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2월호에 진행한 ‘3545 인생 2막’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인생 2막을 꿈꾸고 있다고 답변했고, 그중 49%가 ‘창업’을 그 시작점으로 꼽았습니다. <행복>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베이커리 전문가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공은숙 씨 이야기를 ‘3545 인생 2막’의 첫머리로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배움이 창업의 시작이 된 그의 이야기가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여러분께 속 깊은 조언이 되길 바랍니다.
친구들은 저를 ‘이사의 달인’이라 불렀습니다. 군인이던 남편의 부임지를 따라 짧게는 1년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해야 했으니까요. 주로 지방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포장 이사가 일반적이지 않아 물건 하나하나를 손수 챙겨야 했지요. 두 아이의 엄마로, 군인의 아내로 평범하게 산 시절이었죠. 특별한 고민과 인생에 대한 성찰 없이 하루하루 바쁘게만 보낸 나날이었습니다. 이삿짐 챙기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 남편이 일본 도쿄 한국대사관에 재외 무관직을 맡으면서 가족 모두가 도쿄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당시 1982년이었는데, 정치적 혼란으로 사회가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그 기회가 스스로 인생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쿄에 처음 머물 당시 특별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대여섯 살로 아직 어려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고, 저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식도 부족했지요. 중국 요리 학교에 등록해 얼마간 수업을 듣긴 했지만, 취미에 가까웠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며 보내던 그때와 달리 두 번째로 일본에 거주하던 1990년대 초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머리가 제법 커진 아이들은 굳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않아도 잘 자랐고 그만큼 엄마로서 해야 할 일도 줄었습니다. 남편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죠. 그제야 현실에 직면한 고민이 다가오기 시작하더군요.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마흔 그리고 배움의 시작
남편의 보직 때문에 부부가 함께 여러 행사에 초대되는 일이 많았고, 그만큼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집에 초대할 일도 잦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메뉴를 정하는 일이었어요. 각국의 음식 문화를 사전에 파악해 재료를 골라야 했고, 메뉴의 한두 가지는 손님에게 친숙한 요리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요리 솜씨는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한계가 분명히 있었죠.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리를 전문 학원에서 배운 이유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일본에서 보직을 마치고 귀국하면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기더군요.
당장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농사일을 하고, 나는 작은 카페를 열어 빵을 구우면 어떨까?’ ‘일본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노후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 니다. 마흔이 넘어서야 스스로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우는 제 모습을 좋아했고, 남편의 격려와 후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남편 월급의 많은 부분이 제 학원 수강료로 들어갔지만, 남편은 저를 ‘우리 집 재산’이라 농을 던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제가 가족의 도움 없이 어떻게 배움에 도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가족의 후원 덕분에 더욱 열심히 요리를 공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수강생 20명 중에 1~2등을 놓치지 않았을 만큼 보기보다 승부욕이 강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은 언제나 강력한 용기를 주는가 봅니다.
요리에 빠진 6년의 세월
일본에는 사범 과정의 요리 학원이 많은데, 그중 에가미 요리 학원은 동서양의 요리부터 베이킹과 디저트까지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요리 교육 기관으로 가장 유명했습니다. 그렇게 에가미 요리 학원의 초급 기초반에 등록하면서 요리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재료에 따라 칼 쥐는 법부터 생선 비늘을 벗길 때 칼의 각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요리 모양과 맛 등 요리 재료를 대하는 기본자세부터 배웠습니다. 일본에 처음 머물렀을 때 익힌 일본어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전문 용어가 많아 걱정했지만, 오히려 자주 사용하는 단어 위주로 공부하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본어가 모국어인 동료 수강생들과 같을 수야 없었겠지요.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죠. 케이크 강좌가 있을 때는 수업 30분 전에 먼저 도착해 레시피 공부를 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한자나 조리 용어에 대해서는 예습이 필수였죠. 수업 전날은 외출하지 않은 채 집에서 케이크만 만들었습니다. 반죽의 강도나 재료의 균형 등 레시피 설명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 노력으로 동서양의 요리 사범 코스까지 마치고 ‘일본 전국 요리 상급 기능사’ 자격시험에도 통과했습니다. 수강생 중에 일본 지방에서 온 젊은 유학생도 많았지만, 부모님의 돈으로 관심도 없는 요리를 배우다 보니 성적이 좋지 않을밖에요. 제겐 ‘일본에서 배운 레시피를 모두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라는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에가미 요리 학원을 1년 반 정도 다녔을 즈음 프랑스 케이크로 유명한 ‘일 플뤼 쉬르 라 센 케이크 사범 과정’을 병행했고, 이어 영국 홍차 사범 과정도 이수했습니다. 학원 수업을 번갈아 수강하며 수업이 없는 날에는 연습에 집중 했습니다. 그렇게 오로지 요리를 배우는 데만 6년을 보냈습니다.
(왼쪽) 1990년대 초, 요리 교육을 처음 받은 도쿄 에가미 요리 학원에서 수강생, 선생님들과 함께.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공은숙 씨다.
(왼쪽) 베이커리 스튜디오 슈크레. 조리 도구 모양의 자수 장식도 그의 솜씨다.
(오른쪽) 공은숙 씨의 레시피는 항상 진화중이다.
7개의 자격증을 갖고 돌아오다
1996년 한국에 들어올 때 제 가방에는 총 7개의 자격증이 들어 있었습니다. 6년 동안 쉼 없이 요리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죠. 귀국하자마자 한 달 만에 논현동에 요리 교실을 열었습니다. 몸으로 익힌 요리 감각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경험한 요리 교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단순히 취미로 교실을 찾는 수강생이 많았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배운 알토란 같은 레시피를 친절하게 전달해도 학생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고, ‘요리를 가르치는 것이 내게 맞는 것일까?’라고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얼마간 요리 교실을 운영하다가 처음 요리를 배울 때 꿈꾸던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베이킹 교실과 병행하는 공간이었는데, 크고 작은 인쇄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 덕에 제법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첫째 날과 달리 손님이 단 두 명뿐이었죠. 위치가 문제였습니다. 케이크를 아무리 정성스레 만들어도 손님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맛도 중요하지만 장사는 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입소문이 나고 적자를 면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매출은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카페와 베이킹 교실을 함께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카페 운영 두 가지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보니 어느 한쪽이 소홀해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결국 카페를 닫고 오로지 베이킹 교실로만 다시 문을 연 지금 무엇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 기쁩니다. 한 달에 수강하는 학생이 40명가량 되고 ‘슈크레’에서 베이킹을 배운 수강생 중 일부는 베이커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요리를 배워 어디에 써먹겠느냐며 핀잔을 많이도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도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인데, 수강료로 버리느니 그 돈을 알뜰하게 모아 노후 자금으로 써야 하지 않느냐고 혼도 났습니다. 그 속에서 제 자신도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제 선택이 옳았습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겠느냐는 의심을 가슴 언저리에 안고 살면서도 남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며 쉼 없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순이 되는 해에는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정갈한 시골 빵집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상상도 해보고, 프랑스의 요리 학교 학생이 되는 모습도 떠올려봅니다. 칠순이 넘어서도 요리 교실을 열정적으로 운영하는 에가미 요리 학원의 원장님처럼, 여전히 도쿄 케이크 시장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는 유미타 선생님처럼 저도 오랫동안 케이크와 함께하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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