오르는 첨단 수납 시스템까지. 만화가답게 기발하고 재미있는 집으로 기억한다.
정크 아티스트 최정현 씨 “<행복>에 집을 포함해서 제가 일곱 차례 나온 것 같아요. 소개한 15평 아파트는 재개발 때문에 없어지고 대신 두 배로 커진 아파트를 얻었어요. 그런데 원래 집에 설치했던 모든 가구와 소품을 그대로 뜯어서 두 배로 커진 집에 갖고 갔더니 다 들어가지 않았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제가 15평 아파트를 얼마나 넓게 썼는지. 요즘 아파트는 굳이 고치지 않아도, 한 뼘이라도 더 넓게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이 갖춰졌잖아요. 그래서 지금 하는 작품은 대부분 만화처럼 재미 있는 캐릭터 오브제 제작이에요. 내년까지 전시 일정이 꽉 잡혀 있어요. 아, 당시 함께 등장했던 우리 딸은 지금 비주얼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팝업북을 만들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아빠 조기교육 덕분인지 한시도 손을 가만히 놀리는 적이 없네요.”
09 2001년 11월호~2002년 11월호 예술가와 뮤즈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미술사가 유경희 씨가 고전 미술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생생히 살아 있는 이야기와 문체로 글을 썼다. 예술 작품보다 더 흥미로운 예술인의 사랑 이야기를, 예술가의 영감의 근원이 되는 뮤즈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처럼 엮어낸 기사.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부부, 고갱과 남태평양의 어린 연인들처럼 예술가와 뮤즈의 치열한 사랑을 들여다본 이 기사는 단행본으로도 발행할 만큼 높은 호응을 얻었다.
미술 평론가 유경희 씨 “‘예술가와 뮤즈’는 사랑 이야기가 주된 것일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두려워서 해보지 못한 억압된 사랑을 예술가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것 같았어요. 그걸 통해 남편, 애인 등 주변 사람을 이해하고 그 힘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바라보는 마음을 피드백한 것 같아요.”
10 2004년 6월호 다니엘, 꽃이 너무 예쁘지?
‘사람들이 아름답다’라는 포토 에세이에서 소개한 다니엘. 당시 여덟 살이던 다니엘은 선천성 뇌수종을 앓는 환우로 ‘가브리엘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사진가 최명준 씨가 지인의 부탁으로 촬영하게 된 다니엘은 합병증 때문에 안구가 앞으로 쏠리는 터라 눈이 왕방울만 하지만, 그 맑고 영롱한 눈망울은 많은 사람에게 세상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을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다니엘의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하는 <행복> 독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가 최명준(준초이) 씨 “잡지에는 그림같이 멋진 사람들만 나오는 걸로 생각했을 독자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행복>에 소개된 후 공중파 3사에서 다니엘을 소개했고, 덕분에 가브리엘의 집 후원자가 늘어났습니다. 자원봉사자는 대기표를 받아야 했을 정도였죠. 한 재미 교포는 지금까지 매달 4백 달러를 보내오고 계세요. 현재 다니엘은 건강하게 학교도 잘 다니고 있지요. 요즘도 가끔 찾아가 만나는데, 뭐든 스스로 하려는 의지도 강하고,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의젓한 다니엘을 보면서 이 행복이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11 2003년 7월호 윤보선家 며느리 양은선 씨의 라이프&스타일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택,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남 윤상구 총재와 양은선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공개했다. 명문가의 큰며느리로, 하루가 멀다 하고 1백 명의 손님을 치르는 대단한 음식 솜씨, 동양과 서양의 감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인테리어 센스,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기품 있고 세련된 살림의 여왕이 있다니!
사진가 박찬우 씨 “ 문고리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죠 . 덕분에 4일 동안 촬영하고 20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는데, 책에 싣지 못한 컷을 모은 필름만 서랍 한 칸이 꽉 차고도 넘칠 정도였습니다.”
12 2005년 5월호 스님처럼 먹는 것이 진정한 웰빙이다
웰빙 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 먹거리에 대한 반성과 해답을 사찰 음식에서 찾은 기사다. 건강식이자 장수식으로 지목된 사찰 음식의 의미를 알아보고, 사찰에서 사용하는 천연 조미료와 약이 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소개했다. 특히 홍승 스님이 알려준 음식 중 아이를 위한 메뉴는 단연 주목을 끌었다. 감자전 위에 버섯과 각종 채소ㆍ치즈를 얹어 만든 감자피자, 연근 간 것과 파인애플 다진 것을 함께 뭉쳐 만든 완자로 만든 연근파인애플탕수는 도전해본 사람이 많았다고.
독자 강신자 씨 “사찰 음식이라 해서 풀만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 편견을 한 번에 깼지요. 흔히 ‘아동 입맛’이라 하는 사람들도 사찰 음식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레시피는 지금도 요긴하게 활용한답니다. 손자들 간식으로도 그만이거든요.”
13 2005년 10월호 나이 들수록 도시에 살아라
<행복>의 열혈 독자인 이명숙 씨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시작한 기사. 그는 정년 퇴임 후 시골로 내려간 친구의 서울 재입성을 이야기하며 나이 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주 보는 가족, 가까이 있는 병원, 익숙한 곳이라 전해왔다. 이 제보를 <행복>은 동물적 감각으로 낚아채 ‘도시가 더 좋다는 60대들의 시티라이프’를 심층 취재했다. 서울, 런던, 뉴욕에 사는 60대의 도시 예찬을 다룬 이 기사는 <행복>만의 선견지명이 담긴 제안이었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칼럼이기도 하다.
<행복> 전 편집장 심의주 씨(당시 담당기자) “기사에 등장한 건축가 부대진 씨가 ‘도시 의자 하나가 시골 게스트룸보다 더 낫다’라고 하더군요.‘나이 들수록 도시에 살아라’란 이야기는 ‘나이 들수록 사람들과 가까이 살아라, 적극적으로 살아라, 친구와 더 가까이 살아라, 젊은 이처럼 살아라’라는 걸 취재를 마치며 깨달았지요.”
14 2007년 2월호 한국 고가구의 멋, 한국인이 좋아하는 전통 목가구 Best 8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한국의 문화! 2007년, 이미 <행복>에서는 인테리어 특집 기사로 한국 고가구의 멋을 속속들이 소개했다. 조선 목가구, 전통 가구 정도로 불리던 우리 가구에 반닫이, 돈궤, 사방탁자 등의 구체적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같은 반닫이라 하더라도 제작한 지방, 나무 종류, 금속 장식 등에 따라 그 특징과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전통 가구를 현대적 공간에 연출하는 비결까지 멋진 비주얼로 보여준 결과, 전통 가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장안앤티크 대표 손근배 씨 “그때 우리 숍에 있던 반닫이랑 책장, 나주 소반이 책에 소개된 후 전화가 참 많이 왔죠. 그런데 다들 가격을 먼저 물어보는 거예요. 처음엔 서운하다 싶었는데, 어쨌든 관심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잡지에서 이렇게 전통 가구를 제대로 소개해준 것만으로도 이 일을 하는 데 보람을 느꼈답니다.”
15 2006년 8월호 가구회사 사장은 어떤 집에 살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인기 있는 가구 브랜드를 소개하는 가구 회사 대표는 과연 어떤 집에 살까? 자신이 판매하는 가구를 집 안에 멋지게 연출하는 노하우, 좋은 가구를 고르는 법 등 그들에게 들은 리얼 인테리어 노하우를 소개한 기사다. 각 브랜드 쇼룸을 집으로 옮겨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멋진 집을 구경하는 재미. 소개된 무아쏘니에, 웰즈, 인엔, 로셰보보아 등은 지금도 ‘청담동 가구 거리’에서 인테리어 트렌드를 리드하며 건재하고 있다.
독자 김희선 씨 “이 기사를 접하고 가구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물론 모든 가구 브랜드의 사장 집을 볼 수 없지만, 나름 그 제품을 만들거나 수입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지요. 앞으로 <행복>에서 이런 집을 더 많이 소개한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16 2008년 1월호 바람 타고 날아오르는 나이, 마흔이 뭐기에
‘공허하다’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것 같다’ ‘변화가 두렵다’…. 여자에게 제2의 사춘기인 마흔 살의 증상을 살펴봤다. 우울증 같은 마음의 증상과 갱년기・성인병 같은 몸의 증상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칼럼. 마흔 넘어 암벽 등반을 시작한 주미경 씨, 각양각색 취미 활동을 함께 해 마흔의 고비를 넘긴 윤대성・김정림 씨 부부 등 마흔에 새로운 도전으로 훨훨 ‘날아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독자 이건하 씨 “마흔이 훌쩍 넘으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마음의 부담이 커짐을 실감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면서도 막상 흰머리가 늘거나 주름진 얼굴을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지고 맙니다. 발버둥 쳐봐도 세월은 아랑곳없이 흘러가니, 어찌하면 마음이 젊어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 깨달은 건 가정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거였어요. 오늘 저녁 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밥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어요.”
17 2008년 9월호 <행복>이 선정한 한국의 식품 명인
자연이라는 재료에 공을 들여 지은 귀한 식품으로 명인의 반열에 올라 마땅한 한국의 식품 명인들을 소개했다. 매실, 현미, 장아찌, 부각 등 열세 명의 식품 명인과 그들이 생산한 ‘작품’ 같은 식품의 판매처까지 소개했다. 기사가 나간 후 ‘행복이 가득한 쇼핑’으로 주문 전화가 쇄도해 관련 부서에서 기쁜 비명을 질렀다고!
구선숙 편집장(당시 취재 기자) “두 번의 창간 기념호 특집으로 진행하며 총 스물다섯 명의 식품 명인을 소개했습니다. 반응이 뜨거워 <한국의 식품 장인>이라는 단행본으로도 출간했죠. 그 인연은 계속돼 이제는 열혈 소비자로 밥상 위에서 식품 명인을 만납니다. 토골미로 밥을 짓고, 기순도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홍쌍리 매실장아찌와 박광희 김치를 반찬 삼아서요.”
18 2008년 5월호 이제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 시대
요즘 부는 웰다잉 붐을 예견하고 한발 앞서 소개한 기사. 죽음을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잘 죽을 준비’를 차근차근 해놓으면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건넸다. ‘잘 죽을 준비’는 곧 ‘잘 살아갈 준비’라는 것을 깨닫게 한 칼럼.
독자 채규정 씨 “기사에 나온 대로 유서를 쓰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어떻게 삶을 일구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죽음에 임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천착하고 나니 마음이 가뿐하고도 듬직했죠.”
19 2008년 9월호 30대부터 준비하는 멋지게 나이 들기
장수 시대, ‘어떻게 하면 멋지게, 제대로 나이 들 것인가’가 화두가 되었다. 단순히 외모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것이 아니라, 내외적으로 풍요로운 삶과 자아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그야말로 멋지게 나이 든 여성 멘토들에게 들어보았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첼리스트 정 명화, 가수 패티김, 30년 비서 경력의 전성희, 고 황혜성 선생의 딸들 한복려・한복선・한복진, 한국 최초 여성 카레이서 김태옥 씨, 우리 엄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 2막을 힘차게 살아가는 선배 열아홉 명의 인생 조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근사하게 옷차려입고 세 자매가 사진을 찍었는데, 남다른 추억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그 사진을 서재에 놓고 종종 흐뭇하게 봐요. 동생들도 가끔 그 사진 이야길 하고요. 당시 인터뷰 때 ‘더 나이 들면 집 짓고 같이 살자고 약속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고향에 집(연수원 같은)을 지었어요. 휴일에 세 자매가 하룻밤 지내고 오곤 한답니다.”
20 2008년 10월호~2012년 2월호 조용헌의 백가기행
동양학자이자 인기 칼럼니스트인 청운 조용헌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집이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기운을 풀어 보는 기사. 심심산골의 흙집부터 서울 평창동의 근사한 주택까지 다양한 집 이야기를 동양학적 관점에서 풀이했다. 무엇보다 ‘평창동처럼 기운이 강한 터에는 작가, 화가, 학자, 발명가 또는 샤먼과 같이 뇌를 많이 쓰는 직업이 맞다. 방송 작가 김수현 씨와 바둑의 조훈현 씨 같은 사람이 그러하다. 평창동에 살다가 잘나가던 사업 망하고 벼슬 떨어진 사람이 한두 명 아니다. 관료, 사업가, 정치인의 경우가 많다’처럼 실제적이고 직설적인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행복>의 대표 인기 칼럼으로 3년 이상 연재했다.
독자 김미숙 씨 “전국을 아우르는 명당과 풍수 설명이 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명가의 위치, 생활 방식, 철학까지 담겨 있어 매우 유익했지요. 구례 원조루, 전주 한옥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21 2009년 9월호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유산, 행복
유산은 유언장 쓰기 직전에 챙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서울대 문용린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기획한 칼럼. ‘맘먹은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유산으로 주고받은 타샤 튜더와 며느리 김은임 씨, 재능을 물려준 국악인 안숙선・최영훈 씨 모녀 등 일곱 가족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1년 3백65일 부모의 삶을 기록하는 부록 <행복한 유산 일기>도 함께 선보였는데, 반응이 열렬했다.
최혜경 기자 “취재를 진행하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으니, ‘돈과 재산은 나중에 필요할 때 봉투에 넣어주면 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새와 행동・습관은 모았다가 한꺼번에 넘겨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22 2009년 9월호 내 손으로 지은 집
평창의 귀틀집, 봉화의 흙부대집처럼 가족과 함께 손수 집을 지은 이들이 털어놓은 생생한 경험담. 땅 구하기, 터 닦기, 전기나 수도 끌어오기, 본격적인 건축 등 그들이 몸으로 부딪쳐 찾아낸 노하우가 가득 담겼다. 아울러 내 손으로 집 짓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정보(건축 학교 프로그램)까지 한데 모았다. “집 짓는 게 밥 짓는 거. 집 짓는 동안 일꾼들 밥 해대야 하니 밥 짓는 일도 집 짓는 일 못지않다!”라는 취재원들의 명언이 이 기사의 인기에 한몫했다. 내 손으로 집 짓기를 희망하는 이여, 이 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시길!
평창 귀틀집의 안주인 이명순 씨 “기사가 나간 후 TV 출연 요청도 많이 오고,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집 짓는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전화하곤 했어요. <행복>에 소개된 것이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추억이고, 양질의 기록을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답니다.”
23 2010년 10월호 코리안 누들 로드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토속 국수와 유명한 국수를 따라 길을 나섰다. 평양 냉면, 함흥 냉면, 춘천 막국수, 제주 고기국수, 포항 모리국수, 옥천 생선국수, 군산 짬뽕 등 팔도 최강의 다채로운 국수 이야기! 대한민국을 횡으로 나눈 후 두 명의 기자와 두 명의 사진기자가 각각 팀을 이뤄 3일 동안 발로 뛰고 혀와 코와 눈으로 국수 맛을 맛보았다. 한 그릇 국수 안에는 그 지역의 자화상과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메시지까지 전달해 독자들의 칭찬을 받은 칼럼.
CJ 푸드빌 홍보팀 이화선 과장(당시 취재 기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3일 내내 국수만 먹으며 전국을 돌아다녔는데도 그다지 물리지 않은 걸 보면 우리나라 국수 맛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이야기겠지요. 취재 첫날 강원도부터 아랫녘으로 돌며 하루에 네 번, 그것도 차게 먹는 국수만 먹었는데, 그다음날 아침 뜨거운 옥천 생선국수를 먹었더니 해장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침 비도 내려 국수의 긴 면발과 빗줄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더군요. 그날의 운치를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요.”
24 2011년 4월호~2012년 4월호 홍쌍리의 매실 편지
청매실농원에서 매실・야생초와 부모 자식 인연으로 사는 매실 명인 홍쌍리 씨가 쓴 시 같은 수필. 인생 이야기, 매실나무・야생초와 나눈 대화, 자연 예찬, 법정 스님・정채봉 시인 등과 나눈 도타운 정까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썼다. 비속어나 사투리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그 수수한 글은 우리에게 엄마와 고향의 품을 떠올리게 했고, 1년 가까이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매실 명인 홍쌍리 씨 “글을 읽고 어머니를 일찍 여읜 이들이 찾아와 손을 꼭 잡으면서 눈물을 글썽이데예. 산골 에서 힘들게 산 인생을 그저 끼적였을 뿐인데, 그 글을 읽고 도시인들의 가슴이 따뜻해졌다니 참 뿌듯하데예.”
25 2012년 3월호 혼저 옵서, 쉬영 갑서, 제주도
제주는 이제 여행지가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땅임을 간파하고 진행한 기획 특집. 소문난 제주 멋쟁이들의 라이프스타일, 제주에서 ‘살기’를 시작한 사람들의 이민기, 제주 사람의 손맛이 담긴 공예품, 제주 건강 밥상, 제주 예찬론자 33인이 들려주는 33가지 제주 즐기기 방법까지. 세상에 없던 제주 여행법, 제주에서 사는 법을 열거했다. 특히 제주에서 살기를 감행한 이들의 경험담이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었다. 제주에 집을 구하려면 신구간新舊間과 제주 오일장 신문을 이용하라, 몇 개월만 살더라도 월세 대신 ‘연세’를 얻어라 등 살아본 이만의 알토란 같은 조언!
설치미술가 육충현 씨 “제주에서 1년 살면서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지인들에게 조언합니다. ‘너무 겁내지 마라. 그 두려움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지, 커다란 스케치라 생각하고 보면 어려울 게 많이 없다’라고요.” 육충현 씨가 운영하는 예술적인 ‘공1000 게스트하우스’가 궁금하신 분은 blog.naver.com/jeju0km를 들여다보시길!
디자인 안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