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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장례식] 미용사 이상일 씨 죽기 전에 죽어본 남자의 장례식
우리는 장례의 참뜻을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친 이를 떠나보내고 그가 한 줌 먼지로 돌아가 자연을, 세상을 이롭게 하도록 돕는 의식이 장례 아닐는지요. 우리가 원스톱 장례 서비스에 길들여지고, 대량생산한 ‘기성품’ 수의와 근조화만 찾는 이유도 바로 그 참뜻을 잊은 채 효율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장례를 치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생의 마지막, 미소 속에서 가족을 존엄하게 떠나보내려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장례 문화를 제안합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 알고 보면 죽음은 그렇게 무섭거나 광포하거나 구슬픈 일이 아닌지도 몰라…. 사지 뻗으면 한 뼘밖에 안 되는 인간의 일생에서 삶과 죽음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몰라…. 올 3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디자이너스 초이스관에서 미용사 이상일 씨의 전시 ‘라스트 뷰티Last Beauty’를 관람한 이들은 일상의 초침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죽음에 대해, 삶의 속절없음에 대해, ‘당신도 나도 죽는다’는 허리 휘는 진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상일 씨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가상으로 연출한 장례식 무대 ‘라스트 뷰티’를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을 구하는 구도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그에게 마침내 다가온 답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건 어떤 순서에 의해 수억만 년 동안 왔다 가고 또 왔다 가는 것, 태어나자마자부터 하루하루 죽음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그러하니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거나 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까지 깨달은 그에게 그다음 찾아온 이야기는 이러했다. ‘탄생이라는 건 생존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 죽음은 다 싸워 비로소 승리와 자유를 얻었다는 의미다. 누군가 죽는다는 건 승리를 얻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 회귀의 현장을 우린 축하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장례를 미리 치러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죽음의 승리를 자축하고 축하받는 장례식 현장. 작별이 아니라 환송(해후를 기약한)의 눈물로 글썽이는 축제의 마당. 찬연히 아름다웠던 삶의 마지막 퍼포먼스였다. 전시가 끝난 지 두어 달이 넘도록 이를 화두에 올리는 이가 수없이 많아 한 번 더 지상중계한다. 죽기 전에 미리 죽어본 남자의 가상 장례식.

(왼쪽) 전시 하루 전 이상일 씨가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보냈다. “부고 訃告. 파크뷰 헤어뉴스 대표 이상일이 전시회 관계로 2012년 3월 6일 자정에 별세했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장례식장_삼성동 coex”.


전통 장례의 ‘상차喪次(상주들이 있는 장소)’와 같은 공간. 그가 연필로 그린 상주(아들딸)와 미망인의 그림이 걸려 있다. 상주인 아들과 딸은 휴대폰을 들고 있는데 현대의 문화 코드를 담은 것이다. 미망인 그림에는 에르메스 백이 그려져 있는데 앞으로 아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과 현실(물질)을 의미한다.


전통 장례의 만장輓章(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을 적고 깃발처럼 만든 것)을 그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원래는 길이 8자, 너비 2자 내외의 비단이나 종이에 글을 적어 깃발을 만든다. 이 만장이 상여 뒤를 따르게 되고 장례가 끝나면 빈청에 보관한다. 그는 성기게 짠 흰 천으로 만장을 만들었다.


전통 장례에서 고복皐復 또는 초혼招魂이라 하는 절차로, 원래는 사잣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 나물 세 접시를 작은 상이나 채반에 차려놓는다. 이상일 씨는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었는데, 일할 때 입던 가운, 즐겨 신던 가죽 부츠를 올려놓았다. 예법에 맞춰 나물과 밥도 올렸다.


전시장 한가운데 그의 ‘시신’을 안치했다. 울퉁불퉁한 이승길 넘어 하늘에 이른 듯 구불거리는 나뭇가지에 시신을 올려놓았는데, 자세히 보면 그가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자신의 얼굴이 이불 덮고 평온하게 누워 있다.


(왼쪽) 이상일 씨가 연필로 그린 대형 작품 ‘승리와 자유의 여인들’ 중 일부. 여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장을 든 장면으로, 화려하게 다시 탄생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카니발적인 애도라 할 만하다.

(오른쪽) 전통 장례에서 ‘영좌靈座(손님이 죽은 이에게 슬픔을 나타내는 장소)’라 부르는 곳으로 원래는 제상 위에 영정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과 향을 피운다. 술과 삼색 과일을 올리고 고인이 생전에 즐겨 쓰던 물건을 병풍에 걸쳐놓는다. 이상일 씨는 연필 세밀화로 그린 자신의 영정을 놓고 제상 위는 쌀, 평소 즐기던 샴페인 잔, 초로 장식했다.

이상일 씨는 … 시대를 주름잡은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동물적 감각으로 꽃을 스타일링한 플로리스트로, 트렌드세터들의 사랑방인 ‘카페 모우’의 주인장으로, 또 화가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헤어 스타일리스트’라고 세련되게 포장한 이름보다 ‘미용사’라는 솔직하고 당당한 이름을 더 사랑한다. 몇 년 전 충남 아산 외암리에 한옥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붓으로, 펜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 현재 파크뷰 헤어뉴스의 대표로 있다.


 디자인 안진현 기자 캘리그래피 강병인 어시스턴트 최고은

구성 최혜경,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