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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통 혼례 아주 특별하게 준비한 값진 결혼식
혼례婚禮는 여자(女)의 집에 신랑이 어두울 때(昏) 찾아가는 예식을 뜻한다는 것을 아는지?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 장남의 혼례가 국립민속박물관 오촌댁에서 열렸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어스름한 저녁 시작한 혼례는 아름답게 잘 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감동과 기품이 함께했다.

드림 팀이 모인 이유
예식장에서 무의미하게 진행하는 서양식 결혼식에 회의를 느끼는 이가 많다. 그러기에 새삼 전통 혼례에 관심이 모이는 요즘,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장남이 민속박물관 고택에서 전통 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혼례가 열리는 국립민속박물관의 한옥, 오촌댁梧村宅은 1848년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지어졌던 것을 소유주로부터 기증 받아 옮겨온 유서 깊은 고택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전통 혼례의 아름다움을 알리자는 취지에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비주얼 아티스트들이 모였습니다. 또한 쇳대 박물관이 양평에 준비 중인 복합 문화 공간에서 앞으로 전통 혼례를 진행할 예정이기에 모두 이번 혼례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특별했지요.”

혼주인 최홍규 관장의 철저한 기획 아래 결혼식 몇 달 전부터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희지, 아트 디렉터 김윤경,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명창 박정욱, 플로리스트 최나미 씨 등의 아티스트가 모여 회의를 거듭했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모란’을 소재로 스타일링을 제안해, 직접 제작한 모란 문양의 한지로 테이블 세팅과 답례품, 도시락을 장식했다. 또 결혼식 며칠 전부터 답례품을 미리 포장했는데, 최가철물점에서 제작한 촛대는 걸어두거나 테이블에 놓아도 되는 실용적인 것이라 인기가 많을 것으로 보였다. ‘목단’ 이라고도 부르는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기에 예로부터 혼례의 활옷과 병풍 문양 등으로 즐겨 사용했다. 보랏빛 모란 문양은 고급스러운 품격으로 결혼식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었다.

혼례 당일, 오촌댁에서는 청사초롱을 걸고 신랑 신부가 걸어 나갈 꽃길을 만드는 작업이 아침부터 한창이었다. 새로 제작한 아치와 촛대를 설치하는 과정은 혼주인 최홍규 관장이 직접 지휘했다. 플로리스트 최나미 씨는 모란으로 테이블 센터피스를 만들고, 꽃길은 화이트&그린 컬러로 스타일링했다. 클리머티스와 리시안셔스, 망개나무 열매가 소담하게 걸린 꽃 장식은 우아하고 사랑스러웠다.

(왼쪽) 지난 6월 2일, 국립민속박물관의 한옥 ‘오촌댁’에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장남 최진현 씨의 혼례가 치러졌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감동적인 혼례를 마치고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직접 인사를 드리고 있다. 자수가 돋보이는 신랑의 관복과 신부의 활옷은 고증을 통해 제작했다.


1 핑크빛 모란으로 부귀영화와 풍요로움을 담은 테이블 센터피스. 플라워 데커레이션은 플로리스트 최나미 씨가 맡았다.
2, 3 ‘모란’을 주제로 꾸민 테이블에는 고운 냅킨을 더한 도시락을 세팅했다.

4 방짜 유기에는 진관사에서 준비해준 부각과 약과를 담았다. 진관사의 연밥은 떡갈비와 함께 도시락에 담았다.
5 배우 박정자 씨와 혼주 최홍규 씨.
6 잔칫집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감독을 맡은 아트 디렉터 김윤경 씨.
7, 8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백마를 타고 등장해 찬사를 받았다.

9 전통 방식을 재현한 초례상 모습.
10 부각을 담아내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희지 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잔치의 묘미는 역시 음식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희지 씨는 김윤경 아트디렉터와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당했다. 결혼식 며칠 전부터 전통 시장과 대형 마켓에서 장을 본 박희지 씨와 김윤경 디렉터는 오이와 고추로 시원한 장아찌부터 담갔다. 그리고 떡갈비를 만들기 위해 고기를 갈기 시작했는데 그 많은 양에 정육점에서 깜짝 놀랐다는 후문. 혼례 음식 준비는 그야말로 마라톤을 방불케 했다. 결혼식 24시간 전부터 모두 가례헌에 모여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를 찌고 당근과 오이 꼬치를 준비했다. 양파, 숙주, 베이컨을 넣은 녹두빈대떡과 애호박, 새우, 부추를 넣은 고추장장떡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다.

드디어 식장에 음식을 차렸다. 테이블에 진관사 스님들이 혼주와의 인연으로 준비해준 연밥과 부각, 약과를 놓고 오늘의 메인 요리가 될 도시락에는 연밥과 떡갈비, 녹두 빈대떡, 고추장 장떡을 소담하게 담았다. 잔치에는 빠뜨릴 수 없는 시루떡과 쑥떡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것을 내놓고, 애호박과 달걀지단을 올린 국수도 준비했다. 차가운 막걸리와 식혜는 여름밤의 별미.
식사 후에 혼례를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객들은 즐거운 식사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5백 명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하고 음식을 그보다 넉넉하게 준비 했는데, 막상 혼례에는 1천 명이 넘게 왔다. 준비한 음식은 금세 동이 났다. 하지만 모처럼 보게 될 아름다운 혼례에 대한 설렘으로 모두들 흡족해했다.

1 신부가 쓴 푸른 면사는 순조의 셋째 공주가 사용했던 것을 재현한 것.
2 일부일처제를 상징하는 기러기를 들고 있는 신랑.
3 식순과 혼례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인 집례자 장사익 씨.
4 김종규 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정병국 국회의원 등이 축하 인사를 전통 부채에 적었다.
5 청실 홍실을 두른 표주박 잔에 술을 담아 마시는 합근례 전경.
6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희지 씨는 젓가락에도 정성을 가득 담았는데, 순면 냅킨으로 한번 감싼 후 작은 꽃을 달아 완성했다.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전안례
이번 혼례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쇳대박물관이 박정욱 명창과 함께 고증을 거쳐서 준비했다. 혼례 형식은 예로부터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최대한 전통 혼례의 아름다운 의미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저녁 7시, 드디어 혼례의 시작을 알리는 사물놀이패가 초례청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풍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마를 탄 신랑 최진현 군과 가마를 탄 신부 송윤재 양이 그 뒤를 따랐다. 제대로된 혼례를 보여주기 위해 청사초롱을 든 초롱꾼, 가마꾼, 함진아비, 기럭아비, 마부, 풍류 악단의 한복까지 새로 제작했기에 시공을 초월한 듯 마치 조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혼례의 진행을 맡은 집례자 소리꾼 장사익 씨는 먼저 백로해로를 기원하는 전안례의 시작을 알렸다. 신랑이 기러기를 오촌댁에 차려진 전안상에 올리고 주인(신부의 아버지 송상원 님)의 안내를 받아 본격적 혼례를 올리는 초례정으로 나가는 형식이다. 전안에 쓰는 기러기는 일부일처제와 가정 내의 위계질서를 상징하며, 절을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허락의 약속이다. 초례상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음양의 화합을 상징하는 청색ㆍ홍색 촛대, 굳은 절개를 지킨다는 솔가지와 대나무, 수탉, 암탉, 밤, 대추, 붉은팥, 검은콩 등을 올린다.

활옷에 면사를 두른 신부가 수모의 부축을 받아 초례청에 서자 앞에 앉아 있던 하객들은 그 환상적인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특히 조선 후기에 선보인 푸른 면사는 서양의 면사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순조의 셋째 딸 덕온 공주가 썼던 것을 그대로 재현해 신부의 우아함을 더했다. 명창 박정욱 씨가 전통 혼례 순서와 복식을 맡아 준비했고, 일곱 명의 무형문화재가 총출동했다.

신부의 활옷은 순조의 둘째 딸 복온 공주가 착용했던 대례복을 토대로 제작했는데, 순금박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덕환 옹의 솜씨다. 화훼분花卉盆과 칠보문七寶紋으로 수놓은 자수는 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한상수 장인의 작품. 두 손에 길게 두른 절수건은 모란과 나비, 봉황을 수놓았으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염원을 담았다. 신랑의 늠름한 풍채를 돋보이게 만들어 준 관복의 쌍학문 흉배가 시선을 끌었는데, 쌍학雙鶴은 조선 시대 문신 중 당상관이 착용던 의복의 문양이다.

신랑 신부가 잔을 주고받는 교수례와 합근례
초례가 시작되었다. 초례는 교배례, 교수례, 합근례로 이루어지는데, 악단의 풍류가 이어지며 흥을 돋웠다. 교배례는 초례상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예식인데, 이를 위해 신랑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동편에, 신부는 서편에 선다. “신랑은 일어나 동남쪽 대야에서 수모의 도움으로 손을 씻고 제자리로 가시오. 신부는 일어나 서북쪽 대야에서 수모의 도움으로 손을 씻고 제자리로 가시오. 신부는 먼저 사배를 하고 신랑은 답하여 재배를 하시오.” 마음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로 신부와 신랑이 깨끗이 손을 씻고 신부와 신랑이 서로에게 절했다. 교수례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도자기 잔에 술을 나누어 마셨으며, 합근례에서는 청실 홍실을 두른 표주박 잔에 술을 마셨다.

“합근례를 행하겠습니다. 수모는 신랑 신부에게 표주박을 나누어 주고, 술을 따르시오. 신랑은 잔을 들어 읍하였다가 술을 다마시고 안주를 드시오. 신부도 잔을 들어 읍하였다가 술을 다 마시고 안주를 드시오.” 장사익 씨는 맛깔스러운 진행과 설명으로 하객들의 흥을 돋웠다. “신랑 신부는 각각 일어나시오.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며, 신부도 답하여 읍하고 안으로 들어가시오.” 이윽고 주인이 신랑을 인도해서 나가면 혼례는 끝이 나고 초례상을 물린다. 그리고 원래의 전통 혼례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집례자 장사익 씨의 진행에 따라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에게 직접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바로 가까이에서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본 하객들은 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이렇게 전통 혼례에 현대적 즐거움을 반영하는 것은 그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하리라 생각된다.


1 답례품으로 제공한 최가철물 점의 촛대.
2 신부는 2부 예식에서 디자이너 진태옥 씨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3
 결혼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뒷모습.
4 오 한과, 육포, 밤, 대추, 구절판 등을 올린 폐백실. 
5 장사익, 박정욱 명창의 축하 공연과 함께 여름밤은 깊어간다.


폐백은 오촌댁 안에서 진행했다. 폐백상을 차린 뒤로는 목단 8곡 병풍을 설치했는데, 만개한 모란꽃과 한 쌍의 나비를 주제로 생동감이 뛰어난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폐백을 위해 시댁 어른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곱게 차려입은 어른들의 한복이 신랑신부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폐백은 신부가 혼례가 끝난 후 시댁으로 가서 시부모와 어른들에게 큰절을 하고 술을 올리는 의례를 뜻한다. 대추, 밤, 술, 안주, 과일 등을 상 위에 올리고 신부가 절을 하면 시부모는 치마에 대추를 던지며 부귀다남富貴多男을 기원하는 것. 폐백이 진행되는 동안 하객들은 집례자이자 소리꾼 장사익 씨와 명창 박정욱 씨의 축하 공연을 감상했다. 이 공연에는 예정에 없던 깜짝 손님도 함께했는데, 최홍규 관장과 친분이 돈독한 배우 강부자 씨가 축하 인사를 전하고 배우 박정자 씨가 직접 노래 한 곡을 선물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전통 혼례의 아름다움 혼례는 음과 양, 신랑과 신부의 완벽한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초롱불을 밝히고 해 질 무렵에 치르는데 이것은 음양의 균형을 상징하는 것이다. 8시가 되자 초여름 밤은 어둑어둑해졌고, 바람에 흔들리는 청사초롱이 분위기를 돋웠다. 이윽고 신부가 2부 순서를 위해 웨딩드레스로 갈아 입고 등장했다.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씨가 만든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는 19세기를 연상시키는 고전적 베일과 조화를 이루었다. 전통 혼례 이후 입은 웨딩드레스답게 우아하면서도 과거의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보타이를 매고 턱시도를 입은 신랑도 아주 멋스러웠다. 축하 공연과 함께 밤이 깊어지자 하객들은 모란 꽃다발과 답례품을 받고 하나 둘씩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통 혼례의 아름다움은 모든 절차에 의미가 담겼다는 데 있다. 신랑 신부뿐 아니라 하객들도 그 의미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들으며 혼례를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이렇게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는 결혼의 숭고함에 대해 더욱 남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날 혼례에 참석한 외국인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앞으로 전통 혼례가 입소문을 타 이를 선택하는 젊은 커플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결혼식으로 유명한요즘 우리 나라의 서양식 예식 문화가 이 혼례처럼 기품과 감동이 함께하는 예식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흐드러지게 핀 모란 향기는 여름 바람에 흩날리고, 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쏟아지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글 이소영 | 사진 김문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