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으로 차가 들어서자 봄볕에 살아난 초록이 눈을 정화해주었다. 포장도로를 지나 좁은 오솔길로 들어서니 차가 머뭇거리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여긴 오지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곡예 드라이브를 하며 10여 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오래된 한옥이 보였다. 대청마루가 없는 대신 큼지막한 마당이 있고, 담벼락 너머로 홍천강의 수평선이 걸렸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위치다. 강 너머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다른 참가자들과 합류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시와의 연결고리를 모두 차단하는 일이었다. 스마트폰과 담배, 술 등 치유 여행에 방해되는 모든 물건은 떠날 때까지 압수당했다. 디톡스 여행을 진행하는 심신통합코칭센터의 김성희 선생은 “최대한 ‘애쓰지’ 마세요. 말은 되도록 줄이고 지금 여기에만 마음이 머물도록 하세요”라며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것이 곧 디톡스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스트레스를 바로바로 해소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세포가 몸속에 계속 저장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요.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만으로 우리 몸속의 독을 많이 해소할 수 있습니다.”
(왼쪽) 디톡스 여행의 기본 프로그램인 ‘마음 명상’에 집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명상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디톡스의 첫 걸음이다.
효소 먹고 된장 바르고
가장 걱정이 된 것은 이틀간 배급(?)받은 산야초 효소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기 한 점에 풍류를 말하는 ‘육식녀’가 태생적 식탐을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산야초 효소는 민들레, 솔잎, 산딸기, 둥굴레, 도라지 등 40여 종에 가까운 야생초를 3년 이상 숙성시켜 만든 발효 음료다. 효소는 지방을 분해하거나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는 기능이 있어 다이어트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산야초를 물과 함께 1:5 비율로 섞어 음료수 마시듯 식사를 해결했는데,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복부가 편안해졌고, 포만감 때문에 배고픈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1 나무와 함께 호흡을 하며 자연에 귀 기울이는 ‘집중 명상’. 물안개가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다.
효소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한 다음에는 ‘된장 찜질’을 이용한 해독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광목 위에 재래 된장을 골고루 편 다음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접어 복부에 찜질기와 함께 둘렀다. 큼지막한 찜질기가 배 전체를 두르고 있으니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그 모양새도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된장 찜질은 보기에 예쁘지는 않지만 전통 민간요법 중 하나다. 특히 복부 내장에 많이 분포한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복수와 장내 독소를 제거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배에 된장을 붙인 채 누워 명상의 일종인 ‘보디스캔’ 시간을 맞았다. 몸을 바닥에 붙이고 최대한 이완시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신체 부위에 집중하는 명상이다. 김성희 선생의 지시에 따라 코, 귀, 입안, 척추, 팔, 발, 발가락 사이 등 몸의 감각기관을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워 있는 몸이 모래 속으로 푹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 빠져나가고 온몸이 완벽하게 이완되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척추 어디쯤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삼매에 가까운 깊은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40분간의 보디스캔이 막 끝나고 있었다.
2 오래된 한옥에서 진행한 명상 체험.
3 ‘마음 챙김 명상’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디톡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성희 씨.
마음을 다스리면 꿈이 이뤄질까
디톡스 프로그램의 특징은 다양한 형태의 명상을 통해 마음을 챙기면서, 몸을 정화하는 재료들을 이용해 ‘몸’의 독소도 함께 치유한다는 점이다. 한바탕 된장 찜질을 마치고 명상실에 모인 참가자들은 5년 단위로 꿈을 적는 시간을 가졌다. 1m 크기의 풍등에 5년 안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적었다. 풍등 아래에 주먹만 한 연료가 끼워져 있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열기구처럼 등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소망을 적은 글씨가 보일 만큼 부풀어 올랐을 때 손을 놓으면 부드러운 밤바람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다가 하늘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풍등을 띄우고 싶은 마음이 조급하더라도 등 전체가 불로 온전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결혼과 로또 대박’를 큼지막하게 적어 띄운 내 풍등은 공기 빠진 풍선처럼 고꾸라져 홍천강으로 장엄하게 낙하했다. 아무래도 소망이 과했거나 의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1, 2 장기의 독소를 해독하는 효과가 있는 된장 복부 찜질과 이틀간 양식이 된 산야초 효소.
3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홍천강의 평화로운 풍경.
4 카드에 적힌 다양한 표현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시간.
이틀간의 디톡스 여행의 무대가 된 가평 팜카티지 한옥.
홀딱 벗고 바람 명상하기
바람이 한낮에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불더니, 밤에는 침묵했다. 대신 딱따구리가 나무 기둥에 둥지를 만드는 소리가 가끔 울렸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그 상태로 바람을 맞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참 별난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인 이 여행에서 홀딱 벗고 바람을 맞는 ‘풍욕’을 진행한다는 것 아닌가.
(오른쪽) ‘네티포트’라 부르는 코 세척 전용 주전자.
피부가 외부의 공기와 잘 호흡할 수 있도록 옷을 벗고 바람을 맞으며 피부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으로, 일정 시간 간격으로 담요를 덮어가면서 풍욕을 하는 것이 포인트다. 미리 배운 3대 운동(개구리 운동, 거북이 운동, 붕어 운동)을 병행하면 산소 공급이 활발해져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불을 모두 끄고 중앙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의 안내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렵거나 창피할 일은 없다. 다만 담요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고 바람의 움직임이 너무 적으면 온도 차이 때문에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커피 관장 그리고 콧구멍 청소 디톡스 여행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유기농 커피를 이용한 ‘커피 관장’. 말 그대로 커피를 이용해 관장하는 것이다. 이틀간 효소만 먹었기 때문에 커피 관장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설명에 참가자 중 많은 사람이 커피 관장을 했다. 커피 관장은 독일계 미국 의사이던 막스 거슨 덕에 알려진 관장법으로 담낭을 자극해 숙변과 독소 제거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커피와 관장기로 집에서도 시도할 수 있으니 대장에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는 독소들을 ‘디톡스’해보는 것은 어떨지.
무엇보다 이번 디톡스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1박 2일 동안 경험한 모든 프로그램을 집에서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네티포트(코 세척 전용 주전자)’를 이용해 콧속을 정화하는 일이다. 네티포트를 이용해 한쪽 콧구멍에 용액을 넣으면 다른 콧구멍으로 용액이 빠져 나오면서 비강이 청소된다. 공기 중에 떠도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축농증, 비염으로 호흡곤란을 느낄 때에도 효과가 좋다고. 네티포트의 입구를 콧구멍에 완전히 밀착시켜야 하고, 잘못된 자세로 시도할 경우 귓구멍으로 용액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한다. 소금물이나 생리식염수를 주로 사용한다. 된장 찜질부터 명상과 풍욕, 커피 관장까지 알짜배기 디톡스 체험을 했지만, 이틀 만에 얼마나 치유가 될 수 있겠는가. 이틀 동안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는 디톡스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왼쪽) 풍등 위에 앞으로 5년간의 소망을 적어 하늘로 올려 보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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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협조 노매드 힐링 트래블 (www.herenno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