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로 불리는 남자 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매일 다른 옷차림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과 매일 바꿔 입어도 비슷한 분위기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누가 더 멋쟁이일까? 둘 다 나름의 멋이 있지만 전자는 개성 있어 보이고, 후자는 점잖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개성이라는 것은 표현하려 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더 개성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성숙한 남자 스타일의 미묘한 특성이다.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훤칠한 키와 날씬한 몸, 세련된 옷차림을 유지하며 전직 톱 모델의 면모를 보여주는 모델라인 대표 이재연 씨. 그 역시 후자에 속한다. 40년 동안 패션계의 최전선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쇼 ‘서울패션위크’와 ‘SFAA 컬렉션’을 비롯한 주요 패션쇼를 기획, 연출하는 그는 “개성 있는 스타일은 한 사람의 악센트 같은 것이지, 개성 표현에 집중한 옷차림은 깊이가 없어 보이기 십상이다”라고 말한다. 각계 명사들을 대상으로 베스트 드레서를 선정하는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백조상 시상식’을 며칠 앞 두고 이재연 대표를 만나 패션과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백조상 시상식이 올해로 27회를 맞습니다. 이 시상식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1979년에 ‘88패션스튜디오’란 이름으로 모델 에이전시를 시작했어요. 모델라인이란 이름으로 바꾼 것은 1983년이고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사람들은 모델을 변변한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패션 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표식이었죠. 그래서 패션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매혹적인 문화인지를 알리고 싶었고, 누구나 아는 명사들을 패션 안으로 불러 모으게 된 거지요.
패션의 어떤 점이 그리도 매혹적인가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3씨’가 있어요. 바로 ‘맵시’ ‘마음씨’ ‘말씨’죠. 옷맵시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마음씨가 달라지는 거죠. 그런데 그 마음이 말씨를 만들고, 말은 한 나라의 풍습을 만들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패션을 통해 문화를 만드는 사람인 거예요. 이보다 더 매혹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맞아요, 패션은 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지요. 그것이 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하고요. 패션을 옷으로만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 돼요. 패션 브랜드에서 호텔을 짓고 레스토랑도 열고, 가구를 만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나올 수도 있겠죠. 좋은 디자인이 곧 좋은 성능이란 걸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생활 속 디자인의 수준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개인의 스타일도 좋아져요.
멋진 옷을 입는다고 누구나 스타일이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무엇이 좋은 스타일을 만들까요?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집중한 옷차림이 좋은 스타일을 만듭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멋시상식이 없어요.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란 생각은 위험합니다. 상대방이 나의 스타일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차승원, 권상우, 공효진 씨 등 톱스타들이 모델라인을 통해 데뷔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베스트 드레서들과 동고동락하셨는데, 그중에서 누가 가장 옷을 잘 입나요? 배우 김용건 씨입니다. 그는 내일 입을 옷을 적어도 오늘 저녁에는 챙겨 놓는 사람입니다. 넥타이, 구두, 심지어 양말까지도요. 좋은 옷을 고르는 안목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스타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라요.
김용건 씨처럼 내일 입을 옷을 골라두나요? 옷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저 역시 다음 날 입을 옷은 챙겨두는 편이에요. 옷을 고를 때 기준은 ‘내일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옷을 입는 방식입니다. 같은 셔츠라도 소매 단추를 풀었을 때와 채웠을 때의 느낌이 다르죠. 재킷을 입고 깃을 세우면 전혀 다른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패션 문외한도 이렇게만 하면 옷을 잘 입을 수 있다고 할 만한 ‘고수의 비법’이 있나요? 많이 입어보는 수밖에 달리 왕도가 없어요. 스타일이란 시험 전날의 ‘벼락치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옷을 잘 입는 사람은 그만큼 실패도 많이 해본 사람이에요. 많이 입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것을 선별하는 눈이 생기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겉모습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내면을 더 가꾸란 말로 패션을 등한시하기도 하는데, 옷은 침묵 속의 자기 표현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한마디 말 없이도 분명하게 전달해주죠.
동감이에요. 내면과 외면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어요. 서로 상호작용하고 그것이 한 사람의 스타일을 결정하지요.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퇴색하고 망가져버려요. 내면을 알차게 하는 것과 더불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두루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면과 외면 모두에 충실할 때 우리는 자신감이라는 최고의 ‘스타일 밑천’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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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유미(2YUM 스튜디오) 헤어 권영은 메이크업 류현정 어시스턴트 최고은